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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십자가노믹스>의 줄거리:
요즈음 박근혜노믹스라는 말을 많일 접합입니다. 이전에는 MB노믹스 DJ노믹스라는 단어가 회자 되었습니다. 공통적인 의미는 나라의 경제를 부흥시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천년전에 모든 경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노믹스가 탄생한 사실을 모르고있습니다. 바로 골고다에서 탄생한 십자가노믹스입니다.
십자가노믹스
(요19:17~30)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십자가노믹스>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러분, 커피믹스의 종류가 굉장히 많지요?
아침에 커피 마실 때 이것저것 그냥 종류별로 사다 먹어보는데, 제가 대충 아는 것만으로도 맥심에서 나오는 믹스, 네스카페, 또 요즘 선전 많이 하는 카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커피믹스보다도 더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TV나 신문을 통해 ‘박근혜노믹스’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됩니다.
박 근혜라고 하는 대통령의 이름에 경제학을 뜻하는 영어의 이코노믹스라고 하는 이름을 합쳐서 만든 말이에요, 박근혜노믹스.
그 이전 이명박 대통령 때는 MB노믹스라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DJ노믹스라고 했어요.
이 말이 아마 레이건 대통령 때에 나온 말인가 봅니다, 레이거노믹스라고.
그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은 감세와 정부지출삭감, 이 두 가지 단어로 레이건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철학을 싸잡아 맨 겁니다.
경제 분야에 관련된 것인데, 왜 그게 국정운영 전반에 걸친 철학을 싸잡아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냐? 요즘 대통령 되면 제일 비중이 큰 문제가 경제문제니까.
레이건 대통령이 감세와, 세금을 적게 거두기 때문에 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적잖아요? 그래서 허리를 졸라매고 정부지출을 줄인 겁니다.
그렇게 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실업률을 엄청나게 다운시키고 일자리를 8년 동안에 1700만 개나 만들어내고 하는 그런 90년대 미국의 경제부흥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따가지고 박근혜노믹스, MB노믹스를 이야기 하는데, 아시다시피 박근혜노믹스라고 하면 핵심 단어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아닙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이게 박근혜노믹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요.
십자가노믹스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왕이 되셨다는 사실을 공포하시고, 왕으로서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이 그 나라의 국정운영을 해나가실 때 경제문제에 대해서 더 포괄적으로 국정 전반에 걸쳐서 국정 철학을 왕으로써 공표하신 사실을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왕이 되신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공표하시는 이 십자가노믹스를 따라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자, 그렇다면 십자가노믹스와 박근혜노믹스는 어떻게 다를까요?
박근혜노믹스건 DJ노믹스건 MB노믹스건 레이거노믹스건 다 통틀어서 한 마디로 공통된 본질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경제부흥을 통해서 잘 살아보자!
별 거 아니에요, 경제부흥을 시키는 방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하게 차별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부흥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보자! 라는 겁니다.
그런데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어떤 대통령의 노믹스건 간에 통틀어서 한 마디로 묶으면 ‘골고다노믹스’입니다.
골고다가 무슨 뜻입니까?
17절에 보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데 골고다의 뜻은 히브리말로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갈보리 또한 같은 뜻, 해골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로마글자입니다.
여기에 해골노믹스가 있다는 거예요, 골고다노믹스가 있고 십자가노믹스가 있다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대통령의 노믹스는 다 골고다노믹스요 해골노믹스요 죽음의 노믹스입니다.
오직 십자가노미스만이 생명의 노믹스이고 삶의 노믹스입니다, 진짜 행복이 거기서 주어진다는 겁니다, 십자가노믹스에서.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참 섭리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주님의 십자가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의지의 성취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나라의 총독이 예수님의 십자가에다 죄의 패를 붙이는데 그게 명패가 됩니다.
어떤 명패가 되는가 하면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진짜 유대인의 왕이거든요, 여기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선민을 뜻하는 겁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왕이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이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씁니다.
이게 섭리적이라는 거예요, 이 사람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썼지만 섭리적인 거라는 겁니다,
왕입니다, 왕이신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왕의 자리가 십자가에요, 도대체 개념이 서지 않는 왕입니다.
어떻게 왕인데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가 있느냐?
그런데 그게 진짜 왕입니다, 그 자리가 왕의 자리라는 거예요.
이제 기가 막힌 장면이 나옵니다.
자, 십자가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구원해내시기 위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사건을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섭리 안에서 성취하고 있는 로마군인 네 명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들을 발가벗기거든요, 그 발가벗겨서 자기들 손에 들어온 예수님의 옷을 겉옷은 깃을 따라서, 천 조각을 붙여서 옷을 만들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네 조각으로 만들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그 깃을 다 떼 가지고 네 등분해서 각자 하나씩 갖고, 속옷은 통으로 짰으니까 제비뽑아서 갖기로 하는, 옷을 분배하고 제비뽑아서 각자의 소유를 챙기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이게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 당시의 옷은 재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 그곳에는 좀이 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인데 그 왕 앞에서 재물인 옷을 나눠 갖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분배하고 있는 이 장면, 이게 바로 십자가노믹스의 공표의 장면이라는 겁니다.
십자가노믹스가 뭡니까?
지금 이 장면은 모든 시대의 인류의 삶을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구석기 시대, 물고기 잡아먹고 하던 것들도 다 경제활동인 거예요.
경제활동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다른 것을 섬기지 말아야 되는데, 하나님과 가족도 아니고, 하나님과 애인도 아니고, 하나님과 자식도 아니고, 하나님과 무엇을 라이벌로 등장을 시키느냐 하면 재물입니다, 재물을.
아, 놀랍지 않아요?
그러면 이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앞에서 옷을 분배하고 있는 이 모습이 뭐냐?
바로 주님이 왕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데, 왕으로써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열리게 될 내 나라의 국정운영의 방침을 얘기하고 계시는 거라 이겁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 앞에서 내 옷을 행운에 기대서 제비뽑고, 그리고 똑같이 나눠 갖겠다고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서 분배하고 있는 이 모습,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경제라는 이유 때문에 나타나게 되는 이들의 삶, 이런 모습에 대해서 죽는 것이 바로 십자가노믹스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발표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경제로 인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그 모든 삶을 죽이자!’ 죽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재정의 문제 경제 문제, 돈 문제, 재물의 문제가 내 생각과 내 행동과 내 삶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이유가 아닌 그런 나라를 열겠다는 거예요.
그런 나라 안에 들어가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
내 말과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소원과 내 행동이 경제가 이유가 아닌 그런 나라.
그러면서 주님께서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경제가 이유가 되어서 국정을 운영하고, 가계를 운영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취직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지 않습니까?
이게 다 골고다노믹스입니다, 해골노믹스라는 거예요, 죽음의 노믹스라는 겁니다.
모두가 다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해골로 상징되는 사망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경제가 이유가 돼서 움직이며 살았던 모든 삶, 결국 우리는 각자가 노믹스가 있는 거예요.
홍길동노믹스, 영희노믹스, 철수노믹스, 안철수 씨도 결국은 철수노믹스이죠.
그러면 그 철수노믹스를 가지고 혹시 다음번에 대통령이 돼보겠다고 지금 노원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돈 때문에 움직이게 되는 노믹스, 돈에 관련된 철학의 노믹스, 이 노믹스 전체가 통틀어서 골고다노믹스라는 겁니다.
골고다 현장은 계시의 현장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달려 돌아가신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계시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바로 저렇게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소이고, 그 십자가 앞에서 로마 군인들이 재물에 대한 마음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제비뽑고 있는 그 현장은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의 계시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이 바로 골고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움직이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현장이 뭐냐 하면 골고다라는 겁니다, 해골의 곳, 죽음의 현장이라는 겁니다.
왜 죽음의 현장입니까?
돈 때문에 움직이고 있으니까, 돈 때문에 생각하고 있으니까, 돈 때문에 계획하고 있으니까.
돈 때문에 소원하고 돈이 이유가 돼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것이 골고다의 현장이라는 거예요, 골고다의 현장.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왕이 되셨습니다.
그 왕이라고 하는 사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기록이 됩니다.
그 당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라고 그러면 유대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총망라 된 겁니다.
왕입니다, 모든 세계에 공언하는 겁니다.
‘내가 왕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
이것이 바로 국정운영 철학이라는 거예요.
돈에 대해서 죽으라는 얘깁니다,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돈이 내 말과 생각과 행동의 이유가 아니라면 어떻게 움직이느냐?
요한복음에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두 번이나 나오고 19장에도 또 한 번 나오는데, 부분 부분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결정적으로 진행되는 매듭 매듭마다 ‘성경이 응하게 함이라’라는 말씀이 계속 나옵니다.
‘성경이 응하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행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지금,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소원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이 세상에 대한 계획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의 삶이 진행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바람에 바로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로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해 갖고 계시는 마음을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십자가노믹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이 나라 안에서 어떻게 삶을 삽니까?
십자가노믹스로 운영되는 나라에서는 기쁨과 안정감의 근거가 돈이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안정되고 돈이 없으면 불안한 게 아닙니다.
안정감의 이유가 바뀌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오셔서 천국과 하나님아버지를 내 눈앞의 돈보다도 더 앞선 더 확실한 더 단단한 현실로 더 실제적인 현실로 내 마음에 느끼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안정감의 근거가 돈이 많이 들어있는 저금통장이 아니라 바로 천국이고 하나님아버지가 됩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노믹스의 행복의 근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노믹스의 행복의 근거는 안정된 경제정책입니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분배의 민주화, 복지,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로마 군인들이 분배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끔 약속을 하고 제비를 뽑습니다, 그것은 속옷을 통째로 가져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에요.
이러한 제도와 이러한 분배제도, 이게 바로 골고다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골고다, 해골의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행위라는 거예요.
그 어떤 대통령의 그 어떤 참신한 돈에 관련된 노믹스를 들고 나와도 결국 그 본질은 우리의 본질이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드러난 것처럼, 어떠한 노믹스이든 그 본질은 해골노믹스요, 골고다노믹스요, 갈보리노믹스입니다, 죽음의 노믹스라는 거예요.
십자가는 이 죽음에 대해서 죽는 사건입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주님이 자발적으로 죽으십니다.
골고다에서 처형당한 모든 죄인들은 마지못해서 잡혀서 죽는데,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이 골고다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건 무얼 뜻하는 겁니까?
죽음에 대해 죽는 거예요.
다시 말해 골고다의 현장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거예요, 이 세상이 해골의 곳이라는 겁니다.
해골의 곳에서 경제를 살린다, 살린다고 말을 하지만 죽음의 현장이라는 겁니다.
죽음의 현장의 특징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노믹스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노믹스가 뭡니까?
돈 때문에 생각하고, 돈 때문에 소원하고, 돈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현장, 이게 바로 골고다 죽음의 장소요, 모든 삶에 대한 철학이 골고다노믹스요, 죽음의 노믹스라는 거예요.
오직 이 골고다 현장에서 죽으므로, 죽음의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십자가노믹스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선언을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경제문제는 MB노믹스로도 해결이 안 됐고, DJ노믹스로도 해결이 안 됐고, 레이거노믹스로도 해결이 안돼요.
그리고 예언합니다, 박근혜노믹스로도 안돼요, 복지가 이루어진다고 행복합니까?
복지국가 유럽의 나라들이 지금 다 휘청거리고 있는 거예요.
안돼요, 경제민주화로 행복해집니까? 안 됩니다.
경제문제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까지는 경제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해결이 됩니다.
그러면 직장에 왜 나갑니까?
직장의 동료들을 향한 사장님부터 수위아저씨까지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열매 맺기 위해서 나가세요.
이게 바로 십자가노믹스로 국정을 운영하시는 예수님나라에 들어간 사람의 모습입니다.
십자가노믹스만이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합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문제와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행복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과정 중에 경제활동이 일어날 때 경제문제가 해결이 된다 이겁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국정운영을 십자가노믹스로 발표하셨습니다.
이 국정운영의 취지를 알아서 오늘도 이 나라 안에서 삶으로써 참다운 경제문제의 해결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