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주요명소
김동수 가옥
흔히 아흔 아홉간 집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가옥이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건축 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거리가 되고
있다.
칠보 소재지에서 산외면 미처 못 간 2.5km 지점에 「김동수 가옥」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꺾어 400m쯤 가면 울창한 느티나무 숲 속에 김동수 가옥이 있다.
이 고가는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1755∼1822)이 지은 것이다. 한양에서 내려온 그는 청하산 아래 평사낙안이라는 명당을 골라 10여 년에 걸쳐 이 집을 완공했고 대문 앞쪽으로 30여 평의 연못을 파 놓았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좁은 마당이 나오고 중문을 거치면 바깥 행랑채가 나온다.
담장과 곳간이 이어진 대문에 들어서면 비로소 안채가 나온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각각의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뒷편 오른쪽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이 집은 조선조 양반들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은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내장산국립공원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內藏山).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지천을 물들이는 내장산은 찾는 이의 가슴에 진한 추억을 남기는 "호남의 금강"이다. 불 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내는 황홀경은 단풍비경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다. 해마다 단풍천지를 이루는 가을 뿐만 아니라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으로, 겨울에는 바위절벽의 멋진 비경과 아름다운 설경, 그리고 사계절 내내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내장산국립공원은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 백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쳐간 입암산성까지를 포괄하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처럼 비경의 연속이다.
내장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내장사(內臟寺), 대웅전과 극락전 등 조선 중기의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는 웅장하고도 고풍스런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백양사(白羊寺),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그 잎새들을 반짝거리는 굴거리나무와 비자나무 노목들이 천년을 넘나드는 불심으로 아름다운 숲을 이뤄 역사의 심오한 향기를 더해준다.
또한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하여 장군봉(696m), 서래봉(624m), 불출봉(619m), 연자봉(675m ), 까치봉(717m) 등이 말발굽처럼 둘리워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760종의 자생식물과 숲, 그리고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이 숨 쉬고 있는 내장산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그리고 전남 장성군에 걸쳐있으며 소백산맥에서 갈라진 노령산맥이 호남평야의 한가운데 이르러서 다시 한번 빚어낸 우리나라 최고의 가을산이다. 총면적이 81.715㎢ 에 달하며 1971년 11월 17일 백양사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읍시 내장동
* 내장산 지구 내장 탐방지원센터 063-538-7878 서래 탐방지원센터 063-538-7875~6 입암 통제소 063-538-7872
* 백암지구 내장산 백암사무소 061-392-7288, 7088 백양탐방지원센터 061-392-7088 남창탐방지원센터 061-393-3088
고부 구읍성지
정읍시는 갑오동학혁명의 시발지이자 주요 무대로 덕천면의 황토현 전적지를 중심으로 고부 관아터, 만석보터, 말목장터, 전봉준장군고택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다. 높이 132m의 성황산(城隍山)에 쌓여진 고부의 옛 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성 안에서 발견되는 각종 그릇과 기와조각으로 미루어 보아서는 삼국시대 백제가 이미 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이미 둘레 460보(步)의 돌로 쌓은 읍성이 있었다 하였으며, 문종실록에 의하면 문종 원년(1451)경에 더욱 넓혀 쌓아 둘레 1,803척(尺) 높이 9척이었고, 성벽 위에 높이 3척의 여장(女墻)을 더 쌓았으며 2개의 문이 있었으나, 옹성(擁城)과 적대(敵臺)는 없었다고 하였다. 성 안에 우물 4개와 하나의 작은 연못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규모가 더욱 큰 읍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성터는 동서방향으로 길쭉한 타원형이며 둘레는 1,050m에 이른다. 성 안에 객사(客舍)터를 비롯한 건물터가 있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원형을 알기 어려우나, 북쪽에 돌로 쌓았던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고 흙으로 묻힌 성벽의 아랫부분은 마치 흙더미가 이어진 듯 완만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 1-1 정읍시청 063-535-5147
샘골다리
벚꽃축제, 단풍축제, 갑오동학농민혁명 기념제 등 다양한 축제의 무대가 되는 ‘아름다운 샘골다리’는 정읍천에 세워진 82m 길이의 작은다리로서 그리스신전을 연상케 한다.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아름다운 교량의 모습과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정읍천의 풍경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정읍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외지의 관광객에게도 좋은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정읍천변 도로에 피는 벚꽃이 구름 같은 터널을 이루며, 샘골다리 주변에는
원추리, 붓꽃, 벌개미취, 상록패랭이 등 갖가지 야생화가 철따라 피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
한다.
정읍시 시기동 (시도19호선)
호남고속도로 - 정읍IC- 정읍IC 사거리 - 천변로(내장방면) - 샘골다리
내장산 케이블카
내장산 케이블카는 탐방안내소부터 연자봉 중턱 전망대까지 운행을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300m정도 거리에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는 5분정도의 시간동안 내장산 전체 산세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단풍 풍경을 비롯한 내장산의 모습을 감상
할 수 있다.
정읍시 내장동 59-10
내장산개발주식회사 063-538-8120
천곡사지 칠층탑
팔봉산은 정토사라고도 불리는 낮은 산 중턱에 서 있는 아담한 사찰, 정읍시를 한 눈에 내려볼 수 있는 곳에 있는 정토사이다. 정토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연꽃이 맞아준다. 먼길을 떠나 심신이 피로한 나그네가 절의 입구를 찾아 주차장에 들어서면 주차장 아래쪽 자그마한 연지에서 피어난 깨끗하고 예쁜 연꽃이 먼저 맞아주는 것이다.
장마 뒤끝에 눈이 시리게 청명한 날에 찾은 정토사. 이 사찰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는 어마어마한 빗줄기에 사찰 뒤쪽이 찢겨 아름답고 정갈한 정토사의 이곳저곳에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산 뒤쪽의 아름드리 나무가 법당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쓰러져 있고, 산에서 내려온 황토물이 넘쳐 법당 안 마당은 까치발로 다녀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빗물의 야멸찬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찰은 전통의 품격을 잃지 않고 고고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욱이 차문화에 관심을 가진 주지스님이 끓여주는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절 아래 세상에서 가져온 온갖 시름이 눈 녹듯 스러져 갔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차 한잔. 이곳 정토사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철이 바뀔 때마다 이곳 정토사에서는 시골에 위치한 호젓한 산사의 아름다움과 함께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거나 팝송이 불려지는 등 문화의 향연이 푸짐하게 펼쳐지곤 한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정토사에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 역사
현재 절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사적기나 기타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단지 구전만이 전해져 올 뿐이다. 구전에 의하면 정토사는 고려시대인 1299년(충렬왕 25)에 담운선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대략 지금으로부터 700년전에 해당된다. 그 뒤 조선시대 중기 호남지방에서 뛰어난 신통이적으로 사람들을 교화한 진묵스님이 1603년(선조36)에 절을 중건하면서 약사전을 지었다. 그 뒤의 연혁은 분명치 않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918년에 이진성 주지에 의해 원통전이 지어졌고, 1922년에 전광명화가 칠성각을 지었다. 근래에는 1959년에 명봉스님이 칠성각을 지었다. 1962년에는 종균스님이 초가였던 원통전을 기와집으로 중수하고, 1966년에 관음선원을 건립하고 석탑을 세웠다. 1977년에는 보명스님이 칠성각을 중건하고 도로를 냈으며, 1992년에 석조미륵입상을 봉안
했다.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 28 정토사 063-537-9222
만석보유적지
만석대교와 제방 사이에 위치한 만석보 유적지는 쓸쓸하기만 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이 곳이 그 유명한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날의 함성을 다시 듣는 듯 숙연해진다.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 둑을 쌓고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약 4km 지점의 동진강을 건너는 다리 하류에는 보뚝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위에는 넓고 비옥한 배들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 너른 평야에서 1만석이나 되는 많은 쌀을 거둬들일 수 있다하여 '만석보'라 이름하였지만, 굶주리고 착취당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다.
1892년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은 기존에 쌓아둔 보가 있었음에도 강제로 농민을 동원하여 그 아래에 새로운 보를 쌓았고, 이를 빌미로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들여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1893년 농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 세금의 감면을 요구하였으나, 도리어 체포 구금 당하였고,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1894년 1월 10일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켜 고부 관아를 점령한 후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로 달려와 헐어버리고 말았다.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된 고부 봉기는 조병갑의 끝 모르는 탐학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지배세력의 학정과 외세의 침탈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사회변혁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17-1 문화체육과 063-530-7166, 7177
내장사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 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잡아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등종이 보존되어 있다.
정읍시 내장동 590
내장사 종무소 063-538-8741, 내장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38-7875~6
내장산 오색단풍길
내장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산으로서 해마다 가을이면 온 산야가 붉게 타오르며, 전국에서 손꼽히는 단풍 관광 일번지로 유명하다.
국지도 49호선에 위치한 길이 9km가량의 ‘내장산 오색 단풍길’은 내장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이 도로에 유난히 작고 붉은 내장산 단풍나무를 꾸준히 심고 가꾸어 오늘날의 오색 단풍길로 조성하였다.
내장저수지를 끼고 내장사에 이르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길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읊은 대로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계절에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내장사 입구에 위치한 아치형의 단풍터널은 길이 200m, 폭 6m의 길에 단풍나무가 5m간 격으로 심어져있어 피카소의 그림보다도 화려한 색의 향연을 제공한다
정읍시 내장동 부전삼거리 ~ 추령재(국지도 49호선)
정읍사공원
정읍시는 갑오동학혁명의 시발지이자 주요 무대로 덕천면의 황토현 전적지를 중심으로 고부관아터, 만석보터, 말목장터, 전봉준장군 고택 등 많은 관련 유적이 있다. 정읍사공원은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빚어낸 명산인 내장산국립공원 내장산을 낀 정읍시내 시기 3동에 위치한다.
이 곳에는 망부석이 세워져 있고 사우가 있다. 50,000여평 위에 조성된 이 공원에는 체육시설이 자리잡은 데다 인근에 예술회관, 국악원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정읍사는 백제가요 5곡 중(정읍사, 무등산곡, 방등산곡, 선운산곡, 지리산곡) 유일하게 현존하는 최고의 백제가요로서 한글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사악지" 삼국속악 백제 `정읍"(노래의 이름)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이다, 고을사람이 장사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그 아내가 산의 돌 (바위)에 올라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오다가 진흙탕물 이라도 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기다림 속에 안녕을 기원하는 가요 한편을 지어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인 것이며 세상에 전해오기를 고개에 망부석이 있다 한다."
정읍시 시기3동 81-7 일원 예술문화회관 063-530-7860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칠보초등학교에서 냇물을 건너 800m 쯤 들어간 성황산 기슭에 위치한다. 신라말 유학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 많은 치적을 남기고, 합천군수로 전임하니 백성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태산사라 불리던 것이 조선 숙종 때 이르러 당시 태인현감이던 신잠을 함께 추모하게 되었으며, 이 때 이름도 무성서원이라 고쳐 불렀다. 특히 이곳은 귀중한 서원 연구 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현존 건물로 현가루를 비롯하여 강당, 동.서재, 사우, 비각 등이 있다.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 문화체육과 063-530-7166
황토현전적지
황토로 덮인 작은 산으로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이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 2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관리사업소 063-536-2310, 536-1894
피향정(湖南第1亭)
피향정이란 이름은 동서 양쪽에 파 놓은 상연지(上蓮池)와 하연지에 핀 연꽃의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건물은 호남지방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자 중의 하나로 신라 정강왕 1년(887)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에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로서 고려 현종때 증축되었다고 전하나 현재의 모습은 조선 인조때의 현감이던 유근이 중수한 것이다.
못을 향하여 남향으로 세워진 이 건물의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내부로는 앞뒤의 돌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릴 수 있다. 투마루 아래에는 원형의 석조 동반 기둥을 받 쳤으며, 그 상부에는 28개의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이는 우주를 28숙으로 나눴던 사상을 따 른 것이라고 한다.
* 규모 -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 팔작지붕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2-2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063-530-7166
일광사
학성산 인취사(鶴城山仁翠寺)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84번지에 소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인취사(仁翠寺)는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84번지 학성산(鶴城山) 동쪽 기슭의 표고 100m 지점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인취사는 518년(백제 무령왕 18)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후기의 지리지 『여지도서』 「신창현(新昌縣)」 <사찰>조에, 인취사(咽嘴寺)에는 정문 3칸, 동실방 3칸, 서실방 3칸, 북실협방 4칸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한 읍지에도, 인취사는 현의 북쪽 5리에 있었다. 본래 조그만 암자로서 소수의 승려들이 머물다가 폐사된지 오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절 이름이 발음은 같지만 지금의 절 이름과 한자가 다른 것이 주목된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석탑이나 기와 편을 통해 고려시대 이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9년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이라는 지리서에도 인취사(仁翠寺)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어 금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절 이름으로 바뀌어 불려진 것 같다. 최근에는 사경실(寫經室)을 신축 중에 있다. 이 건물은 주지스님이 발원하여 『화엄경』 전80권의 내용을 전부 사경할 목적으로 짓는 것이다. 현재 백닥나무로 만든 닥종이, 쪽물을 들인 천 등, 사경에 쓸 재료를 주문하고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총제작분은 약 400m 분량인데, 특이한 것은 사경실 건물 외벽을 분청자기의 공법으로 타일을 만든 뒤 이것을 깨뜨려서 그 조각을 벽에 붙임으로써 모자이크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읍시 수성동 400~799 410-2 041-542-6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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