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자를 부탁하심
세종이 32년에 하세(下世)하시고 세자 즉위하니 곧 문종(文宗)이라. 부왕의 유훈을 받으러 학문에 유의하시고 매일 일찍이 일어나 조회를 받으시고 고려 왕씨(王氏)의 향화(香火)를 끊는 것이 불인(不仁)한 일이라 하여 고려 현종의 원손을 얻어 순례(循禮)라 이름 하시고 고려 역대(歷代)의 사당을 숭전(崇殿)이라 이름 하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다.
부왕 세종께서 집현전 학사들과 시임대신들을 불러 놓으시고 어린 손자를 안으시고 부탁하시던 것을 생각하시며 문종께서도 항상 염려하시던 때에 문종이 병이 있거늘 왕이 집현전 제신과 대신들을 불러 놓고 밤이 깊도록 국사를 의논하고 세자를 불러 무릎 밑에 안치고 세자의 등을 어루만지며 집현전 학사와 대신들에게 말하되 지금 8대군이 강성하여 서로 자리를 엿보니 이 아이의 생명이 위태한지라.
경등에게 이 아이를 부탁하노니 경등은 힘을 다하여 도와주시오 하고 비장한 얼굴로 깊은 뜻을 보이신다. 그 자리에 참여한 대신은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이었고 집현전 학사에는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등이다. 왕이 어탑(御榻)에 내려 친히 술을 부어 제신을 주시고 왕도 같이 술을 마시며 엄숙하고 비장하신 어조로 부탁하신다. 제신들이 땅에 엎디어 울며 신들이 죽도록 유주(幼主)를 보호하리이다. 인하여 제신들은 술이 취하여 인사를 몰랐다.
왕이 황문(黃門)을 명하여 제신들을 업어다 직소에 누였더니 제신들이 그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 자기들의 몸이 직소에 오게 된 것은 왕의 하신 일로 알고 더욱 감격하여 은혜를 보답하려고 굳은 결심이 있었다. 이 고명(顧命)은 예전 소열(昭烈) 황제가 공맹에게 유선(劉禪)을 부탁하던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왕은 성리(性理)의 학을 통하고 또 글씨가 미요 하여 조그마한 종이조각이라도 버림이 없이 귀중하게 여기시였다.
8대 군주 수양대군(首陽大君)은 더욱 세력이 강성하며 다른 뜻을 품고 한명회(韓明澮)라는 모사와 주야로 음모를 꾀하며 매양 밥 때까지나 국이 다 식어 차도록 한명회는 가지 않고 무슨 음모를 의논하는 고로 수양대군의 반비(飯婢)들이 한명회를 불러 한갱랑(寒羹郞)이라 하였다. 한명회가 오면 한갱랑이라 부르니 얼마나 원망하는 말인가. 고명대신들과 한명회 사이에 무슨 알 수 없는 험악한 공기가 서리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