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무조건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이제는 죄에서 자유하다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은 사람 입장에서 편리하게 해석한 확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증거가 결여된 일방적 확신이라면 자신을 속히 돌아봐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열매를 보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마7:20 / 마12:33)
내 죄가,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정말 죄 사함 받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내 입장에서 미워하거나 싫은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압니다.
왜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나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용서한 적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를 용서했다면 그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미워하려는 마음보다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위해 진실로 기도하려 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은...
용서할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육의 속성입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입술 고백도
거짓 고백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실제 눈으로 보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안 보이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장 20~21절)
기록된 위 말씀은 절대 진리입니다.
내 형제를 미워하면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님이 증명됩니다.
즉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닌, 긍휼히 여겨야 내가 사함받은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용서함 받았는지 증거 하는 것에 대해, 예시를 통하여
분명히 전하고 계십니다.
악한 종아 네가 (용서해 달라고) 빌기에
내가 네 빚(죄)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용서해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32~35절)
용서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여쭤봅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태복음 18장 21절)
베드로 자신은 형제에 대해 한두 번도 아닌,
무려 일곱 번씩이나 용서할줄 아는 상남자의 호탕한 기질이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며 예수님께 여쭤보는데, 베드로의 자랑이 무색할 정도로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원수를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장 21~22절)
형제를 '끝까지 용서하라'는 의미는...
형제에 대해 '끝까지 사랑하라는, 또 다른 표현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형제를 용서(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므로 죄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고 어찌 주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겠으며
어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을 소멸시키는 게 점점 어려워짐을 알아야 합니다.
콘크리트가 굳어지기 전에 모양을 다시 잡는 게 더 쉽겠습니까...
아니면,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에서 모양을 다시 잡는 게 더 쉽겠습니까...
하여 바울 사도는 주님이 주신 영감을 통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장 26~27절)
말뿐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용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거듭남과 구원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면 우리는 먼저 용서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이론으로 배우거나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인위적 가르침으로 될 것 같으면, 그건 공자왈 맹자왈 같은 도덕경일 뿐,
복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십자가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나를 부인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길 구해야 합니다.
내가 내 안에서 없어지고, 그분으로 채워져야만 모든 게 이루어집니다.
내 심장이 아닌, 오직 주님의 심장만이 모든 걸 가능케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장 5절)
마귀는 항상 사람의 마음속에 이렇게 하라고 속삭입니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했다 이거지? 알았어 나도 똑같이 할테니 각오해라"
"난 이렇게 했는데, 너는 나를 그렇게 대해?"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할게"
가는 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지 하는 마음은 인본적 육신의 마음입니다.
이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한 기찻길을 계속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했지만, 나는 분을 품지 않고
오히려 긍휼히 여기며,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보듬고자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있으면 형제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서로를 대적하기에 모두 불행입니다.
단단한 얼음과 얼음이 부딪히면 서로를 깨뜨려 상처만 남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얼음일 때, 나는 따뜻한 열기가 된다면 얼음도 녹습니다.
원수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얼음을 녹이는 따뜻한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마음은... 상대의 반응과는 전혀 상관없이,
손해를 감수한 일방적인 용서와 사랑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44절)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형제)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상대가 맘에 안 든다 해서, 인위적으로 돌려세우려 하지 마십시오.
인위적인 방법은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은 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저, 인내하고 상대를 위해 따뜻하게 대하며 간절하게 기도드리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상황을 지켜보시며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 정말 죄 사함 받은 사람은...
내 형제에 대해 용서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이 땅에서부터 살다가 가는 곳이 바로 천국이란 곳입니다.
천국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줄 아는, 거룩한 영들만 모이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랑별파파(다움카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