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에 가보니 한 눈에 견적이 나왔다. 거기서는 하루 평균 3.5 명이 헤어지고, 5.7 명이 결합한다. 어디서 나온 수치냐고요? 울산이 광역시인데다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도시니 이런 멋진 곳을 두고 기껏 커피숍(Coffee Shop)이나 술집에서, “우리 이제 그만 만나.” 그러고, “나 너 사랑해.”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수도권에도 정말 이런 곳이 한 곳쯤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는 저 속 시원한 동해에다 걸고 맹세하고, 헤어지자고 말할 때는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하늘에다 대고 소리치는 거야! 도 아니면 모, 죽기 아니면 살기, 인생 뭐 있어! 사랑하다 죽는 거지! 사랑의 시작도 끝도 뜨겁게! 처절하게! 군더더기 없이 순수하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니 내 이제 너의 사랑을 받아주도록 하마.”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의 승낙이 떨어졌으면 곧장 그녀 손을 잡고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 우체통으로 뛰어가는 거야. 너의 뺨을 스치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은 그녀의 머리칼을 날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네가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촉촉히 적실 거야.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엽서를 쓰는 거야. 돈? 우표? 그딴 거 필요 없어. 너희들의 순수한 사랑에 그런 현실적인 잡다한 것이 왜 필요해? 다 있으니 그냥 너희들 하고 싶은 말만 적어서 저 현실 세계로 날려 버려. 현실 세계에다 뜨겁고 처절하고 순수한 너희들의 사랑을 공표하는 거지.
[ 엄마, 나 이 사람을 선택했어. 반대한다고? 아들 하나 없는 셈 쳐. ]
아, 좋다! 이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안 그래? 젊을 때 안 저지르면 언제 저질러? 후회고 뭐고 그딴 게 어디 있어? 인생은 일방통행이야. 혼자 가느냐, 누구와 같이 가느냐만 선택이야. 까짓것 가보는 거야. 간절곶에 있는 데 뭐가 두려워? 주위를 한 번 둘러봐. 날것 그대로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땅은 땅대로… 그리고 너희들은 사람대로 사랑하고 있는 거야.
[ 엄마,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대. 싫다고? 딸자식 하나 없다고 생각해. ]
잘 선택했어! 난 너의 사람 보는 눈은 못 믿어도, 사랑 받고 있음에 기뻐하고, 사랑하고 있음에 즐거워하는 그 마음을 알아. 사랑이란 그렇게 하는 거야. 사랑이 변할까 봐 두렵니? 세상 모든 건 변하는 거야. 안 변하는 게 이상한 거지. 변하면 그 때 다시 간절곶으로 뛰어 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의 섭리가 너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줄 테니.
그리고…
헤어질 때는 또 다시 곧장 우리나라 최대 우체통으로 달려가 서로의 집으로 엽서를 띄우는 거야. 현실 세계에다 뜨거웠던, 처절했던, 순수했던 너희들의 사랑을 알리는 거지. 높이 5 m 니 믿음직스럽고, 가로2.4 m, 세로 2 m 니 푹 안길만하지 않아? 무게가 7 톤(Ton)이나 되니 아무리 힘껏 달려가 몸을 날려 안겨도 괜찮을 것 같지? 뒷문으로 들어가 엽서를 쓰면서 엉엉 울어. 넌 지금 우체통에 폭 안겨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
[ 어머니, 우리 헤어집니다. 잘 했다고요? … 어머니, 그 말이 사실인가요? ]
세상에나… 서로 사랑하는 너희 둘이 배 같은 남매였어? 이런 막장 같은 이야기가 있나…….
[ 어머니, 저희들 헤어집니다. 잘 했다고요? … 어머니, 그 말이 사실인가요? ]
세상에나… 사랑하는 너희 둘이 배 같은 자매였어? 남매도 아니고 자매? 진짜 타자를 치고 있는 저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나 인력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21 세기의 새로운 트랜드(Trend), 그린IT(Green IT)에 역행해도 유분수지.
이렇게 간절곶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뒤에 서서 묵묵히 들어 주고, 불 밝혀 주는 이가 간절곶등대다. 1920 년부터니 얼마나 많은 사랑이 이 등대 앞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었을까? 얼마나 많은 배가 이 등대 앞에서 바다로 나가고 육지로 돌아왔을까? 저 등대만큼도 살지 못함에 한탄한다.
1920 년부터 간절곶에 뿌리박고 서 있는 간절곶등대를 보러 갔다. 등대관리소 옆으로 솔숲이 있었다. 그리 넓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장면쯤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관리소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늠름하게 서 있는 등대가 나를 반겼다. 어떻게 한 번 부탁해볼까 하다가 시간 관계상 등대에 올라가는 건 포기하고, 대신 그 옆에 있는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그다지 특별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등대에 관한 고만고만한 것들이 잘 진열돼 있었다. 한쪽에 모형 등대 3 기가 서 있었다. 간절곶등대와 화암추등대와 울기등대였다. 바로 울산에 있는 유인 등대 3 총사! 울산에는 이렇게 딱 3 기의 유인 등대가 있다. 울기등대는 대왕암공원에 있는 1905 년 산이고, 화암추등대는 비교적 최근에 다시 세워진 거대한 등대다. 위에 전망대까지 갖추고 있다니 다음에 울산에 가면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
거제도의 바람의 언덕에서 그 바람과 풍경에 많이 감탄했다. 하지만 간절곶에 서고 보니 거기는 한낱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호수 같은 바다가 아니라 망망대해, 쥐젖 같이 튀어나온 조그만 땅이 아니라 묵직하게 밀고 들어간 곶, 입김 같은 바닷바람이 아니라 큰기침 같은 바닷바람이었다. 간절곶의 ‘곶’이란 땅이 바다로 삐죽이 밀고 들어간 부분을 말한다. 그만큼 바닷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등대가 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날마다 해 뜨는 지점이 다른 거야 다들 아는 사실일 테고, 우리나라 본토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은 호미곶도 되고, 간절곶도 된단다. 왜 그런가 하면 호미곶은 여름철에, 간절곶은 겨울철에 빨리 뜨는 곳이라서 그렇단다. 1 월 1 월이라면 겨울철이니 호미곶보다 간절곶에서 1 분 몇 초 더 빨리 뜬단다. 매일 뜨는 해, 일부러 보러 간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라니 다르게 보였다.
그런데 그 좋은 자연경관을 전망대가 다 망치고 있었다. 어떤 방향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도 전망대를 피해갈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전망대에 서면 풍경이 좋나? 그것도 아니었다. 너무 가깝고, 너무 멀어 간절곶의 그 조각 같은 갯바위를 시야건 사진이건 오롯이 담아낼 수 없었다. 이 전망대는 아마 오로지 일출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해가 뜨길 기다리다 환호하는 그 짧은 1 시간을 위해 나머지 23 시간을 망친 셈이다. 전망대가 전체적인 풍경을 흔들어 놓으니 우체통도 그렇고, 조각상도 그렇고 다들 산만해 보였다. 차라리 손대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이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순수한 바다를 바라보며 무공해 바닷바람을 마음껏 맞아보고 싶을 때, 그래서 잊고 살던 삶의 순수한 부분을 되뇌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 간절곶이다. 간절곶을 몰랐을 때는 이런 마음을 몰랐는데 간절곶에 알고 나니 이런 마음을 알겠다.
갔다 온지 4 일 뒤, 우체통에 넣었던 내 엽서가 배달돼 왔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간절곶 같은 순수함을 우리집 근교에 두고 싶어 미치겠다. 하지만 거기는 KTX로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3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곳에 있다. 1 년에 한 번은 가볼 수 있을까?
첫댓글 허거덩! 뛰어다니더니 별별군델 다 간거네.
요만한 사진기를 들고 있는 제 생존전략입니다. 기.동.성.
마살님 후기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전 그래도 다 읽는 편이거든요..ㅎㅎㅎ 그나저나 참 골고루 많이 다니셨네요..
히히히... 고맙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 블로그도 그렇고 다들 안 읽으시는 것 같더라구요. 고맙습니다, 히히히...
사진 글솜씨 모두 파워플...파워블로거 인정...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