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법
권 순 경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서 재밌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산 끄트머리에 흐르는 개울이라 이쪽저쪽이 나무에 가려져 언뜻언뜻 맞은편이 보인다. 하도 웃음소리가 요란해서 나무사이로 건너다 봤더니 젊은 아저씨 둘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까부터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 저렇게 웃어대는지 영문을 몰라 하며 혹여 나를 보고 저러는가 싶어 살짝 당황을 했다.
‘내가 뭔 이상한 짓이라도 했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길을 재촉하는데 아저씨들의 대화가 뒤통수를 따라온다.
“야, 할 수 없지 뭐. 어쩌겠냐.”
“우하하. 뻔뻔하긴.”
“어지간히 급해야지.”
“그래도 임마, 껄껄껄.”
대충 짐작을 했다. 노상방뇨나 뭐 그것에 버금가는 무슨 짓을 한 모양이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건너편에 그들이 있는 것도 웃음소리로 알아차렸다. 옷매무새를 매만지던 행동이 알듯말듯도 하다.
진땀이 흐르는 급한 생리현상은 참을 수가 없다. 토크쇼에 나온 연예인이 너무 힘들어 한강으로 빠져 죽으러 가는 길에 참을 수 없는 생리현상이 왔다. 마침 일찍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 그것을 해결하고 나니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살 것만 같더라며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인,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삶을 지탱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년 여름, 그 날도 저녁을 먹고 강변을 걸으러 갔다. 가벼운 차림으로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채 밤바람을 맞으며 내일 떠날 친구들과의 여행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생각 없이 걷다보니 평소보다 조금 멀리 와 있었고 힘에 부대껴 조금 어지러웠다. 돌아가야겠다고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는데 갑자기 뱃속이 불편했다. ‘꾸욱’ 소리를 내며 장이 꼬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왔다. 저녁에 뭐 별것을 먹은 것도 아닌데 집에까지야 갈 수 있겠지 걸음을 재촉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뱃속이 요동치고 강도가 더 사나왔다. 빨리 가야겠다고 이를 앙다물수록 장이 뒤틀리는 주기도 빨라졌다.
급기야 통증의 주기에 맞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집을 향해 죽을힘을 다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지 후회를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몸을 숨길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휴지 한 장 없었지만 그래도 해결만 하면 어찌 방도를 찾겠지 휴지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땀범벅이 되어 간신히 불 켜진 4층짜리 건물을 발견했다. 병원 건물이었는데 건물전체에 불이 있는 걸 봐서 분명히 문이 열려 있을 것이고 화장실 하나쯤은 있으리라 짐작했다. 급한 마음에 강둑을 가로질러 후다닥 불 켜진 건물로 뛰어들었다. 유리로 된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나는 얼굴을 심하게 부딪고 말았다.
안경이 날아가고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순간에 또 다시 뱃속이 요동치는 것이었다. 다리가 부러진 안경을 수습하고 힘을 주어 버티다가 조금만 더 가면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생각났다. 만신창이가 된 나를 돌아볼 새도 없이 겨우겨우 화장실에 들어섰다. 안도의 숨을 쉬며 정신없이 앉아 있으니 그 새 두 번이나 노크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있었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볼일을 보고나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가게 문을 나서며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참 가관이었다.
얼굴은 시뻘개져서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땀에 얼룩져 있고 머리카락도 제멋대로 땀에 젖어 헝클어져서 과한 운동을 한 운동선수 같았다. 부러진 안경을 들고 안경점에 가 렌즈에 맞는 안경테를 골라 대충 끼워 넣었다. 당장 내일 아침 일찍 2박3일 여행을 가야하니 안경 맞출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2박3일 내내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흔들리며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난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된다고 했는데 참 어려운 해법이다. 너무 잘 싸도 문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