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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순시기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온라인 피정
비우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제 2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경청하기
복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마태 17,1-9)
1. 이 주의 묵상: “나의 삶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태양”(편지 333)
⚫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 위에서
전례 중에 읽는 마태오 복음의 인용부분에는 거룩한 변모 사건의 도입부의 “엿새 뒤에”가 생략되어있다. 그런데, 세 복음사가 마태오, 마르코, 루카는 거룩한 변모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모두 의견이 일치한다. 이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는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그러면 너희는 어떠냐?”하고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마태 16,16) 그런 후, 예수님은 그분의 죽음을 예고하시고(마태 16,21) 그분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마태 16,24) 초대하신다. 거룩한 변모의 이야기는 반드시 이 문맥 안에서 읽어야 한다. 거룩한 변모와 십자가는 서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고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이것은 3명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있음으로 더 잘 설명된다. 정확히 같은 사람이 그분의 번쩍이며 찬란한 얼굴을 보고 겟세마니에서 그분의 땀과 피로 뒤덮인 얼굴을 볼 것이다.(마태 26,37)
엘리사벳은 주님께 선택되어 생생한 내적 지식을 가졌다. 그녀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를 읽었을 때 기뻤다. 이 인용구는 그녀의 글 속에서 17번 등장한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의 편지수취인들에게 이것을 적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 사람을 선택하여 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 그분의 친밀함을 경험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 자신을 보여 주셨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런 후 그분은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2-3) 제자들은 그들 앞에 나자렛 예수님을 보았지만, 이때는 그분 신성의 완전한 영광이 그분의 인성 안에서 보였다. 타볼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현현, 하느님의 나타나심은 칼체톤 공의회에 의해 장엄하게 선포되었다.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다.” 그분은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히브 1,3)라고 이야기한다. 사도 바오로는 그분을 “영광의 주님”(1고린 2,8)이라고 부른다.
엘리사벳은 1904년 11월 21일 거룩한 삼위일체께 그녀의 가장 유명한 기도를 적었다.: “오 사랑하올 나의 별이시여, 더 이상 당신의 광채에서 나가지 않도록 저를 사로잡아 주소서.”(내적 메모 15) 그녀는 그리스도의 광채로 빛나도록 가르멜 산으로 인도되었다. 그녀는 피레네 산맥에 살던 앙글레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저는 더 이상 아주머니의 그 아름다운 산에 갈 수 없지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만남의 장소’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또 다른 산, 지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거의 천국에 닿아 있는 저 신성한 정상으로 인도하시길 청하며, 그곳에서 마음과 영혼으로 아주머니를 따를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의 태양이 뿜어내는 광채 아래 아주머니와 완전히 일치해 있을 겁니다!”(편지 184) 한 사제에게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분께서 신부님을 신앙의 빛 아래 평화와 사랑 그리고 신성한 태양의 빛으로 밝게 빛나는 합일이 실현될 정상까지 데려가시길 빕니다.”(편지 193) 예수님께 초대되어 그분의 광채가 우리 위에 빛나는 높은 산에 그분과 함께 올라갑시다.
⚫ 그리스도와 대화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마태 17,3) 모세와 엘리야는 첫 계약에서 유명한 두 사람이다. 모세는 선택된 민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냈다. 하느님은 그에게 계명을 주셨다. 그는 토라의 작가로 존경받고, 율법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다.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선”(1열왕 17,1) 예언자이다. 가르멜 산에서 그는 선택된 민족을 우상과 거짓 신들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성령에 의해서 움직인 모두를 대표하고 그를 지지한 모든 사람을 대표했다.
예수님처럼 두 분 다 40일을 단식했다. 모세와 엘리야는 첫 계약에서 하느님을 본 단 두 사람이다.(탈출 33,8-13; 1열왕 19,12-13) 타볼산 위의 거룩한 변모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할 때, 그들은 그분의 인성 안에서 둘의 사명이 결합된 하느님의 아들을 본다. 율법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대화 안에서 성경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두 선택된 증인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확증하기 위해 거기 있었다.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인 동시에 새로운 엘리야이시다. 우리는 성경, 특별히 예수님께서 완성할 약속들을 발견하기 위해 첫 계약에 관한 것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엘리사벳은 성경에 대한 그녀의 묵상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언급한다. 첫 번째 언급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히브 11,27) 인용한 것을 기초로 하며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굳건히 견디어 냈습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20, 마지막 피정 10)라고 확언한다. 그녀는 그 당시 가르멜 수도자들 사이에 널리 읽히고 공부했던 “거룩한 만찬”이라는 제목의 책에 영감을 받아썼다.: “저는 산에서 작은 모세가 되렵니다.”(편지 218) “거룩한 만찬”에서 그녀는 가르멜 수녀에 대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산 위에 있는 모세와 같다. 그는 평원에서 전투하고 있는 주님 군대의 대장들이 승리하도록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쳐들고 있다.” 이것은 탈출기 17,11을 암시하는 것이다. 산 위에 있으면서 기도하고 예수님께 이야기한다. 가르멜 수련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를 당신 안에서 긴밀히 일치시키길 많이 원하시며 수사님을 당신의 오른편에 취하시고 정의의 태양 빛으로 온전히 빛나는 가르멜 산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산다는 것을 성 엘리야께서 가르멜의 자녀들에게 물려준 유산입니다.”(편지 299)
모세와 엘리야처럼 엘리사벳은 “가르멜 산”에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의 참 얼굴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 그분과 소통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엘리사벳은 그녀의 친구, 제르멘 드 제모에게 적는다.: “그는 가르멜 산에서 침묵과 고독, 결코 다함없는 기도 가운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모든 것을 통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가르멜 수녀는 이미 천국에서 살듯이 ‘오직 하느님만으로’ 살아가는 영혼입니다.”(편지 133) 나중에 엘리사벳은 아름다운 기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그 친구에게 전해준다.: “사랑하는 제르멘 자매, 언제나 기도를 사랑하세요. 제가 기도를 말할 때는 매일 읊어야 할 구송기도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만사를 통해 하느님께로 영혼을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눈길 아래 계속해서 그분과 아주 단순히 친교를 나누게 해 줍니다.”(편지 252) 우리의 삶이 진정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 활동은 거룩한 삼위일체를 바라보면서 이루어지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산꼭대기로 오르는데 시간을 가져야 하고 듣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내적 메모 13)
⚫ 완전히 듣는 자가 되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성부의 음성이 예수님께서 “그분의 아들”이며 “그분 마음에 든다.”는 것을 확언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 그분의 말을 들으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쉐마(들어라, 이스라엘아)와 같은 어원을 두며, 듣는 자, 시몬 베드로는 이 사건을 기록한다.: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8-19) 엘리사벳은 그녀의 아름다운 삼위일체 기도문에서 이렇게 적는다.: “오 영원한 말씀, 제 하느님의 말씀이시여, 당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며 한생을 보내게 하소서. 당신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당신의 가르침에 유순하게 하소서.”(내적 메모 135)
엘리사벳은 1903년 크리스마스에 쓴 시에서 같은 생각을 포현한다.:
“나는 내 일생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나이다.
오, 하느님의 말씀이시여, 당신께 귀 기울여 듣나이다.
당신께 사로잡히게 하소서.
오직 사랑만 알게 하소서.”(시 88)
엘리사벳은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해사제에게 이렇게 썼다.: “심지어 세상 한가운데서라도 오직 그분의 것이 되고자하는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그분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습니다!”(편지 38) 엘리사벳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충고한다.: “그분을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조용히 하고서.”(편지 103) 그녀의 친구 제르멘 드 제모에게는 이렇게 썼다.: “거기서 우리에게 할 말이 많으신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해, 고요 속에 머물기로 합시다. 자매님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려는 열정이 있으니, 우리는 그분의 영혼이 노래하는 모든 것을 듣기 위해 그분 곁에 있을 겁니다!”(편지 164)
엘리사벳은 1902년 예수 마리아의 아녜스 수녀에게 시를 한편 쓰고, 거룩한 변모의 빛나는 구름과 침묵 속에서 듣는 것을 결합시킨다.
“깊은 침묵 중에
천상에서 부르는 사랑의 찬가 들리지 않나요?
자매여, 유배와 고통 그만 잊어버려요.
이 아름다운 날 들뜬 마음으로 인사해요!
우리를 향한 삼위일체
영원한 광채 보이지 않나요?
천상이 반쯤 열려 있어요. 들어 보세요. 우리를 불러요...
나의 자매여, 우리를 거둬들여요. 보세요. 신랑이 오세요!
빛나는 구름 보이지 않나요?
그 광채 우리까지 닿아요.
불변하시는 미 자체이신 분 관상하며
침묵 중에 거기 머물러요.
우리 그리스도의 눈길은
하느님의 순수함 새기며 밝게 빛나요.
자매여, 그분께서 우리를 하느님처럼 변화시켜 주시도록 머물러요.
그분 영혼 안에 우리 영혼 머물고
그분 눈 속에 우리 눈 맞추어요.”(시 85)
엘리사벳은 침묵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침묵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그분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꿰뚫고 거기서 그분의 일을 완성한다. 사순시기는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오르기 적당한 시기이다. 성경을 묵상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신비를 관상함으로써 그분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는 해방의 시간이다. 우리 자신을 모든 불필요한 것에서부터 자유롭게 하여 “오직 예수님”과 우리 자신만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는 우리 자신이 변모되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갈바리아를 향한 길, 그분의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부활의 빛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 매일의 삶을 위한 3가지 실용적인 제안들
1. 나는 이번 사순시기에 잠심하고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
특별한 시간을 따로 남겨 두기를 결심한다.
2. 나는 매일 시간을 내어 그분과 이야기하고 침묵 속에서 그분을 듣겠다.
3.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도록 노력할 것이다.
5. 이번 주 동안 매일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기도
3월 13일 월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표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처와 고통을 인내로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이 상태에 이르려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을 관상해야 합니다.”(편지 314)
나는 어떻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증인의 될 수 있겠는가?
3월 14일 화요일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가 나를 공경하는 사람이다.”(시편 50,23)
“‘아버지,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스승님께서 노래하신 것이며
그분은 이 반향이 제 영혼 안에서도 울려 퍼지는 것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마지막 피정 35)
아버지, 모든 것을 당신께로부터 옵니다.: 감사합니다!
3월 15일 수요일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제가 원하는 것은 나의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그분을 알고 내 구세주의 모상에 따라
제 존재 온전히 그분과 일치하는 데 있습니다.”(시 96)
나는 어떻게 나의 형제자매를 섬길 수 있을까?
3월 16일 목요일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 [...] 그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시편 1,2-3)
“거기서 우리에게 할 말이 많으실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해, 고요 속에 머물기로 합시다.”(편지 164)
하느님의 말씀이 나의 하루의 중심을 구성하기를.
3월 17일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셨다.”(요한 3,16)
“진실, 사랑의 진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갈라 2,20) 작은 아이야, 그것 보렴. 그게 바로 진실이란다.”(우리 성소의 위대함)
나는 나의 이웃에게 참된 사랑의 표시를 주기를 결심한다.
3월 18일 토요일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그분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당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길 참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과 끊임없이
접촉케 하시고 거룩하게 어루만지십니다.”(편지 172)
아버지, 제가 사랑의 힘을 믿도록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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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 제가 사랑의 힘을 믿도록 허락하소서.
“나는 내 일생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나이다.
오, 하느님의 말씀이시여, 당신께 귀 기울여 듣나이다.
당신께 사로잡히게 하소서.
오직 사랑만 알게 하소서.”(시 88)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표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처와 고통을 인내로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이 상태에 이르려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을 관상해야 합니다.”(편지 314)
작은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 같아서 감사드렸다가, 해결이 안나는 것으로 결정되자
그런식의 감사가 얼마나 웃긴것인가 알게 되었어요.^^
어려움중에서도 아버지를 믿고, 견디고 희망하며 감사드리는게 가장 기쁘게 하는 신뢰의 감사라는 것.
하느님 아빠 마음 헤아리고 신뢰하는 착한 딸이 되고 싶어요. 예수님, 당신의 감사로 감사합니다.
+ 거룩한 변모와 십자가는 서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고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3명의 제자, 정확히 같은 사람이 그분의 번쩍이며 찬란한 얼굴을 보고 겟세마니에서 그분의 땀과 피로 뒤덮인 얼굴을 볼 것이다.(마태 26,37)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 매일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기도
3/13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표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처와 고통을 인내로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3/14 아버지, 모든 것을 당신께로부터 옵니다.: 감사합니다!
3/16 “우리에게 할 말이 많으실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해, 고요 속에 머물기로 합시다.”(편지 164)
3/18 아버지, 제가 사랑의 힘을 믿도록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