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설 이「2중 협주곡」은 원래 브람스의 제5번 교향곡이 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오랜 친구이자 음악의 동반자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요하임과의 사이에 생긴 작은 불화로 둘의 사이가 소원해지자 브람스는이 곡을‘바이올린 협주곡풍’으로 취급하여 요하임의 의견을 타진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화를 씻어버리려고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 브람스와 요하임의 불화 요제프 요하임(Joseph Joachim, 1831~1907 오스트리아)
브람스가 20살 되던 1853년에 첫 대면을 하게 된 요하임은 브람스의 지성과 매력에 흠뻑 빠져 평생 곁에 두고 싶은 친구를 발견한 기쁨에 넘쳐 브람스의 부모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미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정신없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요하임은 작곡을 포기했으나, 브람스와의 교분을 통해 브람스 음악의 가장 뛰어난 해석자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 자체를 함께 한 것이나 다름없는 위치를 누렸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30년 우정에 금이 간 갓은 요하임이 코트랄토 아미리에 바이스(Amilie Weiss)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평소 요하임은 질투심이 강해 불화가 잦았는데, 그 들 부부간의 심각한 다툼을 목격한 브람스가 역시나 가깝게 지내던 아말리에에게 “요하임이 아내에게부당하게 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위로하였는데, 아말리에가 이혼소송 중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근거로 이 편지를 제출해 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요하임은 브람스를 경원시 하게 되었고, 브람스는 자신의 사소한 위로 편지 한 장으로 금이 간 우정을 되돌리려고 고심하게 된다.
그러나 브람스는 얼마 전에야 <바이올린 협곡 d장조, 작품 77>을 완성한데다, 보수적인 성격과 나이가 들어 점점 회고적이 되어가고 있어서 ‘바이올린 협주곡’이 아니라 첼로도 독주 악기로 덧붙여서 관현악 튜티부가 독주 악기군과 대립하고 있는 17,8세기의「합주 협주곡 Concerto grosso」스타일을 근대적인 정신으로 부활시켜 보려고 생각했다. 이 2개 악기를 독주 악기로 사용하려 한데 대해서는 브람스 자신이나 요하임이나 클라라 슈만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큰 문제였으며 걱정거리였다. 클라라 슈만은 이 점에 대해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로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을 독주 악기로 함께 쓴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악기 자체도 광채가 없어 협주곡의 장래가 의심스럽다. 이것은 작곡가에게는 지극히 흥미로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의 많은 작품처럼 이 곡은 신선하고 온화한 필치는 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모든 악기 중에서도 가장 선율적이면서도 가장 변화가 풍부한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 악기로 하고 또한 이 2개의 악기에 높은 기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협주곡은 호흡이 맞고 또한 훌륭한 기교를 가진 두 사람을 연주자로 쓰지 않고는 전혀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 작곡의 경과와 초연 브람스는 1886~1888년의 3년간의 여름을 스위스의 베른에 가까운 토운에서 보냈다. 2년째인 1887년 4월 25일에 빈을 떠나 이탈리아를 여행하였고, 그 귀로인 5월 중순에 토운에 도착하여 체재하고 있을 무렵에 ‘요하임 사중주단’의 첼리스트이자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제2번, 작품 99>을 작곡자와 초연했던 하우스만(Robert Ha -usmann)으로부터 첼로 협주곡의 작곡을 의로 받았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브람스가 7월에 그 전부터 생각해 오던 ‘제5번 교향곡’의 설계를 바꾸어 ‘2중 협주곡’을 작곡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
7월 19일에는 지금까지 불화 중에 있던 요하힘에게 “자네에게 예술적 성격의 뉴스를 전하고 싶다. 그것에 대해 자네가 흥미를 가져 주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쓰고 있다. 이 서한은 분명히 새롭게 설계하는 2중 협주곡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하힘은 이 뉴스에 바로 호의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고 답을 보내왔다. 이어 7월 24일에는 처음으로 요아힘에게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고 말하고 요하힘의 충고를 바라고 있었다. 사보가 끝나자 악보는 요하힘에게 보냈고, 요하임은 연주상의 견지에서 약간의 비본질적인 정정을 요구해 왔다. 이렇게 하여 전곡은 8월 초에 완성되어서 요하임에게 악보의 사보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전해졌고, 동시에 쾰른 음악계의 유력자인 친구 프란츠 뷔르너에게 이곡을 쾰른에서 초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다. 이 곡이 2중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시도여서 브람스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요하임 외에도 첼리스트인 하우스만, 클라라 슈만, 출판상인 짐록 그리고 헤르츠겐베르크에게도 이야기하고 의견을 묻는 등의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이곡을 끝으로 죽을 때까지의 9년간은 주로 실내악과 성악곡에 심혼을 쏟았으니, 이 곡이 그의 최후의 관현악이 되고 말았다. 초연은 같은 해인 1887년 10월 18일에 쾰른에서 브람스 자신의 지휘 아래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과 첼리스트 하우스만의 연주로 행하여 졌다.
▲ 악기 편성 독주 바이올린, 독주 첼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A조) 2, 바순 2, 호른(E조, 제2악장에서는 불필요)2, 호른(D조) 2, 호른(F조, 2악장만) 2, 트럼펫(D조) 2, 팀파니, 현5부 ■ 해설 ▲ 제1악장 Allegro(빠르고 즐겁게) a단조 4/4박자. 상단에 링크 소나타 형식. 곡은 제1주제의 짧은 관현악의 총주로 시작되어 첼로가 바이올린의 반주를 거느리면서 들어온다. 강한 성격과 힘이 넘치는 주제와 서정적인 가락의 두 가지가 서로 반복하면서 면면히 연주된다.
▲ 제2악장 Andante(느리게) D장조 3/4박자. 3부 형식. 호른으로 느긋하게 시작되고, 이것을 관악기가 메아리치듯 여리게 이어 받는다. 그러면 현악기의 합창과 같은 반주에 실려 독주 바이올린과 첼로가 어딘지 쓸쓸한 듯한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는 마치 한가로운 전원에서 선선하게 부는 초저녁의 미풍을 연상케 한다. 제2부는 한가로운 F장조로 관현악만으로 여유롭게 시작하여, 이 한가로움을 길이 간직하듯이 독주 바이올린이 사랑스론 선율을 연주하고 독주 첼로도 이를 이어 받는다. 이어서 목관이 제2부의 처음의 한가로운 선율을 노래하다 조용하게 끝난다. 이 끝날 무렵에 독주 첼로의 트릴에 실려 독주 바이올린이 더블 스토핑에 이어지는 악구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제3부에서는 제1부의 제시가 리듬을 약간 변하여 나타나며, 코다에는 독주 바이올린과 첼로의 응답을 거쳐 최후에 이 두 악기가 합쳐져서 점점 여려지는 악구에서 조용히 끝난다. ▲ 제3악장 Vivace non troppo(빠르고 경쾌하게 그러나 과하지 않게) a단조 2/4박자. 론도 형식. 이 곡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이 악장이며 브람스가 좋아했던 집시음악이 여기서 선보인다. 전체 340마디 정도에서 관현악 부분은 60마디에 불과 하지만 그 구성과 효과 면으로 보아 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역작이라 할만하다. 독주 첼로가 연주하는 경쾌하고 사랑스런 주제가 제시된 뒤 가장 교묘하고 풍부하게 이 주제가 구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