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濟州 缸波頭里 抗蒙遺蹟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최후의 항몽유적지(抗蒙遺蹟址).
제주도 기념물 제28호. 현재 15리에 이르는 토성(土城)과 삼별초(三別抄) 군사들이 궁술훈련 때 과녁으로 사용했던 ‘살맞은 돌’, 성의 건물 문지였던 ‘돌쩌귀’, 김통정(金通精) 장군이 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파여서 샘이 솟는다는 ‘장수물’, 삼별초 군대가 급수로 이용한 ‘옹성물’·‘구시물’, 옥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지는 1977년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총화단결을 다짐하는 뜻에서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석성(石城)인 내성(內城)이 위치했던 9천여 평의 경내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우는 등 성역화되었다.
진도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 군대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1270년(원종 11) 11월 3일 이문경(李文京) 부대의 제주 명월포(明月浦) 상륙이었다. 이문경 부대는 이미 제주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던 관군(官軍)과 송담천(松淡川)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제주도 내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이어 1271년(원종 12) 5월 김통정은 진도의 용장성이 무너지자, 남은 삼별초 군대를 거느리고 제주도로 들어와 이문경 부대와 합세하여 대몽항쟁을 위한 본격적인 방어 시설을 구축해 나갔다.
이 항몽유적지는 1273년(원종 14) 4월 고려의 김방경(金方慶)과 원장(元將) 흔도(忻都)가 이끄는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에 의해 삼별초가 토벌되기까지 대몽항쟁의 거점이었다.
■항파두성(缸坡頭城)
항파두리·항바두리라고도 한다. 진도의 싸움에서 패한 삼별초(三別抄)는 1271년(원종 12) 5월, 장군 김통정(金通精)의 영도 아래 제주도에 들어와 이곳에 내외 이중으로 된 성을 쌓았다.
내성은 사각형의 석성을 쌓았으며, 외성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타원형의 토성을 쌓았는데, 그 길이가 15리에 이르러 성안의 면적은 약 30만평이나 되었다. 성에는 4대문을 설치하고 성 안에는 대궐을 비롯하여 관아·병사·군기고·후망소(堠望所)·옥사·훈련장 등을 시설하였으며, 우물과 저수지도 마련하였다.
김통정은 이 항파두성 외에도 명월(明月)과 애월(涯月)에는 목성(木城)을 축조하고, 조공포(朝貢浦: 제주시 외도 포구)·귀일포·애월포·명월포·조선포 등에는 군항시설을 갖추었으며, 적의 상륙이 예상되는 해안 300리에는 이른바 환해장성을 쌓기도 하였다.
삼별초는 이 항파두성을 본거로 내륙지방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여 몇 차례 승리하였으나, 1273년 여·원연합군에 대패하여 전멸하고 말았다. 항파두리유적지대에는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기와·자기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밖의 당시의 시설이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1976년 9월 항파두리항몽유적지(缸波頭里抗蒙遺蹟址)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9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1978년 유적지정화사업을 벌여 이곳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비롯한 관리사·전시관·휴게소 등을 설치하였다. 현재는 제주시의 관리 아래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올레 16코스 트레킹중에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를 지나가면서 아픈 역사의 현장을 담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