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산 안적암 대웅전 화반
화반은 꽃으로 장식한 ‘받침목’ 뜻
‘주심포식’서 가로재 받치는 ‘받침’
넝쿨과 꽃 새겨 기능성·장엄효과
안적암 화반, 목적·예술 두루갖춰
양산 안적암 대웅전 화반
승방-법당-부엌-대청을 갖춘 대웅전
양산 안적암은 천성산(922m) 중턱에 있다. 접근하는 길이 수월치 않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하니 언제 가더라도 고요하다. 원효 스님은 이곳 천성산
자락에서 〈화엄경〉을 강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89암자에 1천 명에 달하는 수행자들이
머물렀다. 산의 이름도 1천 명의 성인이 머문 산이라는 의미로 ‘천성산(千聖山)’이다.
안적암은 천성산 89암자 중의 하나였다. 옛 가람의 흔적은 일주문과 대웅전에 남아있다.
대웅전은 1646년에 영훈대사가 중창불사로 세웠다.
그 같은 사실은 강희 18년(1679년)의 현판 기록에 전한다.
대웅전의 구성이 독특하다.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깊고도 외진 산 속에 있는 법당 규모치곤 놀라울 정도다.
법당 크기는 가로 16.3m,
세로 8.2m에 이른다.
가로, 세로 비율이 2:1로 가로로 장대한 느낌을 준다.
정면 짝수 여섯 칸도 낯설다. 무엇보다 구성이 특이하다.
‘사자후’ 편액을 달고 있는 맨 왼쪽 1번 칸은 스님이 거주하는 승방이다.
2번, 3번, 4번, 5번의 중심부 네 칸은 부처님을 봉안한 법당이다.
맨 오른쪽 6번 칸엔 뜻밖에도 커다란 아궁이 시설을 갖춘 부엌을 뒀다.
게다가 승방과 법당 앞으론 긴 대청마루를 놓았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안동 개목사 원통전,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
나주 다보사 대웅전 등의
법당도 대청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부엌과 승방까지 시설한 대웅전은 극히 드물다.
승방-법당-부엌-대청을 갖춘 대웅전은 유일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대청을 두고 건넌방이 있고, 안방이 있고, 옆에 부엌이 붙어있는 민가 살림집을 닮았다.
기능성이나 구조로 보면
남양주 흥국사,
서울 흥천사 등 조선후기
서울경기 지역 왕실 원당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방과도 유사하다.
안적암 대웅전의 독특한 구성은
산지의 좁은 지형에 따라 한 건물에 다양한 기능성을 수용한 산물로 보인다.
화반(花盤), 꽃으로 장식한 받침목
독특한 대웅전 건물에서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반(花盤)’으로 부르는 처마 밑의 목조각이다.
고택 등 민가 목조건축에선 기둥 위에 가로재를 놓고 서까래를 걸친 후 지붕을 올린다.
그 때 실내공간은 휴먼스케일로 아늑한 느낌을 안겨준다. 궁궐이나 사찰법당 같은
성소건축은 차별화된 위계를 추구한다.
공간의 중심자리에 위치를 배정하고, 장엄과 예술을 최고최선의 미로 장식하며,
스케일이나 높이를 극대화한다. 전통 목조건축에서 건물의 높이와 장엄, 위계를 드러내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공포(뽱包)’가 그것이다.
공포라는
어려운 건축용어는 쉽게 말해 ‘받침목 꾸러미’라고 할 수 있다.
기둥을 세우면 기둥머리 부분을 파내어 횡으로 서로 연결한다.
기둥머리를 이은
가로재를 ‘창방’이라 한다. 공포는 창방 위에 가로,
세로 받침목들을 차례차례 포개어 쌓아 올린다.
공포는 지붕의 하중도 분산시키고 건축의 높이도
한층 드높이는 역할을 해낸다.
공포를 쌓은 위치에 따라
목조건축은 크게 ‘주심포식’과 ‘다포식’으로 나뉜다.
기둥 위
창방에만 공포를 설치하면 ‘주심포식’이라 하고,
기둥 사이
주간 창방에도 쌓아 올리면 ‘다포식’이다.
고려시대 건축은 주심포 형식이고,
17·18세기 조선후기 법당건축의 대부분은 다포식이다.
주심포에선 다포식과는 달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가 없기 때문에 지붕 서까래의 하중으로 인해
장여 등의 가로재에 처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 정면 구성이 허전하여 장식성을 보충할 필요가 발생한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화반’이라는 건축부재가 마련됐다.
화반은 주심포식 건축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 포벽에
놓아 장여 등의 가로재를 받치게 하는 받침목이다.
복잡한 공포와는 달리 단순한 판재로 만든다.
벽화 등에 표현한 고구려, 백제의 고건축에선 ‘人’자형 솟을화반도 보이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사각형, 혹은 원형의 판재로 단순하다. 민가 목조건축이나 서원,
누정 등의 화반은 대체로 기본 형태를 띤다. 그러나 궁궐건축이나 왕릉의 정자각,
향교의 명륜당과 대성전, 사찰 불전건축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규범의 정형성이 강조되고,
위계와 장엄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받침목 판재에 넝쿨과 꽃을 새겨
기능성에 장엄 효과까지 두루 살려낸다.
‘화반’이라는 단어도
‘꽃으로 장식한 받침목’이라는 뜻의 고유명사다.
‘화(花)’는 꽃의 장식성을,
‘반(盤)’은 받침의 기능성을 내포한다.
‘화반’이라는 용어는
조선왕실의 능을 조성하는 의식절차 기록물인
〈산릉도감의궤〉에서 두루 나타난다
. 1645년 기록인 〈소현세자 묘소도감의궤〉에서 처음 등장한다.
특히 수원화성 축조 종합기록물인 〈화성성역의궤〉의 ‘도설’에는
화반의 정형을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의궤에서 규범으로 묘사한 화반은 생명의 촉을 가진 두 넝쿨을 대칭으로 꼰 형태다.
궁궐건축과 조선 왕릉의 정자각, 향교의 대성전 등에서 화반의 전형형식으로 통용된다.
생명의 촉을 가진 넝쿨 화반은 세세생생 이어지는 무한한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왕실 관련 건축이나 관의 건축에선 화반의 표현 규범은 대체로 엄격히 지켜졌다.
하지만 사찰이나 서원, 민가건축 등에선 개성 있고 낭만적이며 익살스런 표현으로
분출했다. 화반에 표현한 다양한 소재와 형태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복화반(覆花盤):
거꾸로 엎은 화반이란 뜻이다.
고귀한 화반을 엎을 리가 없다. 매우 잘못 된 용어다.
넝쿨이 위에서 아래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초새김한 고식의 화반이다.
봉정사 극락전,
아산 맹씨행단,
구미 도리사 적멸보궁 화반 등.
△새싹의 촉을 가진 넝쿨 화반:
궁궐,
왕릉 정자각,
객사,
향교,
통도사 대웅전 내부 화반 등.
△보병에서 피어나는 연꽃 화반:
안적암 대웅전,
통도사 만세루,
도리사 극락전,
부은암 극락전,
전주 풍남문,
부석사 범종루,
울산 신흥사 구대웅전,
의성 대곡사 범종루 화반 등.
△용 얼굴 화반:
물고기나 연꽃 줄기, 넝쿨 등을 입에 물고 있거나 웃고 있는 용.
안성 청룡사 관음전,
옥천사 자방루,
법주사 팔상전,
거창 용원정,
불갑사 만세루,
위계서원 숭덕사 화반 등.
△태극 화반:
통도사 만세루,
고창 어사각,
남원 어필각,
화순향교 대성전 화반 등
△토끼, 거북, 코끼리,
사자, 사슴 등 동물을 표현한 화반:
각연사 대웅전,
남원 선원사 칠성각,
화엄사 구층암 승방,
죽림사 극락보전,
고창 송양사 화반 등
안적암,
통도사,
부석사 화반
‘화반’이라는
용어의 개념에 가장 상응하는 것은
보병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새긴 화반이다.
특히 양산 안적암 대웅전 화반과
통도사 만세루 화반,
부석사 범종루 화반은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통도사 만세루 외벽의 화반들은 목조각이 아니다.
직사각형 판재에 보병과 연꽃을 그린 판벽화 화반이다.
물론 만세루 내부에는 목조각 화반이 있다.
만세루 대들보 위 대공화반에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연지세계를 동화의 한 장면처럼 양각으로 아름답게 새겼다.
통도사 용화전 대들보 위 대형 연지화반과 함께
통도사 화반 장엄세계를 대표하는 명작에 든다.
장엄의 반복성과 통일성, 연속성 측면에선 아쉬움을 준다.
그에 비해 안적암과 부석사 화반에선 통일적이며
대칭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집합적으로 펼친다.
또한 둘 다 투조와 고부조의 돋음새김질을 병행해서 조형의 입체감을 살려낸다.
그런데 부석사 범종루 화반의 경우 화면 크기가 작고 단순하며
내용 구성이 빈약한 편이라 아쉽다. 안적암 대웅전의 화반은 여러 측면을
살펴볼 때단연 주목을 끈다. 장엄의 목적의식성과 배치, 내용 구성,
화반의 크기, 조형의 예술성, 반복과 통일의 집합성 등을 두루 갖췄다.
안적암 대웅전의 화반은 모두 여섯 점이다.
정면 여섯 칸마다 화반을 하나씩 창방에 올려 장여를 받치게 했다.
화반의 크기는
평균 가로 110cm,
세로 55cm에 달해 시원한 화면을 가진다.
조형은 화분처럼 생긴 보병과 연꽃, 연잎, 넝쿨 등을 중심소재로 삼았다.
연꽃과 연봉, 연잎들을 화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조밀하게 새겼다.
화반 조형의 모티프는 화분처럼 표현한 보병에서 시작된다.
보병은 생명력의 근원이다. 왜 보병일까?
그 속엔 청정한 감로의 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두 곳의 화반 보병에는 물이 담겨있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물고기를 그려 뒀다.
물은 청정하다. 청정한 물에서 생명의 연꽃이 피듯 청정한 마음에서 깨달음이 생긴다.
보병과 넝쿨, 연꽃 조형엔 생명 원리와 깨달음의 원리가 담겨 있다.
보병의 본질은 청정한 마음, 곧 부처와 상통한다.
정물화 화반은 모두 여섯 점이지만 조형은 두 종류다.
하나는 보병에 연꽃과 연잎을 꽃꽂이 한 형태고,
다른 하나는 연꽃 꽃꽂이 형태에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넝쿨을 추가한 형상이다.
연꽃 꽃꽂이 형태는 정면 여섯 칸 중에서 3번, 4번 칸에만 배치하고, 나머지 1, 2, 5, 6번
칸에는 넝쿨을 새긴 화반을 배치하여 좌우대칭을 이루게 했다. 화반에 새긴 조형들도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을 이룬다. 조형마다 크기와 방향, 개화 정도를 다르게 새겼다.
조형에서 올망졸망 리듬감이 느껴진다. 조형은 저마다 개성을 가진 화이부동의 집합을
만들어냈다.
채색에서도 한난대비와 보색대비를 병행하여 화면의 선명함과 산뜻함을 살려냈다.
오채를 입힌 화반은 17세기 조선의 종교건축을 풍성하고 따스한 꽃꽂이 정물화를 펼친
갤러리 느낌으로도 안내한다. 17세기 바로크 시기의 네덜란드 꽃꽂이 정물화에 비견될
예술 안목이 발휘되었다. 조선의 소목장 화원이 일찍이 선보인 식물학의 미술, 보태니컬 아트(botanical art)의 한 정수를 보여준다. 그윽한 연꽃 향과 생명력 가득한 정물화풍의 걸작 목조각이다.
▶ 한줄 요약
화반은 주심포식 건축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 포벽에 놓아 장여 등의 가로재를 받치게 하는 받침목이다. 안적암 대웅전의 화반은 여러 측면을 살펴볼 때 단연 주목을 끈다. 장엄의 목적의식성과 배치, 내용 구성, 화반의 크기, 조형의 예술성, 반복과 통일의 집합성 등을 두루 갖췄다.
양산 안적암 대웅전 공포와 화반
양산 통도사 만세루 내부화반
부석사 범종루 화반
창덕궁 희정당 화반
구미 도리사 적멸보궁의 복화반
괴산 각연사 대웅전 코끼리 화반
고창 어사각 태극 화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