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⑪싯다르타의 배수진 “깨달음 없이 절대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16년 전에
인도를 처음 순례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도의 불교 성지는
관리가 참 허술했습니다.
불교의 8대 성지인데도
관리인이 없는 곳도 있고,
불교 유적이
땅에 파묻힌 채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인도는 지금
힌두교의 나라니까,
불교 유적은
관리가 허술한 걸까.
인도 정부에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인도를 순례할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불교 성지에 대한
관리가 아주
달라져 있더군요.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불교 성지를
단체로 찾아와
견학하는
인도의 중고등 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전에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인도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말입니다.
그의 설명이
흥미롭더군요.
“이건 다
모디 총리 덕분이다.
모디가 총리가 된 이후에
불교 유적지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또 각 학교에 지침을 내려서
학생들이 불교 유적지를
자주 견학하도록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불교는
인도가 역사 속에서
물려받은
크나큰 자산입니다.
불교를 처음 창시한
석가모니 붓다가
인도 사람이라는 건
인도가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불교 유적지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는 건
국가적 차원에서 봐도
큰 손해이니까요.
인도의 모디 총리는
불교를 아끼고,
불교를 무척 사랑합니다.
수천 년간 인도에 내려오는
카스트 제도에서
모디 총리는
아주 낮은 계급인
천민 출신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2500년 전에 벌써
계급의 타파를
주창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거론되곤 합니다.
법과 제도적으로는
카스트로 인한 차별이
없어졌지만,
일상적 관습 속에는
여전히 강한 카스트 전통이
인도에 남아 있습니다.
모디 총리는
왜 불교를 사랑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인도의 미래를 염두에 둔
큰 그림의
전략적 정책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모디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인도에서
불교에 대한
대접이 확 달라졌습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⑪싯다르타의 배수진 “깨달음 없이 절대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아들을 낳은 지 1주일 만에 남편 싯다르타가 떠났다.
애지중지하던 그의 애마와 함께 말이다.
왕자비 야소다라는 성의 동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렸다.
저 멀리서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싯다르타의 애마 칸타카가 돌아오기를 바랐다.
마침내 동문 밖에 먼지가 일었다.
싯다르타일까.
정작 돌아온 것은 텅 빈 안장이었다.
마부 찬나는 칸타카만 데리고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다.
야소다라는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 목메어 울었다.
얼마나 황망하고, 또 서러웠을까.
이제, 갓난 아들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하니 말이다.
칸나는 싯다르타가 자른 머리카락을 꺼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숫도다나 왕도 가슴이 찢어졌다.
경전에는 왕의 심정이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듯했다”고 기록돼 있다.
#신하들, 싯다르타를 쫓아가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왕자의 출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숫도다나 왕은 사람들을 보냈다.
싯다르타 왕자를 찾아서, 하늘이 무너져도 궁으로 데려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난감했다.
그래도 왕명이니 따라야 했다.
그들은 왕자를 찾아서 서둘러 길을 떠났다.
이때 싯다르타는 밧가와의 고행 공동체를 떠나 라즈기르로 가고 있었다.
급히 말을 달린 신하들은 가까스로 싯다르타 왕자를 따라잡았다.
그들은 왕자에게 매달렸다.
숫도다나 왕이 얼마나 낙담했는지,
야소다라 왕자비의 애간장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 피력했다.
진리를 찾는 일에 반드시 출가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역설했다.
“세상에는
숱한 수행자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도
다 제각각입니다.
어찌하여
지금 눈앞에 이미 있는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확실하지도 않고
보장되지도 않은 것을
찾으려 하십니까?”
신하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인도는 정치적으로 춘추전국시대였고,
사상적으로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였다.
제자(諸子)는 여러 학자를, 백가(百家)는 여러 학파를 뜻한다.
인도는 그랬다.
온갖 수행법과 숱한 수행자가 있었고, 진리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래도 싯다르타에게는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생로병사의 문제였다.
자기 삶의 첫 단추였다.
그걸 풀지 않고서, 나머지 모든 단추를 푼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었다.
사람은 결국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신하들을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수행으로 인한
과보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 궁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싯다르타는 굳건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결기가 강고했다.
신하들도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신하 중 다섯 사람은 싯다르타와 함께 남기로 했다.
그들은 대부분 브라만의 아들이었다.
싯다르타가 풀고자 했던 삶의 문제에 그들도 공감했던 것일까.
아니면 왕자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을 때,
숫도다나 왕이 내릴 엄벌이 두려웠던 것일까.
어쨌든 다섯 명의 젊은 신하도 싯다르타를 따라서 출가했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나중에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녹야원에서 법을 설한 첫 제자들,
이들이 바로 다섯 비구다.
#위세 당당한 코끼리가 밧줄을 끊듯이
나는 라즈기르로 갔다.
2500년 전 인도 북부에서 가장 강성한 왕국이 마가다국이었다.
라즈기르는 마가다국의 수도다.
다섯 개의 산으로 빙 둘러싸인 라즈기르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성 가운데는 평평한 분지가 있어 도시를 세우기에도 딱 좋았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산등성이에 남아 있는 성벽이 그대로 보인다.
싯다르타는 라즈기르를 거쳐 갠지스 강 북쪽으로 갔다.
거기에 바이샬리라는 도시가 있었다.
당시 인도는 상인 계급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시기였다.
바이샬리는 상업의 도시였다.
자유롭고 문화적 활기가 성했던 곳이다.
그곳에 저명한 요가 수행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알라라 깔라마였다.
300명의 제자를 거느린 스승이었다.
싯다르타는 그를 찾아갔다.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고 싶습니다.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알라라 깔라마는 싯다르타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세가 당당한 코끼리가
자신의 밧줄을 끊듯이,
그대는 애정의 얽매임을 끊고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늙은 왕이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서
숲으로 가는 건 놀랍지 않다.
그러나
한창 쾌락에 젖어 들 나이에
왕궁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떠나온 그대는
참으로 놀랍다.
이 높은 가르침을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다.
지혜의 배를 타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라.”
이 말을 마친 알라라 깔라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었다.
“먼저 (나의 공동체로) 출가를 하시오.
주어진 계를 지키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선정을 닦으시오.
그리하여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
들어가시오.”
싯다르타는 그 말을 따랐다.
숲의 고요한 곳으로 가서 명상을 했다.
치열하게 수행한 끝에 알라라 깔라마가 말한 경지에 도달했다.
눈을 감고 고요한 자리에 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됐다.
그야말로 무(無), 혹은 공(空)만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눈을 뜨면 달라졌다.
알라라 깔라마가 말한 경지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만 가능했다.
눈을 뜨면 그 고요가 유지되지 않았다.
사람은 밤에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낮에는 눈을 뜬다.
모두 그렇게 산다.
알라라 깔라마의 고요가 생로병사의 문제를 푸는 진짜 고요라면 어떨까.
눈을 감든 눈을 뜨든 똑같이 지속돼야 한다.
알라라 깔라마의 솔루션은 그렇지 않았다.
눈 감았을 때만 통했다.
그걸로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우리는 눈을 감고 고요에 들지만, 눈을 뜨고서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싯다르타는 직감했다.
이 수행법으로는 종점까지 갈 수 없겠구나.
그는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갔다.
싯다르타의 경지를 확인한 알라라 깔라마는 무척 기뻤다.
함께 자신의 수행 공동체를 이끌어가자고 제안했다.
싯다르타는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만족하면 여기서 멈추고 만다.
결국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알라라 깔라마의 나이는 120세였다고 한다.
깔라마의 출가 나이는 16세였다.
그러니 104년간 수행한 셈이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120세까지 살 수도 없다.
100년 넘게 수행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실망스럽다.
사람은 눈을 감았다가, 또 떴다가 하면서 살아간다.
눈을 감았을 때만 통하는 진리는 진정한 진리가 아니다.”
#타버린 나무는 다시 불붙지 않는다
불교의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불에 타버린 곳은
다시 불붙지 않듯이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싯다르타의 생각은 그랬다.
그물을 한번 찢으면, 그 그물에 다시 갇히지 말아야 한다.
불에 완전히 타버린 나무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아야 한다.
나무는 이미 재가 됐으니 말이다.
알라라 깔라마의 고요가 진정한 고요라면,
다시 시끄러워질 수가 없어야 한다.
재가 돼 버린 나무처럼 다시 불붙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눈 감았을 때만 찾아오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싯다르타는 그걸 꿰뚫어 봤다.
싯다르타는 알라라 깔라마의 공동체를 떠났다.
그는 바이샬리에서 라즈기르로 갔다.
그곳에 또 다른 수행자 웃다까라마뿟따가 있었다.
그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푸는 열쇠를 주지 않을까.
싯다르타는 그렇게 기대를 걸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중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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