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기독교인들의 민족사랑 3.6./진관
-나라사랑에 대하여 큰소리치는 사람도 많으나 정작 환난에서는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사실 기독교인들은 나라 사랑에 언제나 앞장 서 왔다.
그 한 예로 일제시대 아리다 도시오라는 일본군 중위가 제암리교회에
저지른 만행으로 이때 30여명의 교인이 불에 타죽었다.
-3.1절 97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오래전 3.1운동 비사에 한 여신도는 일제만행을 폭로했다.
"나는 평양에서 3.1운동에 가담하여 그 다음날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들은 여러 죄수가운데 우리들을 불러 세우고 먼저 기독교인만을 골라냈다. 우리 중에는 14명의 여신도와 3명의 여전도사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옷을 다 벗기고 채찍으로 내리쳤으며,
벌거숭이의 몸으로 여러 남자들 앞에 세워 놓았다.
그들은 우리들의 몸을 돌려가면서 구타했고
담뱃불로 지졌으며 정신을 잃으면 찬물을 끼얹었다.
특별히 여전도사들의 수족을 묶었으며 성경을 빼앗고
기도는 고사하고 말조차 못하게 했다.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욕과 조롱을 받았다."
-총독부 통계에 보면 일제시대에 85개의 교회가 파괴되었고,
3,642명의 교인이 체포 되었는데,
이 중 목사와 장로가 134명 포함되고
또한 47명이 순교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1919년 3.1절에 독립선언문은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라고 시작한다.
‘...조선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영위케 함이요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피하지 못할 불안과
공포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복지에 있어야 할 단계가 되어 우리는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서 자기의 신운명을 개척하며
결코 일시적 감정으로서 일본을 질축 배척함이 아니로라.
우리는 본디 타고 난 자유권을 지키며 풍성한 삶을 누릴 것이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전진하나니” 라고 했다.
이 선언문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포에 영향을 받아
마련되었다고 하는 자들이 있지만 사실 기독교인들이
주체가 되어 말씀을 기초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독립선언문의 33인 중에 천도교인이 15명이 있었지만
불교인이 2명인 반면 기독교인이
16인이었다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리라.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