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60)-General manager의 힘(2)
프랑스에 도착한지 3일째다. 한나절이 되어서 직원이 찾아와 공장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공장장에게도 더 큰 물방울 연수정 목걸이를 회장님 선물이라고 전했다. 그는 마이스터가 휴가를 떠나지 않은 작업원을 찾고 있다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자고 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엔지니어로 일본 도시바에서 작업을 해 보았지만 공기가 며칠씩 늦어지는 일도 있고 한국까지 운송기간도 감안해서 회장님이 지시한 8월 말보다 보름을 앞당겨 8월15일까지 꼭 수리되어 운송할 수 있도록 부탁과 함께 긴박성을 강조했다. 그도 엔지니어 출신이라 잘 안다면서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 허탈하게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이 마이스터 마저 휴가를 떠나버리면 모든 게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바로 케익을 사서 들고 마이스터 집으로 혼자 찾아 갔다. 벨을 눌렀더니 부인이 알아보고 남편을 불렀다. 그는 귀찮은 듯이 들어오라는 소리도 않고 현관에서 작업원을 찾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며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이것은 내가 주는 선물이라며 케익과 연수정 브로치(Broch)를 부인에게 전달하고 꼭 일이 되도록 도와 달라는 말만 하고 되돌아섰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4일째가 되었다. 답답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 공장으로 혼자 찾아갔다. 정문 경비도 자그마한 동양인을 알아보며 공장장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손사레를 저었다. 시위를 하듯이 정문에서 계속 기다렸더니 경비가 전화를 받으라는 흉내를 내서 받았더니 공장장이었다. Mr. Ahn이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지시를 했으니 호텔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힘 없이 호텔로 돌아왔지만 저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공장장만 믿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날이 어둡기 전에 혼자 마이스터 집을 다시 찾아갔다. 세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부인이 연수정 목걸이와 브로치를 차고서 반갑게 맞아주면서 볼키스까지 해 주었다. 육중한 서양여인의 체취가 느껴졌다. 마이스터도 들어오라고 해서 거실에서 대좌했다.
그는 작업원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와의 휴가 중 업무(Holiday work)에 대한 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회사직원이 일하는데 무슨 계약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어떤 계약이냐고 물었더니 내일 공장장실에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혼자 왔으니 안들은 걸로 하고 귀 띰을 해 주면 요구조건이 달성되도록 협조하겠다며 그를 달랬다. 그는 휴일근무 수당과 별도휴가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아 내일 회의실에서 만나자고 하고 호텔로 돌아와 본사에 중간보고 겸 전화를 걸었다. 작업원은 구해질 것 같은데 조건이 있어 내일 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 했다. 본사는 무조건 일이 추진되도록 사인을 다 해주고 일만 시키라며 나머지 것은 외자부가 해결할 것이라 했다. 아무것도 공식적인 것은 이루어 진 게 없지만 프랑스에 도착해 처음으로 숙면을 했다. 닷새째 되는 날이다.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오기만 기다렸지만 무소식이었다. 다시 공장장실로 찾아갔다. 그는 사내 문제를 협의중이니 호텔에서 기다려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 다시 호텔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후 좀 늦어서야 연락을 받고 혼자 걸어서 공장장실로 갔더니 서너 명이 앉아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명함을 살펴보니 Union이라는 직함이 보였다. 그가 회의 자료를 배부하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설명을 했다. 그는 유창한 영어를 했지만 내가 서툴어 서류를 먼저 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여러가지 문구가 있었지만 모든 문장은 최선을 다한다고 되어있지 꼭 한다는 단어가 없었다. 언더라인을 해 온 곳은 작업수당은 휴가 중이라 일상의 2배, 작업이 끝난 후 이 작업팀에 별도의 휴가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당시 포철도 휴일수당은 2배였다. 별도의 휴가를 주는 것은 쥬몽 슈나이더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더니 공장장은 그 항목을 제외하기를 바랬다. 이유는 휴일수당을 주었으니 휴가는 사용한 것이고 회사도 휴가 후 각 섹션별로 작업공정이 짜여 져 있다는 것이다. 마이스터는 아무 말도 않고 노동조합에서 나온 분이 강력하게 별도휴가를 주장했다. 회사직원이 작업하는데 왜 별도 계약이 필요하냐고 노조원에게 물었다. 그는 휴가중에 비상사태로 일어난 작업이라 별도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아서 저녁을 내가 사겠다며 저녁후에 다시 이야기 하자고 제의했더니 공장장은 서로의 의사를 알았으니 좀더 생각해서 내일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회의를 마쳤다.
공장장과 단 둘이서 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회사가 양보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노조가 개입되어 관례가 되면 회사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휴일수당을 지불하는데 별도휴가를 또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번 합의해주면 향후 휴일근무시 수당은 수당대로 다 받고 또 휴가를 또 달라고 사사건건 주장할 것이라고 했다. 별도 휴가를 얻으려면 정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공장장의 결심은 확고 했다. 나도 관리자로서 수긍이 갔지만 포철은 하루가 급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침대에 누워 머리를 계속 굴리며 대안을 찾았다. 밤새 생각한 게 이 모터는 어차피 쥬몽 슈나이더 직원이 수퍼바이저(Supervisor)로 와서 포항 현지에서 조립하게 되어있어 한국 출장을 미끼로 별도 휴가를 삭제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공장장에게 전화로 이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그는 수퍼바이저로 갈 팀은 이 모터를 제작한 섹션이고 이 팀은 같은 일을 하지만 휴가 중 급히 차출한 인원이라 섹션이 다르다고 했다. 또 휴가 후 각 섹션별로 작업계획이 달라 출장팀을 바꾸기는 어려우나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오전 내내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공장장에게 전화로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공장장은 포스코가 급한줄은 잘 알고 있고 자기들도 메이커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노조와의 일은 관례를 남기면 향후 관리가 어려워진다며 노조측에서 양보를 않으면 이들을 휴가대신 수퍼바이저로 파견해주도록 요구해 달라는 제안을 해 주었으면 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공장장은 회사규칙과 노사협약에 의해 휴일수당을 지급하면 휴가를 사용한 게 되어 별도휴가는 불가하다며 별도 휴가를 줄 경우는 정상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며 노조에게 추가 휴가는 삭제할 수 있냐고 또 한번 물었다. 그는 작업원들이 별도 휴가를 안주면 모두들 자기 일정대로 휴가를 떠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이스터는 아무런 말이 없다. 공장장이 내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한국은 일본(당시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유럽에 잘 알려진 나라) 옆에 있는 나라지만 로마보다 더 오랜 오천 년의 역사가 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여러분은 프랑스내 휴가는 언제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공장장께서 이번 작업팀을 수퍼바이저로 한국에 보내어 주시면 여러분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별도 휴가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 동양을 가 보신분이 있느냐고 한번 물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서양을 쉽게 여행하지 못하는 만큼 그들도 동양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다. 이것은 프랑스 작업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마이스터가 공장장에게 수퍼바이저로 파견해 줄 것인지 여쭈었다. 공장장은 작업일정을 조정해서 그럴 수 있는지 체크해 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작업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양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심이 작동한 것이다. 노조측도 마이스터를 보고 당신들 옵션(Option)일라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마이스터는 자기들끼리 협의해서 또 내일 만나자고 하며 헤어졌다. 또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쇠뿔은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떠 올라 혼자 마이스터 집을 또 찾았다. 네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또 부인이 반갑게 포옹까지 해주면서 볼키스를 해주며 프로치와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서양여인의 체취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마이스터와 거실에 마주 앉아 휴가대신 수리완료 후 한국으로 출장 오시면 동양의 체험을 느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한국에서 그만한 휴가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니 GM인 나를 믿고 오라고 간청했다.
그는 남 프랑스로 갈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서를 보여 주며 부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비행일정은 며칠 후였고 호텔예약은 2주일간이었다. 이제 부인에게 매달릴 차례다 싶어 부인께서 휴가를 못 떠나 서운하겠지만 마이스터가 동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휴가를 캔설 해주시기를 부탁한다며 간청했다. 부인은 쉽게 대답대신 물방울 연수정 목걸이와 브로치를 보여주면서 남편에게 도와주고 한국도 다녀오라고 했다. 이번엔 내가 그 여인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마음만 고마웠다. 드디어 마이스터가 입을 열었다. 공장장 지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섹션의 직원들은 모두 휴가를 떠났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다른 섹션 소속이라 그들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어서 그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함께 그들 집을 방문하면서 양해를 구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급히 장미꽃 6송이를 그의 자동차에 싣고 그의 안내에 따라 한집 한집 방문했다. 이미 공장장이 일을 하라고 작업지시를 한 터라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되었는지 그들은 마이스터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휴가기간에 작업을 하고 한국으로 출장을 오면 동양의 문화도 느낄 수 있도록 GM인 내가 보증하겠다며 휴가 대신 출장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하며 명함을 주었다. 사실 그들은 평생 GM의 명함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블루칼라 들이었다 여섯 집을 방문했는데 반은 하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반은 휴가를 떠나야 된다고 했다. 마이스터는 자기를 포함해서 4명이면 작업을 할 수 있다고 귀 띰을 했다. 장미꽃은 다 주었지만 긍정적인 직원 부인에게는 작은 물방울 연수정 목걸이를 부인에게 선물했다. 엿새째 되는 날 회의는 순조로웠다. 회의요원이 몇 사람이 더 늘었다. 작업원들도 회의장 밖에서 웅성거렸다. 그들은 회의도 하기전에 한국이 중국과 어떠냐 고 물었다. 동양문화는 중국에서 발상 되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어 한국을 보면 중국과 일본을 다 보는 것과 같다고 거짓말을 덧붙였다. 회의가 시작되자 공장장의 귀 띰에 따라 한국 모터 조립팀을 이 팀으로 대체해주고 유니온에게는 출장으로 대체해 주기를 제안했다. 공장장은 마이스터에게 동의하냐 고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집집마다 다니며 장미꽃과 연수정을 선물한 효과가 나타났다. 노조는 문건을 새로 작성해서 사인을 하려고 보니 작업은 그 다음날이 아니고 2일뒤부터였다.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그 다음날부터 시작하여 줄 것을 요청했다. 공장장은 주말은 어렵고 어차피 자재원과 기중기공이 휴가에서 돌아와야 된다며 사인을 하도록 요구했다. 그 사이 주말이 끼여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요일감각이 없어졌다.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고 다짐을 받았다. 공장장은 8월 15일까지 완료하는 공정을 짜라고 지시했고 출장일은 8월 20일 전후로 작업 상항에 따라 다시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일정이 잡혔다는 게 고마운 일이었다. 주말은 별일 없이 본사와 통화만 했다. 설계 도면을 찾았고 자재는 자기가 마이스터와 함께 비상키로 열어서 확인했다고 했다. 기중기공은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지만 자재준비 시간이 필요해 무난하다며 별일 없으면 순조롭게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에 소식을 보고 하고 이틀을 푹 쉬었다. 프랑스 도착 9일차 월요일 아침 한국에서 준비해 온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장실로 갔다. 그는 작업복을 보고 깜작 놀라며 같이 일할 것이냐고 물었다. 필요하면 함께 일 할 수도 있지만 작업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더니 역시 GM이 되어도 엔지니어의 본성은 버리지 못한다며 자기가 관리를 할 터이니 맡겨 달라고 하며 공정표를 설명하고는 임시출입증을 주었다. 현장에서 작업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자재창고에서 각 동선(角 銅線)과 절연 테이프를 가져오고 설계도면을 보고 코일 포밍 틀도 찾아 거치했다. 그들은 내가 설계도면을 보며 직접 체크하는 걸 보고는 ‘이런 작업을 해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엔지니어 시절에 설계과장을 했다고 했더니 그런데 어떻게 그리 젊은 나이에 빨리 GM이 되었냐고 물었다. 웃음으로 대답했다. 오전이 다 가 중식시간이 되었을 때 공장장도 현장을 찾아주었다. 그들은 공장장에게 불어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공장장은 웃으며 저 분은 엔지니어 출신이고 도시바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니 쥬몽 슈나이더가 흠이 잡히지 않도록 잘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큰 공장에 다섯 사람이 일하는 게 소꿉장난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첫발을 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