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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한옥을 이야기하다 10(完) 한옥을 넘어서
두 채의 한옥
여기 입면 부감법, 즉 입면 오블리크로 그린 두 채의 집이 있다. 첫 번째 집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다. 전체적으로 얕은 기단 위에 조성된 이 집에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4칸, 사랑채는 단칸에 가깝다. 안채의 뒤에는 연못이 딸린 작은 후원이 있고 앞마당에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다. 얕은 담장이 집의 외곽을 따라 돌면서 때로는 건물과 합쳐져 벽의 일부를 이룬다. 이 집에서 특이한 점은 마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방향에 있다. 일반적인 한옥의 경우 지붕의 경사면이 정면이 되는데, 이 집에서는 박공면을 보면서 들어간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내부공간을 도리 방향으로 깊이 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방식이지만, 무량수전의 경우 입구는 여전히 지붕 경사면 쪽에 있다. 언뜻 보면 한옥 같으나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는 집이라고 할 것이다.
두 번째 집은 정면 4칸, 측면 4칸의 이층 구조다. 경복궁 경희루를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지상층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2층은 전체적으로 ㄷ자를 이루며 그 가운데 마당이 있다. 서울의 북촌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도시형 한옥이 통째로 들려 있는 듯한 상황이다. 마당의 전면 담에는 수평으로 긴 창이 나 있어 외부로 조망이 가능하다. 특이한 것은 지붕의 일부가 제거되고 거기에 평평한 단이 형성되어 있는 점이다. 마당에서 이 단까지는 경사로로 연결되며 그 옆에는 경사를 따라 단이 진 얕은 난간이 있다.
무엇이 한옥인가
위에 소개한 두 채의 ‘한옥’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의 대표적인 현대건축물 두 채를 한옥으로 번안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집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이고 두 번째 집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아다. 두 집 모두 각 건축가의 개인적 경력은 물론, 서양 근대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온 새로운 방식의 공간적 개념. 즉 ‘흐르는 공간’을 매우 극명하게 구사하고 있는 예다. 한편 빌라 사보아는 건축공간의 경험에 시간의 요소를 도입한 소위 ‘소요적 건축(promenade architecture)’의 대표적인 예이며 르 코르뷔제가 주장하는 근대건축의 5원칙이 충실히 구현된 작품으로서도 이름이 높다. 이 두 집의 평면을 참고하여 기본 골격을 한옥의 어휘를 사용하여 바꾸어 본 것이 위의 두 도면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디테일들은 생략되었으나 전체적인 건축적 구성은 유지하였다. 여기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실제로 이 두 집을 이렇게 다시 지었다고 했을 때 ‘이것을 한옥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구축술의 측면에서 보면, 한옥의 재료와 구법을 이요해서 이러한 건물을 만들 수 있다면 일단 한옥으로 볼 수 있는 기본 근거는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한옥 구성의 몇 가지 방식들, 즉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관련하여 언급한 입구의 방향성 같은 문제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전체적인 인상에서는 별 다른 의심 없이 한옥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렇듯 구축술이란 단순히 집을 짓는 기술적 차원 이상의 문제이다. 특히 한옥의 경우 지붕의 방식과 가구식 구조의 골격이 갖고 있는 고유한 미학적 성질이 이미 구축술 자체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물론 이 두 집을 한옥의 구축술을 기반으로 지을 수 있는가는 실제적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경우 기둥 경간이 7m가 넘고, 빌라 사보아도 한옥을 통째로 필로티 위에 올린다면 많은 기술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좁게는 우리나라, 넓게는 중국이나 일본 등 목구조 전통을 갖고 있는 건물을 한옥의 구축술로 짓는 경우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두 채의 집은 단지 예일 뿐이다.
공간의 집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보다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일단 우리 전통건축 중 이 두 집과 유사한 공간 구성을 갖는 선례는 아려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안채의 진입방향이 문제될 수 있고, 설사 측면으로 입구를 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경한 평면임에는 틀림없다. 빌라 사보아의 경우 경회루나 전주 경기전의 전주 서고 등에서 보는 것처럼 높은 주초 위에 올려진 소위 누각식 건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없지는 않다. 그리고 본격적인 2층 한옥의 예도 재실 등에서 많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도면이 바탕을 두고 있는 공간 구성은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다. 어차피 서양식 건물을 기초로 만들어진 건물이므로 적어도 공간의 입체적 집합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을 한옥으로 부르기는 주저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아
전주 경기전 안의 전주서고
시각적 동질성을 부여하는 구축술
다소 엉뚱하다고 할 수 있는 예를 구태여 소개한 것은 한옥에서 공간의 집합보다는 구축술이 더 명확한 식별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이다. 한옥의 구축술을 이용한 건물이라면 공간이 모이고 연결되는 방식이 다소 다르더라도 충분히 한옥으로 인식되는 반면, 그 반대 경우는 성립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한옥 평면을 그대로 놓고 서양식 구축술로 집을 지으면 그것을 한옥으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창덕궁 각 전각의 배치와 내부 평면을 그대로 두고 이를 르 코르뷔제의 도미노 방식이나 혹은 서양 고전건축의 구축술로 다시 짓는다고 하면 이것을 누가 한옥이라고 할 것인가. 공간의 집합과 관련된 성격은 여전히 유지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강화도 성공회성당
이것은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이미 한국건축사에서 이러한 사실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라시대에 지어진 황룡사의 가람 배치와 훨씬 이후에 형성된 부석사나 통도사는 공가의 집합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구축술의 근본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상다한 시각적 동질성을 갖는다. 그래서 혹자는 서양건축에 비해서 한국 전통건축에서 변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을 별개의 논리로 보고 접근하면 여기에 대한 매우 강력한 비판의 근거가 확보된다. 즉 같은 구축술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른 공간의 집합을 만들어낼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며, 따라서 변화가 결여되었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이것은 마치 르 코르뷔제의 도미노라는 근대적 구축술로 매우 다양한 수많은 개별적, 혹은 집합적 변형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한옥 작업이 모방이나 카피에 불과하다는 시각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전에 언급했던 서양 고대건축과 르네상스건축의 차이도 이런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구축술을 가지고 다른 건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오더(other)등 구축술과 관련된 수많은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상, 다른 경험을 추구한 다른 종류와 건축이었던 것이다.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이렇게 한국건축사, 나아가 세계건축사를 전향적으로 보는 시각을 제공함과 동시에 한옥의 미래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강화도 성공회성당의 경우를 통해 논지를 구체화해 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서양식 바실리카형 교회의 평면을 가지고 한옥의 구축술을 이용하여 지었다. 일설에는 토착 문화에 대한 성공회 교단 측의 호s의적 태도로 인해 한옥의 방식이 채택되었다고도 하나, 이에 앞서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즉 포교 초기 단계에는 그냥 일반 한옥을 빌려서 예배를 보다가 기독교의 예식이 도저히 그 안에서 수용되기 어려웠으므로 건물을 새로 지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면은 서양식을 따랐지만 구축술을 당시 여건상 서양식으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냥 현지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옥의 구축술은 당시 여건상 서양식으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냥 현지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옥의 구축술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다. 재료, 구법, 비용 모든 면에서 이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그들은 나중에 상황이 바뀌자 서울 한복판에 장엄한 로마네스크 건물을 지음으로써 토착 건축문화를 수용하는 태도가 일시적인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 건물에 대한 학계의 의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을 분리해서 보는 입장이 유효하다면, 이것은 한옥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건물을 만들어낸 좋은 예가 된다.(물론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이것은 한옥이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지금 우리가 한옥의 전형적 공간 배치로 알고 있는 ㄱ자형, ㄷ자형 한옥들도 조선 후기에야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붕과 지붕이 모이는 회첨 부분의 가구 방식, 즉 구축술은 이 당시가 돼서야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한옥들은 구축술 자체가 더욱 발전하면서 생긴 새로운 공간의 집합이었던 것이다.
함양 허삼둘 가옥
구례 백결 선생 가옥의 여자 사랑채
한옥의 미래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한옥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하자면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은 구축술 자체에 대한 진화와 개선의 노력을 들 수 있다. 보다 넓은 경간을 구성하고 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 비와 눈, 습기와 벌레 등 자연의 수많은 요소들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디테일과 재료 또한 목재뿐 아니라 조선 후기부터 많이 사용되었던 벽돌, 심지어 철과 유리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한옥을 부활시킨다면 이러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연재의 앞부분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조선 후기의 실학자 풍석 서유구가 그토록 신랄하게 질타했던 바로 그 문제점들을 바로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과정인 것이다.
또 다른 노력은 발달된 구축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간의 집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전통적 공간의 집합과 과감하게 단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ㄱ자, ㄷ자 평면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동시에 아우르는 보편적 방식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효한 것이지만, 굳이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전혀 다른 평면의 구성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공간의 집합이 한옥의 구축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고층타워형 한옥과 같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한옥의 탄생도 이러한 시각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이 또한 황룡사 9층탑의 경우처럼 선례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이미 우리 조상들부터 새로운 공간의 집합을 만들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집을 지을 때 어떤 전범 같은 것을 굳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용자의 특이한 평면을 갖고 있는 경북 양동의 향단, 강력한 안주인의 입김으로 회첨부에 부엌이 들어가 있는 경남 함양의 허삼둘 가옥, 안채에 여자들을 위한 사랑방과 누마루가 붙어 있는 전남 구례의 백결 선생 가옥(영화 ‘서편제’에 등장했던 이 집은 지금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의 일부가 되어 순천으로 이전되었다.)등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공간의 집합을 만들어서 쓴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결국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짓고 싶은 대로 짓고 산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 집들을 가리켜 한옥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갖는 새로운 공간의 집합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려 한다. 바로 이러한 시각이 오늘날의 한옥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한옥의 구축술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공간의 집합을 통해 새로운 건축을 만드는 실험은 가능하며 오히려 이를 권장할 필요도 있다.
우리 또한 작지만 이런 경험을 해 보았다. 얼마 전 서울 북촌의 재동에 135도의 회첨부를 갖는 한옥을 설계한 적이 있다. 대지의 형상을 자연스럽게 따르기 위한 시도였는데 인허가 과정에서 ‘선례가 없는 한옥’이라고 하여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한옥에서 이 회첨부는 직각이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부정형의 대지에도 굳이 직각을 고집하여 공간은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옥의 구축술로 직각이 아닌 회첨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공사를 담당할 대목과 협의하고 기술적 검토를 거친 결과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동안은 경기감영도나 동궐도 등을 보며 혹시 ‘선례가 있으면 제시하자’라는 생각도 했으나 나중에는 ‘선례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이 변했다. 결국 우리 의견이 관철되어 지금 이 집은 공사 중이며 조만간 완공될 예정이다. 이에 더하여 지붕 구조를 건식으로 하여 흙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것이 한옥의 역사를 바라보고 실천하는 올바른 태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연재를 마치며
장장 10개월에 걸친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려 한다. 체계적으로 연구한 결과도 아니고, 한옥 작업 역시 건축주의 권유에 의해 시작한 인생의 우연(serendipity)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실을 상대로 작은 결과들을 만들어 나가는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은 것이므로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생생한 느낌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생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분화한다. 일단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지만, 후속 작업은 앞으로도 한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 연재를 진행하면서, 또 한옥 작업을 계속하면서 건축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연재를 통해서 내린 작은 결론이 바로 이번 호에서 다룬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 나머지 내용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이란 치밀하게 짜여진 유기적 관계의 복합체다. 그래서 과감하게 어떤 부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않고서는 의미 있는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그 끊어 내야 할 연결고리를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 간의 관계라고 보았다. 그리고 충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을 예상하지만, 공간의 집합보다는 구축술이 더 건축의 정체성과 밀접한 영속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대립의 쌍에 속하지 않는 다른 것들, 예를 들어 감수성이나 대지에 대한 해석 같은 것에서 그 단초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장의 관심은 이렇게 서로로부터 자유로워진 구축술과 공간의 집합이 각각 어떻게 변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 둘을 함께 묶어 다루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유연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 둘은 다시 만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 만나는 방식은 매우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모쪼록 이번 연재를 통해 한옥과 관련된 새로운 논의 하나가 추가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기다리며 연재를 마친다.
한옥의 보편화를 위한 제안
연재를 진행하면서 한옥을 널리 보급하는 문제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 한옥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 한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수많은 지방자치 단체들에서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한옥 단지나 체험관 등을 짓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연재를 마치면서 건축가의 자아가 담긴 ‘작품’이라기보다는 일족의 보급형 한옥 ‘상품’으로서 어떤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까를 나름대로 정리한 제안을 내놓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 제안은 표준설계와 같은 것으로, 사실상 설계의 내용(design) 자체보다 제시하고 있는 기준(specification)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1. 도시 외곽에 새로 조성되는 주택지에 일단의 한옥단지가 조성된다고 강정하였다. 현재의 사회 분위기로 보아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 대지면적은 90평 정도로 보았다. 파주 교하지역 등 요즘 분양하는 택지들의 전반적인 규모를 참조하였다. 필지는 두 줄로 묶어 각가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쿄에서 남과 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실제 지형에 따라 변형이 있을 수 있다.
3. 4인 가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용의 실을 제외하고 각 개인이 방 하나씩을 갖는다.
4. 건축면적은 37평 내외로 건폐율은 40% 정도다. 도시계획구역 밖의 일반적인 건폐율 규정을 따랐다. 법규에서 가능하다고 해도 한옥의 경우 외부공간이 중요하므로 이 정도 건폐율이 적절하다.
5. 연면적은 지하층을 포함하여 50평 내외다. 절대 면적상 그리 큰 집은 아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한옥의 경우 내외부 공간이 연계되어 있어 이 정도면 상당히 여유가 있다. 지하층의 설치는 논란의 대상인데 여기서는 가족들의 오락 및 여흥을 위해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이웃 간의 소음 관련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지하층을 만들 경우 건축비가 상승하겠지만 같은 면적으로 이층으로 확보하는 것과 비용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6. 난방은 도시가스와 심야전기를 적절히 혼용한다. 물론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라면 다른 방식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냉방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옥의 자연형 냉방시스템을 이용하되 주방 등 열이 발생하는 공간, 혹은 대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 등에는 부분적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7. 무선 인터넷, 보안시스템, 기타 홈오토메이션 등을 공사 당시부터 계획하여 설치한다.
8. 모듈화 시스템을 채택하여 각종 부재의 치목이나 제작을 가급적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촌 한옥의 경우 동시에 대량으로 공급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측을 해보면 기둥 간격 등이 제각각이다. 이런 문제는 마땅히 해결해야 한다. 창호 등도 소목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현장에서는 간단히 설치만 하도록 한다.
9. 화장실 등에 있어 입식과 좌식을 혼용하는 등 새로운 욕실의 개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개별 건축가나 건축주가 취향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10. 주치는 개별 가구당 한 대씩 할 수 있도록 한다. 서울 북촌의 경우 마을 단위로 공동 주차하는 방식만 가능하지만 신규 주택지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요시 두 대가 앞뒤로 동시 주차할 수 있도록 한다. 도로에는 차량의 주차를 원칙적으로 금한다.
11. 기본적인 평면은 한옥의 일반적인 전형을 따르되,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를 설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누마루는 한옥에서의 삶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사랑채는 집의 입구에 면하고 있으며 다른 부분에 비해 높아 그 하부에 마당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놓아 둘 수 있다. 사랑채는 온돌마루와 들어올리는 분합문을 달아 필요시 손님용 숙소로 쓸 수 있고 별도의 작은 욕실이 있어 집의 다른 부분과는 분리된다. 누마루의 하부에는 작은 연못을 두어 빗물을 모았다가 마당의 허드렛일 등에 사용하도록 한다. 물의 정화는 물혹잠 같은 수초로 해결한다.
12. 주방은 다이닝키친으로 계획하고 일부 방들은 마당을 통해 외부에서 진입한다.
13.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비용이다. 보급형 한옥이 되기 위해서는 고정형 집기를 제외한 건축 비용이 아무리 높게 잡아도 일반 양옥이나 수입 통나무집 수준인 평당 500만원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본다. 현재 신축 한옥의 가격이 평당 1,000만원을 훨씬 넘는 상황에서 이것은 매우 무리한 목표다. 그러나 상당한 비용이 인건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국산목재를 고집하지 않고 표준설계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를 꾀하며, 동시에 대량으로 한옥을 보급해야 하는 사회적 상황(예를 들어 한반도 통일로 인한 북한 지역으로의 이주)이 만들어지는 경우 도전해 볼 만한 목표다.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복합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보급형 한옥 도면을 상세히 볼수는없는지요..?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