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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제연구소
 
 
카페 게시글
금수강산의 경영 이야기 (3) 세종-황희
금수강산 추천 0 조회 130 13.08.28 01:50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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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28 09:31

    첫댓글 조와 종에 대해 궁금했는데 잘 배웠습니다. 그런데 선조 인조는 전쟁을 초래하고 백성들을 큰 고통에 빠지게 한 사람들인데 업적이 있는 왕으로 이름이 붙혀졌다는 것은 이름 붙이는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었던 같습니다.

  • 작성자 13.08.28 16:02

    저도 동감합니다. 특히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삼전도굴욕의 주체였습니다. 당시 병자호란은 조선역사의 최대의 치욕적인 것입니다. 청나라에 포로로 갔다 돌아온 개화파 큰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자신의 입지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어진 인자를 더해 인조라니 후대의 역사해석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13.09.02 19:13

    필자께서는 祖와 宗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계신 듯합니다. 祖는 (중)시조, 宗은 선대 왕의 정식 혹은 직계 계승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태조는 왕조의 태두를 열은 사람이었으므로 한중 역대 왕조의 첫 임금에게는 祖가 붙여졌고, 세조는 단종의 계승자가 아니면서 왕이 되었으므로 자기 계열로서는 왕계의 시초를 열은 사람이며, 선조, 인조, 영조도 아버지로부터 승계받은 임금이 아니죠(이 세 임금 때문에 형제 간에 왕위 계승자를 祖로 잘못 이해해오셨던 듯). 정조 역시 아버지 사도세자로부터 승계된 것이 아니고...

  • 13.09.02 19:29

    그리고 군은 폐위되어 왕자의 신분으로 강등(환원)된 임금이죠. 나머지 다른 임금들은 부자관계에서 정식으로 왕위를 계승한 임금들로서 그들에게는 宗이 붙게 되죠. 예외로 태종은 형 정종의 보위를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宗을 붙이는데 그 이유는 그가 정종의 아들이란 신분으로 왕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금수강산님의 말씀대로라면 당연히 인조에 대한 평가가 왜곡될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금수강산님의 시리즈 글을 재미있게, 유익하게 읽고있는 독자입니다. 하지만 우려의 마음에서 외람되게 몇 마디 남겼습니다. 죄송~~^.^

  • 작성자 13.09.03 18:04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작성한 글 중에 중조는 중종이었음을 바로 잡습니다. 제가 배운 지식은 학원강사가 수험생에게 쉽게 가르쳐 주는 수준이고 님께서는 대학교수님 수준으로 깊이가 느껴집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종이라는 명칭 중 부자승계가 아닌 경우가 강화도령 철종도 있었고, 대원군의 아들 고종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떤 것인가요?

  • 작성자 13.09.03 20:34

    이에 더해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조라는 칭호가 붙여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아뭏든 이런 논의는 재미를 넘어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13.09.04 12:26

    철종에게 종자가 붙여진 것은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그(강화의 나뭇꾼)가 순조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조에서는 왕의 사후에 붙여지는 칭호에 종법제가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철종의 경우, 그는 분명 헌종의 후계자가 아니죠. 하지만 무력하고 무능한 왕이 필요했던 당시 외척이자 세도가들(안동김씨와 풍양조씨)에게는 매우 적임자로서 발탁되었으므로 그에게 계승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합리화가 필요했겠지요. 그런 합리화에 의해 철종에게는 종자가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 13.09.04 12:52

    순조는 묘호가 원래 순종이었지만 철종 때 정원용의 주장에 의해 순조로 바뀌었죠. 헌종 사후 철종을 옹립하게 된 근저에는 정원용의 주장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압니다. 순조의 묘호가 바뀌게 된 배경에는 바로 철종의 계승을 정당화하던 의도와 관련이 있으리라 추정됩니다. 새로운 계보의 형성이 의도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 13.09.04 13:19

    그리고 신분상 왕위를 계승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던 고종은 조대비의 양자로 입적되어 익종(효명세자)의 후계자로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에게 종이 붙여진 것은 이미 종법제에도 맞지 않지요. 바로 당시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란했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지요? 하지만 제가 식견이 짧아 자세한 정황은 관련 문헌을 더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주요 관심분야가 아니라 소홀했는데 이 기회에 살펴보아야겠네요.

  • 작성자 13.09.04 18:20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깊이가 한층 돗보이고 흥미롭습니다. 왕의 묘호는 후세에 붙여 지는 이름이라 당시에도 갑론을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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