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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5 : 5 – 8 하늘 증거 장막의 성전
4. 하늘 증거 장막의 성전 ( 15 : 5 – 8 )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계 15 : 5 하늘의 증거 장막 -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사도 요한은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하는 광경을 본 후 하늘에 있는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 것을 보았다.
5. 증거 장막 -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민 17: 7 -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1) 이 일 후에
짐승을 이긴 자들이 유리바닷가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 후를 말한다.
2) 하늘의 장막 -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때에 법궤가 있었던 성막을 상기시킨다.
* 출 25: 16,21 -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 민 17: 7 -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 민 18: 2 -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
그러나 옛 언약 아래 있었던 광야의 성막은 참 형상이며 실체인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을 예표 하는 그림자이다.
* 히 8: 5 -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3) 성전이 열리며
박 윤선 :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언약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상징한다.
참 실체인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 사실은 이미 11: 19절에서 언급된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신실하며 확실한 것임을 의미한다. (Ladd).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성은 백성에 대한 구속의 완전함과 확실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한 악에 대한 진노의 심판 또한 확실한 것임을 시사한다.
계 15 : 6 일곱 천사의 출현 -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앞에 보았던 그 천사들을 다시 보았다.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고 일곱 재앙들을 가진 일곱 천사들이 그 성전으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옷은 그들이 수행하는 심판이 얼마나 성결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나타낸다.
그들은 또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다.
6. 일곱 천사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1) 성전으로부터 나왔다.
성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일곱 대접 재앙을 실현할 일곱 천사의 출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의미한다(Morris).
2) 맑고 빛난 세마포 옷 - 성결의 옷
'맑고 빛난'은 천사의 고결함과 거룩함을 의미한다(Mounce).
* 단 10: 5 -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 계 19: 14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일곱 천사는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다.
빛난 세마포 옷은 어린양의 신부가 입은 옷이요 성도(의인)들의 옳은 행실(소원)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말한다.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는 구약 시대의 왕들과 제사장들이 입는 옷으로(출 28: 4) 일곱 천사(다른 천사)는 예수님의 권위와 왕권과 사명을 가지고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가슴에 금띠를 띠고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는 구약 시대의 왕적 직분과 제사장적 직분을 상징한다.
* 출 28: 4 -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일곱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대리함을 상징한다(Beasley-Murray).
계 15 : 7 네 생물중 하나가 준 대접 -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
네 생물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가득찬 금대접 재앙 일곱 개를 받아 일곱 천사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수행하는 심판의 위엄성과 영광을 나타낸다.
7. 하나님의 진노 -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1) 영원토록 살아 계신 -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주권이 영원하며 자신을 대적하는 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실 권한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의미한다(Ladd, Morris, Mounce).
2)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 -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셋째 화로 일곱 대접 재앙을 의미한다.
'대접'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알라스'(*)는 문자적으로 연희에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나 희생 재물의 피를 담기 위해 제사 의식에 사용하는 그릇을 의미한다.
* 암 6: 6 -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 출 27: 3 -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이러한 '피알라스'는 5: 8절에서 순교자들의 신원하는 기도를 담은 대접에 사용되었고 본 절에서는 하나님이 진노를 담은 대접에 사용되어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진노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성도들의 탄원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을 행하시게 하는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 (Ladd).
계 15 :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
하늘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연기가 가득하였고 일곱 재앙들이 성취되기까지는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길이 없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때가 너무 지났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들만 남았다.
8. 성전에 가득찬 연기 -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연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었다.
* 출 19: 18 -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 출 40: 34 –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 대하 7: 1-3 –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 사 6: 4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 겔 43: 5 -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 겔 44: 4 -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본 절에서 연기는 일곱 재앙을 통해서 악을 완전히 심판하시기 위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 사 6: 4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 겔 44: 4 -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1)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적극적으로 시행하시는 하나님.
2)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심판의 위력.
연기가 성전에 가득 찬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성전에 충만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솔로몬이 거친 광야에서 올라올 때 연기 기둥과 같다고 했다.
* 아 3: 6 -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서 오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 요 1: 5, 10-11 –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지만 바벨론은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들어갈 자가 없다
불가항력적인 심판.
일곱 재앙이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사실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1)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경외스러운 나머지 감히 접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 대하 7: 1-3 –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 합 2: 20 -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2)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나서야
모든 피조물이 온전히 깨끗함을 입는 마지막 심판의 때가 지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Hughes).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 - 하나님의 큰 역사가 섭리의 뜻을 이루실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게 나타났다.
* 계 11: 19 -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솔로몬 성전에도 영광이 충만했다.
* 왕상 8: 10-11 –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사야 앞에서도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
* 사 6: 1-5 –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성전이 열리고 증거 장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난 것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일곱 대접 재앙으로 심판하고 영원히 승리하시는 역사를 하늘의 천국교회에서부터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 역사를 통하여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하며 저주받은 것은 회생케 하는 역사다.
* 습 1: 2-3 –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성전에 가득 찬 연기.
(1) 여러 견해.
① 하나님의 존엄성에 대한 상징이다.
래드[G. E. Ladd] : 여기서의 강조점은 하나님께로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들과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위엄스럽고 영광스럽다는 사실이다. [래드, 반즈 성경주석 요한계시록, p. 267]
② 하나님의 신성함이 나타날 때에는 접근할 수 없다.
왈부르드[J. F. Walvoord] : 이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의미한다. 일곱 대접 심판이 끝날 때까지는 구름 때문에 성전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다. [왈부르드, 요한계시록 해석, p. 342]
③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낸다.
존슨[A. F. Johnson] : 성전에 찬 연기는 처음에는 성막에, 다음은 성전과 관련되는 여호와의 모습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와 또 그가 심판의 근원임을 상징한다. [존슨, 엑스포지터스 요한계시록, p. 483]
(2) 저자의 견해.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불신자들에게 임한 진노의 재난을 알려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약적인 표현이다.
* 출 19: 18 -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 출 40: 34-35 –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 사 6: 4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시내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태우시는 진노와 질투의 불로 나타났다. 산의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는 것으로 증거한다.
②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는 구약적인 표현이다.
* 시 18: 8 -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 시 74: 1 -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하나님이 분노하면 그 분 안에 있는 분노의 힘이 불꽃을 일으켜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로 표현하였다.
③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자들을 향한 진노의 숨결을 상징한다.
마운스[R. H. Mounce] : 구약의 상징적 표현을 인용하여 악에 대한 심판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려고 모든 영광과 능력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 한다. [마운스, 성경주석 요한계시록, p. 343]
본 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장차 하나님의 불의 진노의 심판이 있다.
불 섞인 유리바다는 마지막 대환난의 세상을 상징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들은 그의 진노를 성취할 마지막 재앙들을 가리킨다.
장차 대 환난과 극심한 핍박의 때가 올 것이다.
둘째,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모면할 것이다.
* 요 5: 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롬 5: 8-10 –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성도들은 사탄과 세상과 악을 이기며 천국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하나님의 재앙들과 거룩한 심판은 두려운 사실이지만, 승리자들의 노래하는 광경은 대 환난을 통과할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셋째,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불경건과 부도덕과 음란의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참 믿음과 거룩과 의와 선함은 성도의 정상적 삶의 덕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살아서 천국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늘 나라의 모습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계시록 15장은 요한계시록 중에서 가장 짧은 장입니다. 그런데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 중요한 진리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 15장은 환난기 중반에 땅에서 벌어질 사건과 천국의 환상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15장은 16장에 기록된 환난기의 후반에 속하는 대환난의 시작을 알려 줍니다. 이때 일곱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쏟게 됩니다. 더구나 이 계시록 15장은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진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은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또 다른 이적”이란 것은 이미 생각한 바 있는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요한의 눈에 나타났던 두 가지 징조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여인은 이스라엘을 나타내고, 크고 붉은 용은 사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세 번째 표적을 “크고 이상한 다른 표적”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표적 중에서 이번 것은 가장 중요한 표적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크고 이상한 다른 표적이 땅에 내리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되면 이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은 여러 번에 걸쳐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사람들이 탑을 쌓아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려 했던 바벨탑을 무너뜨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이 죄를 범해 악한 세상으로 되어버릴 때 하나님은 전세계를 홍수를 통해서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관영할 때 불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주후 70년에는 예루살렘을 멸망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셨습니다. 2천년간 이스라엘에 내리신 심판이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차게 되어 나타나게 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이적’이란 말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신약성경에만 ‘이적’이란 말이 49번 나옵니다. 이 말은 특별한 것, 우리가 이해할 수고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것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주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예언하신 것을 말하는 데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2~33절에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했습니다. 이것은 신비나 은유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나타내는 평범한 말씀입니다. 요한은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예언해 주신 것을 요한복음 18장 32절과 21장 19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자신의 죽음과 장사됨과 그 부활이 사흘만에 일어나게 될 것을 가르쳐 주실 때도 이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4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이적’이란 말은 계시의 징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크신 진리, 즉 하나님의 대원칙을 담은 예언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예언의 책을 읽어가면서 이 표적들의 의미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1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하신 말씀을 그대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은 일곱 천사의 이적은 말뜻 그대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이 땅에 내려오는 심판의 사건을 말합니다. 본문 2절에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이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했습니다. 이 유리 바다는 이미 생각한 4장 6절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놓여 있던 바다와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불”이란 환난 시대 성도들이 견디어 낸 고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 유리 바다 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짐승과 그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유리 바다 가에 서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휴거당한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아니고 짐승을 이기고 승리를 거둔 성도들입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이 사람들은 주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환난 시대에 짐승에 의해 순교 당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3장에 보면 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할 자를 찾고 있는 환난 시대 중반의 장면이 전개됩니다. 환난 시대의 첫 3년 반 동안에 계시록 17장에 기록된 적그리스도가 큰 권세를 가지고 그에게 가담하지 않은 신자들을 죽인다는 것으로 보아 환난 시대의 독재정치가 얼마나 포악한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난기 후반에 가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그의 우상에 절하며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자를 죽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무리는 환난 시대 후반에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7장 9절에 환난기 전반에 걸쳐 복음을 전하는 14만 4천의 하나님의 종들로 인해서 대대적인 영혼의 추수가 일어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순교하는 무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 유리 바다에 선 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가 일으킨 핍박으로 환난기 동안에 죽임을 당했다면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고린도전서 15장 55~57절에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했습니다.
잔인한 독재자나 적그리스도적인 핍박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그가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함으로 적그리스도를 이긴 것입니다. 환난 시대 동안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가 성도들을 그들의 주님 곁으로 보낸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면 사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가 이생에서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이 땅에서 얻은 것이 내세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는 패배를 당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내리는 가장 큰 상급은 순교자의 면류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천년왕국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영원한 세계에서 그에게 특별한 지위를 약속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늘의 악기를 가지고 찬송과 찬양의 아름다운 연주를 할 것을 가리킵니다. 하늘의 거문고 외에도 그들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환난 시대의 성도들이 이스라엘 족속이란 말이 아니라 모세가 출애굽기 15장 1~12절에서 부른, 적을 이긴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찬양의 노래를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드리는 찬양으로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을 보낸 후 곧 후회를 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 앞에 놓인 홍해와 뒤에 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보았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마침내 지팡이를 물 위로 내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마른 땅으로 건너 갈 수가 있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맹렬한 추격을 하고 있는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건너갔다는 사실은 애굽 사람들에겐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너편 기슭에 이르자 하나님은 그 길을 뭉그러뜨려 없애 버림으로 애굽 군인들을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기적으로 인해 승리했습니다. 잔인무도하고 악한 왕 바로의 손에서 전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갑자기 승리로 변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네가 적그리스도와 사단의 손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 성도들의 마음과 똑같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 시대의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처럼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린양의 피로 영원한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1.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본문 3절과 4절은 모세와 어린양의 찬송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 되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느 피조물에게 이런 찬송을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는 창조, 공의, 경배의 대상, 거룩, 전능하심과 영원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이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와 같은 처지에 이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지켜 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승리의 노래를 감격한 가운데 부르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