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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8경 돌계단 내려가는 길, 반대로 삼청동 쪽에서 올라오면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북촌생활사박물관이 위치한다.



몇 번 지나가면서도 그냥 지나친 곳인데 오늘은 큰맘 먹고 입장하기로 한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면 이 박물관은 북촌에서 수집한 옛 생활물건들을 전시하면서 유물에 얽혀 있는 도시서민들의 삶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설립하였단다.

입장료는 3,000원.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마당인 옥외전시장. 마당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은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벽면 한쪽 쪽마루에 있는 물건들이나 맷돌로 장식한 마당 뒤쪽의 장독대도 모두 낯익고 그래서 정겹다.



입구 쪽 마당의 장독대는 조금 전의 장독대 풍광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벽에 걸린 여러 도마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도마도 전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콩쥐 캐릭터가 서있는 입구를 들어서면 거실처럼 보이는 전시장. 장롱과 찬장과 궤 등이 우선 눈길을 끌고 오래된 전화기나 타이프, 찬장에 담긴 그릇들도 추억을 자극한다.



한쪽에 전시된 남포등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반갑기만 하다. 서울에 살면서도 남포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불을 조절하던 일이나 심지를 껐을 때 나던 그을음이나 조금은 역겨운 냄새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기타 다른 물건들도 익숙하기에 보기에 편안하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전시물들을 자유롭게 만지거나 체험할 수 있게 개방한 점이다. 관람객들을 위한 배려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주 낡은 풍금을 보면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울리던 풍금소리가 떠오르고 그때 합창대회 준비를 한다며 방과 후에 남아서 연습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게는 생소한 아이들이 글씨를 깨우칠 때 글씨 연습을 했다는 사판沙板. 그 위로 붙은, 북촌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어서 좋은 한성부 지도도 인상적이다.


그곳을 지나면 또 다른 전시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가운데 진열대에 전시된 안반과 떡메 그리고 그 주위로 늘어선 여러 요강들. 큭 웃음이 나온다. 요강에 대한 친근감 때문이다. 마당이나 심지어는 집 밖 멀리에 화장실이 있던 시절, 방안에서 오줌을 누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편하기는 하지만 제때 요강을 비우지 않으면 고약한 지린내가 나서 가끔 고통을 참아야 하기도 했다.

주변의 나무 진열대나 벽에도 이러저런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만고만한 물건들을 한 바퀴 훑어본다.



그런가 하면 벽면에 붙은 몇 장의 오래된 흑백사진들은 나를 또 추억 속으로 몰고 간다. 사진이 흔치 않던 시절, 다른 집 대청마루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 우리는 왜 저런 사진이 없나 하는 아쉬움에 마음을 상하던 기억.


마지막 방은 침구류와 바느질 용품, 옛 의상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아가이불이나 때때옷 등이 먼저 보인다.


이어서 관이나 갓, 족두리, 곰방대나 참빗, 노리개 등도 눈길을 끈다. 익숙한 것들은 향기가 나지 않지만 익숙하면서도 오래된 것들은 향기가 나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삶의 체온이 배어 이제는 기억으로 굳은 그런 향기가.





밖으로 나와 옥외전시장에 잠시 눈길을 더 준다.



오늘을 살며 쓰는 흔한 물건들도 언젠가는 여기 전시물처럼 역사가 되겠지. 내가 쓰던 일상적인 물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떤 향기가 날까? 아니, 향기가 나기는 날까? 향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혼자의 다짐을 하며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