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는 안타까운 인명 피해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려고 들어갔던 사람들이 미처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귀한 생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포항시의 어느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하여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발견된 9명 중에서 7명이 심정지 상태이고, 다행히 2명은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번 재난은 분명히 변고이지요. 재난(災難)은,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라고, 사전은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 변고(變故)라함은 그 뜻이, '감잡스럽게 일어난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옆에 있는 하천이 갑작스럽게 물이 불어나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휩쓸려 들어감으로서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진 것입니다. 그 주차장 입구 쪽에 세워져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보니까, 주차장으로 쏟아져 들어간 물로 인하여 지하 주차장은 단 8분 만에 잠겨 버렸다고 합니다. 침수된 것이지요.
8분..이 시간은 허둥지둥 하다보면 훌쩍 지나가버라고마는, 어쩌면 비상시에는 순간적인 시간일 수 있지요. 그 시간안에 주차장 밖으로 빠져 나온 차량은 고작 14대 뿐이었다고 합니다. 오전 6:37~6:45 사이의 8분이지요.
살아남은 두 사람은 정말 기적같이 생존을 한 것이지만, 심정지 상태의 7명의 생명은 너무나 기가막히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게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차를 빼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를 듣고 황급히 들어갔을 그들일텐데, 가족은 설마하고 그저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결국 가족과의 마지막이 된 것입니다. 그럴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예기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의 한가지 뚜렷한 특징은 갑작스럽다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지하 주차장에서, 그것도 침수에 의해서 생긴 것입니다. 차를 빼려고 들어갔다가 생긴 일이니까요. 하천의 물이 순식간에 들이 닥칠 것이란 위험을 염두에 두기 이전에, 아마도 '차를 뺄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 '빼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주차장으로 뛰어 들어 갔을 것입니다.
이번 사고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지하'입니다. 그래도 지상에 주차했더라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갇혀 있는듯한, 그 지하라는 지역과 공간이 갖는 특징으로 인하여 결국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22일에 쏟아져 내린 폭우로 서울 관악구의 어느 반지하 주택에서 3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물이 차오를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지요. 반지하 주택의 특성상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기가 어려운 구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출입문은 물에 차 열리지가 않고, 유일한 탈출구인 창문은 안전을 위해서 장치한 쇠창살로 막혀 있었으니, 탈출이나 구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어찌 보면 '지하'라는 불리한 조건이 불행의 원인이 된 셈이지요. 지하에 살거나, 지상에 살거나 할것없이,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난리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반지하 주택이 구조상으로 재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지요. 사람이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요. 어쩌다 살다 보니까 반지하에 살게도 되는 것이지요. 사람의 운(運)이라고 하는 것이 다분히 가변적이라서,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저택에 살던 사람도 어느 때인가 갑작스럽게 반지하, 아니 그보다 더한 지하의 한 작은 공간에서 살수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운명은 바뀌는 것입니다. 결코 고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반지하에 살고 있다고 해서 죄절할 것도 아니지요. 이른바, '지옥고',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마음 아파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하'(地下)하면, 연상되는 것이, '갇힌다, 묻힌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입니다. '강제적인 고통, 피할 수 없는 고통'같은 개념이 떠오르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반지하 주택의 환경에서 살수도 있습니다. 갇힌듯, 묻힌듯, 답답하고 막막하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일생일 뿐이지요. 기껏 한평생입니다. 평균적으로 80,90의 연수(年數)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장차 지옥에 갇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죽어 육신은 지하에 묻힐 수 있으나 그 영혼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옥은 아닙니다. 지옥은 영적인 파멸의 지하인 것입니다. 지옥은 반지옥이 없습니다. 중간치 지옥도 없습니다. 고통의 정도가 덜한 연옥이라는 곳도 없습니다. 그저 지옥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지옥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마가복음9:47-49).
불교에서도, 사람이 죽어서 그 넋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하는 '구천'(九泉)이라는 말이 있지요. 비슷한 말로, '황천, 저승, 저세상', 이렇게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들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성경에도 나오는 단어인 '음부'라는 말이 있지요. 음부(陰府)라는 말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이라고 사전에 설명을 합니다. 성경에서는 번역본에 따라서 이 음부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음부는 곧 지옥을 뜻하지요.
세상 끝날에 심판의 주님으로재림하실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요한계시록1:18). 개역개정4판.
"나는 살아 있는 자이다. 내가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요한계시록1:18). 쉬운성경.
그렇습니다.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곳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하나는 낙원이라고도 하는 천국이요, 다른 한곳은 음부라고도 하는 지옥입니다. 그곳에는 반낙원도, 반지옥도 없습니다. 천국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평안이냐, 아니면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고통의 장소인 지옥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돈이 없어서 반지하에 살게 되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누구나 천국에 들어갑니다. 보증금, 전세금, 다 필요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이 세상에서 호화 저택에 살았다고 해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 세상의 호사스러운 생활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천국이 아니고 그 반대쪽인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비록 반지하의 어두컴컴한 곳에 산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예비된 하나님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위안을 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한복음14:1,2).
천국에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그리고,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온 세상을 얻은 것도 이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가치를, 그 위대함을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사하며, 기뻐하며, 즐겁게 살아 갑니다.
여러분, 반지하 주택도, 지하 주차장도, 언젠가는 이 땅에서 나와 상관이 없는 곳이 됩니다. 그 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옵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진짜 저 세상인 내세를 꼭 준비해야 합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세상도 넉넉히 살아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베드로전서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