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아욱국
정현수
추위가 오니까 몸에 냉기가 느껴지고 마음도 모호하다. 또 궁상스럽게 시리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게 움츠려 든다. 요즈음 날씨는 계속 우중충하고 그 가운데 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엇 저녁 서릿발 같은 바람이 불고 결국 아침 댓바람부터 첫눈이 탐스럽고 오롯하게 온 대지의 조합에 어울릴 듯 그것의 순수한 천성(天性)을 흩날리고 있다.
그지없이 연약하고 허무한 게 사람 목숨이 아닌가 싶다. 벌써 그 아이가 가버린 지 이제 15 년째 접어들었다. 삶 중에 최고의 시기인 젊은 날에 안타깝게 내 곁을 떠나 버린 내 딸아이다. 그것도 저 멀리 이국(미국) 땅에서 아이의 마지막 운명을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만 했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생각이겠지만 그 아이는 나한테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큼의 순수하고, 예쁘고, 심성이 따뜻한 아이였다. 늘 친구같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심란할 때는 열정으로 다독이며 애인같이 감싸 안았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장황하고 지루한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꼭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았고 누구한테나 따뜻한 감성으로 다가갔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더없는 사랑이었고 축복이었는데……
우리 말이나 '김소월'의 시구에 '죽어도 아니 잊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지금도 내 딸아이와의 같이 했던 나날들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하루에 몇 번씩 생각을 하곤 한다. 아주 어릴 때, 단둘이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호젓한 숲길을 마냥 걷거나 초등학교 때는 무얼 갖고 싶을 때 내 목에 매달려 애교 있게 칭얼대곤 했었다. 중학교 때는 그 시절 유명 가수 콘서트에 가겠다고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엔 대학, 과 선택을 놓고 내내 나와 실랑이했었다. 또 대학 땐 엄마 아빠가 다툼이 있을 때 장황하게 잔소리할 때가 생각나곤 한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추억이었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인 하나도 부족한 게 없었던 더 없는 오붓한 사랑이었다.
죽어도 아니 잊지 못한다는 말은 우리의 정서로 애틋한 그리움에 의해 기인된 말이겠지만 결국 어느 시기엔 또 다른 변화가 따르고 어떤 결정을 해야만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말은 방황하는 나에게는 현실이고 그 현실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이다. 이제 그 아이와 우리를 위해 어떤 결정이 필요하다. 깊은 숲 속 외롭게 켜켜이 쌓여가는 낙엽이 여러 세월에 걸쳐 방치된 듯 누구든 기억할 수 없는 훗날의 변화를 예측해야 한다. 내년 봄쯤 나는 벽제 그 아이 집에서 데리고 나와 동해안 어디쯤에서 날개를 달아 훨훨 날려 보내 줄 생각이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미처 못한 공부를 마칠 수도 있고 지가 가고 싶은 어디로도 갈 수 있을 테니까. 이 결정은 아이와 미련으로 이어진 끈을 놓을 때가 아닌가 생각에서다. 그럼으로써 먼 훗날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고 그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최상의 선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버스 차창 밖, 마치 어느 화가의 캔버스에 스스럼없는 무한의 점이 무심하게 그려 저 있듯, 들판 벼 밑 동이 불록 하게 도드라져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하얀 송이가 무심하게 흩날리는 오전의 들녘은 다소간의 차디찬 냉엄에 젖어 적막하고 거리낌 없다. 눈의 여왕이 나를 하얀 눈 세상의 한가운데로 쫓아내 추위와 고독에서 허우적거리게 하고 곧 그녀는 나에게 마법을 걸어 내 마음을 차갑게 할 것 같이 엄하게 썰렁하다. 사뭇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누구를 지켜줘야 하는 책임도, 서로 아우르는 신뢰도, 모든 걸 망각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나는 눈의 여왕에게 적의를 품지 말아야 한다.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하늘에서 날 위해 따뜻한 눈물을 흘려 마법을 풀어줘 겨우 지탱해 가는 이 현실에서 이끌어 내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줄 것 만 같다. 따뜻한 온기를 내 가슴에 불어넣어 감동과 흥분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래 최소한 지금 느껴지는 마음 그대로 믿고 싶다. 버스 안 온풍기 때문인지 온기로 전해지는 마음속 훈훈한 생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눈 내리는 읍내 장날은 조금은 한가롭다. 날씨가 좋을 때는 트럭 장사꾼들이 이 차선 도로를 꽉 매웠는데 다리가 있는 길 끝까지 겨우 두서너 대가 보이고 볼품없는 회색빛 건물들은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써 을씨년스럽다. P 빵집의 가느다란 파란 네온 광선이 겨우 반짝이고 있다. 몇 안 되는 장꾼들은 쪼그려 앉아 있거나 눈 내리는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도톰하고 색이 바랜 점퍼와 화학사 털실로 짠 목도리를 칭칭 감은 노점상 할머니는 파라솔 밑으로 날리는 눈을 면역이 된 듯 한심스럽게 바라보다 내가 다가가자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만에 오셨내유. 오늘 아욱이 싱싱한디…… "
녹색의 아욱이 다발로 묶여 커다란 통 무와, 가지런하게 묶여 있는 기다란 통 파 사이에서 풋풋하게 보인다. 집에 건새우도 있어 내가 눈길을 계속 보내자 할머니 한 말씀 더 보태신다.
"싸리문 닫고 먹는다는 갈 아욱유. 된장 풀고 새우 좀 넣어 끓이면 이웃집에서 밥만 들고 쳐들어 와유."
"아! 그래요. 사위는 안 오고요? 그럼 이천만 원어치만 줘봐요. 맛없으면 국그릇 체 들고 무르러 올 겁니다."
할머니나 나나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단순했지만 서로의 알 수 없는 정을 나눈 듯 따뜻하고도 이상적 연결이었다. 나도 가을 아욱국이 맛있는지는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어머니의 음식 솜씨로부터 알고 있는 터였고, 그 뒤 혼자가 되고서부터 가을만 되면 꼭 아욱국을 끓여 먹었다. 아마 내 냉장고에 건새우가 항상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눈을(내 마음) 녹여주는 따뜻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마치 긴 여행으로 피로에 지친, 어설프고 결코 유쾌하지 못한 나, 내 감정에만 치우치는 제 멋대로인 나, 별 볼일 없는 고행자인 나, 이젠 이런 쓸데없는 짓거리에서, 내 의지를 조롱하는 모든 것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 모든 게 자연스레 일어난 일들도 있지만 결론으로 말하면 내가 자초한 것이다. 모든 어려움이나 문제는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되고 그 결론은 그에 상응하는 통행세를 내야만 하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는 값도 지불했으니까 그곳에서 빠져나와 어디서든 누구와 융통성 있게 서로 교류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외로움이 내 삶의 필요 불가결한 동지(?)라 한들 어느 누군가와 만남으로 뭔가를 알아내고 그게 필요한 것이라면 거기에 적응하고 휩쓸려야 한다. 촌사람이건 도시인이건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자. 항상 선함을 가지며 그동안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나 삶을 실생활에 활용하여 그들에게 맞추고 그곳 환경에 어울리게 노력해야 한다. 빨리 돌아가 구수하고 따뜻한 아욱국을 끓여 시원하게 한 사발, 밥 말아먹자. 그 아욱국 속에 고집도, 아집도, 위선도, 불만도 다 털어 넣어 국물 위로 솟아오르기 전에 목구멍 깊숙이 마셔 버리자.
집에 돌아가는 버스가 왜 이리 더딘가. 자장면도 안 사 먹고 빨리 가 아욱국을 끓여 먹고 싶은데 오늘따라 버스는 정거장마다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2015. 11. 26.