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대 교 회 | 실재설 | 크리소스톰, 닛사의 그레고리, 이그나티우스 등과 같은 교부들이 주장하던 견해로서 떡과 포도주가 어떤 식으로든 예수의 살과 피로 연계된다는 주장임 |
상징설 | 오리겐, 유세비우스, 빠질 등과 같은 교부들의 떡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견해 |
대부분의 초대교회 교부들은 위의 양 견해를 분리하여 생각지 않고 병행되는 것으로 보았음 |
중 세 교 회 | 화체설 | 예수께서 성찬예식에 실재적으로 임하신다는 견해로서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 그것이 예수의 화체설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임. 이 견해는 9세기 초에 대두된 이래, 16세기 트렌트 회의에서 가톨릭 교회의 정설로 확정되었음 |
종교개혁당시 및 그 이후 | 화체설 | 이 같은 설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로 확정된 데에는 토마스아퀴나스의 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 |
기념설 | 예수께서 성찬식에 육체적으로 임하는 것을 부정하고 기념설 대신 그 성례를 한 기념적인 사건으로 보는 쯔빙글리의 견해임 |
공재설 | 화체설과 기념설을 혼합한 이론으로 예수의 전인격이 떡과 포도주의 안에,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하신다는 견해서 루터가 주장하였음 |
영적 임재설 | 칼빈이 주장한 것으로서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음. 예수께서 성찬식에 육체적으로 임하는 것을 부정하는 대신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견해임 |
첫댓글 간단하지만 아주 유용한 자료입니다. 톰슨3에 나오므로 초신자도 알만한 내용이구요. 좋습니다.
루터는 너무나 훌륭한 종교개혁자였지만 그의 성찬론에 나타난 공재설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천주교의 흔적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올렸던 댓글을 여기에 한번 더 아래에 올립니다.
아! 허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에 대한 것이겠군요. 우리시누스가 루터교 우세지역에서 개혁주의를 하느라고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카톨릭, 자유주의 및 이단의 주장은 살펴볼 가치가 없고요. 루터와 칼빈이 차이가 나는데, 칼빈의 주장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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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 단일하고 동일한 본질 안에 세 위격(Person)이 존재하는데, 위격으로서의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 (generation)되었다.
· 본질로서의 성자는 자존한다.
· 그리스도 위격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었으나, 두성은 각 특성을 보존하며 구분(별)되면서도(distinct, distinguish), 분리되지는 않는다(never separate).
·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은 상호 침투됨이 없이 속죄사역을 위해서 역동적인 결합을 한다. 즉, 한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의 협력으로 구속 사역을 한다. - "사역의 교류"(Communicatio operationum)
· 한 위격이 각각의 동력을 가진 두 본성의 협력에 의해 구속 사역을 함으로, 성육신과 속죄가 상호보완적이 된다.
루터
· 그리스도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속성이 상호침투(mutual interpenetration)하며, 그의 인성이 신적 속성들에 관여한다. - "속성의 교류"
· 이런 상호침투 교리는 결국 성찬론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물리적인 빵에 실제 임재한다는 교리(공재설)가 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이 땅과 편재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장코뱅 좋은 댓글 다시 잘 읽고 이해력을 더 높입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츠빌글리의 기념설까지는 고려해 볼 수 있으나 회채설과 공재설은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신학입니다.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개신교회는 영적 임재설과 기념설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지요.
다시 한 번 자료 올려주셔서 참고가 되네요.
제가 요즘 준비하는 글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 17. 1 에서 세례와 성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하였습니다.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ingrafts us into the fellowship of his Church,
and makes us his by adoption,
so we have said that he performs the office of a provident parent, in continually supplying
the food by which he may sustain and preserve us in the life to which he has begotten us
by his word.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그의 교회의 교제 안으로 접붙이시고
양자삼아 주셔서 자신의 아들로 삼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을 지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섭리적인 부모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강요 4. 17. 1)
이글에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하셔서”라고 말했습니다.
중생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칼빈은 중생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세례의 주된 것이 죄사함과 새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하신다”는 칼빈의 말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과 새생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성찬에 관한 요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 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서 “그 생명(the life)”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주신 새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주신 새 생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낳아 주신 새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새 생명을 주시고
성찬으로 그 생명을 지탱하고 보존하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새 생명을 주신 사람들에게는
성찬이 그 생명을 지탱하고 보존하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네, 어렵지만 읽어 보았습니다. 칼빈의 글을 잘 읽어야 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