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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6권
25. 타만부(墮慢部)
[여기에는 세 가지 연(緣)이 있음]
25.1. 술의연(述意緣)
대개 사람들이 도를 증득하지 못하는 까닭은 심신(心神)이 어둡기 때문이요,
심신이 어두워지는 까닭은 바깥 사물이 많이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그 일이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력이 있는 이익과 영화로운 명예요,
둘째는 요염한 아름다움과 살결이 고운 아름다움이며,
셋째는 맛있고 기름지고 살진 음식이다.
영화로운 명예야 비록 날마다 쓴다 해도 마음에 반드시 잠깐 동안[晷刻]의 누(累)됨이 없겠지만,
요염한 아름다움과 살결이 고운 아름다움은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자마자 이미 깊어지며,
감미롭고 기름지고 살진 음식은 그 누가 됨이 가장 심하다.
만사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두가 이 세 가지의 지엽(枝葉)에 불과하다.
성인은 이 세 가지를 끊지 못하면 도를 구해봐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을 물과 불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옹호하고 모으면 그 작용이 더욱 온전해지며, 이것을 끊어버리고 흩어버리면 그 작용이 더욱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바탕이 미미하면 세력이 중해지고 바탕이 무거우면 세력이 미미해진다.”
이러한 까닭에 그것을 생각하고 헤아려서 부지런히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도를 깨달으며, 어둠에 떨어지고 거만한 것은 진실로 소리와 빛깔을 탐함으로 인하여 성도(聖道)를 장애한다.
그런 까닭에 석씨(釋民)는 법고(法鼓)를 녹원(麗苑)에서 울렸고 공부자(孔夫 子)는 덕음(德音)을 추로(陬魯)에서 드날렸던 것이니, 오히려 눈과 귀로 보고 듣지도 못하거늘 어찌 심식(心識)으로 계합(契合)할 수 있겠는가?
25.2. 인증연(引證緣)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계율을 다섯 갈래 세계로써 말한다면
오직 사람의 세계에서만 계율을 얻고 나머지 네 세계에서는 계율을 얻지 못하나니,
천도(天道)에서는 쾌락에 집착하는 것이 너무 깊기 때문에 계율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옛날 어느 때에 대목련(大目連)은 그의 제자가 병이 들었기 때문에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기바(耆婆)에게 묻어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 때에 모든 하늘들이 환희원(歡喜園)에 들어가 있었다.
그 때 목련은 길가에 서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체의 천인들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오직 기바만은 뒤에 이르러서 목련을 돌아보고 그를 향해 한쪽 손만 들고 수레를 타고 곧바로 지나갔다.
목련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본래 인간 세계에 있을 때에는 바로 내 제자였었는데, 지금은 하늘의 복을 받고 하늘 나라의 쾌락에 집착하여 본심을 잃어버렸구나.’
그리하여 곧 신통의 힘으로써 수레를 제지하여 멈추게 하였다. 기바가 수레에 서 내려 목련의 발에 예를 올렸다.
목련은 여러 가지 인연을 들어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기바가 목련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인간 세계에서 대덕(大德)님의 제자였기 때문에 지금 손을 들어 문안했던 것입니다. 자못 여러 하늘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 때 목련이 석제환인(釋提桓因)에게 권장하고 경계하여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계신 세상은 만나기조차 어렵거늘 무슨 까닭에 자주 친근히 하여 바른 법을 묻고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제석은 목련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하여 일부러 사신을 보내 한 천자(天子)를 오게 하였다.
되풀이하여 세 차례 불러서야 마지 못해서 그 천자가 왔다.
제석이 목련에게 아뢰었다.
‘이 천자는 오직 한 천녀(天女)와 하나의 기악(伎樂)만으로 스스로 즐길 뿐입니다. 그런데 그 욕정(欲情)에 깊이 빠져 아무리 엄한 명령이 있어도 그 욕정을 스스로 끊지 못하기 때문에 기꺼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물며 천왕은 갖가지 궁전과 수없이 많은 천녀에다가 필요로 하는 온갖 맛있는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백천 가지 기악으로 스스로 즐기면서 동쪽을 보면 서쪽은 잊어버리는 이들이겠습니까?
아무리 부처님 계신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비른 법 듣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쾌락의 속박에 묶여 있어 자재(自在)롭지 못합니다.
또 어떠냐 하면 세 갈래 세계에서는 고난(苦難)으로 계를 얻을 인연조차 없습니다.
인간 세계에서도 오직 세 천하(天下)에서만 계율을 얻을 수 있고 북방의 울단월(鬱單越)에는 부처님의 법이 없어서 계율을 얻을 수 없으니,
그것은 복의 과보의 장애와 아울러 어리석음 때문에 성인의 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하였다.
“어느 때 육군(六群)비구들이 자신은 밑에 앉아 있고 법을 청하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법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법을 업신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꾸짖으셨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과거에 바라내국(波羅奈國)에 어떤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차파가(車波加)였다.
그의 아내는 아기를 배어 암라과(菴羅果)가 먹고 싶어 그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는 암라과가 먹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그것을 구해다 줄 수 있습니까?〉
그 남편이 대답하였다.
〈지금은 그 과일철이 아닌데 내가 어떻게 구할 수 있겠소?〉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구해주지 않으면 나는 틀림없이 죽고 말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 스스로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오직 왕의 동산에만 제철이 아닌 과일이 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훔쳐와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밤에 왕의 동산에 들어가 과일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고, 해가 이미 떠올라 동산을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 숨어 있었다.
그 때 왕이 어떤 바리문과 함께 동산에 들어가 암바라과를 따 먹으려고 하였다.
바라문은 밑에 앉고 왕은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 바리문이 왕을 위해 설법하였다.
과일을 훔치러 갔던 이 사람이 나무 위에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과일을 훔치려 한 일은 마땅히 사형감이다. 그러나 왕으로 인하여 바라문의 설법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지금 아무 법도 없고 왕도 또한 아무 법도 없으며, 바라문도 또한 아무 법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아내를 위해 왕의 과일을 훔치려 했기 때문이요,
왕은 교만하기 때문에 스승을 아랫자리에 앉히고 스스로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설법을 들었기 때문이며,
바라문은 이양(利養)을 위한 까닭에 스스로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왕을 위해 설법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아무런 법이 없다.
나는 이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곧 나무에서 내려와 왕의 앞에 이르러 게송을 읊었다.
두 사람은 법을 알지 못했고
두 사람은 법을 보지 못했네.
가르치는 사람은 법에 의지하지 않았고
법을 듣는 사람은 법을 이해하지 못했네.
한 사람은 음식을 위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법이 없다고 말하고
한 사람은 명리(名利)를 위했기 때문에
당신 왕가의 법을 다 훼손하여 깨뜨렸네.
왕은 이 게송을 듣고 과일을 훔치려던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었느니라.
나는 범부로 있을 때에도 오히려 법답지 않은 것을 보았거늘 더구나 지금 부처가 되어서이겠느냐?
너희 모든 제자들은 아래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라. 그 때 과일을 훔치려던 사람은 바로 나였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형제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출가하여 도를 구했었는데 한 사람은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독송하며 좌선(坐禪)을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단월(檀越)을 널리 구하여 온갖 복업(福業)을 닦았다.
그러다 석가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에 한 사람은 장자의 집안에 태어났고,
디른 한 사람은 크고 하얀 코끼리가 되어 그 힘이 능히 적을 파괴할 만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워 여섯 가지 신통을 증득해 아라한이 되었지만 박복하였기 때문에 음식을 벌어도 얻기가 어려웠다.
다른 날 그는 발우를 가지고 성 안에 들어가 두루 돌아다니며 밥을 벌었으나 얻지 못하고 흰 코끼리의 마굿간에 갔다가 왕이 코끼리에게 갖가지로 풍족한 음식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코끼리에게 말하였다.
‘나와 너는 모두 죄와 허물이 있었다.’
코끼리는 곧 그 말에 느낀 바 있어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코끼리를 지키는 사람은 두려워서 그 도인을 찾아가 만난 다음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무슨 술수를 부렸기에 왕의 흰 코끼리로 하여금 병이 들게 하여 음식도 먹을 수 없게 하였습니까?’
그 도인이 대답하였다.
‘이 코끼리는 바로 전생에 나의 동생이었습니다. 가섭부처님 때에 우리는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웠으나,
나는 다만 계를 지키고 경을 외우며 좌선만 하면서 보시를 실천하지 않았고,
아우는 다만 단월을 널리 구하여 온갖 보시만을 행하였을 뿐 계율도 지키지 않았고 학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율도 지키지 않았고 경전도 독송하지 않았으며 좌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코끼리가 된 것입니다. 그려나 보시를 크게 행하였기 때문에 갖가지 음식이 고루 고루 풍족하며,
나는 다만 도만을 닦고 보시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비로 도과(道果)는 얻었으나 아무리 걸식해도 음식을 얻지 못한답니다.
이와 같은 사연 때문에 인연이 같지 않아 비록 부처님의 세상을 만났으나 오히려 목 마르고 배고픈 것이랍니다.’”
또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외국(外國)에서는 명절이나 경축일이 되면 모든 부녀자들이 다 우발라(優鉢羅)꽃을 가지고 화환을 만들어 장식하곤 했었다.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아내가 있었는데,
그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우발라꽃을 구해 가지고 와서 저에게 주시면 나는 그대로 당신의 아내로 있겠지만, 만약 구해 오지 못하면 나는 당신을 버리고 떠나가겠습니다.’
그 남편은 이전부터 늘 원앙새 울음 소리를 잘 흉내 내었으므로 곧 왕의 연못에 들어가 원앙새 울음 소리를 내면서 우발라꽃을 훔쳤다.
그 때 못을 지키는 사람이 물었다.
‘못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
이 가난한 사람은 그만 실수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원양새입니다.’
그러자 못을 지키던 사람은 이 사람을 붙잡아 가지고 왕에게 데리고 갔다.
중도에서 그 사람은 다시 온화한 목소리로 원앙새의 울음을 흉내내었다.
연못지기가 말하였다.
‘너는 아까 그 소리를 냈어야지 지금 그 소리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종신(終身)토록 잔악하게 굴고 남을 해치면서 온갖 악업을 다 짓고,
마음의 행을 닦지 않아 선행을 하지 않다가도 목숨이 마칠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이제부터라도 선을 닦아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옥졸(獄卒)에 끌려 가서 염라왕(閻羅王)에게 넘겨진 터라 아무리 선을 닦으려고 해도 미칠 수가 없으니,
그것은 저 어리석은 사람이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야 원앙새의 울음 소리를 흉내 내려는 것과 같느니라.’”
또 『백유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큰 부자 장자가 있었다.
그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마음 에 들려고 온갖 공경을 다하였다. 장자가 가래침을 뱉을 때에는 측근에서 모시는 사람들이 발로 얼른 밟아 없애기 때문에
어떤 한 어리석은 사람은 미처 그것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땅에 가래침을 뱉기라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먼저 밟아 없앤다.
이제부터는 가래침을 뱉으려 할 때에 내가 마땅히 먼저 밟아버리리라.’
그 때 장자가 마침 기침을 하다가 침을 막 뱉으려고 했다.
이 때 이 어리석은 사람은 곧 발을 들고 그 장자의 입을 밟아 입술이 찢어지고 이가 부러졌다.
장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무슨 까닭에 내 입을 밟았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이유를 갖추어 말하였다.
‘……그러므로 침을 뱉으려 하실 때 발을 들어 그것을 밟아 당신의 마음을 사려고 한 것입니다.’”
무릇 사물에는 반드시 때가 있는 것이니, 미처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억지로 공을 들이려 한다면 도리어 고뇌만 얻게 될 뿐이다.
이런 까닭에 세상 사람들은 때인지 때가 아닌지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25.3. 입지연(立志緣)
『잡벼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살박(薩薄)이라 하였다.
그는 외국(外國)에 특이한 보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그런데 두 나라 중간에 나찰(羅刹)이 벙해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지나갈 수 가 없었다.
살박은 두루 돌아다니다가 시장 서쪽 문에서 어떤 도인 한 사람이 빈 평상 위에 앉아서
‘오계(五戒)를 팝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살박이 그에게 물었다.
‘오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아무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입으로 가르쳐 드릴 터이니 마음 속에 잘 간직하면 죽은 뒤에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며, 현재 세상에서는 나찰 귀신의 환란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살박은 그것을 사려고 값을 물어보았다.
‘도대체 값이 몇 전(錢)이나 됩니까?’
대답하였다.
‘금전(金鍵) 일 천입니다.’
살박은 즉시 계산을 끝냈다.
그가 살박에게 말하였다.
‘경(卿)은 외국을 향해 갈 때 경계 위에 이르러 나찰이 만약 오거든 경은 다만 이렇게 말하시오.
〈내가 바로 석가의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제자이다〉라고 말입니다
살박은 짧은 시간에 두 나라의 중간에 이르렀다.
거기에 어떤 나찰이 있었는데 신장(身長)이 한 길[丈] 세 자[尺]나 되었고 머리는 누런 도롱이와 같았으며, 눈은 빨간 고무래(亦丁]와 같았고 온몸엔 더덕더덕 비늘 껍질이 달려 있었다.
또 서로 입을 벌리면 마치 물고기가 아가미를 움직이는 것과 같았고 우러러 쳐다보면 날아가는 제비에게까지 닿고 땅을 밟으면 무릎까지 빠져 들어가며 입에선 뜨거운 피가 흘렀다. 수천 군중이 떼를 지어 곧바로 살박을 붙잡았다.
그러자 살박이 말하였다.
‘내가 바로 석가의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제자이다.’
나찰은 그 말을 듣고도 영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박이 그냥 두 주먹으로 나찰을 내리쳤다. 그러나 주먹이 비늘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발로 짓밟았더니 발이 머리에 박혀 그 또한 빠지지 않았다. 온몸이 비늘 껍질 속에 빠지고 오직 동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찰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의 몸 그리고 손과 발
모두가 다 얽매임을 당했다.
다만 마땅히 체념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라.
아무리 날뛰어본들 무슨 소용 있겠느냐?
살박의 의지(意志)는 오히려 단단해져 게송으로 대답했다.
내 몸 그리고 손과 발이
비록 한꺼번에 얽매임을 당했다 해도
마음가짐은 마치 금석(金石)과 같나니
결국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찰이 또 살박에게 말하였다.
나는 귀신의 왕으로서
사람들보다 그 힘이 훨씬 세어
지금까지 너희들 무리를 잡아먹은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나니,
너도 다만 마땅히 체념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라.
무슨 까닭에 그리도 태평스럽게 말하느냐?
살박이 다시 성을 내어 꾸짖으려고 하다가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몸이 삼계(三界)를 윤회하면서도 아직까지 이 몸을 남에게 준 적이 없었다.
내 이제 마땅히 이 몸을 이 나찰에게 주어 단 한 번이나마 잔뜩 배불리 먹게 하리라.’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었다.
나의 이 비린내 나고 노린내 나는 몸을
버리고 떠나려 한 지 오래였는데
나찰에게 나의 기회 얻었으니
이 몸 다 버려 보시할까 하노라.
마음으로 마하승(摩詞乘 : 大乘)을 구해
일체지(一切智)의 과위를 이루리라.
나찰은 총명하여 살박의 말은 이해하고 곧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살박을 놓아 주고 떠나려 하면서 꿇어앉아 합장하고 그에게 사과했다.
그대는 바로 사람들을 제도하는 스승으로서
삼계에 보기 드문 사람이다.
마음 속으로 마하승을 구한다니
머지 않아 꼭 부처가 되리라.
그런 까닭에 내 스스로 귀명(歸命)하여
머리와 얼굴 이마를 조아려 예배합니다.
나찰들이 허물을 뉘우치고 난 뒤에 살박을 전송하여 외국에 가서 귀중한 보배를 많이 얻게 하였다. 그리고 또 전송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살박은 집으로 돌아와 공덕을 크게 닦아 마침내 도적(道迹 : 須陀洹)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계율의 힘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 수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해 금계(禁戒)를 굳게 지키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은 뜻을 세워 용맹(勇猛)스럽게 정진해야 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큰 힘을 지닌 독룡(毒龍)이 있었다.
그가 눈으로 사람을 보면 허약한 사람은 곧 그 자리에서 죽고 독룡이 기운을 사람에게 불어 넣으면 강한 사람도 역시 죽었다.
그 때 용은 일일계(一日戒)를 받고 출가(出家)하여 숲 속으로 들어가 오래 앉아서 명상[思惟]을 하다가 피곤하고 나른하여 그만 잠이 들었다. 용의 법에는 잠을 잘 때에는 그 형상이 뱀과 같았고 일곱 가지 보배의 잡색(雜色)을 띄었는데,
사냥꾼이 그것을 보고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세상에 보기 드문 것으로서 참으로 얻기 어려운 가죽이다. 이것을 가져다가 국왕에게 바쳐 배를 장식하는 데 쓰면 그 또한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곧 막대기로 그 머리를 누르고 칼로 그 가죽을 벗겼다.
용이 혼자서 생각하였다.
‘내 힘은 국토도 기울어뜨릴 수 있는데, 이 하찮은 미물은 어찌 나를 고달프게 하는가?
나는 지금 계율을 지키기 때문에 내 몸을 위해 계교를 부려서는 안 된다. 마땅히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참으면서 눈을 감은 채 보지 않았고 기운을 막아 헐떡이지도 않았으며, 그 사람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겼다.
계율을 지키기 위해 일심으로 가죽이 벗겨지는 일을 당하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 용은 이미 껍질을 잃었기 때문에 붉은 살덩어리만 땅에 남아 있었다. 마침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이자 땅 위에서 뒹굴면서 큰 물을 찾아 가려고 하였으나 온갖 자잘한 벌레들이 와서 그 몸뚱이를 파먹는 것을 보고는
계율을 지키기 위한 까닭에 다시는 동요할 염두조차 내지 못하고 혼자서 생각하였다.
‘지금 나는 이 몸을 온갖 벌레들에게 보시하리라.
부처님의 도를 위하기 때문에 지금은 살을 보시하여 그 몸을 충실하게 하고,
나중에는 법을 보시하여 그 마음을 이롭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몸이 말라 목숨을 마치고서 곧 도리천(忉利天)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축생들도 오히려 금계(禁戒)를 굳게 지켜 죽음에 이르러도 범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사람으로서 어찌 일부러 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에 검은 뱀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뱀은 송아지 한 마리를 물고는 도로 굴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주술사(呪術師)가 있었는데, 그 주술사는 고양주(▼(羊+古)羊呪 : ▼(羊+古)羊을 부리는 주문)를 외워 그 주술로 굴 속에서 뱀을 나오게 하려 했으나 뱀을 나오게 할 수 없었다. 주술사는 곧 송아지 앞에서 불을 피우고 주문을 외워 화봉(火蜂)이 되어서는, 뱀이 있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 뱀을 태웠다. 그제서야 뱀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구멍에서 나왔다.
고양(▼(羊+古)羊)은 뱀을 뿔로 받아 주술사의 앞에 갖다 놓았다.
주술사가 뱀에게 말하였다.
〈너는 네가 쏘았던 독을 다시 거두어들여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불 속에 던지리라.〉
검은 뱀이 곧 게송을 읊었다.
내가 이미 이 독을 토해낸 이상
끝내 그 독은 도로 거두어들일 수 없다.
설사 죽을 일이 닥쳐와도
목숨을 마칠지언정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다.
그는 마침내 그 독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졌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 검은 뱀은 바로 지금의 사리불(舍利弗)이다.
옛날 그는 이와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독을 거두어들이지 않았거늘 하물며 지금 이미 버린 그 약을 다시 취하겠는가?’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나는 일찍이 가시국(加尸國)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가시국과 비제혜국(毘提醯國), 이 두 나라 중간에 크고 넓은 들판이 있었는데 거기에 사나운 귀신이 있었다. 그 귀신의 이름은 사타노(沙吒盧)였다. 그 귀신이 길을 단절시켰으므로 일체의 인민들이 아무도 지나갈 수가 없었다.
어떤 상주(商主)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사자(師子)라고 했다. 그 상주는 오백 명의 상인을 거느리고 이 길을 지나가려고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였으므로 지나갈 수가 없었다.
상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부디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내 뒤만 따라 오라.〉
그리하여 앞으로 나아가 귀신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귀신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이름을 듣지 못했느냐?〉
대답하였다.
〈내가 네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와서 너와 싸워보려고 하는 것이다.〉
상주가 물었다.
〈너는 무엇을 잘 하느냐?〉
이렇게 말하고는 곧 활과 화살을 잡아 이 귀신을 쏘았는데, 오백 발의 화살이 다 귀신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또 활과 칼 같은 무기와 몽둥이도 모두 귀신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바로 귀신 앞에 나아가 주먹으로 마구 때리니, 그 주먹도 귀신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오른손으로 때리면 오른손이 붙어버렸고, 오른발로 차면 오른쪽 다리도 붙어버렸으며 왼쪽 다리로 밟으면 왼쪽 다리도 붙어 버렸고 또 머리로 받으면 머리도 또한 붙어버렸다.
귀신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손과 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써 보았지만
일체의 물건들이 다 붙어버리고 말았으니
다른 사람의 어떤 물건인들 붙지 않으리.
상주(商主)가 게송으로 귀선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내 손과 발, 그리고 머리와
일체의 재물ㆍ돈과 칼 몽둥이까지
이 모든 잡물(雜物)이 아무리 빠져 들어간다 해도
오직 내 정진만은 너에게 붙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마땅히 정진하여 잠시라도 쉬지 않으면
너와 더불어 투쟁하는 것도 결국 폐지하지 않으리.
나는 지금 이 정진(精進)을 쉬지 않고
끝내 너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 내지 않으리.
그 때 귀신이 대답하였다.
〈지금 너희들을 위하는 까닭에 오백 명의 상인들을 다 놓아주겠다.〉’”
또 『잡바사론(雜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마왕은 마침내 보살이 보리수(菩提樹)나무 아래에 앉아 단정한 자세로 조금 도 움직이지 않고 맹세코 보리를 취하려는 것을 보고 속히 자기의 궁전에서 나와 보살이 있는 곳으로 가서 보살에게 말하였다.
‘찰제리(刹帝利)의 아들아,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혼탁하고 사나운 때라서 중생들이 억세니, 결코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마땅히 전륜왕의 자리나 받도록 하라. 내가 일곱 가지 보배로 마땅히 너를 받들겠노라.’
보살이 말하였다.
‘네가 지금 말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를 유혹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과 별들을 떨어지게 할 수 있고, 산림(山林)과 대지(大地)를 허공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로 하여금 지금 대각(大覺)을 취하지 못한 채 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려 한다면 결코 이 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뒤에 마왕은 삼십육 구지(俱胝)의 마군(魔軍)을 거느리고 와서 제각기 갖가지로 무서운 형상(形狀)을 나타내게 했고, 가지고 있던 무기에서 나오는 빛도 끝이 없어 삼십육 유선나(踰繕那 : 由旬)를 두루 비추었다.
그들은 다 함께 보리수 밑으로 달려와서 보살을 뇌란(惱亂)시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보살의 톰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수미산(須彌山)보다도 더하였다.”
또 『승가나찰경(僧伽羅刹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보살이 앵무새로 현현하여 항상 나무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에 바람이 붙어 나뭇가지가 서로 마찰되는 바람에 곧 불이 일어났고, 그 불은 점점 성대하게 번져서 마침내 온 산을 다 태웠다.
앵무새는 생각하였다.
‘어떤 새는 그 몸이 나무에 의지하고 살았다고 하여 응당 되돌려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켰거늘, 하물며 나는 이 숲에서 오래 동안 살았거늘 어찌 이 불을 끄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리고는 곧 바다로 나아가 두 날개로 큰 바다의 물을 적셔 가지고 그 불 위로 돌아와서는 불에 뿌리기도 했고 혹은 입으로 물을 물고 와서 뿌려대면서 동쪽ㆍ서쪽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 때 어떤 착한 신(神)이 그 노력에 감격하여 잠시 후 그를 위해 불을 꺼주었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들에 불이 일어나 숲을 다 태워 버렸다.
그러자 숲 속에 살고 있던 꿩 한 마리가 온갖 수고를 다해가며, 자력(自力)으로 날아 물에 들어갔다가 그 물을 가져다 숲 속에 뿌렸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여 몹시 지쳤지만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 천제석(天帝釋)이 와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대답하였다.
‘저는 지금 이 숲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생들을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숲 그늘에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시원해하고 즐거워했었습니다. 저와 같은 모든 종류와 여러 종친들도 마찬가지로 다 여기에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내게 힘이 있는 이상 어떻게 이 산을 구제하지 않겠습니까?’
천제가 말하였다.
‘너의 정근(精動)이 장차 얼마나 가겠느냐?’
꿩이 대답하였다.
‘죽음으로써 기약하겠습니다.’
천제가 말하였다.
‘누가 너의 말을 증명하겠느냐?’
꿩이 곧 스스로 맹세하였다.
‘내 마음의 지극한 정성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라면 부디 저 불이 곧바로 저절로 꺼져지이다.’
그 때 정거천(淨居天)이 꿩의 큰 서원을 알고 곧 그를 위하여 불을 꺼주었다.
그리하여 그 숲은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무성하였고 불에 타지 않았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사람에게 선한 원이 있으면 하늘이 틀림없이 그의 서원을 따른다.”
이렇게 말했으니 이 말이 그 징험이다.]
게송을 읊는다.
학문을 게을리하면 세 가지 가르침 헷갈리어
물어보면 하나도 알지 못한다.
꽃받침을 오므리면 씨앗을 맺지 못하나니
꽃이 핀들 어찌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
부질없이 교만한 마음을 내어
남을 업신여기면 그 끝이 좋지 않아
깊고 어두운 길에 떨어져
그 감옥 빗장이 깊게 잠긴다.
한 번 들어가면 백천 년 동안
만억의 고통이 핍박해 오며
고통을 당하여 무지(無知)를 후회하고서야
비로소 교만한 것이 그 원인인 줄 안다.
지극한 사람은 서원을 잘 취하나니
뭇을 세우고 반드시 계율을 밝혀야 한다.
영웅이 그 법을 업신여겼을 때에
어찌 오늘날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