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김광석 (1964. 1. 23 대구~1996. 1. 6 서울)
대중음악 작곡가·가수.
진솔한 목소리로 서정적인 발라드 및 1970년대 모던포크의 맥을 잇는 포크풍 노래를 주로 불러 20~30대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2년 명지대학교 1학년 때 노래를 시작했으며, 서울지역 대학생연합 노래패인 메아리와 이곳 출신들이 주축이 된 노래운동모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했다.
1987년 첫 공연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탈퇴했으며 1988년 그룹 동물원에 참여해 1, 2집 음반을 냈다.
1989년에는 솔로로 독립해 1집 음반을 발표했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사랑했지만〉·〈사랑이라는 이유로〉 등이 실려 있는 2집(1991)에 이르기까지 주로 발라드 계열의 노래를 불렀다.
3집 음반에서는 포크 음악으로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 〈나의 노래〉는 이런 변화를 보여 준 대표적 노래였다. 〈일어나〉 등이 실린 4집에서는 포크 음악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고, 이런 음악적 변화와 함께 초기의 사랑 중심의 가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변했으며, 이를 위해 읊거나 이야기하는 방식의 창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들 음반 외에도 자신의 애창곡을 리메이크한 〈다시 부르기 1〉(1993)·〈다시 부르기 2〉(1994) 등의 음반들이 있다. 대중매체보다는 소극장 중심의 공연을 통해 활동해온 그는 1996년 단독 라이브 공연 1,000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움으로써 한국대중음악계에 라이브 공연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광석이 32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그의 생전의 공연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 〈인생이야기〉·〈노래이야기〉와 후배 가수들이 그의 대표곡을 모아 부른 추모음반 〈가객〉 등이 나왔다.
이름 : 김광석
출생 : 1964년 1월 22일
출생지 : 대구
가족사항 : 3남 2녀 중 막내
사망 : 1996년 1월 6일
신체 : 키 164cm, 체중 58kg
학력 : 명지대학교 경영학
경력 :
1981년 솔개트리오 멤버
1988년 동물원 멤버
1991년 BBC 라디오 밤의 창가에서
수상 : 1994년 한국노랫말대상 좋은노랫말상
데뷔 : 1984년 노찾사 1집, 김민기 음반 참여
데뷔앨범 : 1988년 동물원 1집 앨범 [거리에서]
솔로데뷔 : 1989년 1집 앨범 [너에게]
* 1996년 1월 젊은 나이로 요절한 가수, 김광석
고(故) 김광석은 1984년 당시 대학가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결성되면서 데뷔했다.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탈퇴한 후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어 다시 1989년에 솔로로 데뷔, 2집 수록곡 <사랑했지만>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노래>,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광야에서> 등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표현해 90년대를 대표하는 포크가수로서 자리매김했다.
또한 1989년부터 1995년까지 1000여회의 라이브 콘서트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팬들과 다정다감한 음악적 교감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1996년 1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여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2000년에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부치지 못한 편지>와 <이등병의 편지>가 삽입되어 김광석 붐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2000년 11월에는 [Anthology]라는 트리뷰트 앨범이 출시되었다.
* 발매음반
거리에서 (동물원 1집) (1988년) 거리에서, 말하지 못한 내사랑, 잊혀지는 것
흐린가을하늘에편지를써 (동물원 2집) (1989년) 흐린가을하늘에편지를써, 새장속의친구, 동물원
김광석 1 (1집) (1989년) 너에게, 내꿈, 그대 웃음 소리
김광석 2 (2집) (1991년) 사랑했지만, 꽃,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광석 3 (3집) (1992년) 자장가,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Exchange kg.m4 (4집) (1993년) 일어나, 바람이 불어 오는곳,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1993년) 이등병의 편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른한 오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년) 바람과 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두 바퀴로 가는 ...
김광석 인생이야기 (1996년)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 노래이야기 (1996년) 먼지가 되어, 이야기 하나, 나른한 오후
김광석 가객 (1997년) 부치치 않은 편지, 부치치 않은 편지 #2, 내 사람이여
김광석 1 + 2 (1998년) 사랑했지만, 너에게, 꽃
김광석 Anthology (2000년 11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서른즈음에, 거리에서
(출처 : <김광석> - 네이버 지식iN)
* 김광석 10주기...<가객>은 가고 노래는 남아
1996년 1월 6일 새벽,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집에서 30대 남자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숨진 이의 아내는 <가수 생활 10년만에 라이브 공연 1000회 기록을 세운 뒤 (남편이) 더 이상 음악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과 허탈감에 시달려 왔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사인을 자살로 결론 지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김광석. 1970년대 통기타 문화의 계보를 잇는 모던포크의 '적자'로, 80년대를 치열하게 통과한 386세대의 문화적, 감성적 대변자로 평가받던 그는 추운 겨울 아침, 그토록 황망하게 팬들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0년. <망각>할 수 있는 축복을 선물 받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조금씩 잊혀져 가지만 아직도 스산한 가을밤이나 소주 한 잔에 취한 저녁 겨울 저녁이면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떠 올립니다.
■ 80~9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2000년대까지 유효한 보편적 정서
노랫말만큼 쓸쓸하지만, 얼굴 가득 퍼지던 그 웃음만큼 넉넉하고 따뜻했던 가수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오늘(6일)로 꼭 10년이 됐습니다.
소탈하지만 흡인력 있는 무대로, 소극장 <1000회 콘서트>를 소화했던 그는 80년대 중반 노찾사 멤버로 이름을 올리며 <광장>의 노래들을 불렀지만,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할 만큼 음악적 보폭도 넓었던 보기 드문 <가객>으로 손꼽힙니다.
전적으로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겠지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쪽의 오경필 중사가 <광석이는 왜 그리 빨리 갔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걸 보면 그의 노래가 시대와 경계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울림을 만드는지 짐작할 듯도 합니다.
더구나 오늘을 사는 30대들에게 김광석이라는 이름은 20대의 기억 속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입영 전야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벗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술을 마시고, <사랑했지만>을 부르며 떠나간 사랑에 아파했던 사람들.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아쉬움엔 늘 <서른 즈음에>와 함께 했지만 <일어나>가 있어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의 음악이, 동시대를 살아냈던 8~90년대 학번을 넘어 2000년대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입대하는 청춘들은 여전히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떠나간 사랑을 잊기 위해 긴긴 밤을 그의 노래로 버티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의 노래는 시간을 넘고 세대를 아우르며 모두에게 소구되는 <보편적 정서>의 힘을 얻고 있습니다.
■ 영화와 드라마 속 그의 노래...끝없는 변주와 차용
<광장>에서 그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르고, 청춘의 기억을 상당부분 김광석이라는 가수에게 빚졌던 <386세대>가 저마다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의 노래만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발표된 추모앨범 <가객>을 시작으로, 동료, 후배들과 한 소절씩 <주고 받으며> 노래한 <김광석 Anthology>(2001)가 세상에 나왔고, 지난해 말 발표된 <김광석 베스트> 음반이 올 겨울 오프라인 매장에서 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김광석 베스트> 음반은 발매 한 달여 만에 만장이 넘게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비단 음반 뿐 아니라 김광석 씨의 노래는 문화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차용, 변주되고 있습니다. <7080>을 필두로 문화 전반에 불고 있는 <복고>와 <추억> 마케팅 열풍 속에서 그의 노래는 <옛 기억>을 환기하는 가장 적절한 주제와 소품으로 불려 나왔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해, <클래식>(2003)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 등의 영화에 그의 노래가 등장했고, 뮤지컬 <달고나>역시 그의 음악을 차용했습니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리메이크 음반에도 어김없이 김광석 씨의 노래가 빠지지 않고 포함되며, 젊은 가수들은 그처럼 공연하고, 그를 닮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바램을 표합니다.
생산되지 않지만 끝없이 소비되는 김광석의 노래와 음악. 서글픈 추억과 낭만을 환기하는 소도구로 작용하는 80년대의 감성.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를 맞은 김광석 씨는 우리 곁에 그런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 <사회적 메시지+개인적 낭만>...그가 부른 노래, 그가 남긴 음반
故 김광석 씨는 1964년 1월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살아있다면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셋.
서울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들 거치면서 현악반, 합창단 활동을 했던 그는 명지대 경영학과 입학 뒤 연합동아리 <메아리>에 가입하면서 음악적 기초를 다집니다.
1984년 뮤지컬 <개똥이> 음반에 참여하면서 지인들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을 낸 것이 본격적인 음악활동의 시작. 1987년 친구들과 함께 그룹 <동물원>을 결성, 1집을 냈고, 89년에는 솔로로 독립 개인적으로 첫 음반을 냅니다.
데뷔 초부터 그의 음반은 김광석 음악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 즉 사회적 메시지와 개인적 낭만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특히 1995년 8월 <소극장 공연 천 회>의 대기록을 남긴 그의 공연 이력은 음악이, 노래가 더 이상 만드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 전체의 것임을 확인시켰습니다.
김광석 씨 사후에는 미발표곡과 실황 녹음 분을 중심으로 베스트 음반이 출시됐고,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참여한 추모 음반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 저작권 놓고 유족 간 법정 소송도
문화적 <울림>과는 별개로, 김광석 씨는 사후에도 자살 이유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저작권을 둘러싼 유족들 간의 분쟁으로 언론에 자주 언급됐습니다.
특히 저작 인접권을 둘러싼 그의 부모와 아내 사이의 분쟁은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은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후 저작권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양측은 1996년 김광석 씨 음반 중 3·4집과 <다시 부르기 1·2>에 대한 저작 인접권을 부모가, 이후 라이브 음반에 대한 권리는 부인이 나눠 갖기로 하면서 분쟁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고인의 여러 앨범에서 곡들을 따온 추모, 베스트 앨범이 지속적으로 발매되면서 그때마다 해묵은 논쟁이 재연됐습니다.
여기에 2004년 김광석 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분쟁거리가 또 하나 추가됐는데요, 그때까지 김광석 씨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저작권을 과연 누가 승계 받아야 하느냐를 놓고 또 다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당초 양측은 김광석 씨 아버지가 생전에 4개 음반에 대한 저작 인접권을 갖고 있다 사후에는 김광석 씨의 아내와 딸에게 이를 승계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내용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또 다시 법정다툼을 벌였습니다.
소송 끝에 결국 지난해 12월 법원은 해당 음반에 대한 권리가 김광석 씨의 딸에게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가객>이란 호칭이 절대 과분하지 않은 그 아니 유일하게 가객이라 불리울 수 있는 그 사랑합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갸냘픈 촛불하나 피워볼까 합니다.
♬김광석 노래 모음곡♬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나의 노래
먼지가 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일어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