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발(啓發)-뜻과 지식 지혜를 열어 일깨워준다 이상호(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 계발(啓發) : 啓 -열 계(열다, 가르치다, 인도하다), 發 쏠 발(쏘다, 보내다, 발전시키다.)
계발(啓發)의 뜻은 뜻을 열어주고 지식과 지혜를 넓혀 주며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하여 맑게 해 줌을 일컫는다. 이 말은 공자의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것으로 공자의 교육 방법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제자를 교육할 때 그 제자의 특성과 질문에 따라 각기 다르게 교육하였는데 교육할 때 학습자가 스스로 배움과 궁리의 절실함이 있어야 교육과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짐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이 말은 대체로 ‘창의성이나 소질을 계발하다.’는 말로 쓰인다. ------------------------------------------------------------------------------------------------------------------------------------
1. 강요에 의한 기계적 학습의 시대의 아이들 교육이 잘 이루어지려면 학습자(학생) 스스로 배움의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 배움의 의지와 열정이 없는데 가르치려 하면,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쌍방 모두 고통일 수 있다. 그런데 옛날에도 권세나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자제를 가르치기 위하여 어린 나이부터 무척 애를 써 왔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모두에게 유효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현상은 오늘날은 더 심하다. 특히 옛날에는 신분에 의해 학문하는 자가 제한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은 보편화된 전 국민 교육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교육은 만인의 권리이자 의무가 되었다. 부모들은 저마다 자녀를 똑똑하게 교육하기 위해 온갖 투자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은 치열한 삶의 영역을 넘어 치열한 자녀교육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아는 분의 딸은 사업가와 결혼했다. 딸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세 살 정도 되어 말을 배울 때부터 가정교사를 들였다. 가정교사도 하나가 아니었다. 영어 가정교사, 중국어 가정교사를 들여 오전은 영어를 배우게 하였고 오후는 중국어를 배우게 하였다. 이제 막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 무슨 가정교사냐는 의문을 가지겠지만 그의 딸은 그랬다. 그분의 딸은 학교 다닐 때 공부가 늘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스스로는 그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고 아이를 똑똑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조기 언어교육에 매진한다지만 너무한 일이었다. 이제 막 아빠, 엄마라는 말을 배우고 엄마와 놀면서 마음의 정을 키워갈 시기에 아이에게 우리말보다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친다니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자녀교육에 있어서 정말 부모가 문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보도(동아일보 2023. 7. 6)에 의하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영어유치원이 치열한 경쟁 속에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세살배기 어린아이를 점심시간 쪼개기를 하여 영유입학(영어유치원 입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영어 입학 능력이 모자라면 대입처럼 재수도 불사하여 기어코 우수하다는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유명한 영어 학원가에서 성행 중임 이 영어유치원은 모두 ‘학습식’인데 유치원 졸업 때까지 미국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이르는 영어 읽기, 말하기 등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교육목표라고 한다. 아이들은 4세부터 입학하여 3년간 빠른 속도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입학 자격부터 까다로우며 일정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학원은 특정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영재테스트 ‘상위 5% 영재’ 성적표를 요구하거나 5세 반에 ‘유급제도’를 도입하는 학원도 있다고 했다. 학원가들은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고자 하는 3세짜리 아이를 의자에 앉혀놓고 5-10분간 검사를 하여 영어 영재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어느 정도 영재성이 인정되는 아이만 선발하여 입학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하여 3세부터 영어 교육에 매진하며 영어유치원에 입학하지 못하면 재수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3세부터 점심시간 쪼개기 과외도 불사한다고 한다. 유치원비도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이 월 180만 원에서 200만 원이며 여기에 방과 후 학습비와 교재비는 별도라고 한다. 이것은 엄연한 부모의 과열 경쟁 심리와 왜곡된 자녀교육관이 빚어낸 병폐의 하나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차원을 넘어 아이에 대한 고문이며 아이의 바람직한 발달과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특히 3세의 아이는 한창 말과 사회성을 배울 시기다. 부모와 또래의 활동을 통해 놀이와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그런 시기에 영어학습의 세계로 내몰리는 아이들은 어쩌면 불쌍한 아이들이다. 우리나라의 의대 광풍은 하나의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여기에 영어유치원 광풍 또한 이에 못지않다. 영어유치원이라는 학원은 그들의 유명세를 키우기 위해 일정한 능력을 가진 소수정예를 선발하여 홍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방법은 대체로 스파르타식의 레벨식 교육이다. 아이들은 주어진 프로그램에 기계적으로 적응하며 학습해야 한다.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테스트에서 떨어져 다음 단계의 레벨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면 3~6개월 후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입학한 뒤 진도를 못따라가면 유급을 한다. 여기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유치원에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학습 스트레스에 아이들을 내몬다. 어쩌면 교육이란 이름을 붙인 잔인한 고문이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유급이란 낙인을 경험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3세부터 이런 학습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수많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어 자녀의 소중한 인성과 소질을 망가뜨린다. 소질의 계발(啓發)은커녕 소질의 계발을 가로막고 망가뜨린다.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여 제대로 된 인성과 학습 능력을 가지고 삶을 밝게 개척하리라고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과잉된 부모들은 여기에 몰입한다. 내가 아는 지인의 딸처럼 말이다. 부모들의 광기 어린 왜곡된 교육관이다. 이런 학습 풍토에서 계발은 일어날 수 없다. 교육은 그 목표가 잠재력의 계발에 있다. 계발은 그가 가진 뜻(목표)과 잠재된 소질을 일깨워 열어주고 지식을 넘어 지혜를 넓혀 주는 작업이다. 그런데 3세부터 시작하는 영어유치원 학습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이들 스스로 뜻을 세우지도 않았을뿐더러 스스로 자기의 잠재력을 열 기회도 사라졌다. 그 잠재력은 놀이와 각종 체험을 통해 일깨워지고 발전된다. 그리고 자각적인 과정을 통해 심화하며 더욱 발전된다. 교육과 학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뜻(목표)을 세우는 일이며 자발적인 학습 충동을 갖게 하는 일이다. 동양의 유명한 철인 공자도 1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뜻(입지 立志)을 확고하게 세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뜻이 세워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계발은 불가능한 일이다. 3세에 뜻이 세워졌을까? 그런데 지금의 한국 교육이 그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학력은 점점 떨어지고 아이들은 학교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사교육만 늘어나고 있다. 우린 지금 계발이 아닌 기계적인 학습의 시대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공자가 말하는 계발(啓發)의 의미와 공자의 교육방식 공자의 교육은 그 본바탕을 계발에 두고 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학습을 강요하거나 채찍을 가하지 않았다. 학습이 뒤떨어지는 제자를 걱정은 할지언정 한탄하거나 비난하거나 질책하지도 않았다. 각자에게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였으며 늘 인격을 존중하였다. 그러한 공자의 교육 방법과 철학이 계발(啓發)이란 한 단어에 녹아 있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으로 통하려고(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 스스로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으니, 한 귀퉁이를 들어 보이면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反證)하지 못하거든 다시(더 이상) 일러주지 않았다.(子 曰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擧一隅에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부)也니라) 논어 술이편 8장)” 위에서 憤(분)은 ‘성을 내다, 괴로워하다, 번민하다, 흥분하다, 감정이 북받치다’의 뜻을 가진 것으로 마음속에서 통하려고(무엇인가를 알고 깨우치려고) 하나 잘되지 않아 애태우는 모양을 말한다. 이를테면, 공부를 하다가 의문이 생겨 그 뜻을 알려고 애를 써 보지만 그 뜻이 통하지 않아 애태우는 장면을 말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누가 조금만 알려주어도 알게 되며 그 이상의 뜻을 터득하게 된다. 이는 학습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다. 학습자가 憤(분)하려면 우선 뜻(입지 立志-목표)이 세워져야 한다. 뜻이 세워지면 학습의 열정이 자발적인 내부에서 솟아오르고 그러면 憤(분)하게 되어 있다. 啓(계)는 그 뜻과 의문을 열어주는 것이며 悱(비)는 ‘표현 못할 비’로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지 못할 때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그 단서를 알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용기가 부족하여 못할 수도 있다. 發(발)은 그 말문을 열어주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不悱(비)어든 不發하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스승의 설명이나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단지 그 이치의 단서(端緖)를 열어주고 나머지는 학습자가 이치를 궁리하여 터득하고 그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자는 만약 擧一隅(일거우 -한 귀퉁이를 들어보여줌)하면, 나머지 세 귀퉁이는 스스로 알아 증명해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不以三隅反) 더 이상 일러주지 않았다(則不復(부)也)는 것이다. 여기서 反(반)은 반증(反證)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반증(反證)은 부정의 뜻이 아니라 그에 대하여 설명하고 증명해 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공자가 不憤(불분- 학습자가 분발하지 않으면) 하면 스승이 不啓(불계-그 뜻을 일깨우고 가르쳐 주지 않음) 한다는 것과 擧一隅(일거우)에 不以三隅反(불이삼우반)하면 則不復(부)也)하였다는 것은 공자가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憤(분) 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憤(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하여 정자(程子)는 이렇게 해석한다. 만약 제자가 不憤(불분)한데 가르쳐 주면 아는 것이 견고해(확실해)지지 않으며, 憤悱(분비)하기를 기다린 뒤에 알려주면 확연히 깨달을 것이다(待其憤悱而後發이면 則沛然矣니라) 교육은 성급하게 가르치려고 하고 막무가내로 끌고 갈 일이 아니라 뜻을 일깨워주고 스스로 내적 동기가 발휘되도록 조장하며 내적 동기가 충전되어 스스로 알려고 애를 쓰고 의문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 주며 그렇게 되도록 조장하는데 근본이 있다. 스승은 그런 제자에게 앎의 단서를 열어주고 끝없이 앎을 향해 나아가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공자가 말하는 교육의 기본 요체다. 이러한 공자가 말하는 계발은 네 가지의 영역이 통합된 것이다. 첫째는 입지(立志)를 강화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뜻을 열어주는 일이다. 그것은 교육에서 가장 먼저 하여야 할 일이다. 율곡 선생도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입지(立志)를 최우선으로 하였다. 입지(立志)를 강화한다는 것은 삶과 공부의 목표를 세우고 분명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을 가 보고자 하거나 서울에 대하여 궁금증이 전혀 없는 자에게 서울을 설명하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소귀에 경전 읽기)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입지는 계발의 최우선 요건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육은 그 소중한 입지(立志)를 제쳐두고 지식만 쏟아붓는다. 둘째는 지식을 일깨우는 교육이다. 공자의 방법에서 지식을 일깨우는 것은 오늘날처럼 무조건 강의하는 방식이 아니다. 공자는 늘 교육 이전에 제자들에게 개별질문을 하였다. 당시 공자의 세자들은 삼천 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에게 일괄적인 강의나 강연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질문을 하고 대답하도록 하였으며 거듭된 질문을 통해 그 대답을 스스로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여기서 학습의 내적 동기도 강화되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가는 발견학습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셋째는 지혜를 넓혀 주는 교육이다. 공자 교육의 근본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터득과 확장에 있었다. 지식이 발전하면 지혜가 된다. 따라서 지식은 지혜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라는 사람도 지식으로 끝나고 지혜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지혜는 삶과 세상 만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그것을 삶에 바르게 적용하는 능력이다. 여기에는 인간성의 함양과 문제해결력을 동시에 포함된다. 그것은 어쩌면 교육의 기본 목표이며 방법이다.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선 지식습득은 그 기본 바탕으로서 매우 소중하다. 넷째는 궁리궁행(窮理躬行) 하는 일이다. 이는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행동할까는 고민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지식과 지혜가 동원되면 지식과 지혜를 넓히기 위해 사물의 이치를 곰곰이 관찰하고 숙고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고뇌하는 일이다. 그것이 궁리궁행(窮理躬行) 하는 일이다. 고뇌가 없는 곳에서 진리가 터득될 리 없다. 그래서 공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터득함)에 이르기 위해 궁리궁행(窮理躬行) 할 것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중국에서 최초로 대규모의 교육 집단을 형성하여 교육한 스승이다. 앞에서 말햇듯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3천 명이 넘었으며 수제자만 해도 70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공자의 제자들은 신흥 선비계급, 신흥 지식인층에 속했다. 그들은 뒷날 대를 이어 공자의 학문을 전파하고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공자의 학문은 중국 한나라 통치의 중심 철학이 되었으며 그 이후 계속 국가 통치의 중심 철학이 되었으며 동북아 학문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나라 이후에도 공자의 학문인 유학은 당나라를 이어 송나라에서 程子(정자)와 朱子(주자-朱熹)를 거쳐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다산 정약용은 이를 실학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실로 그 영향은 지대하다. 오늘날 어떤 이들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하였는데 이는 유학의 근본을 버리고 지나치게 정파적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이용한 조선의 정치 풍토 탓이었다. 공자는 결코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한 곳에 묶어두지 않았다. 3. 啓發(계발)의 교육을 위하여 어쨌든 계발에 나타난 공자의 교육 방법은 개별화 교육이었으며 문답식의 자발적 동기 강화의 교육이었다. 이러한 계발과 통하는 말이 줄탁동시(啐啄同時-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는데, 배움을 강요하면 그것은 고문이 된다. 우선 중요한 것은 배움에 뜻을 두게 하는 일이다. 유아교육에서 지식을 가르치는 일도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교육도 계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문맹률이 낮다. 취학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행복 지수는 낮다. 어쩌면 뜻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만 강요당하기 때문일 수 있다. 거기다가 최근에 와서는 학생 흥미 중심을 강조하면서 목표 잃은 흥미 중심으로 흐른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말로는 목표 중심 진로 교육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정교하지 못하고 상당수의 아이는 목표에 관한 한 방황한다. 교육이 계발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지식 주입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발에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은 우선 목표지향적인 교육이다. 그 목표는 일련의 성취 수준이 우선이 아니라 인생 목표 삶의 나아갈 길, 삶의 설계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발적인 동기가 육성되도록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타율적인 동기는 채찍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스트레스와 공격성의 원인이 되고 반 학교적, 반사회적 비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부모들은 자녀교육의 철학적 숙고와 전환이 필요할 때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3살 아이에게 영어와 중국어를 강요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부모의 한(恨)과 성취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교육은 계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뜻을 세우게 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지식습득에 관심을 가지게 하며 지혜를 위한 탐구와 토론을 증진하는 일이다. 공자처럼 아이들 하나하나의 지적 특성과 신념을 존중하며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학교로 확산해 가야 한다. 공자가 말한 계발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국 교육의 갈 길을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