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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도 혜성은 수시로 찾아왔다. 정신이 있는 이유는 위험을 자각하면서일까?
지지납음으로는 노중화이다.천지가 화로이며 빛이 우주에 까지 닿는다. 염상화로서 木이 생하는 것을 기뻐하며 특히 平地木을 상으로 친다.
병인은 봄철에 핀 벗꽃과 같은 모습이다.화려하며 사교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병인년에 이슬람지도자의 사망이 많았다,그해 즉위한 지도자의 등장도 같이 의미한다.
양하원갑자는 우주선,원전폭발 사고남.뉴질랜드 타우포화산폭발
음하원갑자에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백제의 진보가 있었다.
목화통명이기 때문이다.
하원갑자에 대해 알아보자(신금) 라틴의 수세
1986년 여름은 따뜻했다.
1월 28일 - 미국에서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사고가 발생하다.
4월 17일 - 네덜란드와 실리 제도가 평화 협정을 맺고 335년 전쟁을 끝내다.
4월 26일 - 소비에트 연방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가 실험 중 사고로 폭발하다.
5월 3일 - 5.3 인천 사태 발생
5월 10일 - 대한민국의 교사 546명이 교육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다.
60년전
소련 오이먀콘의 최저기온이 영하 71.2℃를 찍었다. 이는 사람의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최저 기온이며, 현재도 이 기록을 깬 곳은 없다.
중산함사건.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검거사건(신의주사건)으로 박헌영·임원근·홍증식 등이 검거되고 조봉암·김단야·김찬 등이 해외로 망명하자, 권오설과 김동명은 고려공산청년회의 재건에 착수하여 1925년 12월 권오설을 책임비서로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했다.
1926년 6·10만세사건 때는 조선공산당 상해 해외부의 김단야와 연결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그것을 계기로 일제의 탄압을 받아 조직이 붕괴됐다
1926년 4월 5일 고려혁명당이 중국 만주 지린성에서 만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현익철, 양기탁, 고할신, 최동희, 현정경, 이규풍, 김봉국, 주진수, 이동구, 이동락, 정이형, 송헌, 곽종대, 오성환 등이 조직했다.
초대위원장은 양기탁, 책임비서는 이동구, 위원에는 정이형, 현정경, 고할신, 오동진, 이동락, 김봉국, 현익철, 이규풍, 최동희, 주진수, 곽종대 등이 있었고 당원은 약 1,600명 정도였다.
당은 정의부의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정의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48년전일본 제국이 국가 총동원법을 공표하였다.
- 조선총독부, 각 도의 중등학교 조선어 시간을 수학과 실험으로 대치시킬 것을 지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창사난무청에서 회합 중에 조선혁명당원 이운한의 저격을 받아 현익철 사망
조선의용대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 1938년 10월 10일 중국 후베이 성 한커우(漢口)에서 결성된 독립군이다. 조선민족전위동맹 산하의 단체로 분류된다
36년전 6.25터짐
24년전 - 대한민국, 장면(張勉) 총리, 반혁명음모 관련 혐의로 불구속 기소. 대한민국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막사이사이상 수상.
12년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이 사임
12년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되다
24년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대한민국해군 2함대 소속 1,200톤 급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어뢰의 공격으로 침몰하였다.
대한민국 연평도로의 포격 사건이 발생하였다
36년후 2022년 대한민국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종료. -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임기 시작.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
1626년에 미국에 상륙한 이주민들이 맨해튼 섬을 60 휠던(24 달러)에 구입.이제 인디언의 땅이 아니다.크롬웰이 이해 태어난다.
60년전 전성기 이끈 쉴레이만 1세 : 오스만 제국의 10대 술탄사망
48년전 모로코 vs 포르투갈의 크사르 엘케바르 전투에서 두 지휘관 군주들이 사망하였다
36년전 네덜란드에서 여러 선박 회사들이 세워졌다
24년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동인도 회사 (VOC) 가 설립되었다.
12년전 영창대군 사망
12년후 일본에서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되었다.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 포르투갈 상인이 추방되고 네덜란드 상인이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게 된다
24년후 시계공 스테판 파플러가 뉘른베르크에서 삼륜 휠체어를 발명하였다.데카르트사망
36년후 명 영력제와 정성공 사망.파스칼사망
48년후 3차 영란전쟁을 매듭짖는 웨스트민스터 조약이 체결되어, 네덜란드 령 기아나 식민지 (수리남) 가 형성되고 영국이 뉴욕을 되찾게 된다.
숙종즉위
첫 번째 서인도 회사가 해산하였다.
파리의 루브르 궁전이 완공되었다
60년후1686년 영국 시내에 에드워드 로이드가 커피하우스를 개장한다
1266년잉글랜드의 귀족파가 헨리 3세에게 강화를 요청하였다. 평화 조약은 이듬해에 체결된다.
오고타이 칸국의 카이두가 쿠빌라이 칸에게 반기.
2월 26일 - 베네벤토 전투에서 앙주 공 샤를의 군대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만프레디가 이끄는 독일 - 시칠리아군을 대파하였다. 만프레디도 전사하였다
60년전 쿠트브 웃 딘 아이바크가 구르 왕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인도 북부에 델리 술탄 왕조가 수립되었다
몽골의 테무친이 2차로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어 몽골 제국이 건국되었다.
48년전 제베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쿠출룩의 서요로 진군, 종교의 관용을 베풀어 발라사군과 카슈가르에 무혈입성하여 신나이만을 멸망시켰다.
호라즘 정벌시작
쿠출룩은 파미르 산중에서 체포되어 효수되었다.
조치의 몽골군이 2차 키르기즈 원정을 나섰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남송 군대가 수주를 공격해 온 금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여 사주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장수 카치운이 몽골군 1만과 동진군 2만명을 이끌고 고려로 진군, 강동성 포위전에 참가하였다.
36년전 튜튼 기사단과 콘라드 1세 간 크루슈비츠 조약 체결, 이로써 독일 기사단국 (~1525) 이 성립.
8월 10일 ~ 8월 12일 - 카이쿠바드 1세가 이끄는 룸 술탄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연합군이 잘랄 웃딘이 이끄는 호라즘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이듬해 호라즘 왕조는 멸망하였다
24년전 바투가 사라이에 주치 울루스를 설립하였다.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공격하였다.
몽골 제국이 사천의 성도를 함락하였다.
몽골군을 피해 크로아티아로 피신한 헝가리 국왕 벨라 4세가 금인칙서를 통해 자그레브를 임시 수도로 정하였다.
프랑스 타유부르에서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잉글랜드의 왕 헨리 3세의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12년전 몽케칸시절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레반트에 머무르며 해안의 요새화를 도운 루이 9세가 자금이 바닥나자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12년후 - 송소제가 해상 함대에서 즉위하였다.
다마스쿠스에서 바이바르스가 사망하자 칼라운이 뒤를 이어 술탄이 되었다.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루돌프 1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라디슬라우스 4세의 헝가리 왕국의 연합군이 오토카르 2세의 보헤미아 왕국군을 상대로 격파하였다. 여기서 8만여명이 동원되어 중세 기사끼리 싸운 최대의 전투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스트리아 지배를 시작하였다.
쩐투도가 베트남 쩐 왕조의 왕이 되었다.
- 문천상이 조주에서 원나라 군에 체포되었다.
바모 포위전 이후 원나라 군이 버마에서 철수하였다
24년후 십자군전쟁 끝.
서유럽의 이상 기후로 89 ~ 90년도의 겨울에 가을 - 봄 날씨가 유지되어 겨울 없이 해가 이어졌다
합단의 침입 : 카다안의 몽골 반란군이 원나라 군에 패한 후 고려를 침공하였다.고려 충렬왕이 강화도로 피신하였다.
잘랄 웃 딘 피루즈가 노예 왕조를 끝내고 킬지 왕조를 개창하였다. (델리 술탄 왕조)
알 아슈라프 칼릴이 맘루크 왕조의 술탄이 되었다
36년후 프랑스 왕국과 플랑드르 백작령 간에 황금 박차 전투가 벌어져 플랑드르 군대가 승리하였다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48년후 -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기사단장인 자크 드 몰레이를 필두로 한 50명의 기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리드리히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었다.
- 비텔스바흐 가문의 루트비히 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었다.
루이 10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비잔틴 제국의 도시 프루사가 오스만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노르웨이 - 스웨덴과 노브고로드 공국 간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906년 발해의 마지막임금 대인선이 즉위한다
거란 야율이 칸이 되다
궁예는 견훤의 군대를 상주의 사화진(沙火鎭)에서 맞아 크게 격파했다.
905년 7월 궁예는 송악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견훤과 왕건의 첫 전투인 사화진 전투(906년)
견훤은 임자년 무진주를 정복했으니 2년전 제대로 붙었다면 왕건은 없었을것이다.
906년 궁예는 왕건에게 명하여 정기장군 검식과 함께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상주 사화진을 공격하게 합니다.
이 사화진에서 견훤과 왕건이 첫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60년전 알 안달루스에서 크레타로 추방된 무슬림들이 비잔틴 제국이 지배하던 이탈리아의 타란토에 토후국을 세웠다. (~883년)
불가리아가 비잔티움 제국과의 평화 조약을 깨고 마케도니아를 공격하였다
48년전 애설볼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36년전 루트비히 2세와 카를 2세가 메르센에서 로타링기아 지역을 분할하는 국경확정조약인 메르센 조약을 맺었다.
- 웨식스군이 데인족 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4년전 카를 3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키예프 대공국이 건국되었다.
12년전 앵글로 색슨족이 바이킹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일본에서의 견당사 파견이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건의로 중지되었다
12년후 태봉의 시중인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태봉의 왕 궁예를 처단하고, 태봉을 멸망시켰다.
-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고려의 초대 왕이 되었다.
24년후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이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로 인해서 후삼국의 판도가 바뀌었고, 후백제는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36년후 만부교 사건.석경당사망
서희탄생
48년후 후주의 초대 황제인 곽위가 죽고 시영이 2대 황제로 즉위하다. 이는 곽위의 일족이 후한의 은제 유승우에게 몰살당했기 때문에 곽위가 시영을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6년후 송에 멸망.
60년후 고려광종. 송태조 미진한 왕국을 강화시킴
546년 토틸라 왕이 이끄는 동고트 왕국군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로마를 함락하였다
60년전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군이 수아송에서 시아그리우스가 이끄는 수아송 왕국군을 상대로 승리한 뒤 패퇴시켜 서로마 제국의 잔당을 갈리아 지방에서 완전히 몰아내었다
48년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36년전 지증왕11년 지진이 일어나 사람이 죽다
24년전 신라가 가야왕의 청혼을 받고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보내었다.
위(北魏)가 정광력(正光歷)을 사용하였다
12년전북위의 황제인 효무제가 실권자 고환을 피하여 장안의 우문태에게 간 이후, 고환은 효정제를 옹립하고 수도를 업으로 옮겼다. 이후 우문태는 여자 문제로 효무제와 사이가 벌어져 그를 살해하고 문제를 즉위시켰다. 이렇게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다.
테오다하드가 동고트 왕국의 제 3대 국왕이 되었다.
반달왕국멸망
톨레도가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2년후 힐데베르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그의 형제인 클로타르 1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클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의 판노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호로 인하여 기존에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로 점차 이동하게 된다.
24년후 진백종 : 진(육조)의 3대 황제사망.
36년후 - 마우리키우스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8년후 - 슬라브족이 비잔티움 제국의 모이시아와 마케도니아 지방을 공격하여 몇몇 도시를 약탈, 파괴하였다.
60년후 상주사가 창건되었다.백제 황사심함
605년에는 황하와 회수(淮水)와 양자강을 잇는 길이 1500㎞, 폭 60m의 대운하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운하를 통해 운송된 곡물을 정장하기 위해 606년에는 낙양 일대에 대규모 곡창을 짓고, 양곡을 집적하였다.
186년 타우포 화산의 대분화는 유명한 하테페 대분화발생, 뉴질랜드의 슈퍼화산
186년 음력 1월, 신라의 벌휴 이사금, 주군(州郡)을 순행(巡幸)하고, 풍속(風俗)을 관찰하였다.음력 5월 임진일 그뭄에 신라에 일식이 있었다.음력 7월, 남신현(南新縣)이 신라에게 가화(嘉禾)를 진상하였다.
60년전 후한순제 즉위를 위한 정변에서 공을 세운 환관들을 19명을 후에 봉하고 양자를 통한 세습제를 허용하게 되었다. 이는 환관 세력이 강화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멸망의 길로간다.
48년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죽으며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36년전
24년전
12년전
12년후
24년후
36년후
48년후
60년후 246년 로마 제국의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다뉴브 강 어귀에서 게르만족과 맞붙었다
위나라의 무장 관구검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환도성을 함락시켰다.
경주 지진발생
bc175년 헬리오도루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셀레우코스 4세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곧 안티오코스에 의해 왕위에서 쫒겨났다. 이후 안티오코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이 되었다.
58년후 곽거병 병사. 위청이 흉노상대
60년전 앙카라에서 안티오코스 히에락스가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또다른 하원갑자를 보충해보면(인)라틴의 공세
1806년에 나폴레옹은 대륙을 봉쇄했다.하지만 민주주의를 전파하는데 뜻이 있었다
8월 6일 -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가 퇴위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다.
10월 14일 -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하다.
정순왕후 섭정풀자 벽파가 시파에 밀려남.
60년전 잉글랜드 측에서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 킬트 착용을 금지하다.
- 컬로든 전투가 발발하였다
뉴저지 대학교가 설립. 그리고 150년 뒤, 이 대학교는 이름을 프린스턴 대학교로 바꾼다
48년전 7년 전쟁: 크레펠트 전투.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독일의 크레펠트에서 이기다.
36년전 보스턴 학살: 보스턴에서 영국군과 시민 간의 충돌이 벌어지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다
24년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가 30만 명을 넘어섬.
영국 의회가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에 대한 특허 기간을 1800년까지 연장함.
12년전 공회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에게 대항하다.
-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로베스피에르가 쫓겨나다.
조르주 당통. 앙투안 라부아지에.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다
12년후 정약용, 목민심서 펴냄.
- 칼 14세,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
샤카 줄루, 줄루 왕국 건설
24년후 윌리엄 4세, 영국 하노버 왕가의 5번째로 영국 국왕 즉위.
프랑스 7월 혁명
36년후 미국과 영국 간에 웹스터-애슈버턴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미국과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 사이의 국경에 해당하는 메인주와 뉴브런즈윅주 경계의 위치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했다.
- 세미놀족 인디언이 세미놀족 전쟁에서 플로리다주부터 오클라호마주까지 적에게 강요당했다가 두 번째 세미놀족 전쟁을 종료시키다.
48년후 미국과 일본 간의 가나가와 조약이 요코하마에서 체결되었다.
- 크림 전쟁: 인케만 전투가 벌어지다.
러시아 선박, 함경도 덕원 · 영흥해안에 침입, 조선인에 대한 방화·강간·약탈·살인을 저지름.
60년후 병인박해가 일어났다.병인양요
프로이센 왕국 배와 미국 배가 조선에게 개항을 요구했다.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8월 21일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했다
1446년에 훈민정음이 반포
포르투갈의 누누 트리스탕 함대, 세네감비아 일대에 상륙을 시도하였으나 원주민의 공격으로 전멸당하였다
1446년, 루마니아 출신이자 오스만투르크 항쟁의 헝가리 영웅 ‘이안쿠 드 후네도아라(Iancu de Hunedoara)’가 트란실바니아 군주이자 헝가리 총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로마제국 계승전쟁-Alexandros Ducas는 아테네 공작위를 위해 아테네로 진격하였다.에피루스군은
1451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비잔틴 제국의 보물들은 약탈한다
60년전 레오폴트 3세가 이끄는 합스부르크 군대와 스위스 연방군이 젬파흐에서 격돌하였다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독일 최고(最古)의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48년전 조선 성균관 건립. 조선에서 이방원 등이 정도전, 남은, 박위, 유만수, 장지화, 이근, 심효생을 살해하였다.(제1차 왕자의 난 발발)
-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이 즉위함.
36년전 141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독일 기사단국간에 벌어진 전투인 탄넨베르크 전투가 발발하였다
24년전 1422년 항해왕자 엔리케의 명을 받은 질 에아네스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 시도가 시작된다.
아르베도 전투에서 스위스 연방군이 용병대장 카르마뇰라가 이끄는 밀라노 군대에게 패배하였다
12년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
체코 내전 - 리판 전투에서 온건파인 양형영성체파가 강경파인 타보르파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 사령관 프로코프 벨리키를 전사시켰다.
플랑드르의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완성하였다.
12년후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헝가리의 국왕에 즉위하였다.
-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가 북아프리카의 Ksar es-Seghir를 정복하였다.
단종사망
24년후 경국대전을 검토하기 위해 교정청이 설치되었다.
문헌에 하프시코드가 처음 언급되었다
36년후 스페인 왕국의 그라나다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48년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 메디치 가문이 플로렌스의 지배자가 되었다
60년후 중종반정
1086년 신종,왕안석,사마광이 차례로 죽고나니 송의 번영이 끝났다.
노르만 인이 시칠리아의 주요 무슬림 거점이었던 시라쿠사를 함락하였다
사마광이 송나라의 재상이 되어 신법을 모두 폐지하였다
60년전 헬가 전투에서 크누트 대왕의 군대가 스웨덴 - 노르웨이의 연합 해군을 격파하였다
탕구트의 이계천 (조계천) 이 감주를 함락, 하서 위구르 왕국을 멸망시켰다. 사주 (돈황)의 한인 정권도 비슷한 시기에 무너지며, 탕구트 족이 하서주랑을 지배하게 된다
48년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비잔틴 제국군이 일시적으로 시칠리아 동부 (메시나~ 시라쿠사) 일대를 회복하였다. (~ 1043년)
36년전 노인왕 에먼드가 스웨덴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웨덴 군대가 핀란드를 공격하였다.
노르웨이 왕 해럴드 할드랄데와 덴마크의 스벤 2세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번져 노르웨이 군대가 덴마크의 헤데비를 공격하였다.
24년전 모로코에 무라비트 왕조의 수도 마라케시가 건설되었다.
12년전 몬테사르치오 전투에서 노르만 군대가 베네벤토 공국의 판둘프 4세 군대를 격파하였다.
카자흐스탄 중북부 호수에 텐기즈 왕국이 세워졌다.
요나라 황제가 모든 거란인이 가문 명을 이름에 덧붙이자는 제안을 각하하였다.
12년후 보두앵이 십자군 본대에서 이탈, 에데사를 침략해 에데사 백국을 세우다.
보에몽이 안티오키아를 점거하고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우다.
24년후 십자군이 베이루트를 정복하였다.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5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셀주크 제국에 대한 전쟁을 재개하였다
36년후 보름스 협약
48년후 마수드가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장기 왕조 군대가 다마스쿠스를 포위하였다.
2차 프라가 전투에서 무라비트 왕조군이 아라곤 왕국군을 격파하였다. 아라곤 - 나바라 왕국의 왕 알폰소 1세가 전사하고 라미로 2세가 아라곤 왕위, 가르시아 6세가 나바라 왕위를 이어받았다.
야율대석이 동 카라한 왕조를 격파하고 발라사군에 입성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60년후 무와히드 왕조가 무라비트 왕조로부터 모로코 대부분을 대부분 정복하였다.
2차 십자군이 결성되어 라인 강변의 유대인들이 다시 학살당하였다. 성 베르나르두스가 뒤늦게 이를 저지하였다.
제노바 공화국의 해군이 무슬림 영역인 발레아레스 제도를 습격하였다. 이어서 알 안달루스의 알메이라까지 공격했으나 격퇴당하였다.
726년 부여의 후계 국가인 두막루가 발해 무왕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60년전 666년 태자를 당나라에 보내 봉선의식에 따라가게 하는 등, 그동안 당에 대한 적대정책에서 벗어난 화친책을 펼치며 전쟁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차에 실권자였던 연개소문이 죽게 된다. 이후 아들간 다툼
48년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 한천사를 창건하였다
36년전 - 측천무후가 당나라의 황제가 된 뒤 국호를 무주로 변경하였다.- 불굴사가 창건되었다
24년전 우마이야 왕조가 비잔틴 령 마우레타니아(모로코 북해안)를 점령하고 마그레브를 평정하였다
12년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12년후 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개원사가 창건되었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24년후 아바스 왕조가 자브 강에서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마르완 2세가 아바스 왕조군에게 사로잡힌 뒤 살해당하고, 왕자인 아브드 알라흐만 1세는 스페인 지방으로 도주하였다
인도의 팔라 왕조가 성립되었다.
36년후당나라에서 26년이나 된 문왕(발해)을 발해의 국왕으로 책봉하였다.
당대종이 당나라 8대 황제가 되었다.
바그다드가 건설되었다.
텔레츠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48년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는 8만명의 병력을 소집하여 베르지티아의 불가리아군을 습격하여 승리하였다.
실로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롬바르디아 왕국을 정복하였다
60년후 프랑크 왕국 군대가 피레네 동부 산간지대 점령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 아브드 알 라후만 1세가 코르도바대모스크를 건설하였다
366년 근초고왕 3월에는사신을 보내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야마토 왕조와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60년전 로마 제국의 전 황제인 막시미아누스의 아들인 막센티우스가 로마 시에서 원로원, 일반 시민, 프라이토리아니의 지지를 바탕으로 황제로 추대되었다.로마군을 이끌고 바다를 넘어 픽트족(켈트계 스코틀랜드 원주민)을 정벌했다
팔왕의 난이 종결되었다
48년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36년전 콘스탄티노플이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24년전 고구려에서 국내성을 쌓았다.
- 전연의 왕 모용황이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와 고구려의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왕모와 왕비를 사로잡은 뒤 되돌아갔다
12년전 훈족과 알란족의 전쟁이 종료되었다.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12년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하드리아노폴리스 근처에서 고트족 군대가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24년후 백제의 진가모가 고구려의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200명을 포로로 삼았다.
- 테오도시우스 1세가 테살로니키에서 일어난 주민 폭동을 강경 진압하면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36년후 베로나의 북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이끄는 서로마 제국군이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다.
독발녹단이 남량 3대 왕이 되었다.
실성 마립간이 신라 18대 왕이 되었다
48년후 장수왕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6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이교도 신전에 대한 파괴령을 내려 많은 신전이 파괴되었다
6년 전한 마지막 왕 유자 즉위,백제 마한 공격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참전 전역병들의 연금 지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아이라리움 밀리타레(aerarium militare)라는 기금을 만들어 국고 부담을 줄였고, 새로이 황제의 개인 재산을 담당하는 기금을 두었다. 향후 3년간 그의 전성기.
60년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1차 브리타니아 원정을 실시하였으나 궂은 날씨로 인해 얼마 안 가 원정을 중지하고 갈리아 지방으로 퇴각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뫼즈 강, 라인 강 방면에서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8년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지고,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 2차 삼두정치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즉시 원로원파 척결 명령을 내렸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다.
디라키움에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군대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동생인 가이우스 안토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36년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군대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4년전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아들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명성왕이 죽고, 태자 유리가 고구려 제 2대 왕인 유리왕이 되었다.
마한의 왕이 죽어, 신라에서 이 틈에 마한을 공격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신라왕 혁거세 거서간은 상중(喪中)에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한 행동이라며 이 의견을 듣지 않고 마한에 사신을 보내어 조위하였다
12년전 애제가 전한 제 13대 황제가 되었다
12년후 신라에 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어 경주에 가뭄이 들었다.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24년후 네르바: 로마 제국의 황제탄생.예수사망
36년후 김수로가 금관국 초대 왕이 되었다
48년후 네로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백제가 신라의 와산성을 점령하였으나 신라가 곧 탈환하였다.
벧호론에서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bc355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사망
전제(田齊)의 4대 군주 위왕(威王) 인제(因齊, B.C.356~320 재위)가 즉위 이후 정사를 돌보지 않고 향락만을 즐기다가 추기(鄒忌)가 거문고에 비유해 국사를 돌볼 것을 간언. 중앙, 지방의 모든 관료들이 뇌물을 끊고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게 되어 (전)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짐. 신불해(申不害)가 한(韓)나라의 재상이 되어 관료 통제술을 강조함. 신불해의 주도하에 한나라가 해곡(亥谷) 이남에 장성(長城)을 축조. 위혜왕과 진효공이 두평(杜平)에서 회합함. 송나라의 사성(司城) 자한(子罕)이 주군 환공(桓公)을 시해한 후 정권을 장악.
60년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가 아테네를 점령하고 그곳의 참주를 살해하였다
센티눔에서 로마군이 에트루리아인, 켈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bc715년 누마 폼필리우스로물루스가 죽자, 로마 원로원에서는 누마를 새 임금으로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