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선생님이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전문직만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늘 맘속에 있었다. 그 하나는 사람의 성장과 신체적 문제점을 다루는 의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지성과 심성을 성장하게 하는 교사라고 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장애인이 지원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무너져 좌절할 때 바로 중학교 때 그 선생님의 말씀은 사람을 고칠 수 있는 다른 전문가인 교사가 되는 새로운 꿈을 꾸며 좌절에서 일어서는 힘이 되었다. 나는 특수학교의 영어교사였다. 학생들은 나를 ET라 불렀다. English Teacher의 앞글자를 딴 것이지만 그 당시 ET영화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기에 ET라 불리는 것도 행복했다.
교사가 된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머릿속에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고 학교를 향해 짧은 언덕길을 가노라면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빨리 걷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고 짧은 언덕길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었다. 초년생 교사였던 나에겐 학생의 변화가 세상의 중심이었고 어느 한 명도 차별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대학교에서 배운 대로 최선을 다 했었다.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다가 저지를 당하기도 했고, 동료교사 간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지만, 무모한 아이디어가 허락될 때는 날아갈 듯 기뻤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영어발음은 어느 누구보다 좋고 나름 영어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기특하고 행복했었다. 내가 보기엔 아직도 애송이인 것 같은데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은 영어엔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차별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이 무너져 내렸다. 너무도 놀랍게도 차별대우를 원하는 편은 오히려 부모님들이었다. 내 아이가 며칠 아파서 결석을 했는데 어떻게 개근상을 안 줄 수 있느냐 따졌고 꾸준히 1-2등을 오갔으면 몇 점 차로 뒤졌더라고 1등 한 애보다 장애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를 한 우리 아이에게 우등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소위말해 부자 엄마들이 교장실에 가서 항의를 했다. 기록을 꼼꼼히 따져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개근상과 우등상 후보를 올렸던 나는 그 후 상벌관계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 그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서로 “왜 쟤만 예뻐하느냐”라고 하는 것이었다. 교사가 편애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부모라는 점이 새내기 교사였던 나에겐 미스터리였다.
교수가 돼서도 나는 선생님인 것이 좋았다. 아직도 많은 학습자료를 만들고 교사지망생인 학생들이 실습할 재료도 한 바구니씩 담아 교실로 갈 때면 오늘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까 가슴이 뛰곤 한다. 자상하고 사람을 귀하게 대하고 인내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교직을 권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깨우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기 때문에 교직을 선택한 것을 잘한 일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교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우리 교사들은 중심을 잡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서이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우리 어린 후배교사가 그 좋아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꿈에 그리던 교단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너무 많이 아프고 미안하다.
후배님이 각 아동들이 가진 다양성을 키워주려고 하던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무한경쟁으로 모든 사람이 한 곳으로만 몰려가는 것을 교육으로 막았어야 했는데 그 경쟁의 대열에 함께 서있기만 했던 우리의 모습이 미안하다.
후배님이 부모들과의 대화를 통해 아동들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려고 하던 노력을 도와야 했는데 부모들이 교육에서 담당해야 할 가정교육과 부모의 역할을 교육으로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서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부모가 되도록 방임해서 미안하다.
후배님이 너무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을 학교가 교사도 존중받고 자유롭고 행복한 아동들이 뛰어노는 교육중심의 환경이 되도록 지도하고 관리감독하지 못해 미안하다.
후배님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그 아픔을 늦게라도 위로하고 슬퍼하고 싶어 하는 추모자들에게 교문을 걸어 잠그고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이상한 사회가 될 때까지 교육이 제대로 길라잡이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
무엇보다도 후배님은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까?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손잡아 같이 교사의 길을 가야 했는데 내가 귀를 막고 있었어서 미안하다.
너무 많이 미안해서... 후배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교육만이 이 사회를,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진리임으로 이번에는 우리 교사들이 병든 우리 사회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오도록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자
브런치에 7/22/2023 게제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kyoju/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