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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자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
이가영,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 부장
서울 신림동하면 한 때 행정, 외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각종 수험서를 옆에 끼고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청운의 꿈을 품고 책장 넘기는 곳의 상징이었다.
고시생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원이나 독서실 책상에서 해결하고,
밤에는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는 면적만 확보되면 되기에
고시원, 원룸, 오피스텔 같은 숙소들이 고시생 수요에 맞게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 사법고시 폐지로 고시생들이 대량 빠진 이후,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더 이상 고시생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 그 고시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월세가 16만 원에서 30만 원에 해당하는 고시원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저렴한 월세로도 거주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고,
나름 건물 관리인도 있어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출소 후 선택하는 거주지가 되기도 한다.
신림동은 우리 복지관이 일하는 동네이고, 나 또한 고시원에 살고 있는 40대 초반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는 두 번의 성추행과 폭력, 절도로 총 5년 동안 그곳(교도소)에서 살았다고 했다.
힘들어서 상담 받고 싶단다. 돈을 꾸어달라고 했다가, 돈을 꾸어주거나 지원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하니 받아들였다.
전화는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의 과거 범죄들과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기를, 내가 공감해주길 바랐다.
특히 뉴스에서 유명인의 성폭행 같은 사건이 나올 때면 여지없이 전화가 왔다.
성폭행까지 하는 유명 정치인도 있는데,
자신은 고작 지하철에서 여성의 엉덩이에 손을 대자마자 잡혀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는 거였다.
“선생님이 내 입장이라면 어떠시겠어요? 억울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선생님?”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언제나 동의를 요구했다.
공감해주길 바라는 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의 마음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피해자에게 닿아있어서,
이 사람으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불쾌하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며 ‘몹쓸 사람…’ 속에서 욕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전화는 계속되었다.
어떨 때는 하루가 멀다고, 어떨 때는 보름 정도 지나서. 그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없다고,
궁지에 몰린다고 느끼면 주변에 위해를 가할까봐,
혹은 나마저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마음에 그의 전화를 받아왔다.
그러는 사이에 대화의 소재가 달라졌다.
과거 범죄를 이야기하는 오랜 시간을 지나, 현재 일상에서 생기는 작은 시비나 문제들 쪽으로.
그는 일상에서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며 끊임없이 내 생각을 물었다.
“선생님이 내 입장이라면 어떠시겠어요? 억울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선생님?”
고시원의 옆 방 남자에게 인사했는데 상대방이 인사를 무시해서 속상한 이야기,
생활 소음을 많이 내는 여성에게 항의하는 대신에 ‘조금 더 조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쪽지와 음료수를 방문에 걸어두었는데,
도리어 고시원 주인에게 ‘그런 짓 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은 이야기, 자기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 범죄 이야기와는 달리,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는 공감해주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가 전한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반응이 항의나 불만, 시비로 돌아오니 속상했겠다며 공감해주는 것이 늘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가 나에게 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지,
그의 사건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왜 이렇게 계속 묻는지 그 이유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를 확인했다.
자기만 이상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해 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당신에게는 사회복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반복된 범죄와 교도소 생활로 사람들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사람들이 자신과 계속 만나겠냐는데, 반론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알아가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도 출소 후 다시 나온 세계에서 어떻게든 접속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 작은 친절도 시도해보았으나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았다.
가벼운 관계라도 시작해볼라치면 돌아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깔끔하게 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냉담하게 대하거나 자신을 경계하니, 사복경찰이 자신을 미행하며,
주변인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출소자를 지원해본 경험이 없다.
출소 후 사회로 돌아온 사람들이 일상에서 다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사회 속에 적응해서 살아가게 돕는 곳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다.
그렇다고 그의 적응을 위해 다른 이웃들과 관계 만드는 일을 거들기도 어렵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혹은 생략된 정보들이 있는지를 알 수 없고,
혹여 내가 연결한 그 관계가 또 다른 범죄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출소 후에도 여전히 가족과 친구, 어느 사람들과도 관계가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되어있는 생활,
이런 상황이 그를 다시 벼랑 끝에 몰리게 하면 어쩌나 두려움 또한 가지고 있다.
독일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개인적으로 나누는 대화의 부재는 인간의 개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적인 연대’라는 표현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타인과 언어를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언어적 존재이며,
인간의 자의식은 고독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계속해서 증명되고, 인식되고, 추궁당하는 것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체험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경험으로 형식화하는 일이 가능하다.
인간의 갖가지 특색과 상이점, 유사점, 다양성(즉 개인성)은 타인의 승인 혹은 거절을 통해 비로소 뚜렷해진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브래디 미카코, 은행나무, 2022)
달리 말하면, 사람은 타인과 언어를 교환하지 않으면 자기를 인식하기 어렵고,
타인과 관계가 없는 고독한 사람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가만히 멈춰서 내가 과연 누구일까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고정된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
주변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이웃 같은 타인들과의 대화와 활동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이란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니 타인과 대화할 기회도 없고,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니 만만한 사회복지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지,
나또한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지를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서. 자신의 과거를 알더라도
흔히 자신같이 약한 부분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라는 생각.
그래서 과거를 알아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을 나 같은 사람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탐색하고, 인간을 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분을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출소 후 사회에 나온 사람들이 안전장치가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는 자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에 있는 한 교도소에서는 치료적 공동체Thepeutic Community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수감 중인 죄수들이 자신의 과거와 범죄를 이야기하며 당사자들이 서로를 치유하고 함께 회복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대화를 통해 범죄의 원인을 찾고, 문제에 대한 대처법을 몸에 익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역할극을 통해 피해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개인차가 있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어느 정도 훈련을 받으면 다들 자기 감정과 생각을 언어화하여 남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단다.
물론 TC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범죄 경향이 강화되지 않고 집단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시킨 40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주 12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반년에서 2년 정도 수강한다.
(TC그룹의 교도소 재입소비율은 다른 재소자들의 재입소 평균비율의 50%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언어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화할 수 있어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신림동에서 만난 이 남자, 이 사람을 돕는답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소개하거나 만나게 하는 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나는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온라인 줌을 통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제안해 보았다.
단톡방으로 연결되지는 않아도 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쉽게도 아직은 참여하고 싶지 않단다. 고시원에서 책을 읽으면 소리가 울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단다.
그 이유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직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니 당분간 시도하기는 어렵겠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오며 현재 일상에서는 제법 응원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자기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부지런히 산에 올랐다는 이야기,
사찰에 올라 책 속의 좋은 구절을 읽고 밑줄을 그었다는 이야기,
비록 수급비를 받는 존재이지만 평소 인사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캔커피를 사서 전했다는 이야기,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
힘들지만 이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자신이 좀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
일상을 잘 가꾸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응원해주고 싶었다.
타인과 약속이 없어도 일찍 일어나서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시간을 소중히 보내는 게 멋있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웃이나 주변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 가는데,
부족한 수급비에서도 음료수를 사서 나누려고 하는 마음이 신기하다고 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그가 수줍게 웃으며 좋아한다. 그런 칭찬 처음 들어봤단다.
“그런가요, 선생님?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이런 것은 스스로도 괜찮게 느껴져요.”
그 후로도 비슷한 일들을 할 때는 몇 번 더 전해왔다.
그때 선생님이 칭찬해주시는 말이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고.
방법을 몰라 여전히 이렇게 전화를 받고 대화하는 일만 하고 있지만,
어디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이 분 뿐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는 일을 주로 하는 직업이다 보니,
책 속의 문장이 계속 곱씹어 진다.
‘인간은 타인과 언어를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언어적 존재이며,
인간의 자의식은 고독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출처 :
<슈퍼비전 글쓰기>
https://cafe.daum.net/coolwelfare/OX67/194
첫댓글 각 시.도에는 '법무보호복지공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출소자를 돕는 프로그램과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단에는 '법무보호위원'이라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시는분들은 출소자를 취업시키고 사회복지사들은 상담을 해줍니다. 인근의 공단을 연결해주는것도 방법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