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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사유하는 인간의 의미있는 고뇌
- 조재흥 수필세계 -
권대근
문학평론가
I.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수필의 지향점은 결국 인간과 사회를 위한 것이 된다. 미의식을 발견하지 못해서 피로하고 그래서 방황하는 자들을 구원해야 할 역할을 수필이 어느 정도는 떠맡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평자는 문학을 사회적 활동의 일부로 본다. 따라서 문학가는 작가적 사명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을 위한 문학은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고 사회를 배제하는 수필 또한 인간을 위한 문학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수필의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실존감성이나 사회현실의 부재다. 지금이야말로 제재나 소재를 사회 현실에서 찾고, 그것을 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하고 지적 정서화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 하겠다.
수필가 조재흥은 다밀한 도시문명, 서구 물질문화의 이입 속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인간의 비정함을 수시로 느끼며 산다. 산업화의 물결로 인간이 기계화되고 인구급증에 따라 기존의 가치관도 많이 변모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무지개가 그리운 시대다. 우리들의 주변은 온화하기는커녕 이기주의, 불신, 무질서가 판을 친다. 가치관의 혼란으로 탈인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수필이 구원의 문학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조재흥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지적하며 우리 문학가들이 갈등과 충돌의 현장에서 먼저 빠져 나와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의 인간됨과 겸손함은 몇 편의 수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설득적인 전달을 위해 탁월한 논리적 근거 자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교통안전에 관한 수필을 주로 해서 바이오필라적 가치를 음미하게 한 시도는 그의 생명 사랑에 대한 의지를 가늠하는 단초가 된다고 하겠다. 지금부터 조재흥 수필과 수필가의 세계관을 큰 호흡으로 횡단하며, 수필가의 고뇌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II.
조재흥 수필가는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철학 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산업안전기사 외 자격증 7개를 소지하고 있는 엔지니어 수필가다. 현대자동차(주) 수출정비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소 및 지사, 전국 15여 곳 검사주임, 소장, 처장, 제주지사장, 전문위원 등으로 재직하고, 교통안전공단에서 정년 퇴직하였다. 위의 흔적이 말해주듯 그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교육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은 버폰의 말처럼, 바로 그 사람이다. 전공이 반영되어 전반적으로 철학적이며, 그가 다루는 제재 또한 삶의 이력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1991년「詩와 詩論」천료, 1993년 隨筆과 批評」신인상 동백문화 칼럼 부분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전국공무원문학협회, 隨批文學會, 부산북구문인협회, 동백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마음속의 한 마리 파랑새를 위하여」(詩와 批評社 1999. 9)가 있고, 현재 교통안전 칼럼니스트, 사)녹색교통(G.T)운동시민추진본부, 연구전문위원, 교통신문 경남지사장을 맡고 있는 부산의 중견 수필가다.
조재흥 수필의 특징은 직업 관련 전문 수필이 주류를 이룬다는 데 있다. 주로 자신이 교통안전공사에 몸담으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조재흥의 수필은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를 예견 가능케 한다는 측면에서 칼럼의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찬사 프로운전자를 위하여>, <자동차 안전> 등의 차량안전 관련 글, <정년소회>, <정년퇴직에 부쳐> 등과 같은 직장을 나오면서 느낀 소회, 그리고 <중국연수 관광기행>이란 기행문, <말>, <충돌>과 같은 삶에 대해 성찰하는 논설적인 글이다. 바로 선진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룰의 제시를 통해 흔들리는 삶을 바로 세워보고자 하는 수필가 조재흥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과 지향점이 태곳적부터 오늘날까지 세상과 삶을 노래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던 산문 정신과 철학의 생명이기도 한 비판정신에 기대고 있다는 데서 이 수필의 강점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을 돌아보고, 세상을 비판하는 역할에 있어서 조재흥 수필가는 언제나 선두에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첨예하게 세상을 사유하는 철학과 닮았다. “아름다운 거짓말과 아름다운 말씀을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내 꿈의 진정한 향연이며 삶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싶다. 이런 삶의 무대에서 작은 배역 하나 맡아 이모작을 경작하는 나의 후반기 모습을 상상의 나래위에 요즘 눈을 가만히 감고 그려본다. 유토피아적 발상이겠지만 이런 만년의 꿈에 취하여 살아가는 행복한 몽상가이고 싶다.”고 말하는 조재흥 수필가의 이런 자기 성찰적 태도는 진정한 수필가적인 삶의 한 전형이라고 하겠다.
그의 수필은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대별된다. 하나는 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교통안전 관련 글, 두 번째는 사회비평적 성격의 글, 셋째 정년의 소회를 감상하는 글, 넷째는 기행수필이다. 작가의 사회의식이 투철하게 반영된 수필 <충돌>은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논리의 대립과 가치의 충돌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놓은 글이다.현실 참여적 비판수필로서, 주제 전략이 매우 정밀한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발단부에 이어 전개부를 여는 첫 진술은,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논리의 대립과 가치의 충돌현상 앞에 종종 나는 눈앞이 감감해진다.”로 시작한다. 이런 진술 다음에 나와야 하는 것은 그것을 뒷받침할 적절한 문제적 현실과 이를 타개할 비책이다. 작가는 주제적 양식의 수필에서 어떻게 주제의식을 설득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다음 단락에는 전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삽화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재흥은 주제의식의 전달 전략으로서,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설득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삶은 늘 도박으로 점철된다. 주식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것과 이기심의 메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탐욕 때문에 극도의 자기 중심주의에 빠진다. 남의 입장이나 공동체적 가치는 안중에도 없다. 그 욕망의 충족 여부는 전적으로 이기주의에 달려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오징어가 자신의 광명을 찾아 고기잡이배로 돌진하는 것, 그것은 죽음에 다가서는 일이다. 조재흥은 인간에게서 오징어의 우둔함을 발견한 것 같다. 화려한 도시의 조명들은 인간 대 인간, 그 천연의 부딪힘을 인정하지 않는다. 빛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인간의 시선을 화려함으로 현혹한다. 이런 세태에 조재흥은 자신의 수필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우리네 삶에 악의적 거짓말이나 위증을 몰아낼 수 있다면 개인의 삶을 포함한 사회 환경이 보다 아름답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는 사람들이 나쁜 거짓말과 위증의 추방에 흔쾌히 공감하고 저마다 양심에 따르려 한다면 우리의 행복감은 크게 증대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의 충돌은 악의적 거짓말이나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을 자양분으로 돋아나는 독버섯 같은 거짓, 궤변, 억지논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로 인한 극단의 충돌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행복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나쁜 충돌이라 규정짓고 싶어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거짓과 궤변을 조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수필 <충돌>을 통해서, 넌지시 비판함으로써 작가적 사명을 다하고자 한다.
특히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유행처럼 번져 인간의 본성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는 현실로 볼 때, 조재흥 수필가가 견지하고 있는 비판적 정신과 사회 참여정신은 오늘 한국 수필문단의 큰 귀감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성과 양심의 회복에 따라 우리의 이기심은 강화되기도 혹은 약화되기도 한다. 거짓이나 억지 논리도 모두 이기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의 수필은 이런 한국사회의 모순을 정조준하는 것으로 가치를 발한다. 자신의 이익을 갈구하는 우리의 눈은 벌거벗은 육체뿐만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화려한 복장을 향해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삶을 사는 인간들은 상대방의 내면을 파고드는 일보다 그의 외면을 둘러싼 이익이 무엇인지에 더욱 몰두한다. 조재흥은 이런 현상과 문제점에 대하여 여러 수필들을 통해 고민하고 있다.
세탁기는 단순히 세탁을 해주는 기기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안정적이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즉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사물이 됨으로써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기호가치 역시도 함께 부여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가치가 공기처럼 부유하는 이러한 척박한 도시 속에서 우리가 살아나가야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재흥은 그 탁월한 방법으로 가치 평가적이지만 중도적 공감도 존중하고 극단을 피하는 아름다운 충돌의 탐색을 제시한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잠재력을 무한히 발휘하여 이런 아름다운 충돌을 꽃피워야 한다고 주장한다.궁극적으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 무장을 통해 인정할 것은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설득과 소통에는 논리에 대한 인정이 요구된다. 치열한 논쟁과 논박을 통하여 감춰진 비논리, 오류, 거짓이 걸러지고 극복되면서 밝은 미래는 열려진다고 보고 있다. 소통의 장이 이기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만이 제대로 된 인간적 관계를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단언한다.
그간 모든 인생경력이 자동차와 교통안전과 관련된 분야이니만큼, 유관한 사항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친정집을 찾아가듯 거리낌 없이 발걸음을 하겠습니다. 훗날,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어도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릇 모든 생명이 귀중한데, 지극히 존귀한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교통안전공단의 최우선적 설립목적이고 보면, 직장인으로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분야에 종사하였다는 자긍심을 갖고 떠납니다.
- 조재흥, <정년에 부쳐> -
사람들이 점점 덜 생각하고 점점 덜 성찰하는 시대다. 문명은 부와 풍요를 기억하지만, 가난과 공포를 비롯한 모든 억압이 정신의 노력을 꺾어버리고 좌절시키는 시대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의 높고, 탁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년에 부쳐>란 글을 토대로 판단해 볼 때,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의 거의 전부를 자동차와 교통안전에 관련된 분야에서 지낸 조재흥은 아마도 특별하고, 깊이 있고, 탁월한 사유를 하는 최후의 인간 중의 한 명일 것이다. 자신이 신명을 바쳐 일한 직장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곳에 최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작가는 분명, 소임을 소명으로 실천했던 분이라 하겠다. 작가가 묘사하는 현실은 암담하다. 그러나 그가 수필 속에 남긴 메시지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지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유사한 말을 계속 들어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새로운 법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이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첨단의 기법들을 양산하지만, 이를 꿰뚫어 볼 작가의 목소리는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다.
정년퇴직을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성공적인 1모작으로 이제 자평한다. 나름대로 사전수전 다 겪었을 이 시절의 모든 퇴직자의 노고와 2모작에 거는 기대에 깊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 느껴진다. 흔히 말하는 여생(餘生)이란 이제 인생 2모작 이후에나 향유할 수 있는 인생 3모작쯤에 해당될 것이다. 인생 3모작이라는 할 수 있는 황혼의 아름다운 여생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청년의 열혈용기로 이제 2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른다.
- 조재흥의 <정년소회> -
III.
정년은 조재흥에게 남다른 감회를 준다. 정년과 관련된 글이 두 편이나 된다. 인생 3모작이라는 할 수 있는 황혼의 아름다운 여생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청년의 열혈용기로 이제 2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키워가는 조재흥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재흥의 도전은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온갖 억압으로 정신의 노력을 꺾어버리는 이 시대에 정년 퇴직자에게는 의미 있는 고뇌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유하는 최후의 인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조재흥은 수필 속에서 과연 무엇을 남겨놓았을까? 고뇌에 빠진 작가의 상심을 위로하며, 다시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삶과 유리된 예술은 삶을 해친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은 결코 삶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
인간행위의 모든 산물은 우리 삶과 격리되어 있지 않다. 사유의 죽음으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우리 모두 안전을 모토로 해서 삶의 진정한 행복을 지켜나가는 패밀리스트가 되어보라는 것이 조재흥의 메시지다. 정년을 성공적으로 끝낸 조재흥 수필가에게 축하를 드린다. 그가 보여준 신중하면서도 사려깊은 행보, 명쾌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들어 있는 그의 논리, 그리고 어느 곳에 있던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려는 그런 노력들은 높게 평가받을 것으로 본다. 특히 공인으로서, 말과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글쓰기에 임하는 그의 작가정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정년을 퇴임하고 교통신문 경남지사장직을 맡음을 계기로 해서, 수필가의 삶이 더욱 치열해지고, 그래서 그의 수필이 더욱 고고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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