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37
천자문055
동봉
0205이길 극克크어ke
0206생각 념念니엔nian
0207지을 작作쭈어zuo
0208성인 성聖썽sheng
크어니엔쭈어썽克念作聖
■생각을 다스리라 성인이리니■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대학에서 한문학漢文學을 전공하다가
20대 중반에 절에 들어와서는
곧장 선원으로 달려가 목숨 떼어놓고
정진하는 후배였습니다
이 후배가 하루는 푸얼차普洱茶라며
발효차 한 편을 들고 왔습니다
"큰스님! 한 가지 여쭐 게 있는데~"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질문할 때는
목소리가 낮아지는 게 보통이지요
적어도 답변하는 쪽보다
질문 쪽 음성이 더 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묻는 쪽의 음성이
답하는 쪽보다 유별나게 컸습니다
내가 되물었지요
"그래, 스님. 물을 게 뭔데?"
방금 전까지 당당하던
그 목소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야말로 모기 소리만 했습니다
"선배스님. 그게 저~"
"여유있게 천천히 물어도 돼."
"아닙니다. 큰스님!"
" ! "
그가 말했습니다
"이 글자가 이길 극克자 맞지요?"
내가 들여다보니 푸얼차 포장지에
'~250克'라 쓰였습니다
"여기 이 글자 말인가?"
"네, 큰스님. 제가 한문학과 출신인데
아무래도 해석이 안 됩니다."
"안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250극克이면 250가지를 이긴다인가요?"
"자네 이 글자를 무슨 글자라 했지?"
"네, 큰스님. 이길 극克자입니다."
후배의 어깨를 툭 치며 내가 말했습니다
"이 글자는 이길 극克자가 아닐세."
나중에 한문을 한다는 이들에게
중국차 봉지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열 명이든 백 명의든
한결같이 '이길 극克'자였습니다
후배가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지요
"큰스님, 이길 극克자가 아니면
그럼 이게 무슨 글자입니까."
"음 이 글자는 그램g 크어克자일세."
"그램 크어克자요? 그럴리가요?"
"도량형이 국제화되며 생겨난
특별한 새김 법이라네
자네 요즘, '혼밥'이라고 들어봤나?"
"혼밥이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으음 혼자 밥 먹는 사람이라네."
내가 또 물었습니다
"자네, '밥터디'라고 들어봤는가?"
"밥터디요? 그건 또 뭔지요?"
"자네는 선원에서만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얘길 잘 모르겠지."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밥터디'란 말일세
밥과 스터디를 묶은 말로
먹으면서 공부한다는 의미라네."
그런 직설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밥 먹을 때만 우루루 모인다 해서
생긴 신조어라고 합니다
따라서 크어ke라는 발음을 가진
이른바 이길 극克자가
중국어 표음문자로 대두되면서
도량형의 기본인 그램g
곧 크어克자로 새기게 되었지요
읽고 새김이 하나 더 늘어난 셈입니다
1克g은 千克1kg의 1천 분의 1무게입니다
또한 1米m가 천이면 千米m며
千米m는 곧 1km입니다
"10톤 화물을10km 운반하면 곧 100톤km이다."를
중국어로 올리면 어떻게 표기가 될까요?
0205이길 극克
이길 극克자는 '이기다'의 뜻입니다
사람이 갑옷 입은 모양을 본떠
'갑옷 무게를 견디다'라는 뜻인데
나중에 '견디다' '이기다' 따위로
뜻이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글자는 일반적으로 '이길 극'이며
옛 고古 아래 어진사람인발儿을
떡하니 붙인 격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옛 고古는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하겠습니까
열十 사람口이 지나야 옛입니다
요즘은 유치원 원아들도 즐겨쓰는 말이지요
"내가 옛날에 말야"라며 말할 때
우리 꼬마들 참 귀엽다 싶습니다
0206생각 념念
생각 념念자를 보십시오
이제 금今자 아래 마음 심心자입니다
'생각'이란 뜻을 지닌 한자에도
생각보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생각 념念 외에
생각 사思
생각 상想
생각할 고考
생각할 려慮
생각할 억憶忆
생각할 유惟
생각할 고攷
생각할 윤侖仑
생각할 임恁㤛
생각할 논惀
아무 생각이 없는 숙㜚
생각날 상恦
생각할 부怤
생각할 조慒
생각할 목毣
생각할 사恖/수염 많을 새
생각할 륵忇
생각할 경㤯
생각할 언㥼 등이 있습니다
이중 특이한 자가 생각념念자입니다
생각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이제'라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위에서 잘 살펴 보십시오
생각을 표현한 어떤 글자에
시간을 머금고 있는 게 있습니까
따라서 생각 념念자에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습니다
금강경 <일체동관분> 제18에 의하면
지나간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기에 잡을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잡을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 속 마음은
순간이라도 계속하여 흐르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어떤 철학자도
어떤 종교인도
어떤 과학자도
어떤 물리학자도
어떤 영웅도 어떤 도인도
시간을 붙잡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자칭 마음 공부가 좀 되었다는 사람은
다짜고짜 얘기합니다
"어! 그거 아주 쉬워. 초월超越하면 돼."
아! 참으로 멋진 명답입니다
시간을 초월하면 시간을 잡는다고 하듯
공간을 초월하면 공간을 잡을 수 있을까요
어찌 이토록 쉬운 걸 몰랐을까요
그런데 이는 언어의 유희일 뿐입니다
트렌센덴스Transcendence
초월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고
초월이란 개념을 떠올린다 해서
생각 먹은 대로 뚝딱 초월이 됩니까
중국 탕唐tang나라 때
타오쉬엔道玄 팡온龐縕Pang-on거사나
팡거사의 딸 링짜오靈照Lingzhao
팡거사 아내와 아들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달은 자라고 하여
시간을 마음대로 잡고 놓으며
늘였다 줄였다를 마음대로 한다면
이는 시간이 아니고
또한 공간이 아닐 것입니다
경허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인은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한다'고요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한다 하듯
삶과 죽음은 마음대로 가능할지 모르나
시공간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생각 념念자를 아무리 들여다 보더라도
'이제'라는 시간만 들어있을 뿐
공간 개념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시공간을 묶어서 얘기하느냐고요
그렇습니다
시공간은 완벽한 조직組織입니다
날줄織이 빠져있는 씨줄組이 없듯이
씨줄 없이 날줄만으로
베가 짜여지지는 않습니다
조組라는 가로의 실과
직織이라는 세로의 실이 서로 엮여
텍스-타일Textile,
곧 섬유纖維가 되듯이
시공간이란 천체의 세계는
공간이란 조組와 시간이란 직織이
서로 어울려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 념念자 한 글자 속에
시간을 날줄로 하여
공간이란 씨줄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극념克念이란
'생각을 이긴다'는 뜻도 있지만
'시간을 다스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인은 생각을 다스리는 자며
동시에 시공간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따라서 염염보리심念念菩提心은
생각 생각이 보리심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순간순간 그대로가
깨달음을 지항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과
대칭을 이루는 말입니다
곳곳이라는 공간의 이야기는
앞의 념념이라는 시간성을 이어받아
이와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0207지을 작作
지을 작作자는 앉아있던 사람이
느닷없이 별안간瞥眼間 일어나는 모습을
이미지로 그려낸 그런 글자입니다
별안간의 별이 '눈깜짝할 별瞥'이고
눈 안眼자에 사이 간間자입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지요
사람인변亻에 잠깐 사乍자를 써서
지을 작作자로 만든 까닭에
작作은 영구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이 지을 작作자가
갑골문과 금석문에서는
잠깐 사乍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조작造作의 문제입니다
곧 조造는 이론의 지음이고
작作은 시간적으로는 짧지만
사실적 지음의 과정과 결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創造하시니라" 함은
이는 선언적 의미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이와는 달리 콩쯔께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함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해
겸손했던 콩쯔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언적 의미라 함은
말은 창조인데 실제는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이전에
우주가 이미 하늘 땅을 만들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 작품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우주가 스스로 생겨났고
곧바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하여 팽창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표절의 왕'이십니다
표절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자기 작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 글이고 자기 작품이라 광고함이지요
손대지 않은 천지창조로부터
인간과 만물을 만들었다고 광고함이
다름아닌 표절이십니다
콩즈께서는 전혀 아닙니다
'술이부작'이라 했습니다
서술하기는 했어도 짓지는 않았다는
순수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중생을 제도한 적이 없다고
나는 법을 설한 적이 없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적이 없다고
이것이 진리입니다
0208성인 성聖
성인聖人은 곧 성인成人입니다
거룩할 성聖자 사람 인人자는
이룰 성成자에 사람 인人자입니다
사람이 되는 게 성인成人이고
된成 사람人이 성인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못되기에
완전成해지려 노력하는 존재人입니다
어젯글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콩쯔를 지성至聖이라 하고
대성大成이라 함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03/12/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https://t1.daumcdn.net/cfile/cafe/23174D4F56E34FB601)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8994856E34FB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