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성의 과오
대표성으로 확률을 판단해도 그 나름의 중요한 장점도 있다
대표성에서 나오는 직관적 인사은 가능성 추측보다 더 정확할 때도 많다.
ㅇ 호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대부분 실제로도 호의적이다.
ㅇ 키가 아주 크고 마른 운동선수는 축구 선수보다 농구 선수일 확률이 훨씬 높다.
ㅇ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고졸자보다 〈뉴욕 타임스〉를 구독할 확률이 훨씬 높다.
ㅇ 젊은 남자는 나이 지긋한 여자보다 운전을 과격하게 할 확률이 훨신 높다.
위 네 가지 경우에, 그리고 다른 많은 경우에도,
대표성 판단을 지배하는 전형적 이미지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며,
이 어림짐작에 기댄 예측은 정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상황에서 전형적인 이미지는 엉터리이며, 대표성 어림짐작은 오류를 불러오는데,
특히 대표성 어림짐작과 반대되는 기저율 정보를 소홀히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어림짐작이 어느 정도 타당할 때도 전적으로 그것에만 의존한다면
통계 논리와 반대로 가는 중대한 과오를 범할 수 있다.
그 과오 하나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기저율이 낮은)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쉽게 부풀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뉴욕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뉴욕 타임스〉를 읽는다고 치자,
그 낯선 사람은 다음 중 어떤 사람이겠는가?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
대표성으로 추측하면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현명한 답은 아니다.
두 번째 가능성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뉴욕 지하철에는 박사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하는 수줍은" 어떤 여학생이 중국문학 전공자인지 경영학 전공자인지
추측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모든 여학생이 수줍고 시를 좋아한다고 해도, 경영학 전공자가 훨씬 많아서
그중에 부끄럼을 타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훨씬 쉬울 게 분명하다.
통계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는 예측에 기저율을 제법 잘 사용한다.
톰 W 가 나오는 문제 중에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는 첫 번째 문제에서,
톰 W가 특정 분야을 전공할 확률은 그 분야 전공자 수인 기저율과 같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톰의 성격이 나오는 순간 기저율에 대한 관심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아모스와 나는 연구 초기에 발견한 증거를 기초로,
측정 사례에 관한 정보가 나오면 기저율 정보는 '항상' 무시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
심리학자들은 기저율 정보가 명확히 제시된 문제로 많은 실험을 했는데,
참가자들은 개별 사례에 대한 정보에 거의 항상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래도 다수가 기저율에 영향을 받았다.
노르베르트 슈바르츠아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통계 전문가처럼 생각하라"고 지시하면 기저율을 더 많이 활용하는 반면
"임상의학자처럼 생각하라"고 지시하면 반대 효과가 나타났다.
몇 해 전에 하버드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시스템2를 적극 활성화하자 톰 W 문제에서 예측 정확도가 크게 향상된 것이다.
오래된 문제에다 오늘날의 인지적 편안함을 접목한 실험이었는데,
참가자 절반에게는 문제를 푸는 동안 볼에 바람을 넣어 볼을 부풀리라고 했고,
절반에게는 눈살을 찌푸리라고 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눈살을 찌푸리면 일반적으로 시스템2는 더욱 긴장하고, 직관에 대한 확신과 의존도는 낮아진다.
볼을 부풀린(중립적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 학생들은 이 문제에서 흔히 나오는 결과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즉 대표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저율은 무시했다.
그러나 눈살을 찌푸린 학생들은 예상대로 기저율에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대단히 유익한결과다.
부정확한 직관적 판단이 내려지면, 시스템1과 시스템2가 동시에 비난받아야 한다.
부정확한 직관을 제안한 것은 시스템1이고, 그것을 인정해 판단을 내린 것은 시스템2다.
그러나 시스템2가 이런 잘못을 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무지와 나태다.
어떤 사람은 개별 정보가 있으면 기저율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기저율을 무시한다.
또 어떤 사람은 질문에 집중하지 않아서 기저율을 무시한다.
눈살을 찌푸려 차이가 생겼다면,
적어도 하버드 학부생들 사이에서는 나태가 기저율 무시의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
기저율이 명확히 언급되지 않은 때조차도 이들의 시스템 2는 기저율이 관련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 지식을 실제로 적용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성의 두 번째 과오는 중거의 질에 무신경한 것이다. 시스템1의 원리를 떠올려보라. 보이는 것이 전부다.
톰 W의 예에서, 연상 체계를 활성화한 것은 톰의 성격 묘사인데, 그것은 정확할 수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톰 W는 "타인을 향한 감정이나 연민은 거의 없어"라는 진술만으로도
사람들은 대부분 톰은 사회과학과 사회사업 전공자일 확률이 매우 낮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성격 묘사는 검증되지 않은 테스트를 기초로 했다고 명시하지 않았던가!
가치 없는 정보는 정보가 아예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원칙적으로는 분명히 이해하면서도
보이는 것만 의존하는 성향 탓에 그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증거를 거부하기로 그 자리에서 결심하지 않는 한(이를테면거짓말쟁이가 그 증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든가)
시스템1은 눈에 보이는 정보를 진짜인 양 즉흥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증거의 질이 미심쩍을 때 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다. 확률을 기저율에 가깝게 추정하라.
이 규칙을 실제로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자기 검열과 자기통제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톰 W 성격 문제의 정답은 원래의 믿음, 즉 기저율을 유지하면서,
학생이 많아서 애초 확률이 높은 분야(인문교육, 사회과학과 사회사업)는 그 높은 확률을 약간 줄이고,
학생이 드물어 애초 확률이 낮은 분야(도서관학, 컴푸터과학)는 그 낮은 확률을 약간 높이는 것이다.
톰 W에 관해 아는게 전혀 없을 때 내놓을 답과는 약간 다른 답이지만,
가지고 있는 약간의 증거가 신뢰하기 어려우니, 여전히 기저율에 가깝게 추정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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