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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4:13-14
제목: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
오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마리아 수가에 사는 한 여인이 등장을 합니다. 이 여인을 보면서 ‘자화상’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자화상이라는 것은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입니다. 당대에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린 사람은 네델란드의 화가 반 고흐입니다. 37세를 살다가 세상을 떠난 그가 그린 자화상은 무려 35작품이 됩니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의 자화상을 보면 37년을 살다 간 그의 인생이 그 자화상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은 총으로 자신을 쏜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반 고흐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때마다 무엇을 생각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 채워지지 않는 자신 내면의 문제 등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세상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고, 청년의 모습이 내 모습이고, 중년과 노년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이라는 거울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되면 한결같이 표현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목이 마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 역시 자화상을 그리게 되면 항상 목이 마른 여인으로 그려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만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갈리리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 수가라는 성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에게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상종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보면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진 후 유대인은 남 왕국 유다 사람들이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 후에 혼혈과 문화적으로 이방 민족과 섞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순수하지 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대신 그리심산을 성지로 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유대인 입장에서는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통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마라아인을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생각해서 그들과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마라아인인 수가성의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을 보고 “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한복음 4:10).
그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요한복음 4:11-12).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
이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한복음 4:15). 이때 예수님은 뜬구름 없이 그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때 그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다”고 예수님께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한복음 4:17-18). 그때서야 그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을 합니다(요한복음 4:19).
예수님과 사마리아 연인과의 이 대화 속에서 사마라아 여인의 자화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자화상에 나타난 모습은 날마다 갈증을 느끼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조상이 파 놓은 우물이 있고, 비록 어떤 상황에서 남편이 다섯이나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현재 사는 남편도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여인, 그리고 날마다 물을 길러 올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사는 여인,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는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여인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또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한복음 4:20). 당시 유대인들은 신앙의 뿌리 그리고 신앙의 중심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은 영원히 목마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오는 것은 날마다의 일상입니다. 인간은 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심한 갈증을 느껴서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물을 길러 온 곳은 자기 조상 야곱이 파 놓은 우물입니다. 이 물로 인해서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자신이 키우는 가축들이 물을 먹고 자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야곱이 파 놓은 우물을 계속해서 마셔야 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우물에서 물이 나지 않으면 다시 다른 우물을 파야 하고, 또 그 우물에서 물이 나지 않으면 또 다른 곳을 파서 물을 찾아서 마셔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생은 목마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물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 그 여인이 예전에는 남편이 다섯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이나 남편에 대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삶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 즉, 항상 목이 마른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심산이라는 곳에 성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은 만족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인가에 대해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예배를 통해서도 만족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생활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모든 삶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영원한 만족은 예수님을 통해서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가지 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이 물’과 또 하나는 ‘내가 주는 물’입니다. 이 물이라는 것은 그 조상 야곱이 파 놓은 우물에서 나오는 물입니다. 야곱이 이 우물을 판 이유는 세상이라는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파 놓은 우물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축은 이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파 놓은 우물입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를 향하여 다시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다시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우물은 잠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영원히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 속에서는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만족하게 해 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려고 할까요? 그만큼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종교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빈 마음을 그 종교를 통해서 채우려고 하고, 두려울 때에는 그 종교를 의지하려고 하고, 삶의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 종교를 통해서 해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마치 날마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답을 해 줍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입니다. 이 물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모든 인간, 날마다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든 인간, 세상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살면서 상처받은 모든 인간에게 예수님이 주는 신령한 은혜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반 고흐의 자화상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근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물은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삶을 만족하게 하고, 평안하게 합니다. 그 물을 누가 마실 수 있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믿는 자만이 마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족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물을 날마다 마시며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영원한 생수를 날마다 공급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과 평강의 삶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예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을까요? 이것은 대화 내용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물을 마시는 자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에배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그리심산에 따로 성전을 세워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누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실까요?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디에서 어떻게 드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자의 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라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예배는 인간의 의지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의식이 화려하고 제물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정결하거나 많다고 해서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참된 에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제물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사도바울은 참된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신이 제물로 드렸다는 것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는 죽여서 각을 떠서 드리거나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내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영적인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그 예배를 통해서 예배자는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신령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놓는 순간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채워주십니다. 이 말씀을 잊지 말고 영원한 생수를 마신 예배자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까요? 이 물 즉, 야곱이 파 놓은 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서 끝없이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서 영원한 만족을 누리며 사는 모습일까요? 모든 성도가 예수님이 주시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시고 참된 에배를 하나님께 드리며 가장 평안한 자화상을 나타내 보이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