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송 루시아 씨. 그는 “제발 밀양 주민들의 본의가 왜곡되고 폄하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루시아, 우리는 너만 있으면 힘이 난다.”
밀양 송전탑 현장에 가면 가장 자주 듣는 이름 중에 송 루시아 씨가 있다. 단장면 주민임에도 다른 송전탑 현장에서 훨씬 자주 만나게 되는 그는 주민들의 지팡이고 쉴 그늘이다. 루시아 씨 역시 송전탑이 건설되는 마을에 살고 있다. 집 뒤편 산을 타고 지나는 두 개의 송전탑 사이에 그의 집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현장에 힘을 보태러 다닌다.
송 루시아 씨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기막히다고 했다.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전 측에 대화를 제안했고, 6번째 대화가 진행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공사 재개 소식이 들렸다.
“8년째 싸움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한전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도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송전탑 건설로 결정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이죠. 그래서 끝까지 주장한 것이 ‘전문가협의체’인데, 한전은 그 간절한 호소를 흘려들은 겁니다. 진정성이 전혀 없었어요.”
루시아 씨는 “한전은 기간이 오래 걸린다, 비용이 2조 7천억 원 든다며 지중화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고 전하며 “그러나 우리도 다 알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기간도, 비용도 그보다 훨씬 적게 들 수 있다고 다른 전문가들은 말한다”면서 “그 격차의 이유를 밝히자는 것인데, 한전이 떳떳하다면 왜 제안을 거절하나” 하고 물었다.
무엇보다 송 루시아 씨는 밀양 주민들이 한전 측의 여론 호도로 인해 ‘님비 현상이다’, ‘보상을 바라고 저런다’며 비난받는 것이 못내 아프다고 말했다.
“보상이요? 우리는 필요 없습니다. 보상을 바랐다면 우리는 벌써 그만뒀을 겁니다. 전원개발법부터 시작해 이런 식이라면 온 국토에 송전탑이 세워질 판이에요. 지중화라는 대안이 있다면, 돈과 시간이 조금 더 들더라도 밀양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밀양에만 송전탑 세우지 말라고 했다면, 일찍 청도군으로 넘기면 됐을 일이죠. 하지만 우리의 의견은 그것이 아닙니다.”
▲ 주민들이 입고 있는 조끼에 새겨진 글씨. “생명과 마을이 살아 있는 고향을 물려주겠다”는 다짐. 이것이 밀양 주민들의 진짜 마음이다. ⓒ정현진 기자
“밀양 주민들이 왜 이러는가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루시아 씨는 송전탑을 계획하는 처음부터 조금만 더 사람을 생각했다면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밀양시와 청도군의 정치 싸움에 지도상의 선이 오가는 동안,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삶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지도 위에 송전선로를 긋고 수정하는 동안, 그 선 아래 깔려버린 삶들. 정치적 · 금전적 이득 때문에 모르는 사이 이리저리 휘둘린 삶들. 그는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늙은 농부들의 삶이 그토록 하찮은가”라고 항변했다.
그는 “우리를 님비라고 비판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의 집 앞으로 송전탑이 지나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송전탑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탈핵 싸움이 됐다”면서 “싸움의 본질을 보지 않고 왜곡하고 매도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름에서도 짐작되듯 그는 가톨릭 신자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하느님과 이웃 체험을 하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죽을 듯이 힘들지만 또 다음 날이 되면 싸울 힘이 생긴다면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길 것이다. 이 자리를 피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여기에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이니까요. 그분이 돌보시기 때문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느님이 이웃을 외면했던 나를 깨우쳐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가엾게 여기실 것이고, 정의는 이길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송 루시아 씨는 밀양 주민들에 대해 쉽게 단정 짓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밀양 주민의 편을 무조건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의 이면을 더 깊이 들여다봐 달라”는 호소다. 그는 밀양 주민들이 오랫동안 처절하게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지, 현장에 오지 않더라도 한번만 더 생각해 달라면서 “제발 밀양 주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