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X파일
조성자
국가마다 차마 국민에게 밝힐 수 없어 덮어둔 X파일이 있다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미제 사건으로 남거나, 오보를 믿고 세월 속에 잊혀지거나 하는 사건들. 그러한 X파일들은 영원히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수가 많지만, 민주국가에서는 한정된 시간이 경과하면 경위와 수사기록들이 공개되기도 하는 가 보다. 10년,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일반 공개가 가능한 자료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10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면 그것은 그 개인의 X파일이라 불리워도 될 것이다. 두개의 공통된 컨셉을 찾자면 ‘열정’이나 조금 더 솔직히 ‘열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다니던 딸이 엑스재팬이라는 일본 밴드에 열광했었다. 사춘기였던가 싶다. 지 방을 온통 요시키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하물며 잠들기 전에 본다고 천정에도 그 남잔지 여잔지도 모를 요란한 의상의 가수 사진을 붙여놓았었다. 딸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덜컥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엑스재팬 노래 들으려고 일본어를 공부하던 아이였다. 나의 딸은 그렇게 사춘기를 보냈었다.
나의 X파일을 공개하도록 만든 계기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인 나의 아들이다. 요놈이 언제 부턴가 책상 서랍이며 컴퓨터 스크린이며 지 방의 벽등을 근육미 넘치는 남자들의 반 나체 사진들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이었다. 한국 남자 서양 남자 할 것 없이 어찌나 근육들이 불끈불끈 솟아 있는지, 또 어찌나 반질 반질 윤이 나는지 청소하다말고 가까이 들여다 보곤 한다. 물론 손대면 난리나는 줄 알고 있으니까 사진들은 그대로 두고 주변만 걸레질 하는 거지만 말이다.
기억을 더듬자니 나의 사춘기 시절이 생각나고, 나의 ‘열광’의 비밀이야기,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두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나의 X파일.
1.파일명: 김 일 사건 (35년 이상 경과)
중학 2학년 여학생 조아무개는 범생이다. 학급 반장에 학생회 간부도 맡고 성적도 최상위다. 조아무개는 6월 어느날, 등교하자마자 배가 아프다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선생님은 선뜻 조퇴를 허가한다. 조아무개는 책가방을 챙겨서 교문을 나설 때까지 아픈 표정을 유지한다. 친구들도 걱정해주며 “병원에 가봐라”한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조아무개 학생이 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광주시 실내체육관. 교복차림으로 30분 이상 걸어서 도착한 곳이다. 체육관 앞에서부터 인파가 상당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체육관에 들어선 이 학생은 관중석의 맨 앞자리에 앉는다. 링 바로 앞이다. 이날 이학생은 수백명의 어른 남자 관객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관객이자, 청소년 관객으로 유명 레슬러 김일의 경기를 관람한 것이다.
경기가 끝나자 조아무개는 다시 걸어서 삼십분거리에 있는 김 일 선수의 숙소인 관광호텔로 찾아간다. 5층에 있는 선수의 숙소의 벨을 누른다. 김선수의 매니저가 누구냐고 묻고 안으로 안내한다. 호텔방안으로 들어간 학생은 상기된 얼굴로 소파에 앉아 기다린다. 얼마를 기다리자 샤워를 끝낸 김일 선수가 웃으며 등장한다.
“싸인 좀 해주세요”
“여학생이 레슬링을 굉장히 좋아하는 가 보구나” 하며
김 일 선수는 조아무개가 내미는 노트에 싸인을 해준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김일’
파일공개의 변:
나는 현재까지 이 싸인이 적힌 노트를 보관 중이다.
학교의 생활기록부에는 여전히 “조퇴”로 기록되어 있고 지금까지 본인 이외의 어떤 학교 관계자도 몰랐던 사건이다.
2.파일명: 최민수 사건 (15년 이상 경과)
공부는 열심히 했으나 마땅한데 취직도 못하고 노처녀로 살다 결혼 한 가정주부 조아무개.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녀는 집에서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공부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직업상 책상 맡에 몇시간이고 앉아 책과 아이들과 씨름하다보면 쌓이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항상 밝은 얼굴로 미소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사춘기 시절에야 여학생들은 누구나 멋진 영화배우에 열광한다고 하지만 조아무개는 대학시절이나 그 후로도 스타열광에 변함이 없었던 바, 이는 결혼후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그녀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속의 스타에 반하는 그런 부류의 여자이다. 양조위에 이어서 국내배우 한명을 점찍어 왕팬을 자처하였으니 그 이름 최민수.
모래시계라는 티비 프로는 하도 여러번 봐서 어느 대목에서 최민수가 무슨 대사를 하는 지 줄줄 외울 정도였다. 그가 나오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애청하여, 코미디인 <주노명베이커리>까지 섭렵한다.
그러던 어느날, 비디오가게 앞을 지나던 조아무개의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있었다. 동네 비디오가게 진열창에 최민수 주연의 <인샬라> 포스터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조아무개는 비디오가게 아저씨에게 잘 보이려고 매일 비디오를 빌려보고, 그 포스터에 눈독을 들였다. 지성이 통해서인지 갖가지 비디오를 날마다 빌려보던 공인지, 그 포스터는 조아무개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인샬라라는 영화의 포스터. 거의 실물 크기의 최민수 얼굴이
굳게 다문 입을 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의 가슴팍부분에 주연 여배우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서있는 사진이다.
조아무개의 흥분과 희열은 말로 하기 힘든 것이었다. 팔짝팔짝 뛰어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여배우의 사진을 깔끔하게 도려냈다. 정면을 응시하는 최민수의 얼굴과 가슴이 남았다. 조아무개는 자신의 책들이 있는 작은방의 벽장 문짝 안에 그 포스터를 붙였다. 그녀의 선 키보다 15센티 정도 높게 붙여서 벽장의 문을 여는 순간 자신과 최민수의 시선이 마주치도록 위치를 잡고 테잎으로 단단히 붙였다.
그 시절 그녀의 일기장의 기록을 보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집안 일을 마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벽장 앞에 서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쓰여있다. 그녀는 자주 벽장문을 화들짝 열어젖히고 최민수의 포스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는 “민수!”하고 큰소리로 부르곤했다. 한없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한동안 그렇게 서있기도 했다. 조아무개는 이렇게 최민수를 날마다 보고 살았다.
사건 당일 집안은 말끔하고 고요했다. 남편은 그날 따라 일찍 출근했고, 큰아이는 유치원에, 돌 지난 둘째는 막 목욕이 끝나서 새록새록 잠들어 있었다. 이제 조아무개는 작은방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실 셈이었다. 차가 식을 동안 그녀는 좋아하는 샹송 한 곡의 테잎을 카세트에 꼽았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벽장의 문을 열었다. 벽장문을 조용히 열지 않고 와락 여는 것은 감동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곤 그날따라 더욱 큰 목소리로 불렀다. “민수!”
민수가 없었다.
'이럴수가...‘
포스터가 붙어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른 바닥을 보았으나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벽장 안쪽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최민수가 있다는 사실은 집안 식구들에게 비밀로 했기 때문에 더욱 더 황당했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벽장인데다, 포스터는 벽장문을 활짝 열어야 보일 수있도록 붙였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온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최민수는 나오지 않았다. 휴지통은 물론 신발장까지 뒤지고, 혹시 찢겨진 파편이라도 있나해서 온집안을 벅벅 기다시피 돌아다녀 봤지만 허사였다.
파일공개의 변:
심증은 백프로지만 물증이 없어서 차마 물어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언젠가 꼭 물어보고야 말 것이다.
“여보, 당신 그때 그 포스터 떼어서 어디다 버렸수?”
남자의 질투심은 X파일을 만드는가 보다.
--<광주여류수필>14호(2005년 12월 발간)에서..
첫댓글 음악 좋아하고~근육질 남자 좋아하는거 모두 엄마의 피를 이어 받았군요~^^* 요즘은 어디에 열광하고 계시는지 궁금~~~~쫌 알 것같기도 하궁~~
낮잠을 잤습니다~~사이짱님의 집에 제가 있더라구요~무언가 바삐 움직이시는데 난그냥 멀뚱멀뚱 식탁에 차려논 밥 먹으며 보기만 하더라구요~반찬은 달랑 깍두기 하나~오고 가는 대화도 없이~꿈이었지만 서운 했지요 ㅠㅠ ~~우리 만날때가 된건가요~
꿈에 머 먹으면 별로 안좋은데..달랑 깍두기하나라니 길몽인듯 싶네요..늘 마음에 있으니 한번만나든 두번만나든 별 상관없을거지만 웃음이 그리워지는 마음은 어쩔수 없네여...느린이.
너의 열정도 놀라웁지만 글솜씨도 놀라워..본격적으로 글을 써 보면 어떨까?
헤헤..고마워, 미라야. 문제가 두가지 있쥐. 첫째는 맞춤법이 엉망인거. 두째는 퇴고를 안한다는거. 무슨글이든 일이십분안에 쓰고 절대 다시 안봐. 자..작가될 소질이냐?앙?
마저. 거친 듯 해도 다듬으면 작가 될 소질 있으....
이미 광주 여류수필가 아니신가요?
맞춤법 안보고 퇴고안하는 것 작가같은 천부적인 기질입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수필가로 등록되어 잇슴다..정식 문단 데뷔는 안했어요.
ㅋㅋㅋ 성자야~? 남이지만 넘 자주 스치는 느그 옆지기한테 감히 내가 물어도 될까유~~~?
전 숙이가 내글을 어디선가 읽고 와서 미라를 자극하는 바람에 이렇게 올리게 되었네만..나으 F1들만 이글쓴걸 알고 잇다네. 말 안했어.
다 읽은 후에야 숨쉬고 꼴깍 침 삼켰네,단숨에~ 잘 쓴다,화근하게..
이거 아야기방으로 옮기자..다들 읽어보게..이런글을 일이십분안에 다 쓴다는게 바로 소질 아니냐..
훌륭하십니다. 좋은 추억을 필화하여 내놓는 용기도 가상이거니와
너의 위트가 있는 삶이 느껴진다...나도 이런 열정을 갖는 삶을 꿈꾸었는데 항상 용기가 없어 마음만 뜨겁다..지금껏. 마음을 다 한 글이나 그림은 긴시간이 필요치 않더라..너의 열정 부러워.
우하하...너무 재밌다. 서~엉자야~, 알수록 매력 덩어리 너!
그어매에 그 자식........
막상막하! 성자야! 민수는 실물이 더 멋져불드라, 일송정을 너랑 함께 갔더라면 볼만했것따.
그러게 말여..니가 한없이 부러웠었으...ㅜㅜ
시사랑에 옮김....최민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