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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룻기 2:1–23 (참조: 레위기 19:9–10, 신명기 24:19–22, 시편 91:4, 마태복음 25:35–40)
핵심 명제: 인간의 시선에는 우연(미크레)처럼 보이는 일상의 발걸음도 하나님의 장중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섭리적 필연이며, 거룩한 율법의 모퉁이를 따라 성실하게 이삭을 줍는 자에게 하나님은 유력한 자(기보르 하일) 보아스를 통해 언약의 날개(카나프) 아래 거하는 충만한 위로와 회복을 펼치신다.
1. 서론: 빈손으로 마주한 베들레헴의 생존 현실
룻기 1장은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라는 나오미의 쓰라린 통곡(마라)으로 막을 내렸습니다(2강).
두 과부는 마침내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귀향을 환영하는 잔치는 없었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땅도, 양식도 없었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입에 넣을 빵 한 조각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젊은 모압 며느리 룻은 방구석에 앉아 신세한탄을 하거나 시어머니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나오미에게 청합니다: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 2:2)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젊은 이방 여인이 보호자도 없이 남정네들이 거칠게 일하는 추수 밭으로 나간다는 것은 온갖 조롱과 성적 위협, 폭력에 노출되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공양하기 위해 가장 낮고 천한 자리인 ‘이삭줍기’의 현장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룻기 2장 3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신비롭고 거룩한 역설의 문장 하나를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와이케르 미크레하)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제3강은 우연의 가면을 쓰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카라 미크레하), 신랑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유력한 자'(기보르 하일) 보아스의 등장,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밭 모퉁이를 남겨두게 하신 율법의 자비(레 19장), 뙤약볕 아래서 멈추지 않았던 룻의 거룩한 노동, 그리고 이방 여인을 포근하게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날개(카나프)의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보아스의 등장과 율법의 이삭줍기(1) 기보르 하일(גִּבּוֹר חַיִל): 유력한 자 보아스 (룻 2:1)
성경 기자는 룻이 밭으로 나가기 전, 독자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거대한 구속사의 열쇠를 쥔 한 인물을 미리 소개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이쉬 기보르 하일) 그의 이름은 **보아스(בֹּעַז)**더라" (룻 2:1)
기보르 하일 (גִּבּוֹר חַיִל):
'기보르'는 '용사, 강한 자'를 뜻하며, '하일'은 '힘, 능력, 재물, 고결한 인격'을 뜻합니다.
단순히 돈만 많은 부자(Rich man)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는 막대한 토지와 재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깊은 존경을 받고, 율법을 경외하며,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덕망과 인격을 겸비한 거룩한 유력자(A Mighty Man of Wealth and Noble Character)'였습니다.
보아스 (בֹּעַז, Boaz):
'그(보, בּוֹ) 안에 + 힘/능력(오즈, עֹז)이 있다', 즉 "그에게 능력이 있다(In Him is Strength)"는 뜻입니다.
훗날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중 왼편 기둥의 이름이 바로 '보아스'였습니다(왕상 7:21).
파산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나오미 가문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구원해 낼 능력 있는 자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 율법의 안전망: 레위기와 신명기의 이삭줍기 규례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갈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모세의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회 안전망이었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9–10)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19)
하나님은 지주들이 밭의 곡식을 100% 싹쓸이하여 거두는 것을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밭의 네 모퉁이(페아, פֵּאָה)는 베지 말고 남겨두어야 했고, 추수하다 땅에 떨어진 낟알(레켓, לֶקֶט)은 주워 담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땅이 없는 가난한 자, 과부, 그리고 이방 나그네들이 굶어 죽지 않고 자신의 땀 흘린 노동을 통해 존엄하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복지 제도였습니다.
룻은 구걸하러 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당당하고 정직한 노동의 권리를 행사하러 나간 것입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카라 미크레하(וַיִּקֶר מִקְרֶהָ) — 섭리의 가면을 쓴 우연
룻기 2장 3절은 인간의 언어와 하나님의 섭리가 교차하는 가장 절묘한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와이케르 미크레하)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 구역에 이르렀더라" (룻 2:3)
{"와이케르 미크레하 헬카트 하-사데 레-보아즈"}
{"그녀의 우연이 우연히 일어나(카라 미크레하), 보아스에게 속한 밭 구역에 닿았더라!"}
(1) 히브리어의 의도적 동어반복: "그녀의 우연이 일어나다"
카라 (קָרָה): '우연히 발생하다, 마주치다'는 동사입니다.
미크레 (מִקְרֶה): '우연, 사건, 기회, 운명'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성경 기자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명사와 동사로 겹쳐 쓰며,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완벽한 우연의 연속이었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룻은 베들레헴의 지리를 전혀 몰랐습니다.
어느 밭이 누구의 소유인지,
보아스가 누구인지,
그가 친족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인심 좋아 보이는 밭을 찾아 들어갔을 뿐입니다.
(2) 우연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 (Hand of Providence)
그러나 룻의 눈에는 '우연(Chance)'이었던 그 발걸음이, 하나님의 눈에는 아브라함 때부터 계획된 '절대적 필연(Divine Design)'이었습니다.
룻기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 음성으로 직접 개입하시는 기적의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의 배후에 숨으셔서(Hidden Providence)', 룻의 발걸음 각도 하나까지 세밀하게 인도하사 수많은 밭 중에서 하필이면 구속자 보아스의 밭 한복판으로 그녀를 정확하게 착륙시키신 것입니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은 선언합니다:"성도에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서명하지 않으시고 은밀하게 일하시는 가명(Pseudonym)일 뿐이다."
4. 깊은 내면 해부: 뙤약볕 아래의 성실함과 보아스의 인사
룻이 밭에 들어왔을 때, 보아스의 밭을 관리하던 사환은 룻의 비범한 성실함을 목격했습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깐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아드-앗타 제 쉬브타흐 하-바이트 메아트)" (룻 2:7)
룻은 가난하다고 해서 염치없이 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사환에게 공손하게 허락을 구했고, 아침 일찍부터 허리를 굽혀 뙤약볕 아래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쉬지 않고 보리 이삭을 주웠습니다.
낮은 자의 영성:
모압에서 귀족이었는지 평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흙먼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하나님은 탄식하며 감나무 밑에 누워 있는 자를 쓰시지 않고, 주어진 비천한 자리에서 묵묵히 땀 흘려 허리를 숙이는 성실한 영혼을 주목하십니다.
거룩한 영적 기업 문화 (룻 2:4)
마침내 베들레헴 성읍에서 보아스가 밭으로 내려왔습니다.
보아스와 추수꾼들이 주고받는 첫마디는, 이 공동체가 얼마나 거룩한 여호와의 임재로 충만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야훼 임마켐)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예바레케카 야훼) 하니라" (룻 2:4)
사사 시대의 음란과 패역 속에서도, 보아스의 일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예배의 처소였습니다.
노사 간의 갈등과 착취가 아니라, 주인의 입에서는 축복이 흘러나왔고 품꾼들의 입에서는 화답의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거룩한 영적 토양 속으로 하나님이 룻을 밀어 넣으신 것입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카나프(כָּנָף) — 하나님의 날개와 보아스의 축복
보아스는 낯선 이방 여인이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사환에게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돌아온 며느리 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보아스는 룻에게 다가가 파격적인 은혜와 보호를 쏟아붓습니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레-빌티 노게에크)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룻 2:8–9)
이방 여인을 향한 상상을 초월하는 환대 앞에 룻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물었습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룻 2:10)
그때 보아스의 입에서 룻기 전체의 신학적 중심축이 되는 장엄한 축복의 선언이 터져 나옵니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완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타하트-케나파이브... 마스쿠르테크 쉘레마) 하는지라" (룻 2:11–12)
{"예샬렘 야훼 파올레크, 우테히 마스쿠르테크 쉘레마 메임 야훼 엘로헤이 이스라엘,"}
{"아쉐르-바트 라하소트 타하트-케나파이브!"}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네가 그의 날개 아래 피하러 왔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온전한 상급(마스쿠레트 쉘레마)을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1) 카나프 (כָּנָף): 거룩한 은혜의 날개
어원과 용례:
'새의 깃털 날개', '겉옷의 자락(Border/Hem)'을 뜻합니다.
신명기 32장 11절에서 새끼를 업어 나르는 독수리의 날개이며, 시편 91편 4절의 고백입니다:"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타하트-케나파이브 테흐세)"
또한 지성소 법궤(속죄소) 위에서 날개를 펴고 속죄의 피를 내려다보는 '그룹 천사들의 거룩한 날개'를 연상시킵니다.
이방 여인의 거룩한 망명:
룻은 모압의 그모스 우상의 품을 찢어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거룩한 날개(카나프) 아래로 목숨을 걸고 영적 망명을 감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 위대한 신앙의 동기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룻이여, 네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여호와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들어왔으니, 하나님께서 하늘의 온전한 상급(마스쿠레트 쉘레마)으로 네 인생을 반드시 채우실 것이다!"
(2) 2장의 축복이 3장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이 '카나프(날개)'라는 단어는 룻기 전체를 관통하는 거룩한 복선입니다.
2장 12절에서 보아스는 "하나님의 날개(카나프)가 너를 덮기를 원하노라"고 영적으로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장인 3장 9절에 이르면, 타작마당에서 룻이 보아스를 향해 이렇게 청원합니다:"당신의 옷자락(카나프, 날개)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기도의 성육신적 응답:
보아스가 룻을 위해 빌어주었던 하나님의 날개의 축복은,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아스 자신의 겉옷자락(카나프)을 펴서 룻을 아내로 품어 안음으로써, 보아스 자신이 그 기도의 거룩한 응답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남을 위해 축복 기도만 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소유와 내 옷자락을 펴서 가난한 자를 덮어주는 사랑의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6. 넘치는 밥상과 에바 하나의 기적 (룻 2:14–18)
보아스의 은혜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호의가 베풀어집니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 2:14)
상석으로의 초대:
이방 여인이 감히 정규 일꾼들의 식탁에 합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정식 식탁으로 불러내어, 귀한 포도주 식초(초)에 빵을 찍어 먹게 했고, 손수 볶은 곡식을 집어 배불리 먹이고 남게 했습니다.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함 (수 2:15–16):
보아스는 종들에게 은밀히 지시했습니다: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면서, 룻이 풍성한 곡식을 얻어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이삭을 흘려주는 섬세한 사랑이었습니다.
한 에바의 결산 (룻 2:17):
저녁까지 밭에서 일하고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약 22리터, 열 말)' 가량이 되었습니다.
보통 하루 종일 주워봐야 한 오멜(약 2.2리터)을 얻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룻은 평범한 품꾼의 열 배(10배)가 넘는 엄청난 양식을 하루 만에 자루에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7. 구속사적 절정: 우리의 영원한 보아스이신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은 룻기 2장의 밭과 보아스의 모습을, 죄인이 참된 보아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누리게 되는 십자가 복음의 풍성함으로 장엄하게 해설합니다.
| 밭의 주인 보아스 (룻기 2장) | 참된 영적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
| 능력과 재물과 인격을 갖춘 '유력한 자(기보르 하일)' | 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만왕의 왕' |
| 자격 없는 이방 여인 룻을 먼저 찾아와 부르심 | 죄인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먼저 찾아오사 불러주심 (롬 5:8) |
| "너를 건드리지 말라" 종들에게 엄명하여 보호하심 | "내가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성도를 지키심 (요 10:28) |
| 떡과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이고 남게 하심 | 생명의 떡이 되사 영원히 주리지 않는 영생의 양식을 주심 (요 6:35) |
| 자신의 날개(카나프)로 이방 여인을 덮어주심 | 십자가 보혈의 옷자락으로 죄인의 모든 수치를 영원히 덮으심 |
룻은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율법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었던 저주받은 모압의 핏줄이었습니다(신 23:3).
그런 그녀가 보아스의 밭에서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을 때,
보아스는 그녀의 부정한 신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온 그녀의 믿음을 귀히 보아 자신의 풍성한 식탁으로 초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음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 없는 이방인이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영적으로 파산하여 굶어 죽어 마땅한 거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참된 보아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밭(교회와 말씀) 한복판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내 딸아, 내 아들아,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 세상의 헛된 쾌락의 밭을 기웃거리지 말라! 십자가 곁에 머물라! 내 살과 피의 떡을 먹으라!"
그리고 주님은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의 옷자락(카나프)을 넓게 펴사,
우리의 모든 수치와 죄악을 덮으시고,
사탄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당신의 품속에 영원히 숨겨주신 것입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인생의 모든 '우연'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연을 경험합니다.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어떤 직장에 들어가며,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립니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는가? 왜 하필 이런 고통을 겪는가?"
기억하십시오.
성도의 삶에 단순한 우연이란 없습니다.
룻의 눈에는 '우연히(카라 미크레하)' 이른 밭이었으나, 하나님의 레이더망 속에서는 보아스를 만나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하시기 위한 가장 정밀한 섭리의 좌표였습니다.
당신이 오늘 서 있는 그 척박한 삶의 자리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당신의 인생을 가장 선한 은혜의 밭으로 이끌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2) 불평을 멈추고 네게 주어진 '이삭줍기'에 성실하라
많은 사람이 인생의 대박과 거대한 기적만을 꿈꾸며 일상의 작은 의무를 팽개칩니다.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 이런 허드렛일을 하겠는가?" 자존심을 세우며 빈둥거립니다.
룻을 보십시오.
그녀는 왕궁의 구원을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보리 이삭 한 알을 줍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온종일 허리를 굽혔습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는 언제나 일상의 작은 성실함 속에서 태동합니다.
오늘 당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터, 설거지통 앞,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묵묵한 섬김의 자리에서 허리를 굽히십시오.
당신의 성실한 이삭줍기의 현장에, 하나님은 보아스와 같은 하늘의 유력한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세상의 밭을 기웃거리지 말고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머물라
보아스는 룻에게 당부했습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라!"
오늘날 수많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의 밭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틈만 나면 세상의 밭, 쾌락의 밭, 물질의 밭을 힐끔거리며 기웃거립니다. "저 밭에 가면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저 밭에 가면 더 화려한 인정을 받지 않을까?"
세상의 밭으로 나가는 순간, 영혼은 상처를 입고 능욕을 당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날개 아래에만 참된 안전과 영원한 배부름이 있습니다.
주님의 품을 떠나지 마십시오.
말씀의 밭, 기도의 밭을 지키십시오.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코 굶주림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9. 결론: 풍성한 식탁과 나오미의 눈뜸
룻기 2장의 마지막은 집으로 돌아온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자루에 담긴 한 에바의 보리를 쏟아놓고, 낮에 남겨두었던 볶은 곡식을 꺼내어 시어머니의 입에 넣어주는 감격적인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나오미는 경악했습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 2:19).
룻이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이니이다"라고 밝히자,
1장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고 나를 마라로 만드셨다"며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나오미의 영적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녀의 입에서 10년 만에 감사의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헤세드, חֶסֶד)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고엘, גֹּאֵל) 중의 하나이니라" (룻 2:20)
나오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죽어 모든 대가 끊긴 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이미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땅을 되찾아줄 '기업 무를 자(고엘)'를 베들레헴 땅에 예비해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룻은 보아스의 소녀들과 함께 이삭을 주우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추수가 끝난 어느 깊은 밤,
나오미는 룻에게 가문의 운명을 건 비밀스러운 영적 작전을 지시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그가 누울 때에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칠흑 같은 어둠 속 타작마당,
잠든 보아스의 발치 아래 엎드려 옷자락(날개)으로 자신을 덮어달라 요청하는
이방 여인의 거룩하고도 대담한 구속의 청혼!
제4강: 타작마당의 밤과 발치 이불 —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