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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목사
<When You Feel Hurt>
<여는 말: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어떤 환자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에게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의사는 도대체 어느 곳이 아픈지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처음에 다리를 가리켰다가, 그 다음에는 등, 그 다음에는 옆구리, 마지막으로 머리를 만졌습니다. "내가 이곳을 누를 때마다 아픕니다." 의사가 정밀 검진을 한 후 말했습니다. "당신은 손가락이 부러졌군요!" 손가락이 부러졌으니 그 손가락으로 만지는 곳마다 모조리 아플 수 밖예요!
이 세상을 살면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먼저 몸이 아픕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아프지 않고 100%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밤에 부서지는 달빛에도 상처를 받는다고 노래합니다. 마음이라는 테이프에 '고통'과 '상처'를 녹음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50이면 50, 60이면 60, 70이면 70, 여러분들이 어떤 연령에 처해있든지 간에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녹음 테이프라고 여기고 그 녹음 테이프를 돌리면 반드시 숱한 '고통'과 '상처'가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나 몸도 마음도 아프다 보니까 도대체 어느 곳이 어떻게 아픈 지도 모른 채 고통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환자는 분명히 자기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어느 곳이 아픈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아픈 부위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라고 해서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만지는 곳마다 쑥쑥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손가락 자체의 뼈가 손상이 되었으니 누르는 곳마다 아플 수밖에 없지요!
<어디가 왜 아픈가?>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아픔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고통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합니다. 문제는 우리 속에 어느 부분이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아플 때에는 먼저 우리의 아픔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픈 곳이 어딘지, 또 어떻게, 왜 아픈지를 바로 알아야지만 바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① 제일 먼저 우리의 지은 죄 때문에 아픕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닮아 있습니다(창 1: 26-7 참조).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가장 뚜렷한 특징은 양심에서 나타납니다. 죄에 중독이 되면 물론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출생할 때부터 양심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를 지을 경우 양심이 예민하게 반응을 합니다. 양심이 바늘로 꼭꼭 찌르듯이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모든 죄악들이 우리의 양심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은 죄를 슬퍼하며 괴로워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은 죄로 애통해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 43: 25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② 실패로 인해서 아픕니다.
사업에서 실패했든지, 결혼 생활에 실패했든지, 자녀 교육에 실패했든지, 대학 진학에 실패했든지, 아니면 인간 관계에서 실패했든지, 어떤 종류의 실패이든지 간에 실패로 인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실패해서 마음이 기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실패는 인간을 어둡게 만듭니다. 의기 소침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 때문에 애통해할 때 하나님께서 재기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고든 맥도널드(Gordon MacDonald) 목사님은 미국에서 아주 알아주는 성공적인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정욕을 참지 못하고 혼외정사에 빠졌습니다. 양심에 통증을 느낀 맥도널드 목사님은 즉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목사직을 사임했습니다. 목회에도 실패했고 자기의 인생에도 실패했다고 생각한 목사님은 미래에 어떤 소망도 없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에서 맥도널드 목사님을 담임 목사로 모시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은 너무 망가진 사람이라서 도저히 목회직을 계속할 수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 때 그 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We are broken people, too."-- "우리 역시 망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하고 망가진 맥도널드 목사님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회개한 그를 다시 쓰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멋지게 재기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사 43: 18-19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우리가 실패를 애통해 하며 하나님께 맡길 때 '실패의 재'가 변하여 '영광의 화관(花冠)'으로 바꾸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사 61: 3 참조).
③ 다른 사람에게 실망하기 때문에 아픕니다.
인간은 일평생 관계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숱한 실망을 하게 됩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에게 버림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에게 배신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에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내 자식은 다 번듯하게 잘 키우고 훌륭하게 될 것 같은데 막상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입니다. 황금과 같이 굳센 우정의 맹세를 했던 친구가 떠나갈 때도 있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 동료에게, 직장 부하에게도 실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람 때문에 실망하십니까? 이 일로 슬퍼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실망시킨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포로된 상태, 즉 미움과 복수의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사 61: 1 참조). 갇힌 상태에서 놓임을 얻게 될 것입니다!
④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수많은 비극 때문에 아픕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되었다고 해도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9.11 테러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백주에 세 대의 비행기가 국방부와 세계 무역회관을 차례로 들이받았지만 사람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구경만 하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비극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비극 때문에 애통해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이 세상 넘어 있는 저 세상의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계 21: 4은 말씀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께서는 비극적인 세상을 넘어 새로운 나라를 약속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비극은 영원한 비극이 아니라 일시적입니다. 오늘의 비극은 장차 다가올 영광의 나라에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아픔을 누그러뜨릴 진통제가 있습니까? 사랑이 묘약입니다.>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일어난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 테러 사건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1972년 9월 5일, 독일의 뮌헨에서 올림픽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 때 '검은 구월단'이라는 테러범들이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몰래 잠입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기거하는 방을 덮쳐서 레슬링 코치와 역도 선수 등 두 명을 죽이고 9명의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들은 감옥에 갇힌 동료 테러범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지만 진짜 목적은 딴 곳에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를 국제 무대에 알리기 위해서 테러를 벌였던 것입니다.
나중에 이들의 동료 테러범들은 석방되지 않았지만 세계 만방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참혹한 실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있지 않아서 아라파트가 UN 총회(General
Assembly)에 초대되어서 연설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PLO의 UN 특별 옵서버 자격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테러의 목적이 하나 둘 달성되자 아라파트와 PLO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암살 테러를 벌릴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검은 구월단'과 같은 극단적인 테러 단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라파트는 즉시 정보국장인 아부 이야드(Abu Iyad)에게 명령을 내려서 기존의 모든 과격 테러범들을 선량한 시민들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이야드 정보국장 휘하의 정보국 직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여러 차례 격론을 벌였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 방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그 방안이 뭔지 아십니까? 모든 과격 테러범들을 결혼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더 이상 죽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살기 위한 이유를 찾아서 행복한 가정을 갖도록 결혼을 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라파트의 참모들이 중동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격 단체 테러범들에게 중동 지방에서 가장 아리따운 처녀들을 시집 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지요. 드디어 100명의 최고 미인들이 차출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던 아라파트의 명령이라니까 어떤 처녀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 100쌍의 청춘 남녀들이 모여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한 때 자살 폭탄으로 온 몸을 칭칭 감았던 테러범들이었고, 신부는 중동 지방에서 뽑힌 최고의 미녀들이었습니다.
아라파트는 한 가정 당 3천불씩 격려금과 베이루트에서 평화롭게 일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개스 스토브와 냉장고, TV가 구비된 아파트 한 채를 보너스로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아서 식구가 는 가정은 5천불씩 추가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가장 흉악하고 두려움이 없기로 유명한 '검은 구월단' 테러리스트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며가기 시작했습니다.
PLO의 정보국에서는 이들 암살단원들이 정말로 평화로운 시민들로 바뀌었는지 정기적으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일례로 해외에서 있게 될 테러 프로젝트에 이들을 동원하기 위해 시험삼아 명령을 내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정부의 명령에 불복했습니다. 혹시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 기록 때문에 체포될까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그들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다시 말해 행복한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테러리즘에 뛰어들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미움은 우리를 흉악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우리를 부드럽게 한다는 진리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을 살상하는 테러범이 될래야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묘약이 있다면 사랑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통증을 누그러뜨릴 유일한 진통제가 있다면 가족간의 사랑일 것입니다. 가족간의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아픔 속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고,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든 대상을 용서와 사랑으로 포옹한다면 우리의 상처는 반드시 아물게 될 것입니다!
<닫는 말: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자!>
고후 1: 4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없애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 한 가운데에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날까지 아픔은 계속될 것입니다. 어떨 때는 심하게, 또 어떨 때는 약하게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통은 우리의 일생을 따라 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고통을 능히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아픕니까?
마음이 아플 때에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마 5: 4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애통해 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은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픔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위로도 클 것입니다! 아멘.
"당신의 시련을 미리 아셨던 하나님은 고통 없이가 아니라 오점 없이 당신이 이 시련을 이겨내도록 당신을 특별히 무장시키셨다."--"God, foresaw your tribulation, has specially armed you to go through it, not without pain but without stain."
C.S. Lewis in Letters of C.S. Lewis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