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삼근(麻三斤)
삼 세근이다.
동산수초(洞山守初) 선사(禪師)께서 양주(襄州) 동산(東山)에 머무실때 어떤 객승(客僧)이 찾아와서 묻기를 어떤것이 부처님니까? 선사(禪師)가 답(答)하시길 삼 세근이니라.(麻三斤) 하셨다. 중국 호북성(湖北省)은 삼베(麻)가 많이 나는 특산지(特産地)로 유명한 곳이다. 당(唐)나라 때 국세(國稅)로 최소한의 양(量)으로 삼 세근을 받쳤다고 한다. 아마 마삼근(麻三斤) 공안(公案)이 나온 때가 동산선사(洞山禪師)께서 저울로 삼을 달고 있을 때에,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님니까? 물으니, 동산선사께서 지금 삼을 달아보니, 삼 무게가 세근이 나왔다. 그래! 삼세근(麻三斤)이니라. 하고 현존(現存) 찰나(刹那)를 답(答)한 것이 아니였나? 생각이 든다. 선사들은 현존(現存) 삶을 중시(重視)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의 현상(顯彰)을 언어(言語)로 토출(吐出)한 것이 선문답(禪問答)이다. 부처와 삼 세 근과는 논리적(論理的) 근거(根據)는 맞지 않다. 그러나 현존중시(現存重視) 언구(言句)가 선사들의 활구언어(活句言語)이고, 화두공안(話頭公案)이다. 그래서 이치로 따져보면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많다. 문자(問者)가 듣고도 답자(答者)의 말뜻을 모르면 문제제기(問題提起) 화두(話頭)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동산선사(洞山禪師)의 마삼근(麻三斤)은 천칠백(千七百) 공안(公案) 중에 가장 유명한 화두공안(話頭公案)이다. 선사들의 선문답(禪問答)은 말뜻을 모르면 화두공안(話頭公案)이 된다. 그렇게 모아진 것이 천 칠백공안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선방(禪房)에서는 화두(話頭)를 들고 참선(參禪)을 한다. 화두(話頭)가 타파(打破)되어서 깨치면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다.
화두(話頭)는 비논리적(非論理的)이라 생각이나 지식 알음알이로 풀려고 하면 풀리지도 않고 허송세월 골머리가 깨진다. 언어(言語)나 문자(文字)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이 생각 저 생각을 몽땅 궁지(窮地)로 몰아넣는 것이 선사(禪師)들의 언어(言語) 화두(話頭)다. 동산선사의 마삼근(麻三斤)이 그 때도 전국적으로 알려져서 유명한 공안화두가 되었다. 이 마삼근 소식을 듣고 수십년 선방(禪房)에서 수행(修行)했던 어떤 수좌(首座)도 마삼근(麻三斤)의 진의(眞意)를 몰라 당대에 고승(高僧) 선지식(善知識)인 지문선사(智門禪師)를 찾아뵙고 물었다. 큰 스님! 소납(小衲)은 참선을 한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마삼근(麻三斤)의 진의(眞意)를 모르겠습니다. 어찌하여 동산선사님께서는 마삼근(麻三斤)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지문선사(智門禪師)께서 묻는 말을 듣고 화족족(花簇簇) 금족족(錦簇簇)이니라. 답하시면서 알겠느냐? 하셨다. 화족족(花簇簇)은 꽃이 떨기 체로 많이 핀 모습이고, 금족족(錦簇簇)은 비단 폭이 황홀하게 나부끼는 형용사이다. 마삼근도 모르는 그 수좌가 어떻게 화족족(花簇簇) 금족족(錦簇簇)을 알아듣겠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모르겠다고 하는 그 수좌를 보고 남지지죽(南地之竹) 북지지목(北地之木)이니라. 지문선사가 답을 했으나 그 수좌스님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로 갈수록 의문투성이 말만 듣고 어리둥절 답답한 마음에 바로 동산선사를 찾아가서 지문선사를 찾아갔으나 마삼근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삼근의 진의를 깨닫게 하여 달라고 청법(請法)을 하였다.
동산선사께서 수좌의 말을 듣고 내가 너를 위해서 설할 수는 없으나 대중(大衆)을 위해서 설하겠다고 상당(上堂)하여 말하기를 언무전사(言無展事)하고 어불투기(語不投機)라 승언자상(承言者喪)하고 체구자미(滯句者迷)이니라. 설법하셨다. 말로는 일을 다 펼 수가 없고, 언어로는 근기에 맞출 수도 없고, 말로 이르려고 하는 자는 말에 죽게 되고, 문자에 얽매인 자는 미혹하여 어리석은 자라고 설파하였다는 선화(禪話)다. 마삼근(麻三斤) 공안(公案) 화두(話頭)는 생각 이해(理解)로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에 대해서 북탑조(北塔祚) 선사께서 게송(偈頌)을 붙였다. 삼가죽 서근이라 말을 해도 저울대를 쓰지 않았네(麻皮三斤不用秤), 저울 머리에 어찌 파리가 앉은 것을 용납하겠는(秤頭那肯坐於蠅)가? 한 생각이 겨우 일어나면 힘줄과 뼈골이 드러났(一念纔生筋骨露)네, 부질없이 다시 정반성(定盤星)을 찾는구나!(徒勞更覓定盤星) 부처를 어떻게 말이나 문자로 설명하여 이해를 시킬 수가 있겠느냐이다. 그래서 조사선문(祖師禪門)에서는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라 했고, 선(禪)의 근본(根本)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자오(自悟) 체증(體證)에 있다는 입이 쓰도록 말씀하셨다.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무게를 다는 저울대 위에 파리가 앉은 것도 용납지 않는 것이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