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정선의 관광명소(觀光名所)
화암동굴 / 아우라지 유원지 / 민둥산 / 화암면 부처바위
북평면(北坪面)에는 인공폭포인 백석폭포가 있는데 높이가 119m나 되어 물이 흘러내리면 장관을 이룬다. 인공폭포인 관계로 평소에는 물줄기가 마를 때도 많은데 비가 오거나 장마철이 되면 어마어마한 경관을 이루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여량면(餘糧面)은 조양강(朝陽江)이 흐르며 제법 강변을 따라 벌판을 이루어 농사지을 땅이 제법 있어서 여량(餘糧)이라는 지명도 ‘식량에 여유가 있다’는 의미이다. 이곳은 대관령 구절리(九切里)에서 발원한 송천(松川)과 임계(臨溪)쪽에서 흘러내리는 골지천(骨只川)이 이곳에서 합류하여 물이 어울린다는 의미로 ‘아우라지(애오라지)’라 부르며 조양강(朝陽江)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영월로 흘러내리며 동강(東江)이 된다.
옛날 이곳은 인근의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한양으로 나르는 출발점이기도 했는데 이곳을 출발한 뗏목은 조양강(朝陽江)을 내려가 동강(東江)을 만나고 영월에서 서강(西江)과 만나고 남한강이 되는데 강을 따라 내려가 서울에 이르게 된다. 태백산 청정지역에서 자란 귀중한 목재인 금강송(金剛松)은 뗏목으로 만들어 서울로 날라 궁궐은 물론, 여러 가지 건물의 귀중한 목재로 쓰였을 것이다.
당시 이곳 아우라지 뗏목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주모(酒母) 전산월이 아라리 가사에 나온다.
남면(南面)에 있는 민둥산(1,119m)은 정상부근에 나무는 없고 온통 억새밭이다. 억새꽃이 피는 가을철이면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억새꽃 축제도 열린다.
정선읍(旌善邑)에 있는 화암동굴(畵巖洞窟)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금을 캐던 천포광산(泉浦鑛山)이었던 곳으로 인근에는 광부마을인 천포금광촌도 있었으나 폐광이 되면서 마을도 없어졌는데 복원하여 옛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금을 캐다가 발견한 석회석 동굴인 화암동굴은 엄청나게 큰 석순(石筍)과 종유석(鐘乳石), 그리고 동굴산호(珊瑚) 등이 많이 있어 ‘정선 고생대 석회석동굴(강원도지방문화재 33호)’로 지정되었다.
화암동굴 입구 근처에는 부처님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 같은 바위가 서 있는데 너무나 부처님 얼굴과 비슷하여 이곳의 지명이 화암면(畵巖面:그림바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사북읍(舍北邑)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도박장(카지노)인 강원랜드도 있고 여량에는 옛날 열차가 다니던 정선선(旌善線)이 없어지자 레일바이크(Rail Bike)가 생겨서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 사이의 철로 위를 관광객들 자전거 타듯이 스스로 페달을 밟아서 이동하는 것이 레일바이크(Rail Bike)로,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사북탄광 노동항쟁(舍北炭鑛勞動抗爭)의 비극
정선 사북(舍北)은 엄청난 석탄산지로 밝혀지면서 민영탄광인 동원탄좌(東原炭座)가 운영하게 되는데 많은 광부들이 모여들자 화암면(畵巖面)에서 분리되어 사북읍(舍北邑)으로 승격되며 한때 인구가 최고 5만 명까지 되기도 했고, 석탄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1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이었다.
1979년 10월,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피격으로 사망하고 최규하(崔圭夏)가 12월에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두환이 이미 실권을 쥐고 있던 시기였다.
1980년 4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노사갈등이 폭발하게 되는데 광부들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여 진폐증(塵肺症) 환자가 속출했고 탄광촌의 모든 시설들이 낙후되었음은 물론, 노조위원장이라는 작자가 완전히 회사의 지시에 따르는 이른바 어용(御用)노조였다.
드디어 노사갈등(勞使葛藤)이 폭발하여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전두환의 계엄사령부는 경찰을 투입하지만 광부들의 결사적인 저항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약 10일간의 소요가 진정되고 노사합의가 체결되는데 상당부분 광부(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어 평화적 수습처럼 보였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계엄사령부는 노사협의를 무시하고 광부와 주민들 200여
명을 연행하여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그 중 81명을 군법회의에 세웠다. 이들 중 31명은 구속 기소되었고 나머지는 불구속기소 되었지만 그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여자들의 유산은 물론, 남자들은 정신적 후유증이나 신체적 후유증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고, 구속된 사람들은 대부분은 2~3년씩 감옥살이를 했다.
1980년 8월,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게 되는데 이 사북탄광 노동항쟁이 향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탄광산업이 사양화되자 2004년 10월, 동원탄좌에서 폐광을 하면서 현재 사북의 인구는 5천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옛 동원탄좌 건물을 사북석탄유물보존관으로 개설하여 탄광역사를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