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정복자 페르세우스"
그라이아이와 고르곤 무리
그라이아이는 세 자매인데 태어나면서부터 백발이었다. 그래서 〈그라이아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또 고르곤 세 자매란 괴물 같은 여자들로, 엄니는 멧돼지 엄니 같았으며,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이 모두 뱀이었다. 이들은 신화에 별로 등장하지 않으나 고르곤 세 자매의 하나인 메두사만은 예외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러한 여성들을 다루는 것은 현대의 작가들이 지어낸 이론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곧 이 고르곤 세 자매와 그라이아이는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공포를 의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르곤은 바다를 지키는 〈강한〉 파도를 상징하고, 그라이아이는 암벽에 부서지는 〈흰〉 물보라를 상징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괴물들의 이름은 위에서 〈강한〉, 〈흰〉이라고 쓴 형용사의 그리스 어로 보아야 마땅하다.
메두사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와 다나에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페르세우스의 외조부 되는 아크리시오스는 자기가 외손자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신의 뜻을 읽고는 딸 다나에와 외손자 페르세우스를 상자에 가두어 바다에 띄워 버렸다.
상자가 세리포스 섬으로 떠내려가자 한 어부가 이를 발견하고는 건져냈다. 이 어부는 다나에 모자를 섬의 왕 폴뤼덱테스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이 모자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ibiblio.org%2Fwm%2Fpaint%2Fauth%2Frembrandt%2F1630%2Fdanae.jpg) |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 아버지 아크리시오스가 청동탑에 갇힌 딸을 훔쳐 보고 있다. 다나에의 머리 위에 사랑의 신 에로스가 떠 있다. 에로스는 이상하게도 〈황금상〉 모양을 하고 있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upload.wikimedia.org%2Fwikipedia%2Fcommons%2Fthumb%2F7%2F78%2FTizian_011.jpg%2F1024px-Tizian_011.jpg) | 티치아노가 그린 이 그림에 제우스는 황금빛 드라크마 화폐로 그려져 있다. 이것을 두고, 〈돈을 받고 몸을 판 여자〉라고 다나에를 비난하는 신화 작가도 있다. 〈드라크마〉는 지금도 그리스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다. Tiziano - Danae, 1553-56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gnosis.art.pl%2Filuminatornia%2Fsztuka_o_inspiracji%2Ftycjan%2Ftycjan_danae_ok1554.JPG) | 티치아노가 그린 또 하나의 다나에 그림에도 제우스는 황금 드라크마 화폐로 그려져 있다. 하녀가 쟁반으로 화폐를 받고 있다. Tiziano(1487-1576) - Danae, 1554 |
페르세우스가 장성하자 폴뤼덱테스는, 예부터 그 섬을 위협하는 무서운 괴물 메두사를 퇴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메두사는 원래, 머리채가 특히 곱기로 소문난 아름다운 처녀 였었다. 그런데 이 메두사가 감히 아테나 여신과 그 아름다움을 겨루려 한 것이 그만 아테나를 몹시 노하게 했다. 아테나는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거두고 그 머리채를 올올이 쉭쉭 소리를 내는 뱀으로 만들어 버렸다. 메두사는 이렇게 해서 잔인한 괴물이 되었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 번 보기만 해도 모두 돌이 되어 버릴 만큼 그 얼굴이 그렇게 무시무시했다.
메두사가 사는 동굴 근처에는 석상이 즐비했는데 이 모두가 그 얼굴을 보고 돌이 된 인간들의 석상이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총애를 받던 처지라 아테나로부터는 방패를, 헤르메스로부터는 신기만 하면 마음먹은 대로 날 수 있는 비행화(飛行靴)를 빌 수 있었다.
한가운데 메두사의 머리 모양이 새겨진 아테나 여신의 무적의 방패 〈아이기스(Aigis)〉. 미국의 구축함 〈이지즈(Aegis)〉는 무엇을 지향할까? 바로 〈무적의 방패〉다. 캐나다 토론토의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Caravaggio - Medusa(1597-98) Galleria Uffiz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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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는 이런 비기(秘器)로 무장하고 메두사가 잠자고 있는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그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빛나는 방패에 비치는 메두사의 모습을 겨냥하여 목을 잘라 버렸다. 페르세우스는 이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쳤다. 아테나는 이것을 자기 아이기스 방패 한가운데에다 붙였다.
밀턴은 『코무스』에서 아이기스 방패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머리털이 뱀인 고르곤의 방패가 대체 무엇인가, 어진 아테나, 저 정복될 줄 모르는 처녀신이 가지고 있던, 적을 돌로 얼어붙게 한다는 저 방패란? 그것은 순결한 엄위와 드높은 품위를 갖춘 뛰어난 용모였다. 저 야수의 폭력에 존경할 줄 아는 마음,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는 용모였다."
『건강을 지키는 법』(The Art of Preserving Health)이라는 시를 쓴 시인 암스트롱은 강물에 뜬 얼음의 효과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이기스 방패
"세찬 북풍이 불어 대지를 얼어붙게 하면, 옛날 키르케나 메데이아가 자랑하던 것보다 훨씬 강한 마법의 힘으로 둑을 집적거리던 어떤 시냇물도, 쐐기처럼 둑 사이에 끼인 채 조용히 눕되 마른 갈대 하나 흔들지 못한다. 무서운 북동풍에 짓씹힌 파도도, 애태우고 애끓이며 머리를 흔들어 대며 미친 듯이 거품을 뿜어댄다. 그러다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 너무 지독하고 너무 갑작스러운 이러한 변화는 저 무서운 메두사의 얼굴이 해놓은 짓이다. 메두사는 숲속을 걸으며 짐승들을 돌로 만들었다. 사자가 거품을 뿜으며 돌진해 와도, 메두사가 쓰는 재빠른 마법의 힘은 사자의 속도를 앞질러 버린다. 그리고 사자는 그 자리에 우뚝 선다. 대리석으로 만든 분노의 조상(彫像)처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eo23010.com.ne.kr%2Fmanber%2Fbeungsun%2FGLYWORK_944.jpg) | 로댕의 애인 카미유 클로델이 만든 〈페르세우스와 고르곤〉. 고르곤은 메두사 및 그 자매들을 일컫는 말이다. 페르세우스도 메두사의 머리를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아테나의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머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파리, 로댕 박물관이 소장. |
![top.gif](https://t1.daumcdn.net/cfile/cafe/2233F348534686EC34) 아틀라스
메두사를 죽인 뒤 페르세우스는 이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고 땅 위, 바다 위를 가리지 않고 온 세계를 날아다녔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페르세우스는 해가 떨어지는 곳인 이 땅의 서쪽 끝에 이르렀다. 페르세우스는 그곳에서 아침까지 쉬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아틀라스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아틀라스 왕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다. 그에겐 양과 소가 많았으나 그 나라를 노리는 이웃 나라나 원수진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가 가장 뽐내는 것은 황금 과일이 열리는 뜰이었다. 과일은 황금빛 가지에 매달린 채 황금빛 잎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 왕에게 말했다.
「나는 손[賓]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혹 왕께서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를 대접하신다면 말씀드리거니와 제우스 신이 제 아버지십니다. 혹 위대한 공적을 이룬 자를 후하게 대접하신다면 말씀드리거니와, 저는 고르곤을 퇴치한 장본인올습니다. 바라건대 하룻밤 유숙할 것을 허락하시고 허기를 채우게 하소서.」
그러나 아틀라스에겐 짚이는 데가 있었다. 옛날 자기에게 내려진 신탁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아틀라스는 언젠가 제우스의 아들이 황금 사과를 빼앗아 갈 것이라던 신탁을 되새기며 이렇게 대답했다. 「가시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대의 허장성세나 가문의 자랑도 그대를 지켜 주지 못하리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nucm61us.net%2Fcreativity%2Fmythology%2520and%2520art%2FMythologyandart-%2861-%29%2Fmt624.bmp) | 메두사의 목을 들어 보이는 페르세우스(로마, 바티칸 박물관). Perseus beheading Medusa, 1545. Signoria Square, Florence, Italy |
아틀라스는 이 말끝에 페르세우스를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페르세우스는 그 거인이 힘으로 나온다면 도저히 자기 상대일 수 없음을 아는지라 몸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나의 우정을 그렇게 싸구려로밖에는 쳐주지 않으니 선물이나 하나 드릴 수밖에요.」
페르세우스는 제 얼굴을 돌리며 메두사 머리를 쑥 내밀었다. 그러자 아틀라스의 거대한 몸은 돌로 변했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은 숲이 되었고, 팔과 어깨는 절벽, 머리는 산꼭대기, 그리고 뼈는 바위가 되었다. 몸의 각 부분은 마침내 거대한 산이 되기까지 부피가 시시각각으로 커졌으니 (신들이 참으로 좋아할 만한 일이지만) 뭇 별들을 거느린 하늘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top.gif](https://t1.daumcdn.net/cfile/cafe/2233F348534686EC34)
바다의 괴물
페르세우스는 비행을 계속하여 이디오피아 인들이 사는 나라인 케페우스의 왕국에 이르렀다. 케페우스의 아내 카시오페이아는 제 미모를 뽐내면서, 감히 바다 요정들의 아름다움에다 비교한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바다 요정들은 거대한 괴물을 보내 이 나라 해안을 아주 못쓰게 만들었다. 이 바다 요정들의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케페우스는 신탁을 청했는데, 신탁에 따르면 딸 안드로메다를 바쳐야 요정들의 분노가 가라앉겠다는 것이었다. 케페우스는 신의 뜻대로 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페르세우스의 눈에, 사슬로 바위에 묶인 채 바다 괴물인 큰 뱀을 기다리는 처녀가 보였다. 얼굴이 창백한 이 처녀는 사슬에 묶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 뺨에 흐르는 눈물과,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아니었더라면 페르세우스도 그저 대리석상이라고 여겼을 터였다. 페르세우스는 처녀의 아름다움에 어찌나 놀랐는가 하면, 비행화의 날갯짓하는 것까지 잊을 뻔 했을 정도였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의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말을 걸었다.
「오, 처녀여!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사슬에 묶여 있어야 마땅한 그대가 그런 사슬에 묶여 있다니. 말해 주오, 그대가 사는 이 나라 이름을, 그리고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 까닭을.」
안드로메다는 처음에는 처녀답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었다면 두 손으로 얼굴까지 가렸으리라.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되풀이해서 묻자, 잠자코 있으면 상대가 제 입으로는 차마 말못할 잘못이라도 저지른 줄 오해할까 봐 자기 이름과 나라와 그리고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뽐내다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처녀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다 저쪽이 시끌벅적해졌다. 괴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나타난 괴물은 머리를 바다 위로 불쑥 내민 채 넓은 가슴으로 물결을 가르며 돌진해 왔다.
처녀는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 곁에 있었으나, 딸을 구할 수 없는지라 발을 구르며 애만 태웠는데 특히 어머니 쪽이 더 그랬다. 두 사람은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어, 그저 통곡하며 딸을 껴안으려 했을 뿐이었다. 페르세우스가 외쳤다.
「눈물은 나중에 얼마든지 흘릴 수 있습니다. 지금 급한 것은 한시바삐 처녀를 구하는 일입니다. 나는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고르곤의 정복자이니 처녀에게 구혼할 자격은 이로써 넉넉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신들 께서 은총을 내리신다면, 기왕의 내 공훈에다 덧쌓을 공훈으로 처녀를 얻고자 합니다. 내 공훈으로 처녀가 구조될 경우 나는 상으로 바로 저 처녀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안드로메다의 부모는 이를 승락하고(어떻게 머뭇거릴 수 있었으랴?) 지참금으로 왕국까지 넘겨 줄 것을 약속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peterpaulrubens.org%2F68611%2FPerseus-And-Andromeda-large.jpg) | 괴수를 퇴치하고, 괴수의 먹이가 될 팔자를 타고난 처녀를 구한다는 모티프가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보라. 17세기 화가 루벤스가 그린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가 든 방패에 메두사 머리가 매달려 있다. 오른쪽에는 날개 달린 말이 서 있다.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는 메두사의 피에서 솟아난 말이다. 페가소스는 벨레로폰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루벤스는 페르세우스가 신었던 날개 달린 신발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
그 때 이미 괴물은 팔매질의 명수라면 돌을 던져 맞힐 수 있는 거리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청년 페르세우스는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하늘 높은 데서 햇볕을 쬐다가 뱀을 발견한 독수리가 수직으로 내리꽂아 그 목을 물고 비틀어 뱀에게 독니 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처럼, 청년 페르세우스도 그렇게 괴물의 등줄기로 날아내려 그 겨드랑이를 칼로 찔렀다. 상처 입은 괴물은 미쳐 날뛰다 못해 하늘 높이 몸을 솟구쳤다가는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가곤 했다. 괴물은 낭자하게 짖어 대는 사냥개 무리에 둘러싸인 멧돼지처럼 좌우로 몸을 돌리며 페르세우스를 공격했다. 그러나 청년은 날개 덕분에 그런 공격을 쉬 피할 수 있었다. 청년 페르세우스는 비늘 사이로 맨살이 보일 때마다 옆구리, 배 그리고 등에서 꼬리 쪽으로 내려가며 닥치는 대로 푹푹 찔러 상처를 입혔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news.kiost.ac%2Fimages%2F0029225383_041%2F3.jpg) | 안드로메다를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페르세우스, 1576년, 파울로 베로네제 |
이윽고 괴물이 콧구멍으로 피 섞인 바닷물을 뿜었다. 용사의 날개는 그 핏물에 젖어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했다. 페르세우스는 파도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암초 위로 올라가, 삐쭉 솟은 칼바위에 몸을 의지하고는 가까이서 떠오른 괴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해변에 모여 있던 군중은 산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환성을 울렸다. 딸의 부모는 기쁨에 겨워 이 장래의 사위를 껴안고는 〈케페우스 일문(一門)의 구주(救主)이며 구제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괴물과 벌이게 된 싸움의 꼬투리이자 승리의 상품이기도 한 처녀는 사슬에서 풀려나 바위에서 내려올 수가 있었다.
카시오페이아는 이디오피아 사람이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몹시 뽐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시오페이아는 흑인이었다. 적어도 밀턴은 이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밀턴은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에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우울〉(Melancholy)을 향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슬기롭고 거룩한 여신이여, 당신의 기품 있는 모습은 하도 빛나서 인간의 시각에는 정확하게 비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약한 시력에는 검고 낡은 〈예지〉의 색깔에 가려 보입니다. 검디 검다는 말은 존경하는 의미에서 쓴 말입니다. 멤논 왕자의 누이에게나, 혹은 별이 된 이디오피아 왕비에게 어울리는 찬사입니다. 제 아름다움을 바다 요정들의 아름다움 이상이라고 뽐내다 신들의 노여움을 얻었던 저 카시오페이아에게나.
여기에서 카시오페이아가 〈별이 된 이디오피아 왕비〉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 여자가 죽은 뒤 천상으로 불려 올라가 같은 이름의 별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시오페이아는 이런 명예를 얻었으나 그래도 감정의 앙금이 남았던 바다 요정들은 카시오페이아를 별자리로 붙박되 북극에서 가까운 하늘에 배치되게 했다. 매일 밤의 반은 고개를 숙이게 함으로써 겸양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멤논은 이디오피아의 왕자다. 이 멤논은 뒤에서 다루기로 하자.
![](https://t1.daumcdn.net/cfile/blog/156D62484FC5A81F39) | 이 정교한 대리석상은 17세기 조각가 피에르 퓌제의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
![top.gif](https://t1.daumcdn.net/cfile/cafe/2233F348534686EC34)
혼인 잔치
안드로메다의 부모는 희희낙락, 페르세우스와 딸을 데리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이미 잔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축제 기분으로 먹고 마셨다. 그런데 돌연 전쟁터에서나 들리는 함성이 일며 처녀의 약혼자였던 피네우스가 제 동아리들을 이끌고 쳐들어와 처녀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케페우스는 하릴없이 이런 말로 피네우스를 나무랐다.
「네가 내 딸을 요구할 생각이었다면, 내 딸이 괴물의 산 제물로 바위에 묶여 있을 때 마땅히 요구했어야 했다. 신들께서 내 딸에게 그런 운명을 점지하셨을 때 우리의 계약은 무효가 된 것이다. 죽음이 모든 계약을 무화(無化)하듯이.」
피네우스는 일언반구도 않고 있다가 페르세우스를 겨냥해서 갑자기 들고 있던 창을 날렸다. 그러나 창은 과녁을 벗어나 바닥에 떨어졌다. 페르세우스가 이에 응수하여 제 창을 던지려 하자 이 비겁한 침입자는 재빨리 제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동들은 모두 제각기 제 몸 지키기였으니 결국 잔치는 난투극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많은 왕은 말려 봐야 보람이 없겠다는 걸 알고 신들을 향하여, 「섬김을 받아 마땅한 신들에게 저질러진 그 모욕의 허물이 저에게 있지 않음을 굽어살피소서.」 이렇게 빌고는 자리를 떴다. 페르세우스와 그의 동아리들은 한동안 아주 불리한 싸움을 버티었다. 상대의 수가 워낙 많아 패배는 시간 문제였다.
바로 그때, 페르세우스는 오냐, 내 적으로 하여금 나를 보호하게 하자, 이런 생각을 하고는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내 편이 여기 있거든 고개를 돌리시오!」 그리고 고르곤의 목을 번쩍 쳐들었다. 「그까짓 장난에 우리가 겁 먹을 줄 아느냐?」
테스켈로스가 이렇게 외치며 창을 던지려다가 창을 겨눈 채로 돌이 되었다. 암피코스는 쓰러진 상대의 몸에 칼을 박으려다 말고 팔이 굳어 빼도박도 못하고 돌이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다 그대로 굳어졌기 때문에, 입은 열려 있었으나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페르세우스와 한편이었던 아콘테우스도 고르곤의 머리를 보고는 다른 사람처럼 굳어져 돌이 되고 말았다. 아스티아게스는 그것도 모르고 칼로 아콘테우스를 내리쳤다. 그러나 상처를 입히기는커녕 칼은 쨍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피네우스는 자기가 시작한 이 공평하지 못한 싸움의 뻔한 결과를 보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제 편 군사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보았으나 대답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손을 대어 보았지만 모두가 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페르세우스 쪽으로 두 손을 내밀고는 고개를 돌린 채 이런 말로 자비를 빌었다. 「다 가져 가시오. 그러나 내 목숨만은 내게 붙여 주시오.」
![](http://m1.daumcdn.net/cfile221/R400x0/180823164C6BFFEDCB677F) | 메두사의 머리를 들어 보이는 페르세우스. 16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청동상. |
페르세우스가 대답했다. 「천박한 비겁자여, 그렇다면 내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마. 지금부터는 어떠한 무기도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못한다. 뿐이냐, 이 사건의 기념품으로 너를 내 집으로 데려가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페르세우스는 피네우스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쪽에다 고르곤의 머리를 내밀었다. 피네우스는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벌리고,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돌이 되었다.
페르세우스에 대한 다음 인유는 밀턴의 『세이모』에서 취한 것이다.
"저 전설로 이름 높은 리비아의 혼인 잔치 마당에서, 페르세우스는 분노로 속을 끓이면서도 침착하게 일어나, 뒤꿈치의 날개를 펄럭이며 반쯤 공중으로 몸을 날리니, 방패에서 빛나는 메두사의 머리가 난투하는 자들을 돌로 변하게 했다. 브리튼의 왕 세이모도 마법의 무기는 없었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몸짓과 험상궂은 눈길을 하고 일어섰다. 그러자 주위는 그 위엄에 눌렸으니, 그 소란스럽던 대전(大殿)이 일시에 잠잠해졌다.
출처: 벌핀치 그리스로마 신화 (Thomas Bulfinch's Mythology), 이윤기, 2009.6.19,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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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finch's Mythology : One of the leading popularisers of classical learning in the nineteenth century, Thomas Bulfinch made the myths and legends of the ancient and medieval world available to American audiences through his three decisive works, The Age of Fable, The Age of Chivalry, and Legends of Charlemagne, collectively published and widely known as Bulfinch's Mythology. This deluxe leatherbound gift edition contains not only the full text of Bulfinch's definitive works, but also dozens of colour illustrations and paintings. A banking clerk by day, Bulfinch spent his nights skillfully weaving often disparate versions of classical and medieval mythology into a coherent whole. The thoroughness with which he combed through his sources made his mythological books standard reference guides for many years, while the vigor of his storytelling enthralled generations of readers. Written to 'teach mythology not as a study but as a relaxation from study', these timeless volumes span the ages. ![top.gif](https://t1.daumcdn.net/cfile/cafe/2233F348534686EC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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