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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지은 집(마 7:24-29)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가르쳐 주신 산상보훈의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산상보훈은 마태복음 5,6,7장을 말합니다. 이 산상보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주제 아래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모든 교훈의 결론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을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건축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짓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똑같지만 그 보이지 않는 기초가 다릅니다.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집을 지을 때의 수고를 생각해보면 어느 집이 더 쉽겠습니까? 당연히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일 것입니다. 모래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은 기초를 파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물가에 있는 모래 땅위에 집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반석위에 지었다는 것은 기초를 깊이 팟거나 큰 암석을 찾아서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수고가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눅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그냥 반석 위에 지었다고 하지 않고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위에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비교할 때 훨씬 빨리 지었을 것입니다.
반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그 반석 위에 기초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요? 얼마나 땀을 흘리고 노력했을까요? 아마 반석 위에 짓는 집을 짓느라 수고하는 동안에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이미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하길 당신은 왜 불필요한 노력을 하느냐고 하면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느라 많은 시간, 물질을 투자하는 사람을 경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본문 25절에 보면 모두가 시련의 과정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옵니다. 홍수가 밀려옵니다. 그리고 바람까지 붑니다. 이제 두 집의 현저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모래 위에 집은 무너지고 반석 위에 집은 견고하게 섭니다. 여기서 비와 홍수와 바람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역경입니다. 보세요, 우리의 신앙, 지금 나의 신앙이 참되냐, 거짓되냐를 볼 수 있는 내 신앙의 테스트는 역경 앞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 견디어 내느냐? 무너지고 마느냐? 의 차이입니다.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무너져 버리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합니까? 그리고 그 집안에 살고 있는 주인의 운명은 얼마나 위험합니까?
반면에 큰 바위를 기초로 삼아 그 위에 튼튼하게 집을 지어 아무리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와도 심지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기는 커녕 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면 고생한 보람이 있고 그 안에서 거하는 주인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 보면 인생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인생과 가정을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질병의 비바람에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비바람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날 IMF의 한파가 불었을 때 많은 가정이 깨지고 노숙자와 자살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그외에도 실직, 부도, 질병 등 세찬 비바람이 불어올 때 쉽게 무너져 내리는 인생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인생의 비바람을 만났어도 요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떡 버티어 서 있는 인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려움을 견뎌내고 조금도 불행해지지 않고 행복을 지켜내는 아름다운 가정과 인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나운 인생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서 버텨내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이 튼튼하고 안전한 인생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초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당을 건축할 때 기초를 보았습니다. 지하를 파니까 큰 바위들이 나왔습니다. 더 이상 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위에 1미터이상의 철근을 총총히 깔고 콩크리트를 붓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도 없는데 적당히 하지 왜 그렇게 두껍게 할까' 처음에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 생각해보니까 정말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기초 공사는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공사입니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기초공사는 땅 속으로 내려가는 공사입니다. 지상에 세워진 건물들을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화려하게 보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보기에 화려하고 명예스럽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보이지 않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 편에서 보면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복 받는 일에 투자한 것이 됩니다. 기초 공사의 진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평상시가 아니라 위에서 비가 내리고 아래에서 창수가 나고 옆에서 바람에 부딪칠 때 그 건물의 기초를 측량해 볼 수가 있습니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크게 보면 산상설교 전체를 의미합니다. 짧게는 13절 이하의 '좁은 문으로 갈 것인가? 큰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거짓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 참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를 지적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러므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 참 선지자를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먼저 '나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바로 들으려면 듣는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목사의 말로, 사람의 말로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나갈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시록 곳곳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듣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다음 '듣고, 행하는 자'가 귀한 신앙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죽은 신앙은 세속에 밀려 떠내려갑니다. 향락에 밀려 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결을 헤치고 전진합니다. 산 신앙만이 창조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산 신앙만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우리 모두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으로 주여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늘에 계시 내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반석은 '페트라'라는 말로, 흔들림이 없는 바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반석은 영적으로 무엇입니까? 마16: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반석 위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셨는데 이 반석은 그 앞 절인 15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 위에 즉 말씀과 진리의 터 위에 교회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고전10: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또 고전 3:11절에서도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되는데 그 반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입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3: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여기서 여섯 가지의 재료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인데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보석으로 집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꽃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것으로 짓는 집이 가장 쉬울까요? 풀이나 짚으로 짓는 사람이 제일 쉽습니다. 그 다음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그 다음으로 쉽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집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값이 비싸서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오실 때 불의 심판이 임할 때 타는 것은 가짜이고, 안타는 것은 진짜입니다. 여기 나오는 금은보석은 불에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지으면 불로 공력을 심판할 때 다 타버립니다. 여기 금은보석은 우리의 믿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값을 지불하면 지불한 만큼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6: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냥 저절로 "때가 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은 신앙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값싼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그만한 희생과 아픔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는 하나님도 이해하십니다. 감정중심으로 행동할 때도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초보가 아닌 사람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삶의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모든 삶의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적당히 신앙생활하면 뭔가 되겠지! 천국가면 되지! 아닙니다. 절대 적당히가 아닙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길이 험해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길을 가는 길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자아를 거슬러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순간순간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동안 이런 기도를 얼마나 하셨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옛날 황해도 재령에 있는 동부 교회에 정찬유라는 존경받는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그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경영하면서 어렵게 살다 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먹고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래도 배가 고프고, 저래도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배가 고픈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그는 아예 굶을 각오를 하고서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차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그동안 하던 문방구점을 접고 그 대신 건축자재 상회를 열었습니다. 때마침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자기가 살던 집을 신식으로 고치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건축자재가 없어서 못 팔정도입니다. 그 결과 그는 황해도에서 몇째 가는 큰 갑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도 현대식으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집 마당에 건축자재들을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그는 흐뭇한 심정으로 건축자재를 바라보던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허름한 채로 내버려 두고서 내가 내 집만 새롭게 고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자기의 집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동안에 모아놓았던 모든 돈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교회는 그 돈으로 새로운 교회부지 3만평을 산기슭에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교인들은 그의 귀한 뜻을 기르기 위해서 예배당의 머릿돌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정찬유장로 기념 예배당"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정 장로님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과 교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랴부랴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집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아니 장로님, 왜 본 교회를 두시고 일부러 다른 교회에 출석하십니까?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정 장로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부 교회에 출석한 것은 그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의 주인이 바뀌어서 정찬유장로가 지은 개인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주인으로 앉아 있는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그제야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예배당의 머릿돌에 있는 '정찬유장로 기념 예배당'이라는 글씨를 깨끗이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예전처럼 본 교회 출석을 하면서 더욱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이스라엘은 이른 비가 있고, 늦은 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따금씩 큰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큰비가 내릴 때는 단시간에 집중적인 비가 쏟아집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리다 보니까 그때는 땅이 그 많은 비를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급류가 되어 반석과 반석 사이를 누비면서 흘러내립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창수가 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비가 내릴 때는 지중해 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에서는 비가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고, 땅에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집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인생의 생활에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바는 지붕 위에 쏟아지고, 바람은 옆으로부터 백에 부딪치고 창수는 아래서부터 기초를 침범합니다. 인생 길에도 천재지변이 올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홍수다 쓰나미다 해서 세계곳곳에 재난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필리핀에 태풍으로 인해 85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2700여채의 가옥이 무너지고 20여만명의 이재민 났다고 합니다. 또 외부에서 오는 환난풍파도 있습니다. 또한 안에서 오는 외우내환이 있습니다.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사정없니 문제가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이라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바로 서기만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격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앙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을 지켰네'라는 찬송도 있습니다. 신앙이 튼튼한 사람은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몰아쳐도 가시밭의 백합화같이 향기를 날리게 됩니다.
일본은 지진이 심한 나라입니다. 오래 전에 동경 대지진 때 모든 집이 다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중 유난히 아무 흔들림 없이 굳게 선 빌딩하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을 조사해 보니 미국 '라이트 브라운'씨가 지은 집입니다. 4년이 걸려 호텔을 지었는데 꼬박 2년간 기초 공사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일본의 건축계와 언론은 비싼 돈 들여 외국인 불러와서 헛일만 한다고 난리였습니다. 기초 공사에 많은 돈과 전체 공기의 절반이나 투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임페리얼 호텔의 진가는 공사가 끝난지 52년이 지났을 때 드러났습니다. 유명한 동경 대지진 때 동경 시내 대부분의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임페리얼 호텔은 객실의 커피잔 하나 깨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지어야만 오래갑니다. 집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기초는 중요합니다.
신앙도 그 기초가 귀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그 기초에 달렸습니다. 여러분 학문을 하려고 해도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려 해도 그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집을 지을 때 보이지 않는 기초를 반석위에 세워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정금같은 믿음을 가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집을 짓는 건축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초를 모래위에 집을 짓습니다. 당장은 유익하게 보입니다. 속도가 빠르고 짓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매 무너져 버렸습니다. 또 한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그 기초를 반석위에 두었습니다. 당장 보기에 어리석은 것같습니다. 미련하게 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이 길을 걸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반석위에 집을 지어가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정금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저는 오늘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이런 믿음으로 반석위에 세운 집처럼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집을 짓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미시간호 근처에는 큰 모래 언덕이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호수의 광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래 언덕 높은 곳에 아름다운 집들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나는 사람마다 '저 아름다운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호수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모래밭도 호수속으로 잠기고 말았습니다. 어느 여름철 사나운 폭풍과 11월의 우짖는 매서운 바람은 거센 파도를 일으키어 모래 언덕을 붕괴시켰습니다. 결국 모래 언덕은 파도에 침식되어 점점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모래 언덕 위에 있던 아름다웠던 집들도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 모래 언덕과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밝고 좋은 일만 있을 때는 안전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실망이나 질병 혹은 마음의 고통이라는 폭풍이 몰아 칠 때 우리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튼튼한 그 무엇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반석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시며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보장하십니다.
이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위에 내가 서리라.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때 우리주 크신 은헤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의 인생을 결코 실패하시지 않는 예수님 위에 지으십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하고 맙니다. 특히 세상의 폭풍우앞에 밀려나고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이 되셔서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우는 사람은 처음에는 힘든 것 같아도 위기앞에서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학생들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자포자기합니다. 가난하다고 집을 나가는 주부도 많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습니다. 실직했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노숙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떤 이는 가출하고, 어떤이는 자살하고, 어떤이는 탈선하고 요지경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잘 믿는 우리 지체들을 보면 시험과 고난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가난해져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밝은 표정이 바뀌지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기때문에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도, 경제적으로 궁핍해져도 가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학생들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씩씩하게 집에 잘 들어옵니다. 남자들도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노숙자가 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쉽게 이겨내고 잘 견뎌냅니다. 예수님위에 인생을 건축하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아름다운 인생을 꿋꿋이 세워나가는 줄 믿습니다. 반드시 멋진 인생을 완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