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식(동양화가)
제국과 공화국 사이를 관통한 화사(畫師)
서리 낀 창 너머 희망이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봉우리는 눈으로 덮여 있었고/ 원통(圓通)은 무량 수련을 요구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곳/ 어느 사계에도 자연광을 받은 진주 들판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지식을 말로 짊어진 여인이 빛을 보탰다/ 빛의 수레바퀴는 오랫동안 공화국의 번영을 타고 넘어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더욱 건강해진 나날들이 이어지고/ 꽃다발이 미소를 보태는 시절은 지상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다/ 오랜 기도의 화답으로 햇살이 스며든 땅에/ 그대는 기꺼이 화사(畫師)가 될지니라
윤두식(尹斗植, Yoon Du Sik)은 일제강점기인 갑술년 1934년 9월 17일(음력 8월 9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날 마님 딸의 출생은 마을의 경사가 되었고, 늘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 따님인 작가가 마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구십 나이가 되었다. 작가는 청록산수와 수묵산수로 대비되는 북종화와 남종화의 동양화 전통을 두루 섭렵하고 일본과 중국에서 유학하며 산수화와 사군자, 화조화는 물론이고 불화를 비롯한 종교화와 벽화 등 광범위한 동양화 장르와 기법들을 체화했다.
작가는 진주 중안초, 진주여중·고 졸업 후, 서울대 법과대학 법률학과 졸업(1957), 상명대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 졸업(1987), 한양대 대학원 응용미술학과 석사 수료(1991), 한양대 대학원 응용미술학과 박사 졸업(1994), 일본 동경예술대 일본 미술사 연구(1995), 인천가톨릭대 전통종교미술학과 교수 임용(1998) 및 정년퇴임(2000), 중국 광주 미술학원 중국화계 벽화 연수(2001)로 학문적 순례를 마무리한다. 그녀는 호기심을 발전시켜 화작(畵作)을 이어가고 있다. 윤 화백은 이론적 토대 위에 전통을 재해석 해내는 진전의 작가이다.
윤 화백의 작품은 힘이 넘치는 역동성, 광활함을 특징으로 하는 기운생동, 그 속에 숨겨진 신성성이나 무위 자연적인 道의 세계를 담는다. 작가는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우주의 원리를 회화에 적용하여 동양철학과 예술의 조화를 꾀한다. 이 세상에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 물질과 비물질의 세계, 생명의 진리, 자연의 무심함과 인간사의 희로애락, 가시적인 세계에 대비되는 비가시적 세계 등 우리 앞에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무수히 많다. 죽음을 통해 생존을 고찰하고 깨달음을 얻듯 상이한 에너지들이 만나 충돌하고 합쳐진다.
역동적인 윤두식 화백의 작품에는 철학과 인생, 삼라만상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살아 움직인다. 윤 화백은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청, 적, 황, 백, 흑)과 순백의 평면 위에 동박, 려박, 금박의 새로운 요소를 더해 빛에 따라 변주되는 양감의 변화, 그 미묘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윤두식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모티브 중 하나는 의인화되어 표현된 학(鶴)들이다. 작가는 다양한 학의 모습과 몸짓, 관계와 풍경들을 통해 음양오행의 원리와 인간사의 희로애락, 인간적 가치와 기원, 소망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윤 화백은 60여 년간 쉬지 않고 광범위한 동양화 장르·기법을 구사하며 구백여 점이라는 광대한 분량의 작품을 제작해 왔다. 그녀의 작품들은 서울대 법대, 인천가톨릭대, 자생한방병원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그 시절의 말들과의 대화’(Conversation with the horses in colorful those days, 2022), ‘여명’(Dawn, 2022), ‘타오르미나’(Taormina, 2021), ‘비상’(Soar, 2022), ‘내 마음의 고향, 소리타리’(The hometown of my heart, Soritari, 2013)는 화제작이다.
윤 화백의 몇몇 작품 등을 통해 작가의 기본 창작 정신을 살펴본다. ‘여명’(Dawn, 100x60cm, digital print, 2020)은 아름다운 강산에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마리 학이 비상하는 모습을 담아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화려한 그 시절의 말과의 대화’(Conversation with the horses in colorful those days, 115x61cm, mixed media, 2022)와 ‘비상’(Soar, 46x32.5cm, mixed media, 2022)은 한민족의 기상과 웅비를 염원하는 작품이다.
윤 작가의 전시 및 페어는 일상의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단체전 <사유하는 풍경 展>(2023), 단체전 <판화의 세계Ⅱ>(2022), 제2회 글로벌 아트페어 싱가포르(2022), 프리미어 아트 서울(2022), 초대 개인전(2022), KIAF PLUS(2022), 아트 에디션(2022), 화랑미술제(2022), Art Taipei(2021), 화랑미술제(2021), KIAF Art Seoul(2021), 화랑미술제(2020), KIAF Art Seoul(2019), 뉴욕 코리안 아트페어(2010), 싱가포르 아트페어(2008), 고희(古稀)전(2003), 문화공간 정원 개관기념전(2001) 외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에 참가했다.
윤 화백은 현재에도 국내·외 유수 아트페어와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윤 화백은 주제를 변주한다. 산수화, 사군자, 화조화, 불화 등 전통적인 동양화의 주제를 넘어서 빅뱅, BTS 등 새로운 동시대 문화를 반영한 작업을 시도하며 예술세계를 확장한다. ‘내 마음의 고향 소리타리’1(The hometown of my heart Soritari1, 118.5x63cm, mixed media, 2013)는 향수와 그리움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타오르미나 10’(Taormina 10, 100x75cm, mixed media, 2021)은 현시대를 포용하는 작품이다.
윤두식 화백은 엄청난 열정으로 일군 성취물들과 지속적 화작업으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주최하는 제43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미술 부문)가 되었다. 이 단체는 해마다 미술, 무용, 문학, 음악 등에 걸친 장르별 최우수예술가를 선정해 발표해 있다. 그동안 협의회는 노익장을 과시할 정도의 몸 관리로 왕성한 그림 작업을 해온 윤 화백을 주목해 왔다. 늘 그림과 대화하며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온 작가의 세상 읽기에 존중을 표하고, 신작의 향기로 연대기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장석용(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