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노벨평화상
첫 여성 수상자는 反戰 운동한 노벨 친구
입력 : 2023.10.18 03:30조선일보
노벨평화상
▲ 노벨평화상 메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6일(현지 시각)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모하마디는 이란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반대하고 사형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등 다양한 사회 운동을 이끌었어요. 그는 이란 정부의 탄압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고, 지금도 수감 중입니다. 노벨위원회 측에서는 "모하마디가 이란의 여성 억압에 맞서 싸웠고, 모든 사람의 인권과 자유를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어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평화상'은 수백 개에 달한다고 해요. 그중 노벨평화상은 가장 명성이 높고 대중에게 친숙하죠. 노벨평화상은 1901년부터 올해까지 총 104회 수여됐어요. 노벨평화상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아봐요.
주트너, 노벨평화상 생기는 데 일조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95년 남긴 유언으로 5개 분야 노벨상이 시작됐어요. 노벨은 스웨덴 출신 화학자·엔지니어·발명가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5개 분야는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학 또는 의학, 평화예요. 그중 평화상은 "국가 간 형제애, 상비군 폐지나 축소, 평화 회의 개최와 진흥을 위해 최대 또는 최고의 일을 한 사람에게 준다"고 명시돼 있죠.
그런데 노벨은 왜 다른 학문 분야가 아닌 평화상을 만들었을까요? 노벨이 평화 운동에 관심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 사람은 베르타 폰 주트너로 알려져 있어요. 주트너는 19세기 말 대표적인 유럽 평화운동가이자 작가로 유명해요. 노벨의 개인 비서로 잠시 일했고, 둘의 우정은 서신을 통해 죽을 때까지 이어졌어요.
주트너는 반전(反戰) 소설 '무기를 내려놓으라!(1889)'를 출판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얻었어요.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다뤄요.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서적 중 하나로, 유럽 전역에서 평화 운동에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주트너는 '평화 운동의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었어요. 그는 '유럽을 통합하는 것이 새로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시대를 앞서간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주트너는 노벨에게 평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노벨이 평화 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했어요. 처음엔 평화 운동에 회의적이던 노벨은 서신에서 "나를 설득한다면 평화 운동을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밝혔죠. 이후 노벨은 평화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화상을 만들었어요. 1905년 주트너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 됐어요.
국제적십자위원회는 3회로 최다 수상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역대 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입니다. 1917·1944년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피해자와 포로를 도운 공적(功績)으로, 1963년에는 단체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수상했어요. ICRC 설립자인 앙리 뒤낭은 1901년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해요.
스위스 사업가 앙리 뒤낭은 당시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알제리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1859년 사업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탈리아 북부 작은 마을 솔페리노에 도착했을 당시 북이탈리아 해방을 위해 사르디니아·프랑스 동맹군과 오스트리아 군대가 교전을 벌이고 있었어요. 하루 만에 사상자가 약 4만 명이나 나왔어요. 뒤낭은 전투의 참상과 의료진의 부재 상황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여행의 원래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며칠 동안 부상자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뒤낭은 이때 경험을 담은 '솔페리노의 회상(1862)'을 출간해 유럽 전역의 정치·군사 주요 인사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간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국제 자원봉사 단체의 필요성을 설파했어요. 부상자 보호, 의무병과 야전병원의 중립성 보장을 위한 국제 조약 체결도 촉구했죠.
이 제안에 유럽 각국이 호응했고 1863년 국제적십자가 창립됐답니다. 이듬해 유럽 16국이 스위스에서 제네바 협약을 체결했어요. '전쟁터에서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돌봐야 하며, 이들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되고, 중립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습니다. 또 흰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를 새겨 국제적십자사 공식 표장(標章)으로 삼았습니다.
"소녀 교육 허용" 외친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 출신 시민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2014년 17세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최연소 수상자예요. 모든 어린이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라며 투쟁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요. 교육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 파키스탄 정부의 '소녀 교육 금지' 정책을 공개 반대했죠.
탈레반을 지지하는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파키스탄 탈레반(TTP)'이 2007년부터 유사프자이의 고향을 공격했어요. TTP는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엄격한 이슬람법을 시행하며 여학교를 폐쇄했고 여성의 사회 활동을 금지했죠. 2008년 11살이었던 유사프자이는 처음으로 학교 폐쇄에 항의하는 연설을 했고, 이 연설은 파키스탄 전역에 알려졌어요. 2009년에는 국제 언론사를 통해 사건 일기를 작성했어요. 탈레반 테러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죠.
유사프자이는 탈레반의 표적이 됐고 2012년 스쿨버스에서 탈레반 총격으로 머리에 부상을 당해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이 사건으로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문제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어요.
2013년 미국 타임지는 유사프자이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어요. 같은 해 그는 16번째 생일을 맞아 국제연합(UN)에서 연설했습니다. 유사프자이는 연설에서 전 세계 소녀들의 교육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며 "펜과 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어요. 일각에서는 유사프자이가 너무 어려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경험과 업적이 충분하지 않다며 수상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용기 있는 행동, 열정과 헌신을 인정했답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설립자이자 1901년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 앙리 뒤낭. /브리태니커
▲ 1905년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베르타 폰 주트너. /노벨평화상 홈페이지
▲ 2014년 17세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최연소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브리태니커
▲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2008년 사진. /AP 연합뉴스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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