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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신학공부 성찬에 대한 여러 견해: 화체설, 공재설, 영적 임재설 등
노베 추천 3 조회 593 23.10.24 08:41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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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10.24 12:33

    첫댓글 간단하지만 아주 유용한 자료입니다. 톰슨3에 나오므로 초신자도 알만한 내용이구요. 좋습니다.

  • 23.10.24 13:25

    루터는 너무나 훌륭한 종교개혁자였지만 그의 성찬론에 나타난 공재설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천주교의 흔적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올렸던 댓글을 여기에 한번 더 아래에 올립니다.

  • 23.10.24 16:25

    아! 허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에 대한 것이겠군요. 우리시누스가 루터교 우세지역에서 개혁주의를 하느라고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 23.10.25 07:25

    네, 알겠습니다.

  • 23.10.24 13:25

    카톨릭, 자유주의 및 이단의 주장은 살펴볼 가치가 없고요. 루터와 칼빈이 차이가 나는데, 칼빈의 주장이 옳습니다.
    --------------------------------------

    칼빈

    · 단일하고 동일한 본질 안에 세 위격(Person)이 존재하는데, 위격으로서의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 (generation)되었다.

    · 본질로서의 성자는 자존한다.

    · 그리스도 위격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었으나, 두성은 각 특성을 보존하며 구분(별)되면서도(distinct, distinguish), 분리되지는 않는다(never separate).

    ·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은 상호 침투됨이 없이 속죄사역을 위해서 역동적인 결합을 한다. 즉, 한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의 협력으로 구속 사역을 한다. - "사역의 교류"(Communicatio operationum)

    · 한 위격이 각각의 동력을 가진 두 본성의 협력에 의해 구속 사역을 함으로, 성육신과 속죄가 상호보완적이 된다.

  • 23.10.24 13:26

    루터

    · 그리스도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속성이 상호침투(mutual interpenetration)하며, 그의 인성이 신적 속성들에 관여한다. - "속성의 교류"

    · 이런 상호침투 교리는 결국 성찬론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물리적인 빵에 실제 임재한다는 교리(공재설)가 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도 그리스도의 인성이 이 땅과 편재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 23.10.24 16:26

    @장코뱅 좋은 댓글 다시 잘 읽고 이해력을 더 높입니다.

  • 23.10.25 07:27

    @천이다 공감합니다.

  • 23.10.24 16:30

    츠빌글리의 기념설까지는 고려해 볼 수 있으나 회채설과 공재설은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신학입니다.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23.10.25 01:54

    개신교회는 영적 임재설과 기념설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지요.
    다시 한 번 자료 올려주셔서 참고가 되네요.

  • 23.10.25 05:07


    제가 요즘 준비하는 글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 17. 1 에서 세례와 성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하였습니다.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ingrafts us into the fellowship of his Church,
    and makes us his by adoption,
    so we have said that he performs the office of a provident parent, in continually supplying
    the food by which he may sustain and preserve us in the life to which he has begotten us
    by his word.



  • 23.10.25 05:45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그의 교회의 교제 안으로 접붙이시고
    양자삼아 주셔서 자신의 아들로 삼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을 지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섭리적인 부모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강요 4. 17. 1)



    이글에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하셔서”라고 말했습니다.

    중생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칼빈은 중생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세례의 주된 것이 죄사함과 새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하신다”는 칼빈의 말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죄사함과 새생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 23.10.25 05:16

    그리고 칼빈은, 성찬에 관한 요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 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서 “그 생명(the life)”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주신 새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주신 새 생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낳아 주신 새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주셔서, 새 생명을 주시고
    성찬으로 그 생명을 지탱하고 보존하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새 생명을 주신 사람들에게는
    성찬이 그 생명을 지탱하고 보존하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 23.10.25 07:29

    네, 어렵지만 읽어 보았습니다. 칼빈의 글을 잘 읽어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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