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한 그릇/민 혜
‘혼밥족’이 된 후론 나는 더러 혼자서 동네 식당엘 간다. 개중엔 생선 조림 집도 있고 점심때만 뷔페를 하는 집도 있다. 값은 저렴해도 매일 메뉴를 달리하는 깔끔한 반찬 덕에 꽤나 붐비는 식당이다. 손맛이 좋던 남원추어탕 집은 언젠가 가보니 문을 닫았고, 오래도록 성업 중인 낙지요리 집은 1인분은 팔지 않아 손님이 내 집에 올 때만 찾는 곳이 되었다.
낙지 집은 그 중 비싼 식당에 속한다. 알맞게 매운 낙지볶음은 잃은 입맛을 찾기에 맞춤하여 남편 생존 시엔 둘이서 이따금 들르곤 했다. 내가 낚지를 즐겨 먹는 걸 지켜보던 남편은 접시에서 자기 몫을 조금만 덜어내곤 나머지를 나에게 양보하였다.
최근 감기로 근 보름을 앓았더니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던 국물 음식이 당긴다. 그 핑게로 해장국 집 문턱을 몇 번이나 넘었는지 모른다. 우리 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건만 발견한 게 요 근래인 걸 보면 이 식당을 찾아낸 건 눈이 아니라 내 몸이 저 살고자 동물적 후각으로 찾아낸 거지 싶다.
성탄 전야인 12월 24일, 꼼지락 하기가 싫을 정도로 몸이 힘들어 아침을 허술히 때웠다. 요 며칠 문밖 나가는 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냉장고만 파먹으며 살았더니 남은 반찬거리라곤 생선통조림 몇 개가 전부다. 통조림을 따 얼큰하게 조리를 할까 했지만 고등어 그림을 보는 순간 입덧이라도 하는 양 비린내가 덮쳐왔다.
그때 생각난 게 해장국이었다. 배추 시래기와 콩나물과 커다란 선지 덩이를 듬뿍 넣어 담백하게 끓여낸 해장국을 먹고 나면 몸이 한결 개운할 것 같았다. 다른 어떤 음식도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다만 해장국 한 그릇만 간절할 뿐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주인과 종업원인 듯한 여인 셋이 앉아 깔깔거리고 있을 뿐 손님이라곤 보이질 않는다. 오후 4시경이라 시간대도 애매하고 성탄 전야와 어울리지 않는 식당이긴 했다. 나는 해장국을 주문하고 그녀들과 좀 떨어진 위치에 등을 지고 앉았다. 갈비탕에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있건만 올 때마다 똑 같은 걸 먹어댄 나를 주인장은 ‘해장국녀’(女)로 기억할지 모른다.
술꾼이라도 된 듯 나는 언제나 밥은 제쳐놓고 해장국만 떠먹곤 하지 않았나. 주문 음식이 나오는 동안 나는 그녀들의 얘기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험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시선을 어쩌지 못해 계속 보험 광고를 바라보았다. 셋 중 한 여인이 자기 집안 얘기를 하다말고 화제를 돌렸다.
“우리 식당에 가끔 오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있어. 근데, 여기 오면 늘 해장국 한 그릇만 시켜. 거기에다 밥 한 공기 추가해서 할머니는 주로 밑반찬으로 밥을 먹고 해장국은 거의 할아버지가 먹지.”
짠돌이 영감탱이 같으니. 우리 남편은 낙지 집에서 주로 다른 반찬으로만 밥을 먹고 낙지는 내게 양보했었는데. 그럼 나는 다시 남편 그릇에 덜어주느라 낙지는 이리저리 오가야 했고. 까짓 일인분만 더 추가하면 될 것을 서민 정신이 투철하다 못해 좀 쩨쩨하기까지 했던 남편은 그러질 않았다고. 아무튼 주고받던 낙지 속에 오고가던 부부 사랑. 조금은 부족해서 더욱 각별했던 낙지볶음의 맛.
“저기 해장국 나왔네."
앞서 말하던 여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여인이 일어서며 곧장 내 테이블 위에 설설 끓는 해장국뚝배기를 올려놓았다. 뜨거운 해장국 국물을 한 술 입에 떠 넣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가슴 속이 확 풀리는 맛이었다. 이내 콧등으로 땀이 송송 솟으며 풀잎처럼 누웠던 기운이 벌떡 되살아났다. 순간 나는 이 해장국에게 복이라도 빌어주고 싶었다. 끊겼던 여인들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아니, 둘이 와서 하나만 시켜?”
“그러게 말야. 그래서 내가 하루는 할아버지한테 말했어. 오천 원 밖에 안하는데, 두 분이 한 그릇씩 시켜 맘껏 드시라고. 그래 선가 암튼 그 날은 어쩐 일로 두 그릇을 시키더라고.” 시래기를 우물거리며 나는 초콜릿 묵 덩이 같은 선지를 숟갈로 쪼개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난 것을 먹고 있는 존재다. 언제나처럼 뚝배기가 절반가량 비어질 때까지 밥알은 사절한다. 입으론 해장국을, 귀로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처럼 시원한 해장국을 하나만 시켜 나눠 먹었다니 가난한 노부부였을까. 사실 이 식당의 반찬은 먹을 만 한 게 없다. 언제 오든 궁색하게 얹은 어묵 졸임과 날 김치쪼가리와 시어 고부라진 총각김치에 성의 없이 무쳐낸 미역이 전부라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해장국 맛을 음미하며 그날은 모처럼 두 노인네가 배가 불뚝하게 드셨을 거란 생각을 펼치려는데 이야기는 달리 전개되었다.
“식탁에 막 해장국 두 그릇을 갖다 놨을 때, 할아버지 핸드폰이 울리는 거야.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더라고. 손자가 자기 아빠랑 할아버지 집에 왔는데 할아버지 어디 계시냐고 물었나봐. 그러자,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다 말고 당황하며 혼자 황급히 나가버리는 거 있지?”
“아니, 그럼 그 노인네들 부부가 아니었어? 연애하는 노인들이었나 보네.”
나는 절반가량 남은 해장국 국물에 밥 서너 숟갈을 말아 한 술 크게 입에 넣었다. 그 날 그 할머니는 혼자서 국밥을 먹었을까? 할머니의 씁쓸한 잔상이 절로 어른거렸다. 뚝배기를 말끔히 비운 나는 카운터로 옮겨 카드를 내밀며 한 그릇 포장을 부탁했다.
“포장으로 사갈 땐 해장국 양을 더 주시지요?”
“그럼요.”
정작 궁금한 건 그 할머니 뒷얘기였음에도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혼밥족이 된지 한 두 해도 아니건만 식당 문을 나서려니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그가 살아있다면 우린 필시 이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거다. 오늘 같이 몸이 힘든 날엔 남편에게 2인분을 포장해 오라 하여 우리 둘이 끼니를 해결하면서 흡족해 했을 테고.
해장국 한 그릇에 기운 충만해진 나는 어깨 한 번 쭈욱 펴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