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복음이 전하던 시기
위의 네 종류의 예에서 보았듯이 그 시대는 과도기였다. 어떤 사람은 요한의 세례만 받고 예수님의 세례는 몰랐다. 어떤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 같았으나 하나님께로는 아무런 확인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부분적인 내용만을 이해하고 그것만을 붙들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 흘러서 로마에 복음이 전해질 때부터 시작하여 갈라디아 교회가 설립되던 시대 그리고 에베소서가 기록될 시기에는 완전한 복음이 전파되었고 요한의 세례와 예수를 영접하는 세례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이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참으로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이 마음 속에 들어가 거하게 되었다. 그후 고린도전서 12장을 기록할 시대가 되어서는 방언은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중 하나로 정착한다. 이제는 모든 신자가 모두 방언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역할에 따라 나누어 주신다.
이것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라면을 먹는 사람이 생라면 먼저 먹고 그 다음에 물 마시고 그 다음에 약간 싱겁다고 스프(조미료)를 입에다 털어 넣는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소화가 잘 되는 것 같이 생각되어 다시 따뜻한 물을 먹는 사람과 같다. 사실 제일 올바른 방법은 물을 다 끓인 다음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완전히 완성된 요리가 되었을 때에 먹어야 한다. 로마에 복음이 전파된 후에(행 19장 이후) 믿은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사도들의 후기시대 속사도시대 교부시대 중세시대 종교개혁시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완성된 진리 완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다.
만약 일부 오순절 교파에서 주장하듯이 방언이나 예언이 구원받은 증거로서의 성령체험이라면 초대교회 이후로 터툴리안 어거스틴 틴데일 쯔윙글리 루터 칼빈 번연 스펄전 웨슬레 등 모두 구원 못받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지옥에 갔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현대교회에서 부추기는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는 방언을 옹호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대교회에서는 오늘날처럼 모여서 방언으로 통성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의 교회에서 금지시켰다. 만약에 하려면 혼자서 하나님께만 기도하든지 전체 회중이 모였을 때에는 통역자가 방언을 해석해서 온 회중에게 알려서 은혜를 끼치라고 기록되어 있다(고전 14:27-28).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에서 방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탄이 사람들의 성령충만을 '무아지경'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타종교에서의 신의 충만과 같은 것으로서 사람의 지성의 고삐를 놓게 만들어 악령이 마음대로 갖고 놀아나려는 책략에 불과하다. 신자가 일단 지성의 긴장을 무장해제시키고 난 뒤에 하나님과의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끌어 가려는 공작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방언을 주장하는 교회에선 기록된 말씀의 권위보다 이상야릇한 체험을 우선시하는가? 아무리 좋아 보이는 체험이라도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는 것은 교만이다(고전 4:6). 당신은 은사주의를 따를 것인가? 성경기록을 좇을 것인가? 현 시대에 결정해야 한다.
성경기록이 완전히 완성된 후에 믿는 사람들인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너희가 믿고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나온다. 이 글은 앞에 언급한 사도행전에 나타난 과도기 또는 혼란기 또는 미확정 시대를 몇해 흘러간 후에 기록한 것이다. 이 때는 복음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듣는 시기가 끝났다.
첫댓글 어떤 이상한 영적인 체험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이단에게 몰려 다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오순절 교파에서 주장하는 방언
성령세례. 귀신쫓아내는것 등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미혹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