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3)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장 5-8절)
< 바른 기도의 원리 >
야고보는 부흥사나 선교사라기보다는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회적인 입장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제일 중요한 문제를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시험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 언급합니다(2-4절)
지난 설교에서는 ‘시험 당한다’와 ‘시험 든다’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누구나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해도, 기도해도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을 당할 수는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일에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곧 바로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 기도에 관해 언급합니다. 교회생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관심사를 ‘기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해야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늘 본문 5절에서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5절은 3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라고 합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구하라고 합니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구하라고 합니까? 믿음으로 구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주시겠다고 합니다. 오늘은 5절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몇 가지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라”는 말은 지극히 히브리적인 개념을 가진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높은 기도가 지혜를 구하는 기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시련을 만났을 때 시련을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렇다면 도대체 지혜란 무엇을 말할까요?
1) 지혜란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말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참으로 중시합니다. 그런데 새벽기도 시간을 중심으로 해서 그 전 시간과 그 후 시간에 기도하는 기도의 중점 포인트가 달라집니다. 새벽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주로 듣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새벽 기도회를 마친 후에는 주로 탄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의 기도를 자세히 분석하면 대부분 탄원 기도입니다. 사람들은 듣는 기도보다 탄원하는 기도를 더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탄원하는 기도만큼 우리가 듣는 기도를 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듣는 기도와 탄원하는 기도가 적어도 1:1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지혜란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잘 말해줍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3) 지혜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지혜란 부엉이의 눈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입니다.
4) 지혜란 날을 계수하는 것입니다.
이 정의는 모세가 쓴 시편 90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날을 계수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정의를 살펴보았는데, 그러한 정의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신앙생활에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제목에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항상 핵심적인 기도제목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 누구에게 구해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합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를 달라고 하면 열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주어서는 안 되겠기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돈만 버린다면 몰라도 자식까지 망치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다음에 훌륭한 인격으로 준비된 다음에는 다 줍니다. 하나님은 사려 깊은 분이기에 준비가 된 심령에게만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후히 주시면서도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사람은 주면서 정죄와 책망의 눈초리를 하면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받는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큰 교회에서는 주보에 ‘우리가 선교하는 교회’라고 하는 난을 만들어 한 달에 5-10만원씩 보내는 교회를 몇 십 개 적어 넣습니다. 저는 그러한 모습 속에서 어떤 허물에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방에 있는 개척 교회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교하는 교회를 많이 주보에 적는 것이 큰 교회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5-10만원 받는 교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돕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작은 교회의 최후의 자존심까지 앗아가 버리느냐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것은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돕는 것을 빌미로 더 유익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사람들은 도와주면서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죄는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그 면에서 연약합니다. 그래서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려 깊은 자세를 가지고 주는 것도 지혜롭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는 손길 속에 ‘자랑하는 마음과 책망하는 눈길’을 담지 말고 하나님처럼 후히 주시되 꾸짖지 아니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3.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6-8절을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풀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기도할 때 믿음으로 구해야 하고,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안되면 어떻게 하겠다고 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그 추구하는 것을 성공적인 작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결혼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생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한번 해보고 살만하면 살고 아니면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이기에 그 결혼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업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중히 결정하고 한번 결정했으면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다 안 되면 다른 것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면 그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업은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저희 교회 근처에 사업을 잘 못하는 순진한 청년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몇 개월 사이에 식당 간판을 세 번이나 바꿨습니다. 처음에 간판 이름은 <불타는 닭갈비>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쯤 후에 그 간판이 <불타는 소 막창구이>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두어 달쯤 후에는 <구이부대와 보따리중대>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또 <OOOOOO>로 바뀐 상태입니다.
하나를 벌여 놓고 전념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항상 탈출구를 염두에 두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개척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교회를 개척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더 이상 퇴로가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일심으로 전진하게 하소서!” 더 나아가서 이런 기도도 잠시 드려 보았습니다. “하나님! 저의 퇴로를 막아 주소서!” 후퇴할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은 썩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번 해보자! 안 되면 말지.”하는 마음은 안 됩니다. 여기에서 바로 믿음의 비약이 필요합니다. 즉 일단 하나님께 철저히 맡기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길을 주십니다. “안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미리부터 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 정도로는 결코 인생의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일직선으로 옵니다. 결국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자에게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비전과 일에 ‘일직선으로 충성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얻어 누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