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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곳/ 시간. 2006 7/7~7/8.
구룡령 출발 ; 오전 3:42
~주능선 ; 3:50
~안부 ; 4:00 생태조림 안내판. (북부지방 산림청)
~1100봉 ; 4:05 생태조림 안내판.
~안부 ; 4:10 옛구룡령?
~1121봉 ; 4:17 길은 좌로, 가파른 내리막.
~무명봉 우회 ; 4;35 길은 우로.
~치밭골령 ; 5:00
~갈전곡봉 ; 5:17/5:30
~1080봉 ; 5:55 가파른 내리막.
~무명봉 ; 6:05 삼각점 현리426.
~무명봉 ; 6:30 가파른 내리막,
~왕승골 사거리 ; 6:35/6:50
~평해 손씨묘 ; 7:00
~920봉 ; 7:05
~968봉 ; 7:17/7:23 삼각점. 전망봉.
~956봉 ; 7:30
~1020봉 ; 7:45 헬기장 흔적.
~연가리 갈림길 ; 8:05/8:40 좌측 계곡 식수 풍부. 아침식사.
; 삼각점 있는 작은 봉 지나,
~956봉 ; 8:52
~드럼통 묻힌 능선 ; 9:07
~1061봉 ; 9:22
~안부 갈림길 ; 9:30 좌; 인제 연가리골/ 우; 양양 연내골
~1115봉 우회 ; 9:37 단풍 군락지. 심한 내리막길.
~안부 ; 9:47 좌우 계곡 물뜨러 가는 길 흔적.
; 잠시 올랐다 가파르게 하강하면,
~황이리 갈림길 ; 10:05 넓은 안부, 큰 나무(참나무, 잣나무) 우거진 곳.
; 잠시 오르막 후 길은 좌로(서북) 향한 뒤 작은 봉우리에서
다시 우로(북) 방향을 틀고,
~무명봉 2개 ; 10:35 / 10:45 418번 지방도 보임. 조침령-구룡령 이정표.
~안부(옛 조침령?) ; 10:55
~무명봉 ; 10:58 삼각점, 이 봉 직전에 ‘구조침령’ 안내지를 붙여 놓았음.
~바람불이 갈림길 ; 11:02 쇠나드리 갈림길.
~796봉 ; 11:20
~조침령 ; 11:32 총 7시간 52 분.
2. 이동 거리
구룡령~갈전곡봉 : 4.2 km.
~쇠나드리 : 12.4 km.
~조침령 : 4.65 km. 총 21.25 km.
3. 32 회차.
(구룡령~연가리 갈림길) (3:42/ 8:05) 약 11 km.
여름 새벽 구룡령은 차가움도 더위도 느낄 수 없이 쾌적하다.
장마 중 비가 멈춘 날이기에 공기는 더 없이 맑다.
불빛 하나 없는 하늘의 별빛은 블랙의 하늘바닥을 배경으로 더 없이 반짝인다.
그 빛들은 가만있지를 않고 반짝반짝.. 계속 살아서 움직인다.
문득, 별이 생명체인가? 괜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어둠 속에서 대간 마루금으로 오르기 위해 고갯마루로 다가간다.
그곳에는 야생동물이 편히 다니라고 길을 만들고 차와 사람길은 그 아래 터널처럼 만들어 지나 다니게 했다.
문득 내 지나온 시간 속에 자리잡은 구룡령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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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속에 구룡령.
그때나 지금이나 역마살(驛馬煞)이 붙어 시간만 나면 몸을 가만 두지를 못했으니
처음 이 곳에 왔던 것이 20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속사에서 빠져 나와 이승복 기념관엘 들려 계방산 앞 운두령을 넘고 56번 도로로 들어서면 포장이 안 되어 먼지가 폴폴 나는 시골길이었다.
어느만큼 들어오면 흙길의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그 곳이 약수산 아랫마을 명개리였다.
우로 가면 두로령을 넘어 상원사 월정사로 가고, 좌로 가면 아흔 아홉 구비를 돌아
양양으로 넘어 가는 구룡령이었다.
갈천약수, 선림원지, 미천골 골자기에 들어 가고 싶어 이 고개를 처음 넘던 날도
7월 어느 주말 장마가 잠시 멈춘 날이었다.
하루에 기껏해야 차 몇 대 다니는 길이었으니 조용하다기 보다는 그저 한산하고
외진 고갯길이었다.
그 날은 왜 그리 바람이 세게 몰아쳤는지? 구름은 어째 이 고개를 못 넘고 고갯마루에
걸렸는지? 구름과 바람 속에서 잠시 머물렀던 구룡령이었다.
이제는 출가 해 한 사람의 아내가 된 둘째딸애는 내가 벗어 준 덧옷을 입고도 추워서 몸을 떨고 잠시 고개에 내려 서서는 바람에 날려 갈 듯 몸을 가누지 못했었다.
이 곳에 서니, 20년 전 그 날 나의 시간을 고스란히 이 곳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된다.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던 조그만 계집애 우리 딸들, 내 눈에만은 그래도 이뿌게 보였던 30대의 애들 엄마, 주인 잘 못 만나 비포장길에서 허구헌 날 먼지 뒤집어 쓰던 잊지 못할 pony2, 그리고 젊은 나..
이 고갯마루 내 시간 속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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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왼쪽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3:42)
아직 준비 안된 우리에게는 가파른 오르막이 버겁게 느껴진다.
천천히 올라 주능선길로 접어들고 (3:50) 이어서 1089봉을 넘어 간다.
내려선 안부(4:00)와 1100봉(4:05)에는 북부지방산림청이 세운 백두대간 생태조림 안내판이 서 있다.
잠시 후 비교적 넓은 안부로 내려 선다.(4:10) 아마도 옛구룡령인 듯하다.
새로 뚫은 고갯길들은 수레나 차량의 이동을 염두에 두었기에 길닦기 편한 곳에
산허리를 깎아 고갯길을 만든다.
그러나 옛고갯길은 마을에서 가까운 낮은 곳을 넘어 마을과 마을을 잇기에
자연스러운 산굽이나 물굽이를 따라 넘게 되어 있다.
이 곳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올라선 1121봉(4:17)은 방향을 좌(서쪽)로 틀면서 가파르게 내려 간다.
비온 뒤끝이라 길이 많이 미끄럽다.
급기야 최회장께서 잠시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둠 속에서 무심코 젖은 나무 뿌리를 밟은 것이다.
‘젖은 나무뿌리 나쁜 놈 ! ’ 이렇게 복창 한번씩 하고 가야 되겠다.
특징 없는 봉우리 앞에서(4:35) 길은 우로 돌아(서북) 간다.
잠시 올라 간 둔덕 위에 조그만 말뚝이 하나 박혀 있다.
노랗게 칠하고 ‘치밭골령’이라 쓴 글씨가 보인다.
아무래도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
누가 세웠는지? 왜 높은 위치에 령(嶺)인지? 크기나 색깔도 그렇고, 치밭골령은 또
무슨 뜻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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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밭골령.
치밭골령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이 고장 화전을 일구며 사시던 노인들을 만나 귀동냥해야 무슨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선 누가 세웠는지? 왜 안부가 아닌 높은 곳이 령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고개는 이 곳이 아니라 이 곳 아래 갈전곡봉(葛田谷峰)으로 가는 안부 평평한 곳이어야 할 것 같다.
이름 ‘치밭골령’은 한 번 생각해 보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치밭’은 이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 대원사길에도 ‘치밭목’이 있다.
의외에도 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갈전곡봉(葛:칡, 田:밭, 谷:골, 峰:뫼).
갈전곡봉은 ‘칡밭골 뫼’인 것이다.
‘칡밭골’은 발음하기 힘드니 세월이 가면서 ‘치밭골’이 되었을 것이다.
이 봉우리 아래 마을도 갈천리(葛川里:칡내골)이며 약수 이름도 갈천약수이다.
산과 고개와 마을과 약수는 모두 칡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지리산 ‘치밭목’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취가 많아 ‘취밭목’이던 것이 ‘치밭목’이 되었다
하는데 아마도 이 곳도 ‘칡밭목’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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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밭골령을 지나자 갈전곡봉과 이어진 산줄기가 나무 사이로 큰 줄기의 모습을
언듯언듯 나타낸다. 가칠봉, 개인산, 방태산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들이다.
이윽고 갈전곡봉에 도착한다.(5:17/5:30)
이름과는 달리 칡넝쿨은 이 곳에 오는 동안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는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쇠나드리 12.7km에 6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이 곳에서 좌로 가면 가칠봉, 우측길로 떨어지면 대간길이다.
대간 안내책자에는 왼쪽으로 가서 길 잃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 말씀 잊지 않고 우향우한다. 길은 가파르게 내려 간다.
안부 치고, 무명봉 하나 넘어(5:45), 1080봉에 도착한다.(5:55)
지난 해, 손목고도계로 체크해 본 이 곳 고도는 1115m 였었는데 정확한 높이는 알
수가 없다.
이 곳에서는 가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길게 고도를 낮춘다.
길은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울창한 숲길의 연속이다.
숲길, 그만그만한 봉을 오르고 내려가고 능선길이 이어지고 이렇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길이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어찌 보면 풍파없는 그날이 그날 같은 길이다.
잠시 오른 1000봉(손목 고도계)에는 삼각점이 있다.(6:05) 현리 426이라고 씌여 있다.
이후 서너 개의 봉우리를 넘어 마지막 봉(6:30)에 이르니 급격한 내리막이다.
엊그제 비가 내렸는지 길도 진창이어서 미끄럽다.
조심조심, 왕승골 사거리에 도착한다.(6:35/6:50)
이 고개 좌로는 기린면(인제) 아침가리로 내려 가고, 우측으로는 서면(양양)의 왕승골로
내려 간다.
이 곳에서 탈출하려면 왕승골로 가면 쉽게 탈출할 수 있다고 한다.
15분 정도 내려가면 휴양지 민가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표언복 교수의 안내글이 없어졌음)
북부지방 산림청의 안내판이 서 있는데 920봉, 968.1봉, 헬기장이 나타난다는 정보가
씌여 있다.
잠시 이 곳에서 물도 마시면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헬기장이 있다는 1020봉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다시 출발이다.(6:50)
어느만큼 오르니 오르막 능선길에 墓 한 基가 있다.(7:00)
평해 孫씨 묘소이다.
孫 縮地님을 향해 일행 중 누군가가 ‘孫씨들은 어찌 산꼭데기에 묘를 쓰느냐’고 弄을 건넨다. 태백산을 지날 때 우리의 진을 다 빼놓은 곳 , 신선봉에도 孫씨 가문 묘가 있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 후 920봉에 닿는다. (7:05) 멍석 펴고 놀아도 될 만큼 널찍한 봉이다.
간간히 보이던 산죽도 왕승골 갈림을 지나면서부터 많아진다.
작은 빗자루를 엮어도 될 것 같은 모양의 흰색 꽃 ‘흰숙은노루오줌’이 간간히이지만
끊이지를 않고 나타난다.
‘박새’도 큰 잎에 꽃대를 길게 올리고 드물게 보인다.
이미 흰꽃의 색깔이 녹슨 빛으로 변했다. 곧 질 것이다.
함박꽃, 목련꽃이 그렇듯 흰꽃은 한창 때에는 순백의 청초함을 보이건만 질 때가
되면 그 색이 칙칙하다.
지는 꽃이 어찌 그렇지 않으랴.
사람인 나는 꽃이라면 아예 흰꽃은 싫구나.
그저 민들레처럼 피었다가 바람불면 홀씨 되어 날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전망이 터진 968봉에 도착한다.(7:17/7:23) 삼각점이 있다.
다행히도 이 곳은 나무를 베어 놓아 사방 시야가 확보된다.
동쪽으로 조봉의 머리가 보이고 그 아래로는 산과 계곡들이 雲海에 잠겨 있다.
앞쪽으로는 가야 할 대간길이 운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좌로 1020봉, 956봉, 정면으로 1114.6봉, 그 오른 쪽으로 1061, 1090봉도 보인다.
아쉽게도 점봉산이나 대청봉은 雲霧에 시야가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대간길 가면서 지나 온 능선길 돌아 보고,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인생길도 시야 트인 봉우리에서 숨고를 때,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
슬슬 출출해져 온다.
왕승골 안내판에 그려져 있던 헬기장을 향하여 앞으로.
956봉 도착.(7:38) 앉을 만한 장소가 없다.
다시 힘내고 1020봉 도착.(7:45)
헬기장 흔적은 남아 있는데 숲이 우거진 가운데 조그만 공간이 있을 뿐이다.
할 수 없다. 안부를 향하여 긴 하강길로 접어든다.
드디어 널찍한 안부 고개길, 연가리골 갈림길에 도착한다.(8:05/8:40)
안내판이 서 있는데 연가리골 샘터임을 알리고 있다.
좌측으로 50여m 내려가면 방태천으로 내려가는 연가리골 최상류 계곡이 흐르고 있다.
수량도 풍부하고 지난 해 낙엽에서 우러난 오크향 같은 탄닌의 풍미가 느껴지는 시원한 물이다.
몇 사람 정도 은밀하게 알탕을 한들 불편하지 않은 수량이다.
오늘은 덥지가 않아 2리터 가지고 온 물이 반은 남아 있다. 구지 계류로 내려 가지 않아도 된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김밥 대신 떡이다. 산에 오는 날은 ‘가볍게 살기’이다.
산 내려 갈 때까지 굶주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에너지源이면 족하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 갔다 하면 가장 ‘무겁게 살기’이니 매번 도로아미타불이다.
배 두드리며 먹는 점심, 처음처럼 목 축이다 이슬에 젖어 흥건해니..
에라 만수무강이로다.
그뿐이랴 양재동에서, 영등포에서 ‘情이란 무엇인가?’
형님, 아우 ‘영등포의 밤’ ‘말죽거리 夜話’는 또 그렇게 깊어간다. )
권영호님이 상추를 가져왔기에 상추에 떡을 싸서 먹는다. 그것도 별식이다.
손수 농사지은 풋고추도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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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가리골 - 삼둔사가리.
정감록(鄭鑑錄) 이본(異本: 정감록은 正本이라고 부르는 책 이외에 여러 種이 있다)에는
난리 때 피난하여 살 만한 땅으로 ‘삼둔사가리’가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살만한 땅이 숨어 있는 곳이 오늘 지나가는 대간길, 구룡령~조침령의 왼쪽 골짜기(홍천 내면, 인제 기린면)인 것이다.
깊은 산골에 숨어 삼재(三災)를 잊고 농사지어 복되게 살 수 있는 곳.
그 숨겨진 땅이 이 곳 산 사이 계곡 곁에 있는 것이다.
‘둔’이란 비교적 높은 곳에 평평한 땅을 말하는 것이고, ‘가리’란 계곡 가 평평한 땅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 곳에는 삼둔-살둔(생둔), 달둔, 월둔이 있고, 사가리-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또는 곁가리)가 숨어 있다.
지나 온 왕승골 갈림길 좌측이 아침가리(朝耕洞)이고 현재의 위치 왼쪽이 연가리이다.
이제는 숲과 계곡이 깊어 최고의 well-being 여행지(산행지)가 되었으나 60년 대
이전까지만 해도 화전을 일구던 산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어느 가을날 단풍과 계곡을 느껴 보려면 기린면 방태천으로 들어 와 아침가리골로
접어들어 대간능선 왕승골사거리로 오른 후, 오늘 우리가 지나 온 대간길을 따라
연가리 갈림길에서 연가리 골로 내려 가면 더 없는 가을산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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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리골 갈림길~조침령) (8:40/11:32) 약 10km.
배도 든든하다. 후반부 대간길 출발이다.(8:40)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956봉에 닿는다.(8:52)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구별 안 되고 특징이 없다.
크지는 않으나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풀들은 산과 길에도 가득하다.
좀처럼 햇볕 한 번 받지 않고 가는 대간길이다.
오늘의 대간길은 썬크림도 바를 필요가 없다.
길은 잠시 내려 가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에서와는 달리 특별히 좌우로 내려가는
길의 흔적은 보이지를 않는다.
여러 해 사람이 다니지를 않으니 숲이 길을 막은 듯하다.
1061봉을 향하여 길고 완만히 오른다.
좁은 오르막길 좌측 아직도 드럼통이 입을 벌리고 묻혀 있다.(9:07)
혹시라도 한눈 팔아 발이라도 빠지면 다칠 위험이 있는 물건인데 아직도 치우지를 않았다. 뱀이나 길짐승을 잡기 위한 함정일 것이다.
들여다 보니 커다란 고슴도치 한 쌍이 빠져 꼼짝없이 잡혀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포천 임소장이 스틱으로 꺼내어 숲으로 돌려 보낸다.
길은 완만하게 오른다.
산 답지 않게 널찍한 둔덕도 있다.
멧돼지들이 완전 헤집어 놓았다. 얘네들 운동장이다.
지금까지도 멧돼지가 파헤친 곳이 많았지만 이 곳부터는 더욱 심하다.
평퍼짐한 능선을 지나 1061봉에 닿는다.(9:22)
잠시 하강 후 단풍군락지가 있는 1115봉을 향한다.
대간길은 1115 앞봉을 지나(9:37) 우측(東)으로 방향을 틀어 하강 한다. 무척 가파르다.
오늘 등정길 중 가장 가파르고 긴 길이 아닐까.
이 내리막길 좌우로는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한여름인 지금은 녹색뿐이다.
하강길끝 조그만 안부에는 좌우로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인다.(9:30)
아마도 계곡에 물 뜨러 다닌 흔적인 듯하다.
지도를 보니 좌우로 우물 井 자가 그려져 있다.
이후 길은 잠시 오르고 좌로 방향을 틀어 급강하 후 우로 틀어 내려 가더니 수백평은
실히 넘는 넓은 안부에 도착한다.(10:05)
참나무가 크게 자라 있고 잣나무 같은 침엽수도 몇 그루 있다.
이 곳에서 야영을 한다면 한 학급 머물기에 불편함이 없을 듯하다.
황이리 갈림길이다.
우로 내려 가면 황이리로 연결되고 그 곳은 신라적 절(寺) 선림원 터가 자리잡고 있는 미천골(米川골)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예전에는 이 골짜기 한봉을 무척 알아 주었다.
20년 전에도 한 20만원 했던 것 같은데 손이 떨려 차마 숱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길은 다시 잠시 올라 좌로 틀고(서북) 잠시 후 작은 무명봉에서(10:25) 우로 틀어
북으로 향한다.
이름 없는 널널한 봉우리를 지나는데(10:35) 여기서부터는 거의 높낮이 변화가 없는
능선길을 간다. 나무는 빽빽하고 시야는 가려 숲속 길짐승처럼 간다.
이윽고 능선길 끝봉에 닿는다.(10:45)
시야가 트이면서 저 아래 아스팔트길이 보이고 간간히 차 다니는 것이 보인다.
현리에서 진동리로 들어가는 418번 지방도로일 것이다.
시야도 가리고 변화도 없는 곳에서 드디어 변화를 맞으니 반갑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 곳이 어디인지는 표시가 없다.
그저 左는 조침령, 右는 구룡령 표시가 되어 있을 뿐이다.
참 싱겁기도 하구나. 거기서 와서 거기로 가는 사람들인데 누가 그걸 모를라구..
내려가는 길은 간간히 나무층계가 흙속에 박혀 있다.
비로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안부에 닿는다(10:55) 억새와 나리꽃이 있다.
좌우로는 풀이 우거져 사람들이 다닌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다시 잠시 오르는데 근처 동네 음식점 아저씨가 이 곳이 ‘옛조침령’이라고 종이에
써 붙여 놓았다.(10:57) 잠시 후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10:58)
그런데 헷갈린다.
우선 이 봉우리 다 올라 온 곳이 령(嶺)일리는 없을 것 같고, 방금 지나 온 안부가
옛조침령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기도 잠시, 연가리골 갈림길 이정표에는 분명 옛조침령은 바람불이와 조침령
사이에 표시해 놓았으니 이 안부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궁금증을 접고 나무층계와 흰로프로 안전을 도모한 내리막길로 내려 온다.
그 곳에는 ‘바람불이’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다.(11:02)
얼마나 바람이 불기에 ‘바람불이’인가.
이 곳에서 좌측으로 10분쯤 내려 가면 ‘쇠나드리(牛灘洞)’마을이 있다.
황소까지 날려 보낼 만큼 바람이 센 마을이라는데 이 곳을 흐르는 내는 여울이 급하고
바람이 세어 황소도 건너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 곳은 도로포장이 되고 곰배령이 뜨는 바람에 소란스러워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오지로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도 조만간 끝날 것이다.
이 고갯길 어딘가로 ‘동서고속도로’가 지나게 되고, 내년이면 뚫릴 조침령터널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대간의 脈은 이 곳에서 어느 곳보다도 심하게 끊기게
될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氣가 흐르고 있는 오늘 이 길을 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제 오늘의 대간길은 마지막 구간이다.
허리 높이쯤 오는 키에 작고 붉은 꽃을 달고 있는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흰로프로 안전줄을 친 796봉을 오른다.
오늘의 대간길 마지막 구간은 호되게 교육을 시키시지 않고 많이 봐 주신다.
11:20분 마지막봉 796을 지난다.
잠시 높낮이 변화가 없는 능선길이다.
능선이 끝날 무렵 우거진 나무 사이로 흙길의 조침령이 조용히 뻗어 있다.
잘 다듬어 놓은 나무판길을 지나 흙길로 내려 선다.
‘새도 자고 간다.’던 조침령이다.(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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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님 잘읽었습니다.항상 넉넉하신 마음과 자상하심에 함께 하는 산행이 더욱 즐겁습니다.감사드립니다.
대간길 읽다가 보면 꼭 고3 학생된 기분이...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덕에 역사책을 펴 들은 기분입니다. 매번 감사드리고 함께했던 시간이 늘 고맙습니다.
잘 읽었읍니다. 자세한 산행기, 매번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