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팀으로 옮긴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마이클과 A, B조 요원들이 보는 앞에서 최림은 입단식을 했다.
그제야 최림은 그때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요원들과 안면을 텄다.
그들은 폐건물 안에서 술과 고기로 파티했다.
어느덧 술이 오르자, 최림은 이요한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뭐든지.”
“형사과로 발령 나서 더욱 바쁠 터인데, 제가 언제, 어떻게 조직의 일을 함께 할 수 있는지요?”
그러자 대답은 이요한이 아닌, A조 조장이 대신했다.
그 역시 전직 경찰이었고 최림처럼 악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름은 민갑주였다.
“악령과 전투, 혹은 놈들을 잡아 오는 일은 미오처럼 B조 요원들이 거의 하죠. 우리 A조는 통신, 감청, 해커 및 오프라인 일을 주로 하면서 B조를 지원하는 일이오. 최림 씨는 당분간 우리 A조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우리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만 있어요. 필요할 땐 호출할 테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소.”
최림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이클이 나섰다.
“최림 씨 정도 능력이면, 바로 B조에서 일해도 되지 않아요? 내가 알기론 스승에게 배운 무예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최림은 마이클이 스승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무림 거사를 아십니까?”
“물론. 그도 한때 우리와 공조했으니까.”
‘아!’
최림은 무림 거사를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자 이요한이 나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아직은 놈들에게 최림 씨를 노출할 필요는 없다 봅니다. 이곳 일에 익숙해지면 천천히 투입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이요한의 말에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당분간 민갑주 조장이 최림 씨를 잘 보살펴주세요. 우리 조직의 미래입니다. 안 그래요? 꼬마 아가씨?”
마이클의 말에 미오는 입을 삐죽거렸다.
‘호출이라 ….’
최림은 민갑주가 필요할 때 호출한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이제부터 그들과 공조하여 놈들을 잡는다는 생각에 벌써 신이 났다.
하지만 형사팀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내심 걱정이 앞섰다.
과연 최림이 생각한 대로 형사 일은 만만치 않았다.
서대문구는 전통적인 주택지구와 최근 급성장한 상업·업무지구 그리고 초중고 및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건 그만큼 사건·사고가 잦은 곳이란 말이었다.
최림은 형사팀 막내로 모든 강력범죄에 투입되었다.
매일 사건 현장에서 살며, 잠복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폭행, 절도, 강도 등의 사건 해결은 기본이었다.
경찰로서 뛰어난 자질도 있었지만, 악령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강력 사건의 반 이상은 놈들이 범인들을 조종하는 사건이었다.
특히 살인 같은 범죄는 백 프로 악령들이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최림은 이때마다 뛰어난 촉과 감각을 이용하였다.
결과는 늘 성공이었다.
일반 형사들은 해결할 수 없는 사건도, 그놈들을 잘 아는 최림은 가능하였다.
이 때문에 최림은 형사팀뿐만 아니라 경찰서에서 선두 주자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최림이 유능한 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한날, A조 조장인 민갑주에게서 호출이 왔다.
마침 최림이 잠복근무 사흘을 하고 쉬는 날, 늦은 오후였다.
“최림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민갑주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지금 당장, 서울 인근에 있는 C 시로 가시오.”
그러면서 그는 주소를 찍어주었다.
“여긴?”
“놈들 한 무리와 미오를 비롯한 B조 요원들이 전투 중인데, 우리가 불리하오.”
최림은 급히 주소를 확인했다.
C 시의 강변에 있는 공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길로 최림은 차를 몰았다.
얼마나 달렸던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각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근처에 격투 소리가 나면서 비명이 들렸다.
최림은 장갑에 쇠사슬을 감고 현장으로 뛰었다.
가면서 그는 스승, 무림 거사의 말을 되뇌었다.
‘사람을 보지 말고 그 뒤에 있는 악령을 쳐라!’
전투는 가관이었다.
놈들과 B조 요원들은 땅에 붙어있을 틈 없이 공중에서 날면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최림의 눈앞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놈들은 처음 보는 짐승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본 모습과는 판이하였다.
놈들은 시커먼 그림자이거나 끈적끈적한 타액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짐승이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
최림은 순간 이 짐승을 단수로 표현하는지, 복수로 표현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악!’
그때 익숙한 비명이 들렸다.
요원 중에 누군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미오였다.
미오는 붉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미오!”
최림이 그녀 곁으로 다가서자, 미오는 손을 저었다.
“난 괜찮아. 얼른 가서 … 저분들을 도와줘.”
최림은 눈을 돌렸다.
다른 요원 몇이 그 짐승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휘리릭 ~ .
최림은 거의 날다시피 한걸음에 뛰어 짐승의 머리 하나를 강타했다.
퍽!
그러자 요원들을 향하던 일곱 머리 중 6두가 최림을 쳐다보았다.
뒤이어 뿔 10개가 동시에 최림을 향해 돌진했다.
“조심해!”
미오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피한다고 했으나, 여러 개의 뿔을 모두 피하진 못하였다.
최림 역시 뿔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챙겨입은 방탄복 때문에 충격은 그리 세지 않았다.
최림은 놈을 단번에 제압할 공격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회오리 타법!’
회오리 타법은 디딤발로 바닥을 쳐서 공중을 회전하면서 타격하는 공격법이었다.
그 옛날 스승인 무림 거사에게 배운 공격법이었다.
짐승의 머리 7개가 최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최림은 숨을 들이마신 뒤, 놈이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이때다!’
최림은 힘차게 디딤발로 바닥을 차고 올랐다.
마침 반대편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최림은 한차례 바람의 힘으로 공중에서 회전한 다음, 7번 연속으로 회전했다.
그러면서 주먹으로 짐승의 일곱 머리를 차례로 타격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예상은 적중했다.
짐승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성을 질렀다.
크크크크, 카아아아악!!!
짐승의 일곱 머리가 휘청이자, 이번에 지켜보던 요원들이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곤 한 명이 3~4개의 뿔을 그대로 내리쳤다.
꽥!
마침내 놈은 비틀거리며 저만치로 물러섰다.
“이때입니다. 놈을 사로잡읍시다!”
최림이 요원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멀리 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그냥 둬!”
‘어잉? 왜?’
최림은 미오와 요원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왜 안 된단 말이야?”
그때였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그 짐승은 여러 개의 시커먼 그림자로 변하고 있었다.
민갑주가 말한 한 무리였다.
‘저건 뭐야?’
최림은 눈앞에 보고 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휘리릭 ~ .
이어 그림자들은 끈적끈적한 액체로 변하나 싶더니,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최림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얼른 미오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이것 봐라. 또 말이 짧네. 난 … 괜찮아. 억.”
그 와중에도 미오는 최림에게 농담을 던졌다.
“어떻게 된 거 … 요?”
그러자 미오 대신 B조 요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놈들이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이마에 표식한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달려왔건만, 놈들이 수적으로 우세하여 고전 중이었죠. 최 선생께서 도와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타깝지만 여러 명이 당했습니다. 저기 ….”
최림이 가서 보니, 나무 밑에 사람 몇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이마에 666이란 숫자가 적혀있었다.
‘한발 늦었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최림이 요원에게 물었다.
“무슨?”
“놈들이 원래 저런 형상으로 나타납니까?”
“아닙니다. 평소엔 시커먼 물체나, 그림자 혹은 끈끈한 액체로 돌아다니죠.”
“그럼?”
“우리와 전투할 때면 저렇게 짐승으로 변하곤 합니다. 저 형상이 놈들에겐 가장 전투력이 상승하는 거라서. 사실, 우리도 버겁습니다.”
“그렇다면 놈들을 제거하거나 생포하는 게 불가능하단 말씀입니까?”
“아뇨. 방법은 있습니다. 요한 조장님과 A조의 퇴마사 요원이 있었더라면 호리병으로 놈을 가둘 순 있습니다.”
최림은 의아했다.
“호리병으로요?”
“네, 퇴마사가 의식으로 놈을 호리병으로 가둔 후, 깊은 물 속에 빠뜨립니다. 오늘 하필이면 두 분이 먼 곳으로 출장 가는 바람에 ….”
최림은 갈수록 ‘악령퇴치반’의 놈들을 잡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그때였다.
웨에엥!
멀리서 경찰차 여러 대가 오고 있었다.
요원이 급히 다른 요원에게 명령했다.
“미오부터 업어! 그리고 뜨자. 참! 그리고 최 선생님도 얼른 자리를 피하십시오. 난처할 테니까요.”
‘하긴! 나 빼곤 경찰 눈엔 이들이 보이지도 않겠지.’
최림은 허리를 숙여 급히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하늘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