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19.
지난 봄 운동화를 사러 한 매장에 들렀다. 무난한 디자인에 무난한 가격인 운동화를 골라 신어보려고 하는데 깔창이 헝겊이 아니라 고무다. ‘이건 아니다’하는 필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신을 가져온 매장 직원은 일단 신어보라며 “이 운동화 신던 사람들은 새 신을 사도 깔창은 이걸로 쓴다”도 덧붙였다. 신어보니 밑창에 깔창까지 이중 쿠션이라 그런지 폭신하니 발이 더 편한 것 같아 샀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뭔가 몸의 균형이 잘 안 맞는 것 같고 발가락도 밀리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얼마 뒤 여행을 하며 반나절을 걸었는데 저녁에 숙소에 와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군대 행진을 한 것도 아니고 짐도 없이 슬슬 걸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신 탓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도 종종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고 굳은살도 생겨 걸을 때 좀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신과 발이 겉도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새 운동화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발에 대한 논문을 읽고 마음이 급해졌다. 쿠션이 지나친 신은 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굳은살 두꺼워도 둔감하지 않아
▲ 연구자들은 초음파로 발바닥에서 지면에 접촉하는 두 부분인 뒤쪽(heel)과 제1중족 골두(MH)의 굳은살 두께를 측정했다. 그 결과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신을 신는 사람들보다 발바닥 굳은살이 더 두꺼웠다. / 네이처 제공
지구촌 여기저기에는 아직도 맨발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정상이다. 인류는 600만 년 전 직립한 이래 죽 맨발로 걸었고 불과 수천 년 전에야 신을 만들어 신기 시작했다.
아무튼 신 덕분에 발이 험한 꼴을 직접 겪지 않게 되면서 발바닥도 부드러워졌다. 굳은살이 얇아졌다. 굳은살은 표피 바깥층의 각질이 두꺼워진 영역으로, 피부가 강한 마찰에 노출될 때 생긴다. 이런 자극이 표피 가장 안쪽의 기저층(stratum basale)에 있는 각질세포의 분화를 촉진한 결과다. 필자처럼 신이 안 맞아 발가락에 굳은살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 신을 신는 발보다 맨발로 다닐 때 굳은살이 더 많다. 특히 땅과 직접 닿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두껍다.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대니얼 리버먼 교수팀 등 미국과 독일, 케냐의 공동연구자들은 발바닥 굳은살 두께가 촉각의 민감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발바닥 진피에는 촉각 수용체가 조밀하게 분포해 있어 발바닥을 자극하는 촉각 정보를 감지해 전달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굳은살이 두꺼울수록 발바닥이 둔감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신을 신어 발바닥의 굳은살이 얇아지면 촉각은 민감해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생존에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는 촉각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발바닥 굳은살이 두꺼워지게 인간이 진화했을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직 아무도 신 착용 여부가 발바닥 굳은살 두께나 촉각 민감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여전히 맨발로 지내는 사람이 많은 케냐인과 대다수가 신을 신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발바닥 굳은살의 두께를 비교했다. 발바닥에서 맨발로 걸을 때 바닥과 직접 닿는 영역 가운데 뒤쪽(heel)과 제1중족 골두(first metatarsal head)의 굳은살 두께를 초음파로 측정했다.
예상대로 맨발로 다니는 사람의 굳은살이 발바닥 뒤쪽은 27%, 골두는 31% 더 두꺼웠다. 그 결과 발바닥 뒤쪽은 27%, 골두는 29% 더 단단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촉각은 신을 신는 사람들에 비해 그만큼 둔감할까.
연구자들은 진동발생기를 만들어 발바닥에 분포한 촉각 수용체 가운데 5~50Hz(헤르츠)의 압력에 반응하는 마이스너소체와 100~300Hz의 압력에 반응하는 파치니소체의 민감도를 측정했다. 이 범위의 압력은 걷거나 뛸 때, 특히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발생한다.
측정 결과 발바닥 굳은살 두께는 촉각 민감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면 신말 밑창에 쓰이는 고무나 폼(foam)을 발바닥에 댄 뒤 촉각 민감도를 측정하면 맨발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신은 발을 보호하는 대신 촉각을 둔하게 하지만 발바닥 굳은살은 그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기능한다는 말이다.
쿠션 많은 신이 충격량 오히려 커
▲ 연구자들은 ‘발가락 신발’로 불리는 비브람 파이브핑거스를 쿠션 없는 신으로 선택했다. / 비브람 제공
그렇다면 굳은살과 신은 걸음을 내디딜 때 발바닥 뒤쪽이 땅에 닿을 때 힘의 분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 쿠션이 완충작용을 할 것 같지만 대신 촉각이 둔감해져 자세가 흐트러지며 이런 효과를 상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신을 신는 집단을 둘로 나눠 한쪽은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다른 한쪽은 쿠션이 없는 운동화를 신게 했다. 여기에 맨발인 사람들까지 세 집단을 자유롭게 걷게 하면서 지면에 가해지는 힘을 측정했다. 참고로 쿠션이 있는 신은 아식스 젤-큐뮬러스(Asics Gel-Cumulus)이고 쿠션 없는 신은 비브람 파이브핑거스(Vibram FiveFingers)이다.
우리가 걸을 때 땅에 미치는 힘은 발바닥의 위치에 따라 주기적으로 바뀐다. 발이 공중에 떠 있을 때는 0이고(반대쪽 발에 체중이 실린 상태) 발바닥 뒤쪽이 땅에 닿는 순간부터 올라가면서 정점에 이른 뒤 살짝 줄어든다. 정점일 때 힘의 크기를 충격정점진폭(impact peak magnitude)이라고 부른다. 그 뒤 반대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서 다시 증가해 체중이 온전히 실린다.
▲ 걸음을 내디딜 때 땅이 받는 힘(ground reaction force)을 보행의 단계(stance phase)에 따라 나타낸 그래프다. 발바닥 뒤쪽이 땅에 닿는 순간부터 힘의 가해져 정점에 이른다. 이 힘의 크기가 충격정점진폭(Fpeak)다. 이때 기울기가 하중속도(Frate)이고 이 사이 그래프 아래 면적이 충격량(Fimpulse)이다. / 네이처 제공
측정 결과 맨발로 걸을 때 가장 빨리 충격정점진폭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쿠션이 없는 신이 그다음이고 쿠션이 있는 신이 가장 늦었다. 발바닥과 땅 사이에 신의 밑창이 있을 경우 땅에 몸무게가 실리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쿠션이 있을 때 그 효과가 더 크다는 말이다.
측정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세 경우의 하중속도(rate of loading)인 땅에 체중이 실리는 속도(기울기)를 계산했다. 그 결과 쿠션이 있는 신을 신은 그룹은 맨발 그룹의 4분의 1, 쿠션 없는 신 그룹의 2.8분의 1 수준으로 느렸다. 즉 신 쿠션의 완충작용이 하중속도를 꽤 늦춘다는 말이다. 쿠션 있는 신을 신으면 발에 충격을 덜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결과다.
그러나 충격정점진폭에 이를 때까지 발에 전해진 충격량(impulse)을 계산하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충격정점진폭에 이를 때까지 지면에 가해진 힘 그래프의 적분(아래 면적)에 해당하는 충격량은 쿠션 있는 신을 신은 그룹이 맨발 그룹보다 3.0배, 쿠션 없는 신 그룹보다 2.5배 더 컸다. 쿠션 있는 신으로 걸을 때 발 또는 다리에 누적되는 충격이 오히려 더 크다는 말이다.
반면 쿠션 없는 신 그룹은 맨발 그룹보다 하중속도는 30% 줄고 충격량은 20% 느는 데 그쳤다. 쿠션 없는 신의 물리적 효과는 쿠션 있는 신보다 맨발에 더 가까웠다.
연구자들은 학술지 ‘네이처’ 7월 11일자에 실린 논문에서 “오늘날 사람들 대다수는 쿠션이 있는 신을 신고 걷는다”며 “이는 우리 몸의 근골격계가 진화에서 적응한 하중속도와 충격량에 서너 배 차이가 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나이 들수록 쿠션 적은 신을 신어야
▲ 지구촌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생활하고 있다. 빈곤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딱한 일이지만 발의 건강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우리보다 낫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한편 발바닥 촉각의 민감도는 나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역치가 커져 발바닥의 촉각이 둔해졌다. 따라서 안 그래도 촉각 민감도가 둔한 노인이 촉각을 무디게 하고 걸을 때 힘의 균형을 교란하는 쿠션 있는 신을 신으면 걷다가 넘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나이가 들수록 쿠션이 적은 신을 신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쿠션이 많는 신을 신어 보행의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과 정반대인 조언이다.
지구촌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생활하고 있다.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텐데, 적어도 발 건강 측면에서는 우리가 이들을 동정할 처지가 아니다.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은 신을 신는 사람들에 비해 평발 등 해부학적 문제도 훨씬 적고 나이 들어 관절염 등 퇴행성 질환에 걸릴 위험성도 낮다고 한다.
대부분 도시에서 사는 현대인들이 맨발로 다니기는 어렵겠지만 맨발에 최대한 가까운 두꺼워진 굳은살을 대신해 발을 보호하는 역할만 하는 쿠션이 없는 신을 신고 다니는 게 발 건강에 좋다는 게 최근 연구들의 결론이다. 다만 시멘트 같은 딱딱한 바닥에서 달리기나 농구, 테니스 등 몸에 충격을 많이 주는 운동을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오늘 저녁을 먹고 나서 시내에 나가 쿠션이 없는 신을 사야겠다.”
이런 식으로 이 글을 마쳐야 함에도 논문을 읽고 마음이 급해진 필자는 어젯밤에 시내에 나갔다. 그런데 막상 쿠션이 없는 러닝화가 없다. 결국 스니커즈라고 부르는, 밑창이 러닝화의 절반 두께로 얇으면서 꽤 딱딱한(경화고무 재질이라고 한다) 운동화를 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니커즈를 즐겨 신지만 필자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다. 디자인이 단순미가 있고 가벼운 것 같지만 왠지 부실해 보여 발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무릎 골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스니커즈가 쿠션이 많은 신에 비해 무릎에 주는 부담이 적다고 하니(물론 맨발이 가장 적다) 뜻밖이다.
어젯밤 매장에서 스니커즈를 신고 20분을 걸어 집에 오는데 굽이 낮고 딱딱해 좀 어색했다. 오늘 한 시간 등산(완만한 코스다)을 포함해 두 시간 반 정도 걸었는데 한결 편해졌다. 특히 땅에서 전달되는 촉각의 ‘해상도’가 확실히 높다. 등산로에 박혀있는 돌과 솟아난 나무뿌리를 밟는 맛이 쏠쏠했다.
앞으로 쿠션이 있는 신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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