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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미)
임술년이 기후 한랭화의 기점인가?
하지만 예외인 1982년
1982년 북미 강추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8월 21일 -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레바논 철수 개시.9월 12일 - 중국, 당주석제도 폐지, 당총서기에 후야오방(胡耀邦) 선출.
60년전 김소월.이광수 작품발표
상해 임정은 1922년 1월 26일자로 신규식, 이동녕, 노백린, 김인전, 이시영, 손정도 등 각원들 명의로 이동휘와 김립을 성토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김립은 임시정부에서 보낸 김구의 부하인 오면직(吳冕稙), 노종균(盧鐘均) 등 청년들이 김립을 찾아 상하이를 탐색하던 중 1922년 2월 11일 상하이의 자베이(閘北)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무솔리니 로마행군으로 정권장악.
1622년 3월 2일(음력 1월 21일)실학자 유형원이 태어난다.이듬해 광해군 폐위
1621년과 1622년 사이에 갈릴레오는 1623년에 승인되고 간행된 그의 첫 번째 책 《분석》(Il Saggiatore)을 집필했다.
60년전 프랑스에서 위그노 전쟁이 36년간 발발하였다.
자함 신계성 사망
50년전 성리학자 기대승.이준경 사망.
프랑스에서 7만 명 가량의 위그노 교도가 학살되었다.
40여년의 저항 끝에 빌카밤바가 함락되며 후 잉카가 멸망한다.
40년전 - 일본에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야마자키 전투가 일어났다
30년전 임진왜란
10년후 구스타브 2세 아돌프 : 스웨덴의 국왕사망
21년후 조엄 고구마수입
30년후 - 로드아일랜드 주가 북미에서 처음으로 노예를 불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 제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하였다.
네덜란드의 얀 반 리베크가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40년후 정성공 : 명나라의 군인사망
50년후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은 1672년부터 1678년까지 프랑스 왕국이 네덜란드 공화국,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제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레아를 발견하였다.
4월 팔도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함, 흉년으로 경상도에서만 굶주린 백성이 33만여명에 달함
60년후날지 못하는 새 도도가 멸종하였다.
미수 허목 사망.
1262년 원종은 쿠빌라이가 5대칸으로 즉위(원 세조)하자 고려의 풍습을 지켜내고 유지할 수 있는 불개토풍(不改土風), 즉 고려는 원의 속국이 되더라도 고유한 풍습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을 받는다
태국 란나 왕국의 왕 망라이가 왕국의 수도인 치앙라이를 건설하였다.
일 한국과 킵차크 한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아이슬란드가 노르웨이 국왕 하콘 4세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60년전 달란 네무르스 전투에서 징기스 칸이 타타르족을 완전히 격파하고 마차 바퀴보다 키 큰 남성 대부분을 죽인 후 몽골에 편입시켰다.
4차 십자군과 엔리코 단돌로의 베네치아 공화국이 헝가리, 크로아티아 왕국군을 격퇴하고 자라를 함락시켰다.
최충헌 집권6년차1202년 10월에 경주에서 반기를 들자 3품 이상의 문무관을 모아 의논하여 병부낭중 송효성, 형부원외랑 박인석 등을 보내 설득했으나 듣지 않자 대장군 김척후 등에게 이들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50년전 요동의 거란족 10만명이 왕족 아율유가의 지휘 하에 금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고 몽골과 동맹하였다.
제베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이 거란족과 연합하여 금나라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하였다.
호라즘 왕조가 서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켰다
40년전 - 에릭 에릭센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장안 경조부를 함락하였다.
수부타이와 제베가 이끄는 몽골군이 아제르바이잔, 킵차크, 불가르 등지를 원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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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후 모스크바공국 성립
10년후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와 예루살렘 왕국이 10년간의 휴전을 약속하는 카이사레아 조약을 맺었다.
-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즉위하였다
20년후 정동행성 폐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1세가 자신의 아들 알브레히트 1세와 루돌프 2세를 오스트리아와 스트리아의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합스부르크가의 유럽황실 깊이 간여)
30년후 콘클라베 형식이 아닌 마지막 교황 선거가 시작되어 1294년까지 대공위시대가 지속되었다.
원나라의 자바 섬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2만, 1천척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친영 귀족인 존 발리올을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옹립하였다.
수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의 비문이 새겨졌다
40년후 맘루크 왕조 군대가 시리아 루아드 섬의 십자군 거점을 함락하였다.
-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50년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의 요청에 따라 비엔나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템플 기사단의 해체를 결정하였다.
충선왕과 돈독했던 원나라 인종즉위
60년후버턴브릿지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의 국왕군이 랭커스터 백작 토마스의 군대를 격파하였다.프랑스는 샤를4세
왕고는 1321년 원 영종의 명령으로 충숙왕이 압송되자 2년 간 고려 국왕으로 자칭하기까지 했다
902년은 온난했던 기후가 끝나고 한랭해짐
900년에 이미 892년부터 사실상 왕을 칭하던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고, 901년에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함으로서 이른바 후삼국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궁예는 왕건을 서해안에 파견해 당시 후백제의 해상으로의 대중 교역로를 차단하게 했고, 효공왕 7년(903년) 3월, 수군으로 후백제의 후방에 위치한 중요한 해상 거점이었던 금성을 점령하면서 영토를 넓혔다..
덴마크의 바이킹이 앵글로색슨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남조(왕국)가 멸망하였다.
당나라의 절도사인 양행밀이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오나라의 왕에 봉해졌다
60년전 스트라스부르 서약 : 프랑스어가 처음으로 쓰여진 문헌으로 인정되는 군사동맹문서인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서 프랑크 왕국의 국왕 샤를 2세와 동 프랑크 왕국의 국왕 루트비히 2세에 의해 작성되었다.
50년전 무함마드 1세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가속화되어, 48인의 순교자가 나오게 된다.
(코르도바의 순교자들)
40년전 아바스 왕조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친 아바스 세력이던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투니 가문의 아쇼트 1세가 왕을 칭하며 바그라투니 왕조가 세워졌다.
러시아원조 루스족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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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알렉산드로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신덕왕 즉위
주전충 : 후량의 초대 황제 사망
효공왕 : 신라 52대 왕 사망
오토 1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탄생
20년후 - 6년전 황제가 된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군이 허베이성을 공격하였다.922년에는 신생 국가였던 고려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다.
30년후백양사가 창건되었다.
임진해전이 일어났다. 이 해전은 견훤이 수군을 통해 고려의 수도를 유린하고 다녔던 사건이었으나 후에 유금필에 의해 저지됐다
40년후 음력 10월 - 만부교 사건
거란의 낙타를 죽여 적대국화
50년후 - 칼라브리아에서 이슬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교황 요한 12세에 의해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42년536년에 기온이 갑자기 급강하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후 평균 기온은 두 차례에 걸쳐 다시금 뚝 떨어졌고, 542년에는 급기야 1,500년 만에 최저 온도를 기록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542년이 다 가기도 전에 이미 예루살렘과 초기 기독교 성지였던 안티오키아(현재 터키의 안타키아)까지 도달했다
토틸라가 이끄는 동고트족 군대가 비잔틴령 나폴리를 점령하고 루카니아, 아풀리아, 칼라브리아 3주의 항복을 받다.
6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가 아카키우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제안으로 '헤노티콘'을 발표하여 단성론과 양성론 간 갈등의 중재를 꾀했다
50년전 젤라시오 1세가 49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40년전 - 남제의 황제 소보융이 양왕 소연에게 제위를 넘기고 소연의 심복인 정백금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남제가 멸망하고 양나라가 성립되었으며 소연은 양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 신라의 지증왕이 순장제를 폐지했다
4년전 불교국교화
고구려 문자명왕이 백제공격 등 최대영토가 됨
10년후 타기나이(타지나헤)전투에서 나르세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토틸라 왕을 전사시키며 동고트 왕국군을 대파하였다.
테이아가 동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소역이 양나라의 황제로 즉위한 뒤 수도를 강릉으로 옮겼다.
랑고바르드족이 게피드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15년후 제나라망하고 진나라성립
20년후 대가야가 신라에게 멸망함으로써 가야는 신라에게 합병되어 통일전 신라로 최대영토임
3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공물을 바치는 것을 거절하여 두 나라 간의 평화 조약이 깨졌다. 비잔티움 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역에 군사를 보내어 니시비스를 공격하였다.
신라 24대 왕 진흥왕이 연호를 홍제로 바꾸었다.
타발가한이 돌궐의 가한이 되었다.
35년후 북제멸망
40년후 진욱 : 진(육조) 제4대 황제사망. 티베리우스 2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사망하고 마우리키우스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592년 대가야마저 정복됨.일본 아스카문명개시
프랑크 왕국이 네우스트리아, 오스트라시아, 부르고뉴로 찢어진다.
6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비잔티움 제국군이 반란을 일으켜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여 마우리키우스와 그의 가족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인대장 포카스가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182년 손권 : 오나라의 초대 황제탄생
황건적의 난도 기후의 한랭건조함이 일조했다
59년전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50년전 신라궁궐의 남문이 불타다
40년전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의해서 안토닌 성벽이 착공되었다.
10년전 좌원대첩
10년후 콤모두스가 죽으면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가 끝났다.
계교 전투에서 원소군이 공손찬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동탁이 부하 장수인 여포에게 살해당했다
192년에는 왜인 1천여 명이 기아로 신라에 피난을 와 식량을 구걸했다는 기록이 있다.
20년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 포고령을 내렸다
30년후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했다.
카라칼라 욕장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40년후 이릉대전에서 오나라군이 촉나라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후 촉나라는 형주에 더 이상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가 어머니와 함께 군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위를 이어받았다
50년후 로마 제국이 사산 제국에 대한 반격을 개시,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의 로마군은 사산조 페르시아군에게 패배하여 시리아 지방으로 후퇴하였다.
bc179년 전한 문제 즉위 대(代)나라 왕이었으며, 여태후의 죽음과 함께, 형제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아들 경제와 함께 유교를 통치 철학으로 확립하고, 소모적인 대외원정을 피하는 한편, 경제를 안정시켜 문경지치를 이룩하였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의 군대는 신바빌로니아의 왕 나보니두스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구실로 바빌로니아를 침략했다. 이 원정은 비교적 별다른 저항없이 같은해 10월 당시 고대 세계최대의 도시이자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의 함락으로 끝났다.
bc1259년 람세스2세로 이집트전성기이다.히타이트와 평화공존했다.
납음은 대해수(大海水)이다.대해는 바다에 준하는데
백호대살과 괴강살을 가지고 화기운을 수렴한 수기운의 창조주이다.
비로서 水土가 合德한 자리이기도 하다.불을 머금은 지구에 지표면에 물이 생겨난 것이 연상되는 구조이다.
물은 생명수이니 양이 태생한 것이다. 깊은 바다속 화산이 폭발하여 생명의 시초를 만들어낸다.
인체로는 막소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니 식도, 입口를 의미한다.
양중원갑자엔 교도보 확보같은 전쟁이 있었고 비교적 평탄했다
아래의 음중원갑자엔 문화적인 업적과 백성을 평안히하는 왕들의 치세가 이어진다.
중원갑자
1802년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총독부임.
4월 26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프랑스 혁명이 종결되다.장용영이 혁파되다.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첫선을 보이다.
60년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코투지츠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다. 이 승리를 계기로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할양받는다.
50년전 벤저민 프랭클린이 유명한 연 날리기 실험을 통하여 번개가 전기임을 증명하다.
- 자유의 종이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였다.
9월 2일 - 대영제국이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40년전 7년전쟁: 영국이 스페인과 나폴리 왕국에게 전쟁을 선포하다.
표트르 3세가 차르로 즉위하다. 그리고 독빠였던 이 차르는 7년 전쟁을 다 이긴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대제에게 강화를 제시한다!
4월 -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출판하다.
30년전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신성로마제국이 1차로 폴란드를 셋으로 분할하였다.
천문학자 보데가 보데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20년전 네덜란드가 미합중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다.
영국 의회가 아일랜드에게 자치 의회를 수립할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하다
10년전 프란츠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다. 그리고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됐다.
-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프랑스 혁명전쟁이 시작.
10년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러시아 제국을 침공. 러시아 원정의 시작.
20년후 그리스 독립전쟁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인 2만여명을 집단으로 학살하다. 이 학살은 서방세계를 격분시켰고 서방이 그리스 독립전쟁에 개입하는 명분이 된다.
30년후 콜레라가 런던에서 유행. 최소 3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콜레라는 프랑스와 미국으로 번져나간다.
-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하다.
- 런던 조약을 통해 그리스 제1공화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승인되다
40년후 웹스터-애슈버턴 조약이 체결. 이로써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인 메인 주와 뉴브런즈윅 주 경계가 분명해지다.
- 영국에서 여성과 10세 미만 아동의 광산 취업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
- 난징 조약이 체결되면서 1차 아편전쟁이 종결되다.
50년후 프랑스 파리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7월 왕정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나 손쉽게 진압되다. 이 봉기는 이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60년후 진주민란
1442년 칠정산이 완성되었다.
음력 5월 8일 - 측우제도 시행.
서유럽 신항로개발 활발해짐.
60년전 합스부르크 왕가가 트리에스테를 장악하였다
50년전 태조가 송경 수창궁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임금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서 고려가 34대 474년만에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함.
일본 남조의 마지막 덴노인 고카메야마 덴노가 화친파의 주장에 따라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평화를 요청한다. 이후 교토로 돌아와 당시 북조의 덴노였던 고코마츠 덴노에게 3종신기를 건네며 양위하였다. 이로써 56년에 걸친 남북조시대가 막을 내린다.[
40년전 남경이 함락된 뒤 건문제가 실종된 틈을 타 연왕 주체(영락제)가 왕위에 오르면서 정난의 변이 끝났다.
- 오스만 제국과 티무르 제국 간에 벌어진 전투인 앙카라 전투가 발발하였다.
37년전 정화 함대 항해
30년전 창덕궁 돈화문이 건립되었다.
포르투갈의 세우타 원정 준비가 시작되었다
20년전 항해왕자 엔리케의 명을 받은 질 에아네스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 시도가 시작된다.
아르베도 전투에서 스위스 연방군이 용병대장 카르마뇰라가 이끄는 밀라노 군대에게 패배하였다
10년전 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 : 포르투갈, 알가르베스의 왕탄생
- 메흐메트 2세 : 오스만 제국의 7대 술탄탄생
10년후 고려사절요가 완성되었다
문종사망.단종즉위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탄생
10월 2일 - 리처드 3세 : 잉글랜드 요크 왕조의 마지막왕 탄생
11년후 오스만 동로마멸망시킴
19년후 장미전쟁중으로 요크가문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랭키스터가는 사실상끝
20년후 조광조 도울 정광필 탄생
30년후 뮌헨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예종실록이 편찬되었다.
40년후 조광조 탄생
스페인 왕국의 그라나다 정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50년후 경국대전 완성, 김종직사망.1년전 이언적탄생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를 향한 항해 끝에 과니하니 섬에 도착하였고, 이 섬을 산살바도르 섬이라 명명하였다.
60년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브라질 연안 항해가 끝났고, 그는 누에바에스파냐가 하나의 대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란 사파비왕조 개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4차 항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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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년 고려 현장의 서역기입수,고려문종 임종직전
1082년 베네치아공화국이 동로마제국을 도와 발칸반도에 쳐들어온 노르만족을 물리쳤다. 베네치아는 금인칙서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광범위한 상업상의 특혜를 인정받았고, 이로 인해 무역량이 대폭 늘면서 공화국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60년전 비잔틴 황제 바실리우스 2세가 조지아 왕국의 게오르그 1세를 격파하였다.
바실리우스 2세가 두 니케포루스 들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40년전무라비트 왕조가 모로코를 공격하였다.
아바드 2세가 아브드 왕조의 사라고사 토후국 군주로 즉위하였다.
남 이탈리아의 노르만족들이 수도를 멜피로 옮겼다.
노보고로드의 블라디미르 공이 타바스티아 (핀란드남부) 를 원정하였다.
서하의 침입과 요나라의 압박으로 송나라는 거란에 바치는 연공 액수를 늘리게 되었다
30년전 셀주크 제국이 이스파한을 점령하였다.
자발 하이다란 전투에서 지리 왕조가 파티마 왕조가 파견한 힐랄 부족에게 패하였다
20년전 모로코에 무라비트 왕조의 수도 마라케시가 건설되었다.
함마드 왕조에 충성하는 쿠라산 부족이 이프리키야 북해안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10년후 잉글랜드 군대가 스코틀랜드의 켈트 왕국을 침공, 쿰브리아 (현 잉글랜드 북서부) 를 점령하였다.
20년후 1102년에 크로아티아는 헝가리 왕국과 연합을 맺는다
30년후 고려의 의료기관 혜민국이 설치되었다.
아폰수 1세가 포르투갈 백작령의 백작이 되었다.
살레르노의 로제르가 안티오크 공국의 섭정이 되었다. (공작은 보에몽 2세)
40년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 간에 보름스 협약이 체결되어 서임권 분쟁에서 교황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금나라 군대가 요나라의 서경 대동부를 점령하였다.
불가리아의 베로이아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요한네스 2세가 페체네그족들을 섬멸시켰다.
50년후 항저우로 고종이 귀환, 남송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서 구르 칸으로 즉위하여 서요가 건국되었다.
60년후 금나라와 남송의 전쟁이 소흥의 화의 (황통의 강화) 로 마무리되었다.
722년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가을 8월에는 처음으로 백성들에게정전(丁田)을 지급하였는데, 이는 나라 안의 모든 땅은 모두 왕의 땅이라는 왕토사상(王土思想)에 근거한 것으로, 백성들이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사유지에 대한 소유권을 법제상으로 추인하고, 토지가 없는 백성들에게 국유지를 지급하는 조치가 뒤따랐던 것으로 여겨진다.
위구르 제국이 건국되었다.
테오다토 이파토가 베네치아 통치자(742-751) 로 선출됨
60년전 - 힐데베르트 3세 :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사망
50년전 덴노가 일본 제 39대 덴노로 즉위하였다.
8월 - 석문 전투 : 나당전쟁 중 신라군이 당나라군에 맞서 싸워 대패했다
40년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야지드 1세가 욱바 이븐 나피를 파견하여 마그레브 정복을 명하였고 그의 군대는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대서양 연안까지 진출하였으나 회군 도중에 베르베르 인과 비잔틴 제국의 연합군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였고 아랍 군대는 마그레브에서 철수하였다.
감은사가 창건되었다.
신라의 교육기관 국학이 설치되었다.
7월 25일에 문무왕릉비가 건립되었다
30년전 - 세바스토폴리스에서 무하마드 이븐 마르완이 이끄는 이슬람 세력이 레온티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격퇴하였다
20년전 우마이야 왕조가 비잔틴 령 마우레타니아(모로코 북해안)를 점령하고 마그레브를 평정하였다
효소왕 죽고 성덕왕즉위
10년전 당현종이 당나라 6대 황제가 되었다.
불가르족이 트라키아를 공격하였다.
롬바르드 왕국이 일시적으로 라벤나를 점령하였다
5년후 레오3세의 비잔틴 성화상 파괴.
그레고리우스3세의 비난.류트프란드의 이탈리아 통일전쟁
10년후 발해의 장문휴가 당나라의 등주성을 침공하여 등주지사 유준을 죽이는 등의 대승을 거두었다
투르-푸아티에 전투 :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왕국군이 투르와 푸아티에에서 압둘 라흐만 알 가비키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20년후 경덕왕 즉위식억 742년 10월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30년후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스 5세가 압바스 왕조의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여 테오도시오폴리스와 멜리테네를 점령한 후 주민들을 트라키아로 이주시켰다
752년 이임보가 사망한 이후 총애하던 후궁 무혜비 사후 맞아들인 양귀비가 등장하여 양씨 일가의 전횡으로 국정의 문란은 멈추지 않았다.
40년후 당대종이 당나라 8대 황제가 되었다.
바그다드가 건설되었다.
텔레츠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50년후 롬바르디아의 왕 데지데리오가 교황청을 공격하였다
60년후 카롤루스 대제가 베르덴에서 약 4500명의 색슨족 반란군을 학살하였다
362년
동진애제 즉위.황로학을 숭배하고 방사를 끌어들였으며 불로장생을 꿈꿨다. 사실 환온의 괴뢰황제로 환온은 이 때 생애 마지막 북벌을 했으나, 이마저도 처참하게 실패했다..
로마 제국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 교사의 학생 교습을 금지하였다
60년전 미천왕의 고구려가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 8천여명을 사로잡았다.
호르미즈드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당시 로마 주교(교황의 전신) 멜키아데에게 라테라노 궁전을 기증하여 가톨릭에서는 이 날을 봉헌 축일로 기리고 있다. 이는 국교화의 발단이 되며, 지금도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명목상으로 높은 위상을 가지는 근거가 된다.
30년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모에시아에서 고트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고트족들은 이후 로마와 동맹을 맺고 다뉴브 강 유역을 방어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고트족과 로마 사이의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다뉴브 강에 다리를 놓았다
20년전 고구려에서 국내성을 쌓았다.
전연의 왕 모용황이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와 고구려의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왕모와 왕비를 사로잡은 뒤 되돌아갔다.
10년후 고구려의 교육기관 태학이 설치되었다.
전진에서 온 승려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였다.
19년후 내물왕 381년, 위두(衛頭)를 중국의 전진(351년~394년)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20년후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고트족과 평화 조약을 맺고 서고트족이 다뉴브 강 유역에 살도록 허락해주었다.
신라가 전진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30년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관미성을 비롯한 11개 성을 함락시켰다.진사왕죽고
아신왕이 백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 2세 : 로마 제국의 황제사망.
40년후 베로나의 북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이끄는 서로마 제국군이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다.
독발녹단이 남량 3대 왕이 되었다.
실성 마립간이 신라 18대 왕이 되었다
50년후 신라의 군주 내물 마립간의 아들인 복호와 미사흔이 각각 고구려, 왜에 인질로 보내졌다.
60년후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2년 백제, 국모(國母)의 묘사(廟社)를 세우고 제사지냄. 봄 • 백제, 낙랑의 침입을 받아 위례성이 불탐
60년전 기원전59년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 의해서 제1차 삼두정치 체제가 성립되었다
60년후 62년 폼페이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파르티아가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bc359년 마케도니아 페르디카스3세는 일리리아의 바르딜리스 와의 전투에서 피살되었다.페르디카스 3세 (368-359)는 상부 마케도니아를 다시 정복하려하였지만 원정이 재앙으로 끝났다
bc719년 동주 환왕 즉위제후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