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선물
누구나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조부모님과 얽힌 희미한 기억은 손에 잡힐 듯 말듯이 동화책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소회는 아주 미미하다. 3살 무렵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극히 단편적인 한 장의 사진과도 같은 소품으로 떠오르는 아련한 그림자일 뿐이다. 자라면서 상을 당했을 때 굴건제복(屈巾祭服)을 입고 장지까지 갔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은 너무도 깊게 각인되어 언제라도 나의 주변에서 보호와 사랑을 주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말 경에 떠나셨는데 모든 추억들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여 언제라도 부르면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이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느낀 가족에 대한 깊은 회한일 것이다.
과거에 우리 대부분의 시골 가정에 가면 벽면에 이런저런 사진들을 걸어두고 살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앨범에 사진을 정리하고 지낼 만큼 많은 사진도 없을 뿐 아니라, 사진 그 자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집안의 어른들의 사진은 매우 귀하여 출입하는 누구라도 쉽게 눈이 띄는 곳에 걸어두고 지냈다. 지금도 문명이 발전 중에 있는 나라에 가면 우리의 옛 시절을 닮은 모습에 반가운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어디서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로 모두가 분주하다. 여러 모임이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행사에 관심이 가장 보람 있고 기쁜 시간이다.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마냥 들뜬 마음으로 새마을 유치원에 다니던 5살 아들의 재롱잔치에 참석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이 아니어서 남긴 사진은 없지만 그 순간에 느낀 벅찬 감정은 현장을 보는 듯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웃음을 주던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는 손자와 손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오히려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시간으로 변화하였다. 소리 없이 흐른 세월이 가져다 준 인생살이의 훈장과도 같은 결실이기도 하다. 더구나 발전된 IT기술 덕분에 거의 실시간으로 모든 활동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씩 보내오는 영상과 사진을 통해 함께 기뻐하고 박수를 쳐준다. 아마 어린 당사자 입장에서도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겠는가.
지난 90년도 초에 선친께서 『러시아』를 돌아보고 귀국길에 손자에게 조그만 선물을 주셨다. 철제로 만든 고슴도치로 여러 마리가 등에 실려 있는데 가끔 찾아오는 손자가 가지고 놀고 있다. 내가 출장길에 구했던 영국식 전통가옥, 러시아의 인형, 그리스의 비너스 조각이나 수제인형 등의 선물도 잘 보관하고 있다. 그 속에 속절없이 흐른 세월의 흔적이 남아 옛 추억을 자극한다.
이번에 『네팔』에 갔다가 코끼리 조각상을 구입하였다. 붓다의 태몽에도 등장하는 흰색의 코끼리는 부처님의 자비와 덕을 상징한다. 아내의 말로는 며느리가 절대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옛 추억이 떠올라 끝내 구매하였다. 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린 손자들에게 주기로 하였다.
『네팔』의 여행은 한마디로 눈에 쌓인 『히말라야』 산맥의 준봉을 구경하는 일이다. 「포카라」 공항에 도착하면 정상에 만년설을 지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맥」이 곧바로 눈에 보인다. 마치 선경에 온 것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풍경에 숨이 막힌다.
물론 쌓인 눈을 밟으며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설산에 오르는 트레킹 여정은 별도로 일정이 길다. 더구나 고산에 오르게 되면 산소호흡을 비롯한 체력소모가 걱정되어 생각은 있어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말로만 듣던 8천m 이상의 고봉(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술루, 에버레스트)은 물론이고, 「파라마운트사」의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마차푸차레 산」의 장엄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풍광이었다. 또한 설산을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순간의 짜릿한 기분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생각 이상으로 『네팔』은 관광사업의 기반이 발전되어 있다. 중간 중간에 높은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구름을 밟고 앉으면 발아래로 낮은 봉우리가 마치 다도해 섬처럼 보인다. 그 너머로 보이는 설산의 고산준령은 해가 뜨고 지기 직전에 선홍색으로 빛나 더욱 환상적인 연출을 한다. 숙박시설도 훌륭하고 인정도 넘쳐나며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 순박한 영혼들이 살고 있다. 현재는 열악한 도로망을 계속 보수하고 있는 중이다. 주로 고산지대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사는데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많은 학교가 있어 미래를 밝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유사 이래 타민족에 의한 침입을 받지 않았다는 자부심도 남다르다. 북으로 거대한 산맥이 가로놓여 있어서 「강희황제」가 『티베트』를 복속시키면서도 이 땅은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집안 정리를 아주 심플하게 하고 지낸다. 기품 있는 집안에서 제 역할을 하던 고서화(古書畵)를 비롯한 작품을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장식용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냥 장롱 속에 사장 시킨다. 그러다보니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천박해지고 그 중요성을 모른다. 한 때 많은 사랑을 받던 작가의 작품들이 세간의 홀대를 받으면서 평생을 노력한 작가에게도 생활의 안정을 주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 집안의 품격을 가늠하고 정서교육의 상징이던 대가의 작품조차 도외시 한다면, 점차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누구라도 인생은 짧다고 느낀다. 더구나 아이를 키우고 그 후대인 손자들의 성장하는 모습도 지나고 보면 잠깐의 세월이다. 비록 오늘 하루는 더디게 지날지라도 1년이나 5, 10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따라서 바로 오늘의 시간을 가족과 더불어 많은 추억을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손자들과의 동행도 그야말로 한 순간이다. 조금만 더 자라도 할아버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함께 놀아주고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행사에도 동반한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우리는 소위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에는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워 갖은 궂은일을 하는 외국인들이 있다.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안아주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 내의 「히스패닉계」가 없다면 제대로 그 사회가 굴러가지 않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3.12.10.작성/12.11.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