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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간증의 기초-2
성경본문 : 느헤미야 13: 10-14
10. 내가 또 알아 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로 고지기를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으로 버금을 삼았나니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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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법칙을 따라서 행할 때 오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연의 법칙을 잘 사용하면서 그 법칙을 따라 순종하여야만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대로 적용되어 집니다.
이같이 모든 축복에는 일정한 법칙과 도리가 있는 것같이 믿음의 세계에도 성도가 지켜야 할 축복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 특히 물질의 축복과 관계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곧 십일조입니다.
지난 주일에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 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시는 아름다운 본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작정하신 분들은 앞으로 1년 동안만 이라도 꾸준하게 온전한 십일조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 함으로 축복을 경험 하셨다면 계속 하십시오.
십일조를 안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하면 기분 나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격 입니다.만약에 설교자인 제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제가 잘못한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 했다면 기분 나빠 할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할 것 입니다.
도둑놈 보고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할까요?
1.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 입니다.
예수께서도“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12:17) 고 말씀 하셨습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가르킵니다. 이것은 로마시민은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카나다 시민이 카나다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것은 무엇 일까요?
말라기서 3:8절에 보시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 이라>
로마 시민이라면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할 납세의 의무(롬13:6-7)가 있듯이, 하나님 나라의 영적 시민권자인 우리들은 (빌3:20)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 입니다.이것은 의무이며 동시에 법입니다.
에수께서 말씀하신 저 유명한 산상설교에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이 말씀은 우리는 두 나라에 속한 사람들인데 하나는 이 세상 나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한다면 온전한 십일조의 실현은 필요 불가결한 것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이 세상에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존재 할 수 없고 하늘나라가 전파 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이 땅에서도 세금을 잘 내는 나라가 부강합니다. 국민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기 때문 입니다. 개인으로는 좀 가난해도 국가적으로는 매우 상태가 좋은 건강하고 부강한 나라는 모두 세금을 잘 내고 잘 관리 하기 때문 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성도들이 먼저 그 나라를 위하여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이 성실하게 실천 될 때 교회는 이 땅에서 왕성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본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솔로몬 성전을 건축 할 때 일 것 입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에 헌신 하였는데 건축헌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 왔는지 너무 많이 헌금 하시는 바람에 다음 주 부터는 제발 헌금을 가져오지 말라고 광고 할 정도였습니다.
진정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2.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십일조는 성도들의 <법적인 의무>에 해당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어떤 것은 <윤리적인 의무> 일수가 있고 어떤 것은 <법적인 의무> 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태어난 남자들에겐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명백히 <국가적인 범죄>에 속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무는 단순히 윤리적인 의무도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십일조는 법적인 의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은 <구체적인 범죄>였습니다.그런 의미에서 라기는 <그것을 도둑질>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십일조가 하나의 법으로서 제도화 된 것은 <모세>에 의해서 된 것 입니다. 그러나 기억 하셔야 할 것은 십일조의 기원은 모세가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십일조가 제도화되기 이미 오래 전에 <십일조의 습관>은 아브라함 때부터 존재 하고 있었습니다.
창14:19,20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을 격파하고 빼앗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 오면서 <멜기세댁>이라는 제사장을 만났을 때,그 전리품의 십분지 일을 그에게 바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법적인 규정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주관 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심정을 가지고, 이 모든 재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저 유명한 벧엘의 들판에서, 약간은 훙정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내 한 평생을 앞으로 인도해 주신다면, 내가 받은 축복의 십 분지 일을 반드시 주 앞에 드리겠습니다.라고 언약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법적인 제도화 이전 이지만 벌써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십일조의 실행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 시대 이후 아모스 시대에도, 히스기야 임금때도, 요엘 선지도, 에스라, 느헤미야도, 말라기 선지자도 신앙부흥과 함께 <십일조 실행>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정신과 윤리적인 의무는 <신 구약>을 일관하는 하나의 가르침 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십일조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십일조를 실행 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3:23에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이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율법의 외식적인 준수를 책망하고 계시지만,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것도 행하고,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시면서 십일조의 관습도 여전히 보존 되어야 할 10/1조의 당위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특히 십일조의 율법적인 의무 이행 보다 더 중요한 십일조의 정신을 강조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일조 드리는 정신을 세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 (의)의 표시
(2) (인)의 표시
(3) (신)의 표시
십일조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 입니다.십일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입니다.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현 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십일조의 실행은 아직도 우리에게 주어진 <성도 들의 도덕적인, 혹은 윤리적인 의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들이 십일조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의 <이기심>일 것 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청년 하나가,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십일조를 드려야지> 결심 하면서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목사님 저도 한 평생 십일조를 드릴수 있도록 저를 위해 축복 기도 해주세요> 그 때 목사님은 축복 하겠다고 하면서 < 그러나 한 가지 확인 할 것이 있는데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언약 하겠는가? 그러면 축복 하겠네> 청년이 대답하길 <물론이죠. 축복만 해 주십시오.제가 한평생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약속을 하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 청년은 그 후 10불의 수입을 얻은 후 <1불>을 헌금 했습니다.오래지 않아서 그는 100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불>을 드렸습니다. 여기까진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그 다음에는 500불을 벌자 <50불>을 드리는 일이 힘들어지기 시작 합니다. 드디어 그의 수입은 <1000불>이 되었습니다. 이제 <100불>을 드리는 것이 힘에 벅차기 시작 했습니다.도저히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매우 소박한 청년이었던 모양 입니다.그래서 그는 그 목사님께 다시 찾아와서 정직하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래도 100불은 드리기가 힘듭니다. 목사님 혹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취소 할 수는 없을 까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 앞에 약속한 그 언약은 결코 캔슬되지 않습니다.그러나 제가 이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형제를 위해서 기도해 드릴수가 있겠는데, 형제가 1000불의 십일조를 드리기 힘드니까, 옛날처럼 수입이 10불로 쫄아 들도록, 그래서 1불만 드릴 수 있도록 제가 기도할까요?>
수입이 많아지면 드리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가능 합니다. 수입이 줄어 갈 때도 여전히 힘든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래서 수입이 줄고 압박을 받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줄이고 싶은, 혹은 포기하소 싶은 유혹을 받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헌금 입니다. 헌금 안 드린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지장도 없어 보이니까, 거기서부터 줄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말라기 시대, 느헤미야의 시대 사람들이 받았던 시험이 바로 정확하게 그런 시험 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중단 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한다는 사람들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 입니다.
한국엔 4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합니다.
1.처녀들의 거짓말(시집 안 갈래요)
2.노인들의 거짓말(빨리 죽고 싶어요)
3.장사군의 거짓말(이거 밑지고 파는 겁니다) 한가지 추가된 것이 있습니다.
4.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실명제가 이루어지면서 생긴 유명한 거짓말이 있습니다.(이게 전부 야요)
우리는 십일조가 아닌 것을 드리면서도 십일조를 주님께 드린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3. 십일조는 하나님의 사역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레위인들이 자기들의 일을 버리고 성전을 떠난 이유가 무엇 입니까? 말라기 시대에 하나님의 집이 황폐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일조의 실행이 없었으므로 제사장들이 써포트 박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전리로 도망 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첫째, 제사장을 써포트하고,성전을 관리 했습니다.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사역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내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말3:5절에 보시면 십일조가 등한히 되면서 이런 구제의 사역이 어렵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느 13: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신약에 와서는 구제의 사역보다 더 중요한 교회의 사역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선교의 사역>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부흥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무관심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 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적생활이 침체해 있거나 타락하고 있다는 중거 입니다.
내년에는 아프카니스탄에만 1000명의 단기선교 팀들을 동원할 예정 입니다.
지난 2년 동안에는 중앙아시아 대학생 5000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훈련하는 사역을 감당 했습니다.이런 일에 재정적인 써포트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진행 되겠습니까?
교회기 존재하는 목적이 선교 입니다. 선교를 포기 할 때 교회는 조재의 가치를 잃어 버리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의 기초로서,성도들의 십일조생활과 헌금생활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4. 십일조는 축복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축복을 위해서도 십일조 생활은 매우 중요한 것 입니다.
주께서 주신 산상설교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쌓는 것 입니까?
<너희를 위하여> ..헌금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 입니다.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인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손실인가요?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손실 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약속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지금 지구상에서 십일조를 가장 철저히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 입니다. 그리고 청교도의 후예들 입니다. 그런데 사실 말씀 그대로 그들이 지금 세계의 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미국과 카나다를 떠나면 북미의 경제는 완전히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십일조의 제도는 물질의 번영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챨스 박사는 십일조는 교인 200명을 조사한 결과 십일조를 하고 나서부터 더 번창하고 행복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영적 번영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대다수의 성도는 십일조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영적 생활이 분명해지고 철저히 회개가 나왔으며 성경말씀의 이해와 기도가 활기차게 나왔고,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보람과 교회 생활의 즐거움과 구원의 확신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1.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2.우리의 소유를 보호해 주십니다.
3.우리의 이웃들에게 간증이 되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주보에도 쓴 글이지만 십일조왕 록펠러의 간증으로 마치겠습니다.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아주 평범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고, 머리가 좋다는 소리도 못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의 어머니는 그를 기독교 신앙으로 잘 키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십일조 정신을 철저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주고 오른쪽에는 언제든지 십일조를 챙겨 넣도록 했습니다. 그는 8세 때에 받은 돈 20센트에서 2센트를 뚝 떼어서 처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는 15세 때에 침례를 받고 나서 그 교회에서 회계의 직분을 받아 줄곧 봉사 했습니다.
그가 21세 되던 해에 한 사건이 터집니다. 그 당시 그가 다니던 교회건물이 저당 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노력해서 마침내 저당 잡혔던 교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돈을 벌어 주의 일을 봉사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곡물가게를 차립니다. 여기서 성공을 거둔 후 그는 25세 때 미국의 클리브랜드에다 정유소를 하나 세웁니다. 그때부터 그는 석유사업에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산업에 손을 대었는데 사기를 당해서 투자금 모두를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서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그는 빚 독촉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간구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온전한 십일조를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기도하는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더 깊이 파라.”
그는 다시 일어나 다시 폐광을 파기 시작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근 거렸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파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검은 덩어리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유전이 발굴 된 것 입니다. 그는 32세에 자본금 100만 달러로 오하이오 석유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44세에 미국 석유산업의 90%를 장악하는 석유왕이 됩니다. 20세기 최고 부자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ion Rockefeller) 의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