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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세계의 빈틈은 또 다른 생명 창조 공간 |
[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21.곶자왈 개발 현황 |
최근 저지곶자왈 일대 백서향 등 도채꾼이 싹쓸이
사유지 곶자왈 매입사업 예산부족 등으로 지지부진
'선보전 후개발' 수준…곶자왈내 개발행위 지속돼
▲ 안덕곶자왈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봉의꼬리와 더부살이 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
빈틈없는 세상이다. 빈틈없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틈을 만들지도 보이지도 않으려 애쓴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자본 축적을 위해 이윤의 마지막 끝자락까지 따지고 들어야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야하는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세계에서 빈틈은 곧 또 다른 창조이고 생명이다.
지구 생명이 다섯 번 겪었던 대멸종은 살아남은 생명들에게는 진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빈틈이자 공간이었다.
곶자왈도 틈이 만든 생명이자 세상이다.
애써 단단함으로 무장한 바위와 대지는 제 스스로 생명을 거부하고 외로이 살아갈 뿐이지만 스스로 부서지고 무너진 바위덩어리 곶자왈은 늘 생명으로 차오른다.
겨울을 보내고 채 봄이 익기전 계절과 계절 사이 시간과 공간은 곶자왈속 생명들에게는 삶을 넓힐 수 있는 또 다른 틈이다.
상록수림과 낙엽수림이 알맞게 공존하는 안덕 곶자왈엔 아직 하늘을 가리지 못한 나무 사이로 제법 따스한 빛이 겨울을 보낸 생명들을 깨우며 고요한 분주함에 사로 잡혀있다.
백서향도 겨울잠을 자는 봄꽃들을 깨우듯이 곶자왈을 달콤한 향기로 가득 채운다.
하지만 올봄에도 곶자왈을 걱정해야할 일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린다. 며칠 전에는 저지곶자왈에서 백서향 군락이 도채꾼 손에 싹쓸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백서향이나 새우란, 보춘화를 비롯한 식물 뿐 아니라 곶자왈 용암석을 훔쳐가는 일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곶자왈 곳곳에 재선충으로 붉게 물든 소나무는 늘어가고 있고 죽은 소나무를 잘라내면서 황폐해진 곶자왈을 보는 일도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 삶속에 곶자왈이란 생태적 공간을 내줄 만큼 작은 여유도 없는 것인가?
낙관적이지 않은 곶자왈의 미래
제주가 세계환경수도란 거창한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제주에서 수만년 사람들이 살았듯이 앞으로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곶자왈 만큼은 지켜낼 수 있는 마음과 노력이 절실하다.
여기 저기 곶자왈을 얘기하고 보전을 얘기하지만 곶자왈에 다가올 미래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곶자왈을 보전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나 곶자왈을 보전하기 위한 방법과 현실을 그리 간단치 않다.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제주형 의제인 '용암숲 곶자왈 보전과 활용을 위한 지원' 결의안이 통과된 후 제주특별자치도는 후속사업으로 2013년 곶자왈보전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또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도 제정돼 곶자왈 보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부터 곶자왈 경계와 면적을 새롭게 정리하고 곶자왈 보호구역 지정 등 곶자왈 보전을 위한 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 2014년 곶자왈 가운데 최초로 시민들이 모금으로 매입해 국민신탁지로 등록한 안덕곶자왈. | ||
낙관적이지 않은 곶자왈의 미래
제주도 전역이 부동산 열풍에 휩싸인 요즘 곶자왈도 다르지 않다. 개발이득에 대한 기대심리로 곶자왈 가격도 크게 올라 사유지 곶자왈 소유주들이 새롭게 곶자왈로 지정되거나 보호지역으로 묶이는 것을 받아들일지도 걱정이다. 이미 산림청과 곶자왈공유화재단이 사유지 곶자왈 매입사업을 해오고 있지만 예산부족과 소유주들이 매각에 소극적인 이유 등으로 당초 계획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곶자왈 보전정책이 개발과 보전이라는 논리수준에 머물고 있음도 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제주특별자치도가 내세운 곶자왈 보전정책 방향은 '선보전 후개발'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보전할 곳은 보전하지만 개발할 곳은 개발하겠다'는 얘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결국 여전히 곶자왈도 개발 가능한 땅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실제 곶자왈내 개발행위는 지속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나 곶자왈 처럼 유한한 자원을 두고 지속가능한 개발과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자 할 때 다른 생명과 이웃이 살 공간은 없다.
숱한 경쟁 속에서도 겨울이면 나뭇잎 떨궈 열린 하늘사이로 빛을 나누며 살아가는 곶자왈 처럼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비우고 공간과 여유를 내줄 수 있을 때 곶자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다. <끝>▲특별취재팀=김영헌 정치부 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국민의 땅'으로 영구 보전해야 |
안덕곶자왈 일부 시민 참여로 매입 안덕곶자왈에 지난해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안덕면 덕수리 곶자왈 2만5030㎡ 중 지분 일부를 시민들이 참여로 매입해 국민신탁지로 등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